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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을 하면서 음식과 질병에만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런 방식이 채식을 하는 최악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목격한 바에 따르면, 채식을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병을 고치기 위해 또는 오로지 건강을 위해 채식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채식을 평생 지속하려면 도덕적인 기반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마하트마 간디, <채식주의의 도덕적 기반> 중에서)

아침부터 삼겹살을 먹는다는 유명 코미디언에 뒤지지 않는 삼겹살 애호가이자 자칭 '고기 킬러'였던 나. 그런 내게 고기를 끊는 계기가 찾아왔다. 그 계기는 바로 고양이 알레르기였다. 고양이 곁에만 가면 발작적으로 터지는 재채기와 눈 가려움증으로 시작된 증상은 급기야 심각한 두드러기로 발전했다.

나는 아주 어려서부터 1년에 한두 차례씩 두드러기를 심하게 앓았다. 원인은 주로 돼지고기였다. 그런데 20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특별한 원인 없이도 두드러기가 생겼다. 이런 증상은 병원에 가도 좀처럼 낫지 않았고, 결국 만성이 돼 버렸다.

이번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증상이 심각했다. 500원짜리 동전만한 붉은 반점이 다리를 뒤덮었다. 두드러기가 난 곳은 가렵다 못해 화끈거렸다. 냉찜질도 소용이 없었다. 두드러기는 특히 밤에 심해진다. 가려움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건 정말 아니다!'

이번 기회에 근본적인 치료를 받고 완전히 뿌리를 뽑기로 했다. 반려고양이를 위해서라도 기필코 나아야 했다.

다음 날, 알레르기 전문 한의원을 찾았다. 한의원에서는 치료약 외에 생활습관 교정도 처방해 줬다. 두드러기를 비롯한 알레르기는 생활습관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대략 기억나는 대로 나열해보면 ▲ 평소 충분한 휴식을 취할 것 ▲ 11시 전에 취침해 면역력을 높일 것 ▲ 규칙적으로 운동할 것 ▲ 술·담배를 했다면 피할 것 ▲ 증상이 나을 때까지 닭·돼지고기와 햄·소시지·빵·과자 등 첨가물이 들어있는 식품을 피할 것 등이었다.

사실 누구나 아는 '바른 생활' 수칙이지만, 막상 실천하기는 쉽지 않은 것들이다. 하지만 치료를 마친 후에도 나는 이런 수칙을 지켰다. 불과 몇 년 전의 나였더라면 굳이 그렇게까지 했을까? 아마도 알레르기가 나은 후에는 건강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예전 생활로 돌아갔을 것이다. 내가 건강에 부쩍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반려고양이 때문이었다. 반려고양이에 대한 책임감은 자연히 내 건강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직장에 다니면서 나는 언제나 만성피로, 소화불량, 감기를 비롯한 잔병치레에 시달렸다. 직장생활의 피로가 겹치고 나이가 들면 누구나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바른 생활 수칙을 지킨 덕분일까? 이후 두드러기를 한 번도 앓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마흔을 앞둔 지금의 컨디션은 20대 초반 때보다도 훨씬 좋아졌다. 병이 기회가 된다는 말이 있다. 고양이를 반려하면서 얻은 긍정의 에너지는 병을 기회로 바꿔줬다.

고기? 한 번 끊어보자!

나는 두드러기가 나을 때까지 병원에서 지목한 닭·돼지고기 외에 육상동물의 고기를 전부 끊어보기로 했다. 이번 기회에 마음의 짐이었던 채식이나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었다.  

채식을 한다고 해서 특별한 식단을 따른 건 아니었다. 밥, 반찬, 국 또는 찌개로 이뤄진 평소 식단에서 고기를 제외했다. 한식 자체가 채식을 기반으로 하기에 특별한 어려움은 없었다. 내가 직접 요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조미료 등에 함유된 미량의 동물성 성분은 무시했다. 사회생활을 핑계로 해산물도 먹었지만, '얼치기 채식'이나마 할 수 있는 만큼 해보기로 했다. 알레르기가 나으면 다시 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겨둬서 정신적으로도 참을 만했다.

불고기, 갈비탕, 설렁탕, 삼계탕 등의 단품류를 제외하면 한국의 전통 밥상은 대부분 채식으로 이뤄져 있다. 한국의 가정식을 동물성 재료만 제외하고 요리하면 채식이 된다.
▲ 서울의 사찰음식점에서 먹은 채식 불고기, 갈비탕, 설렁탕, 삼계탕 등의 단품류를 제외하면 한국의 전통 밥상은 대부분 채식으로 이뤄져 있다. 한국의 가정식을 동물성 재료만 제외하고 요리하면 채식이 된다.
ⓒ 조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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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동물성 성분을 완전히 배제하는 완전채식(비건 채식)만이 채식은 아니다. 채식주의는 동물성 성분을 허용하는 범위에 따라 다양한 종류로 나뉜다. 잡식이 주류인 사회에서 완전채식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동물을 위한 채식주의는 '관념'이 아닌 '실천'이어야 한다. 비록 완벽하지 않더라도 최대한 실천하고, 많은 사람들의 동참을 이끌어내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더 많은 동물의 고통을 줄일 수 있다. 비(非)채식주의자들에게 '채식주의는 소량의 동물성 성분을 삼겹살 1인분과 동급으로 취급하는 것'이라는 인상을 주면 곤란하다. 이런 식으로는 주변의 동참을 유도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당시의 경험을 굳이 채식'주의'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당시 내가 신념보다는 건강을 위해 채식을 했기 때문이다. 체중감량을 위해 어떤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을 '신념'이라고 할 수 없듯이, 당시의 채식은 알레르기 치료를 위한 방편에 불과했다. 

