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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세월호침몰사고 희생자 추모와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범국민촛불행동집회가 열리고 있다.
▲ 꼭 돌아오길 바라는 기도의 손 17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세월호침몰사고 희생자 추모와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범국민촛불행동집회가 열리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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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행사가 시작되려면 아직 30분이나 남았는데도 단상 앞은 벌써 노란색 옷을 입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토요일(17일) 주말 오후 6시. 평상시 같으면 계절의 여왕 5월이 주는 자연의 선물을 만끽하러 가족들과 나들이를 떠났거나 거실 소파에 누워 시원한 맥주와 더불어 프로야구 경기를 관람하고 있거나 혹은 저녁 준비로 한창 분주할 시간일 것이다. 그런데 크고 작은 일상의 꺼리들을 모두 내려놓고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말머리를 한 고등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여학생, 초등학생 아들 둘과 함께 온 것 같은 사십 대 부부, 인생의 절반을 훌쩍 넘긴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의 아저씨 부대, 긴 장대 깃발을 들고 선 비장한 얼굴의 청년, 손으로 직접 만든 노란 나비를 나누어주는 아주머니, 아빠 목마를 타고 사슴 같은 눈망울로 여기저기를 둘러보는 서너 살 남짓의 어린아이까지 도심 집회 현장에 나타난 시민들의 모습은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광경이다.

우리 부부도 전면에 설치된 대형 화면이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1980년대 초반 학번인 아내와 나에게 정치집회는 그다지 낯설지 않다. 80년 광주의 아픈 역사를 안고 크고 작은 집회와 시위에 참석하고 사느라 도서관보다 길 위에서 보낸 시간이 많은, 나름 관록 있는 경험자에 속한다.

그때와 지금의 차이점이 있다면, 집회 참가자가 대학생들만이 아니라는 점과 우리 부부 나이가 지천명을 넘었다는 것이라고 할까. 한편으로는 우리 또래 나이의 아저씨 아줌마들이 눈에 많이 보여서 왠지 모르게 반가운 느낌이 들었다.

눈물이 흐른다... 흘러내리는 눈물, 손수건을 직시고 있다

17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세월호침몰사고 희생자 추모와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범국민촛불행동집회에서 한 참가자가 눈물을 닦고 있다.
▲ 눈물 흘리는 엄마 '내 자식 같아서...' 17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세월호침몰사고 희생자 추모와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범국민촛불행동집회에서 한 참가자가 눈물을 닦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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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하고 엄숙한 분위기 속에 행사가 시작되었다. 고인이 된 이들을 추모하는 노래와 이들이 죽어가는 장면을 지켜본 이들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채 피어보지도 못하고 생을 마감한 어린 새싹들을 속절없이 보내야 했던 슬픔의 비가와 부패하고 무능한 권력을 향한 분노의 감정이 뒤섞여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스며든다.

눈물이 흐른다. 옆에 앉아 있는 아내도, 세상을 살 만큼 산 중년의 아저씨들도 흘러내리는 눈물을 어찌할 줄 모르고 손수건을 적시고 있다. 대관절, 어떻게 이런 참혹한 일이 생길 수 있단 말인가.

지난 한 달 동안, 매일같이 세월호 침몰사고 관련된 소식을 들으면서 안타까워하고, 슬퍼하고, 울화가 치밀고, 치를 떨었건만…. 도무지 말로 표현하기 힘든 이 감정을 주체할 길이 없다. 나이를 먹은 탓인가. 자식을 낳아 키워본 경험이 있는 아빠 엄마이기 때문인가. 아님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이 비극적 참사를 도무지 용서할 수 없다는 의기(義氣) 때문인가. 자국민이 눈앞에서 죽어가는 데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 이 한심한 정부에 대한 분노 때문인가.

내 나이쯤 되면, 잘 살건 못 살건, 높은 자리에 있건 그렇지 않건, 자신과 직접적 이해관계가 얽혀 있지 않은 집회나 시위에 참석하는 건 아주 드문 일이다. 직업 운동가도 아니고 사회 문제에 관심이 크다 해도, 보통은 관찰자의 위치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못할 일은 전혀 아니지만 보이게 보이지 않게 우리 사회가 규정하는 '나이에 어울리는' 모습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런 심리 기제가 작동했다. 이런 일은 나보다 젊은 친구들의 몫이라 판단하는, 그런 심리 말이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달랐다. 아내도 나도, 그냥 뉴스나 보고 페이스북에 '좋아요'를 누르는 정도에 머물기가 어려웠다.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는 공명이 마음 안에서 일렁였다. 아내는 그것을 부채와 책임의식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금의 정부에게 표를 주었건 주지 않았건 상관없이, 국가를 경영할 능력이 현저히 부족한 저들에게 권력을 넘겨준 포괄적 책임이 기성세대에게 있으므로 그 과오를 바로 잡기 위한 책임 역시 우리 몫이라는 것이었다.

