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낭만적인 옥탑방? 실제 살아보니...
 낭만적인 옥탑방? 실제 살아보니...
ⓒ 김종성

관련사진보기


사실 옥탑방은 뭔가 '로망'의 장소였다. 혼자서 살아본 적 없는 이십 대 여자애가 흔히 가지는 그런 환상을 나 역시 고스란히 갖고 있었다. 비록 작아도 내 공간이 있고, 옥상까지도 내 공간인 옥탑방.

그 무엇보다도, 그냥 '원룸'보다 '옥탑방'이라는 말이 주는 어감의 특별함에 대한 그런 환상과 로망이 있었다. 왠지 고양이를 키워야 할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을 주는 옥탑방이라는 어감에 나는 매료되어 있었던 듯하다. 사실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내 로망이 영향을 주지 않았을 리는 없다. 그래서인지, 겨울을 목전에 두고 옥탑방으로 이사해 들어가는 날까지만 해도 나는 의기양양했다.

옥탑방에 들어가면서도 의기양양

로망이 현실로 바뀌는 순간은 얼마나 짧은지. 옥탑방으로 이사해 들어간 날 보일러가 고장났다. 아직 매트리스도 주문하지 않아 바닥에 얇은 침대시트를 깔았다. 그렇게 지난 번 집은 따뜻해서 잘 몰랐던지라 여름겨울 상관없이 덮었던 얇은 이불을 덮고 자다가 추워서 잠에서 깼다.

시간은 새벽 다섯 시. 보일러를 덜 틀었나 싶어 보일러를 최대로 올리고 다시 잠을 청했지만 여전히 추웠다. 결국 아침 일곱 시가 다 되어서야 아랫집 주인집에서 올라와, 보일러가 망가졌고 한 시간 안에 고쳐진다는 말을 전해 주었다. 주섬주섬 옷을 입고, 그 위에 야상 잠바를 입고, 모자까지 쓴 채로 이불을 덮어쓰고 누웠다. 여전히 추웠지만 잘 만했는지 잠이 왔다. 두 시간 자고 일어나니 보일러가 고쳐져 있어 따뜻한 물이 나왔다. 하필이면 날이 계속 추워지는 2011년 12월 중반이었다.

그리고 눈이 오던 날 결국 싱크대가 얼었다. 라면을 끓여 먹고 귀찮아서 물만 부어 놓은 채로 이틀간 내버려 두었더니 냄비 안의 물이 꽁꽁 얼어 있었다. 담가놓은 젓가락을 그대로 얼린 채로. 엄청나다면 엄청난 사태지만 워낙 집에서 뭘 먹지를 않으니 그냥 녹을 때까지 두자, 싶어 그냥 내버려 두었다.

따뜻한 물로 녹이려고도 해 봤지만, 싱크대 수도가 얼어 물이 나오지를 않길래 그냥 두었다. 한 사흘쯤 되었을 때 조금씩 날이 풀리면서 얼음이 녹기 시작해 방안에 냄비를 들여놓았더니 금방 녹았다. 잽싸게 젓가락을 빼내고 냄비를 씻어서 싱크대와 가스레인지 위에 고이 올려놓았다. 그 이후로는 부엌 쪽으로 걸음도 잘 들여놓지 않았다.

2012년 1월은 유독 추웠던 기억이 생생하다. 기껏 매트리스를 주문해서 사 놓고는 바닥에 보일러가 잘 들어오니까 바닥이 훨씬 따뜻해, 정작 매트리스 위에서는 일 주일도 못 잤다. 1월의 추위가 매서워서 점점 샤워하는 게 무서웠다.

물은 따뜻한데 물이 닿지 않는 부분의 피부가 너무 추워서, 24년 동안 터득하지 못한 '5분 안에 샤워하기'를 저절로 터득했다. 그러다 2월로 넘어가면서 샤워하기에도 추워진 어느 날 결국 운동을 등록했다. 운동하는 곳에 샤워시설이 같이 있어서 매일 운동을 갔다. 가끔 머리를 말리지 않고 집에 오다가 머리가 얼어서 바삭바삭 소리가 날 때는, 무언가 내가 우스워지기도 했다.

귀신에 대한 무서움이, '미닫이문이 불완전한 잠금장치'라는 불안감에 철저하게 패배하는 나날이기도 했다. 밤이 무섭고 귀신 얘기를 들으면 잠도 못 이루던 날은 지나갔다. 하지만, 방 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지 귀를 기울이다가 잠드는 날들이 이어졌다. 물론 나중에는 결국 무뎌지고 익숙해져서, 아무것도 별반 무섭지 않은 날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옥탑방을 떠난 지금에 와서야 생각나는 것들이 있다. 그 곳에서 순간순간 스쳤던 아름다운 것들을 생각해 보기도 한다. 오랜만에 집에 일찍 들어와서 주택가 너머로 해가 지는 것을 보고 있을 때, 고양이도 올라오지 못하는 높이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고양이 두 마리가 나란히 아주 좁은 골목을 지나갈 때, 그리고 무엇보다 보름달이 뜬 날 무심코 집에 들어오다가, 가로등이라도 켜진 줄 알았을 만큼 환했던 달빛이 온전히 내 집 앞에만 가득했던 때.

그 날, 옥상 위는 달빛이 밝아서 그림자가 생길 지경이었고 도시에서 태어나 자란 나는 달이 그렇게 밝다는 것을 그제서야 처음 알았다. 여전히 몹시도 추운 2월이었고, 나는 방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우두커니 아무것도 없이 달빛만 보이는 옥상을 한참 보고 있었다.

그렇게 결국 두 달을 채우지 못하고 옥탑방을 떠나며, 수많은 생각들이 들었다. 나는 왜 옥탑방에 살아야 했을까. 고작해야 채 두 달이 안 되는 시간이었는데도 어떻게 이렇게 많은 것들이 기억에 남아 있을까. 이제서야, 옥탑방을 탈출한 지금에서야 조심스럽게 써 본다. 어렵고 힘들고 서러운 기억이었지만, 내 삶의 한 파편이었다고. 절대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도 지우고 싶지도 않은 내 삶의 일부였다고.

덧붙이는 글 | '나는 세입자다' 응모글



태그:#나는세입자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