그런데 3개월 후 채식 체험이 종료되는 계기가 찾아왔다. 직장 동료가 밥을 사주겠다며 고기를 먹으러 가자고 한 것. 나는 직장에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기 때문에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나는 밥을 사겠다는 동료에게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솔직하게 말했을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사실은 동료에게 고마웠다. 알레르기도 거의 나아가는 시점에 때맞춰 고기를 먹을 '핑계'를 마련해 줬기 때문이었다.

그날의 메뉴는 불고기였다. 3개월의 기록이 종료돼 아쉬웠지만, 오랜만에 먹은 고기는 정말 맛있었다. 다 먹고 난 후 '기왕 망한 거 이제 그만 관두기로' 했다. 채식은 역시 내게 무리였다고 생각하며….

"사람의 혀만큼 보수적인 것은 없다"

채식주의가 어렵다면 일주일 중 하루는 고기를 먹지 않는 실천을 할 수도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그만큼 동물의 고통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비틀즈 멤버이자 동물보호 활동가인 폴 매카트니가 주창한 '고기 없는 월요일'은 동물의 고통은 물론 기후변화, 기아를 줄이기 위한 전 세계적인 캠페인이다. 한국 웹사이트 주소는 www.meatfreemonday.co.kr
▲ '고기 없는 월요일' 채식주의가 어렵다면 일주일 중 하루는 고기를 먹지 않는 실천을 할 수도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그만큼 동물의 고통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비틀즈 멤버이자 동물보호 활동가인 폴 매카트니가 주창한 '고기 없는 월요일'은 동물의 고통은 물론 기후변화, 기아를 줄이기 위한 전 세계적인 캠페인이다. 한국 웹사이트 주소는 www.meatfreemonday.co.kr
ⓒ 고기없는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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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3개월 동안의 실천을 진지하게 반성해 보지 않았다. 짧은 기간이나마 고기를 먹지 않음으로써 내가 얼마나 많은 동물을 살렸는지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저 해방감을 만끽하며 예전처럼 고기를 마음껏 먹었다. 지난 경험을 바탕으로 고기 섭취를 줄이는 실천이라도 해볼 수 있으련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나는 철저하게 실패했고, 난 역시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다시 고기를 먹는 부담감을 떨쳐냈다.

나는 반려고양이를 기르면서 다른 동물을 먹는다는 사실이 내심 불편했지만, 내가 먹는 동물이 어떤 고통을 겪는지 몰랐다. 따라서 고기 섭취를 줄임으로써 어떤 고통을 줄일 수 있는지 알지 못했다. 나는 채식주의를 그저 '살생을 하지 않는' 추상적인 개념으로 이해했다. 따라서 내게 채식은 먹고 싶은 것을 참는 '인내의 과정'이었다. 

술·담배·정크푸드가 건강에 좋다고 생각해서 즐기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해롭다는 걸 알면서도 끊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의 혀만큼 보수적인 것은 없다"는 말이 있다. 건강은 우리가 음식을 선택하는 유일한 기준이 아니다. 따라서 오로지 건강을 위해 좋아하는 음식을 자제하기는 쉽지 않다. 참는 데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채식도 마찬가지다. 언젠가부터 우리나라에서 '웰빙' 트렌드와 함께 채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나는 채식이 평생의 습관이 되려면 건강 이외의 목적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오로지 건강을 위해 채식을 하다가 그만두는 경우를 많이 봤기 때문이다. 건강을 위해 고기를 끊는 사람들은 채식으로 건강이 좋아지리라고 기대한다. 물론 평소 육식을 많이 했을 경우 고기를 끊으면 즉각적인 효과가 나타나는 것도 사실이다. 몸이 가벼워지고 변비가 해소되는 것 등이 대표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몸의 컨디션은 항상 변하기 마련이다. 게다가 건강은 오로지 먹는 것에만 좌우되지도 않는다. 채식과 상관없이 컨디션 저하를 비롯한 불편은 언제든 찾아올 수 있다. 그런데 오로지 건강을 위해 채식을 하는 사람들은 몸에 조금만 이상이 생기면 '설마 채식 때문이 아닐까' '채식이 내게 맞지 않는 건 아닐까' 의심한다. 게다가 고기까지 끊었는데 눈에 띄는 효과가 없으면 실망하기 쉽다. 이런 이유로 채식을 그만두고 채식 때문에 건강이 나빠졌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채식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나는 평생 채식을 지속하려면 이타적인 동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신념이 되면 채식은 더 이상 인내의 과정이 아니다.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 고기를 먹는 것보다 자연스러워지고 즐거워진다. 생각과 행동이 일치되면서 삶이 만족스러워지고 건강은 부수적으로 따라오게 된다(그럼에도 나는 건강을 위해서라도 채식을 하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나와 동기는 다르지만 그들 역시 꾸준한 실천으로 동물을 살리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동물보호·채식주의 운동가인 게리 유로프스키는 "고기가 맛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채식을 하는 이유는 품위, 즉 신념을 위해서라고 말했다. 채식을 신념으로 받아들인 후 나는 이 말에서 큰 울림을 느꼈다. 나 역시 고기를 무척이나 좋아했고, 지금도 여전히 고기 굽는 냄새를 향긋하다고 느낀다. 배가 고플 때 식당에서 풍겨오는 갈비냄새를 역겹게 느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러나 이제는 고기를 봐도 먹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고기가 더 이상 '음식'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나를 이렇게 변화시킨 것은 그로부터 몇 달 후 찾아온 우연한 계기 때문이었다.

(* 다음 글에 계속)


태그:#고기 없는 월요일, #채식, #건강, #신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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