맞다. 백번 지당한 지적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마음을 나눈다고 잘못이 시정될까. 지난 수십 년간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 땅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피눈물을 흘리며 죽어갔단 말인가. 그 많은 희생을 치른 대가로 힘겹게 이룩한 민주정부 10년의 역사도 이렇듯 한순간에 허물어지고 있지 않는가. 부패한 관료, 탐욕에 찌든 자본, 무능한 정치인들, 노회한 기성세대, 비겁한 중산층, 힘없고 약한 백성, 그리고 세대 간 갈등까지 이 많은 사회적 모순과 갈등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단 말인가.

언론노조 부위원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성이 마이크를 잡았다. 자신도 '기레기' 중 한 명이라는 절절한 반성과 함께, 공영방송 KBS를 국민의 품으로 돌려주기 위해 싸우겠다는 이야기가 큰 울림으로 다가섰다.

스승의 날을 스스로 반납한 대학 교수는 자신들은 스승 대접을 받을 자격이 없으므로 안전한 나라를 만들 때까지 앞으로도 동료 교수들과 함께 스승의 날을 반납하겠다고 말했다. 침묵시위를 제안한 대학생, 삭발 단식투쟁에 들어간 신학대학생 등 청년 학생들의 정부에 대한 비판과 성토가 이어졌다.

집회 중간에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서명 용지가 돌려지고 있었고, 집회 행사비 마련을 위한 자발적인 후원 모금이 진행되었으며, 사회자의 선창에 따라 구호 제창이 이어졌다. 행사는 조용하고 차분한 가운데 치러지고 있었으나 그 안에는 어딘가로 문이 열리면 그 분출구를 향해 거대한 용암이 터져 나올 것 같은 정중동(靜中動)의 흐름 같은 것이 느껴졌다.

자리에서 일어나 뒤를 본 순간,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17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세월호침몰사고 희생자 추모와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범국민촛불행동집회가 열리고 있다.
 17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세월호침몰사고 희생자 추모와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범국민촛불행동집회가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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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자 하나둘, 촛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3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던 참석인원 수는 4만, 곧이어 5만 명이 넘은 것 같다는 안내 멘트로 이어졌다.

집회가 마무리되고 거리행진을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뒤를 돌아본 순간, 놀라운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내가 서 있는 청계광장 초입 뒤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촛불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같은 생각을 하는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서서 한 방향을 바라본다는 것.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분이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가장 많은 인원이 한자리에 모였다는 SNS상의 속보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것이 지금 이곳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공통된 마음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가슴이 벅차올랐다.

행진이 시작됐다. 처음에는 선창에 따라 후창을 하는 방식이었지만 이내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돌려 달라. 박근혜가 책임져라, 특별법을 제정하라."

아이를 목에 태우고 걷는 젊은 아빠, 양쪽에 두 자녀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중년 아줌마, 머리에 노란 스카프를 두른 여학생, 환갑이 훨씬 지났을 것으로 느껴지는 초로의 할아버지. 사람들은 손에 손에 촛불과 손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면서 함께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군데군데 외국인들의 모습도 보였다.

행사 주최 측이 제시한 슬로건은 '대통령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었지만, 행진이 진행되는 가운데 "박근혜의 퇴진"과 "하야"를 요구하는 구호가 여기저기서 거침없이 튀어나왔다. 이 모든 사태의 책임은 청와대에 있으며, 이미 보통의 상식이 수용할 수 있는 한계치를 넘어섰고, 따라서 대통령은 물러나야 한다. 대국민 담화를 통해 어떤 내용의 대책이 발표되건 상관없이, 국민들이 느끼는 정부에 대한 불신과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 같았다.

이날 시위 현장에서 받은 인상은,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대통령을 직접적으로 겨냥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종각 근처에서 경찰과 한참 동안 옥신각신하던 대열은 종로 쪽으로 방향을 잡고 행진을 이어갔다. 거리거리마다 가던 길을 멈추고 시위행렬을 구경하는 행인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멀리서 바라보면 길게 늘어선 촛불의 강이 도로를 따라 흘러가는 것처럼 보일 것 같았다. 종로 3가에서 을지로를 거쳐 시청 앞으로 돌아오는 약 1시간 동안의 평화행진을 마치고 구호 제창을 하는 것으로 공식 행사는 끝났다. 시청 앞 분향소에는 밤늦은 시간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줄을 지어 분향을 기다리고 있었다.

