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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상에서 노란 리본이 전국을 뒤덮었다. 리본의 형태도 다양한데 몇 가지가 대표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진짜 노란 리본도 있고, 노란 바탕에 검은 나비 넥타이 모양도 있고 노란 넥타이에 글자가 쓰여 있는 것도 있다. 모양이 어떻든간에 그 모두는 기적을 바라는 국민들의 마음을 보여준다.

'정상적인' 사회에서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일텐데, '정상적인' 사회에서라면 배가 침몰했다 하더라도 승객들이 승무원들의 도움으로 안전하게 탈출할 수 있었을 텐데, '정상적인' 사회에서라면 국가 차원의 재난구조활동으로 승객들이 빨리 구조될 수 있었을텐데, '정상적인' 사회에서라면 기적을 기대하지 않아도 되었을텐데, '정상적인 듯한' 2014년 대한민국에서는 국민들이 기적을 염원해야 했다.

노란 리본의 기적에 대한 기대는 "오래된 떡깔나무에 노란 리본을 매어 주오(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e Oak Tree)"란 노래에서 유래했다.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노래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형기를 마치고 감옥에서 풀려난 한 죄수가 사랑하는 여인에게 편지를 썼다. 만약 그를 용서하고 다시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녀의 집앞에 있는 오래된 떡갈나무에 노란 리본을 매달아 달라는 내용이었다. 감옥을 나온 남자는 버스를 타고 여자의 집으로 향했다. 과연 리본이 매달려 있을까 마음을 졸이면서 남자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버스는 모퉁이에 다다랐고, 저 모퉁이를 돌면 사랑하는 여인의 집과 떡갈나무가 보인다. 만약 나무에 리본이 매달려 있지 않다면 남자는 버스에서 내리지 않고 여인의 집을 지나칠 심산이었을 게다. 모퉁이를 돌면서 저 멀리 떡갈나무가 보인다. 남자는 그의 눈을 의심하였다. 떡갈나무의 온 나뭇가지에 셀 수 없이 많은 노란 리본이 달려 있었던 것이다."

필리핀에서 정치적으로 큰 의미 있는 '노란 리본'

리본 아래 왼쪽이 코라손 아키노, 오른쪽이 니노이 아키노다.
▲ 니노이와 코라손 아키노 리본 리본 아래 왼쪽이 코라손 아키노, 오른쪽이 니노이 아키노다.
ⓒ http://www.thephilippineisland.com/tag/presid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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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리본이 정치적으로 큰 의미를 띤 것은 필리핀의 반독재 민주화 운동에서 시작되었다. 우리나라에서 10월 유신이 선포되기 한 달 전인 1972년 9월, 마르코스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영구 독재 체제를 구축하려고 했다. 다음 해에 개헌을 통해 일종의 유신 헌법을 만들었는데 엄밀히 말하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 헌법이 '한국적 계엄 헌법'이라고 할 수 있다. 계엄 헌법의 주요 내용은 통치 제제를 대통령제에서 내각제로 바꾸고 마르코스가 행정부 수반으로 대통령직과 내각 수반으로서 총리직을 동시에 수행한다는 것, 계엄령 하에서는 선거를 유보하여 마르코스의 임기는 자동으로 연장된다는 것 등이다.

이런 독재체제에 저항하던 대표적 인물이 베니그노 '니노이' 아키노였다. 한국 전쟁에 종군기자로 참여해 한국과도 인연이 있던 아키노는 계엄령 선포 이후 첫 희생양이 되었다. 40여 일간의 단식투쟁을 벌였지만 마르코스 정부는 사형 선고로 대답하였다. 니노이 아키노의 형량은 감형되었고 심장병 치료를 위해 미국으로 가게 되었지만 미국에서도 반 마르코스 반독재 투쟁은 멈추지 않았다.

1981년 CNN과의 인터뷰에서 마르코스는 갑자기 계엄령을 철회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어 벌어진 대선에서 마르코스는 이해할 수 없는 압도적 지지를 받으며 당선되었다. 미국에 있던 아키노는 마르코스 독재에 대한 비판을 계속하며 필리핀으로 돌아와 민주화 투쟁을 계속할 것을 선언한다. 마르코스 정부는 아키노에게 투옥 또는 암살될 것이라고 경고와 협박을 거듭하였다. 거듭되는 정부의 제지 노력에도 1983년 아키노는 싱가포르, 쿠알라 룸프르, 홍콩 등의 도시를 거쳐 마닐라행 비행기에 올랐다.

방탄조끼를 입고 외신기자와 함께 도착한 아키노를 가장 먼저 기다린 것은 '노란 리본들'이었다. 8월 21일 아키노의 친척들과 지지자들은 마닐라 국제공항 근처의 나무와 기둥들에 많은 노란 리본들을 매달아 놓았다. "오래된 떡갈나무에 노란 리본을 매어 주오"라는 노래에서 힌트를 얻어 환영의 뜻을 나타낸 것이다.

그러나 아키노를 맞이한 것은 죽음이었다. 비행기에서 내려오는 순간 일단의 군인들이 그를 감옥으로 호송하기 위해 계단을 올랐고, 갑자기 총성이 울리며 아키노가 계단 아래쪽에 쓰러졌다. 그를 쏘았다는 갈만 역시 다른 호위 군인의 총격을 입어 즉사했다. 노란 리본은 그렇게 허망하게 바람에 휘날렸다. 