행사 진행을 맡은 사회자가 다음 주 토요일에 다시 만나자는 마무리 인사를 하고 난 뒤에도 사람들은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고 삼삼오오 시청 앞 광장 주변에 모여 있었다. 뭔가 아쉽고 부족하다는 느낌, 그리고 미련 때문일까. 단지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평화적인 시위를 하는 것만으로는 정부의 책임 있는 사후조치를 포함해 지금의 사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좀 더 확실하고 구체적인 행동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내에게 물어보니,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안국동 방향으로 진출한 사람들과 경찰의 충돌이 있었고, 이들 대부분이 연행되었다는 소식이 SNS를 통해 들려왔다. 평화적인 시위에 물리력을 동원한 강제해산이라니…. 대관절 지금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 것인가. 이 정부가 지금 제정신인가. 국민을 상대로 겁을 주고 협박을 하는 것으로 이 사태가 진정될 것이라고 믿고 있단 말인가. 기름을 붓고 있구나. 국민의 절대다수가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조사와 대책이 완성되기 전까지, 이 싸움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방적인 선언만 이루어졌을 뿐, 민의 수렴은 생략되었다

17일 오후 서울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세월호침몰사고 희생자 추모와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범국민촛불행동을 참가했던 시민들이 행진을 마치고 촛불을 든체 앉아 있다.
▲ '돌아오길 두손 모아 기도합니다' 17일 오후 서울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세월호침몰사고 희생자 추모와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범국민촛불행동을 참가했던 시민들이 행진을 마치고 촛불을 든체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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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고 있는 사이,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 소식을 들었다. 이번 사태에 대해 큰 책임을 느끼며, 향후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행정개혁을 단행하겠다는 것이 발언의 요지인 것 같다. 역시나 일방적인 선언만이 이루어졌을 뿐, 민의의 수렴은 생략되었다. 이 나라 국민들은 주군의 명을 고분고분 따라야 하는 힘없는 백성일 따름인가. 생각해보면, 너무나 오랫동안 정치 영역에서 우리 국민들 대다수는 기껏해야 투표만 하는, 수동적인 객체로만 살아왔던 것 같다.

대의제 민주주의라는 미명하에, 정치는 직업 정치가들의 몫이며 국민의 역할은 좋은 정치가를 뽑는 것뿐이라는 최면을 걸고, 당장 먹고사는 문제에 매달려 하루하루를 열심히 사는 것으로 우리의 역할을 다했다는 거대한 착각에 빠져 있었던 것 같다. 이번 세월호 사태는 국민의 선택이 잘못되었을 때, 국민이 뽑은 대리인들이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때, 그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 비극을 낳게 하는지를, 온 국민이 학습하게 해주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는 것처럼, 기존 조직을 허물고 새로운 조직체를 신설하는 개혁을 단행한다 해도 바뀌는 것은 별반 없을 것임을 우리는 안다. 근본적인 대수술이 있기 전에는 밑동부터 썩은 이 나라를 온전히 되살리기 힘들 것임을 안다. 박종철과 이한열의 죽음이 87년 6월의 거대한 항쟁을 이끌어냈듯이, 2008년 광화문과 시청 앞을 온통 뒤덮었던 광우병 촛불집회가 그러하였듯이, 우리 국민들은 결코 이 비극적 사태를 간단히 접고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행사에 참석한 초등학교 아이들, 한창 공부에 전념해야 할 때임에도 또래의 동료들을 잃은 슬픔을 함께하기 위해 주말 시간을 반납한 중고등학생들에게 이날의 집회와 시위는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 이 아이들의 눈에 비친 어른들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훨씬 많은 이들 미래 세대를 위해,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기성세대들은 무슨 일을 해야 할까. 지금보다 더 나은 나라, 더 행복한 세상을 물려줄 수 있을까.

지금으로선 그랬으면 좋겠다는 바람 이외에 딱히 말해 줄 답변이 없다. 나는 그럴 힘도, 능력도 없는 사람이다. 또는 그런 비범한 재주를 가진 이라 하더라도 수많은 인과관계의 고리가 작동되고 있는 이 복잡한 세상에서 미래의 흐름을 연역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 생각된다.

다만 한 가지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날 집회 현장에서, 아이들의 맑고 초롱초롱한 눈망울 안에서 내가 발견한 것은, 지금 자신들이 살아가는 이 세상은 결코 정의롭지 않다는 것, 이 부정의한 세상을 바꾸려면 소리쳐야 한다는 것. 그 소중한 교훈의 씨앗이다. 이 기억이 이 세상을 바꾸는 힘, 희망의 역사를 쓰는 단서가 될 것이라는 믿음이 내게 있다.

그러므로 가장 정직한 언어로, 지금의 이 추악하고, 비틀리고, 일그러진 세상의 모습을 아이들에게 들려주도록 하자. 이 모든 책임이 어른들에게 있음을, 이미 보았듯이 어른들의 말을 믿고 기다리는 것은 곧 죽음에 이르는 길임을, 위정자들을 포함하여 지금 이곳에서 나라를 이끌고 있다고 믿는 자들 태반이 자질과 능력이 부족한 인간들임을, 미래의 주인공은 노회한 구세대가 아니라 바로 그대들이며, 미래로 향하는 문을 열기 위해서는 지금의 낡은 세상과 맞서 싸워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태그:#세월호, #촛불, #집회, #시위,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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