노란 리본이 다시 주목을 받은 것은 1986년 대통령 선거였다. 니노이 아키노의 비극적 죽음은 전세계의 이목을 필리핀에 집중시켰다. 마르코스는 이 정치적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임시선거를 치르겠다고 선포하였다. 당시 민주진보세력의 연합체였던 민족민주연합(UNIDO)은 마르코스를 대적할 단일후보로 니노이의 미망인인 코라손 아키노를 추대하였다. 유세장과 거리에는 노란 리본이 매달리고, 노란 깃발이 휘날렸다.

니노이 아키노를 추모하고 코라손 아키노를 지지하는 노란 물결이었다. 국회에서는 마르코스의 당선을 발표하였지만, 민중들의 개표기구 자유선거 국민운동본부(NAMFREL)는 아키노의 승리를 선언하였다. 에드사 거리를 가득 메운 필리핀 민중들은 결국 20년을 철권 통치한 독재자를 권좌에서 끌어내렸다. 노란 리본은 마닐라의 거리에서 찬란하게 휘날렸다.

노란 리본, '추모' 넘어 반성과 희망의 상징 되길

노이노이 아키노가 대통령 후보였을 때 만든 '부정부패없는 정부'를 수립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리본이다.
▲ 2009년 대선시 노란 리본 노이노이 아키노가 대통령 후보였을 때 만든 '부정부패없는 정부'를 수립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리본이다.
ⓒ http://pinayla.blogspo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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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라손 아키노 대통령의 죽음은 다시 한 번 노란 리본의 기적을 일으켰다. 2010년은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였다. 마카파갈 전 대통령의 딸이었던 글로리아 마카파갈 아로요가 대통령의 임기를 마감하고 있었다. 당시 아로요 대통령은 재직 기간의 각종 비리로 처벌받는 것을 피하려고 내각제 개헌을 통해 영구집권을 획책하고 있다는 의심을 받고 있었다.

당시 대표적 야당이었던 자유당의 대통령 후보는 상원의원 마 로하스였다. 다가올 대통령 선거에 한참 관심이 고조되었을 때 전임 대통령이었던 코라손 아키노가 지병으로 사망하였다. 필리핀 전국은 노란 리본의 추모 물결로 뒤덮였다.

사람들의 관심은 당시 상원이었던 아키노 부부의 아들 '노이노이' 아키노에게 쏠렸다. 이미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던 로하스는 "아로요의 독재정치 연장을 막기 위해서, 필요하다면 노이노이에게 후보 자리를 양보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잠시 잠적하였던 노이노이 아키노는 대통령 후보 수락 연설을 하였고, 부정부패를 일소하기 위해 '규제를 강화하고' 서민들을 위한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하였다.

다시 한 번 필리핀 전역을 뒤덮은 노란 리본은 여러 형태로 발전하였다. 처음에는 한가지 크기의 노란 리본이었다. 자원봉사자와 지지자들은 노란 두루마리 끈을 끊어 리본을 만들어 배포하였다. 시내 주요 지점에서는 노란 리본을 나누어 주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노란 리본 스티커가 나왔다.

스티커의 크기는 다양해서 자가용과 트럭에 붙일 만큼 큰 것도 있었고 핸드폰에 붙이는 조그마한 것도 생겼다. 노란 옷감을 기부받은 지지자들은 노란 티셔츠를 만들고 검은 리본 모양을 새기기도 하였다. 노란 소파, 노란 옷장, 심지어 노란 휴지통이 나왔고 노란 헤어밴드, 노란 귀걸이, 노란 손목시계, 노란 신발 등도 유행했다. 노란색은 이제 추모의 상징을 넘어 희망의 상징으로 발전하였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한 달이 넘었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이 비극을 잊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지금도 분향소에는 어린 학생들과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추모 행렬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거리에 아직도 걸려 있는 많은 현수막들은 "미안합니다. 그리고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무엇을, 왜 잊지 않겠다는 것일까?

정부는 이 문제를 선장과 선주 개인의 도덕성에 초점을 맞추고 연일 그들을 비난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에게는 5억 원의 현상금까지 걸었지만 아직도 체포하지 못하고 그대로다.

공중파 방송과 일부 종편 등 보수 언론에서는 참사 이후 한 명도 추가로 구조하지 못한 정부의 무능함과 무책임함이 거론되는 것을 철저히 막으려 하고 있다. KBS 사장은 방송 통제 의혹으로 앵커와 기자들에게 퇴진 요구를 받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수차례에 걸쳐 사과하고 눈물까지 보였다. 왜 처음 사과했을 때 재난에 확실하게 대처하여 일을 마무리짓지 못했을까?

작은 움직임들이 모여 큰 기적을 이루지 못했음이 분명히 드러났다. 이제는 그 어떤 움직임으로도 안타깝게 희생된 이들을 다시 돌아오게 만들 수는 없다. 너무 늦었지만, 어떤 방법을 통해서라도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했으면 좋겠다. 국민들이 대단한 움직임들을 일으켜서 그런 작은 기적이라도 이루었으면 좋겠다. 대한민국에서도 노란 리본이 이제 추모의 상징을 넘어 반성의 상징, 희망의 상징이 되기를 기대한다.


태그:#노란 리본, #세월호, #아키노, #희망, #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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