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책 표지
▲ 솔로계급의 경제학 책 표지
ⓒ 한울아카데미

관련사진보기


싱글세 논란이 비추는 한국사회의 단면

얼마전 보건복지부가 싱글세를 추진 검토한다는 소식을 한 매체가 보도하면서 인터넷과 SNS를 중심으로 비판여론이 거세게 일어났다. 보건복지부 고위 관계자가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장기적으로 싱글세와 같은 페널티 정책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언급한 것인데 이후 논란이 되자 농담이 와전된 것이라고 발빠르게 해명하긴 했으나 뒷맛이 개운치 않다. 로마제국에서 처음 실시된 이래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독일의 히틀러, 루마니아의 차우셰스크에 의해서도 시행된 바 있는 싱글세(독신세)는 출산장려정책의 극단적인 형태로 혼인하지 않은 성인에게 페널티를 부과하는 세제정책이다. 한국에서도 2005년 LG경제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에서 저출산대책의 하나로 독신세를 언급해 논란이 된 바 있다.

비록 해프닝으로 끝났으나 싱글세 논란은 2014년 한국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혼인하지 않고 홀로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수가 꾸준히 늘어나고 국가적 차원에서 저출산 문제의 해결이 당면한 과제로 떠오르면서 이 둘 사이의 충돌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흔히 한국의 20-30대 젊은세대를 가리켜 3포세대라 하는데 청년들이 포기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결혼이 아니었던가. 한국의 젊은이들이 결혼을 하지 않게 된 데는 안정되지 않은 직장, 주거의 불확실성, 불균형한 가사분담, 육아부담 등이 복합적으로 결합되어 있는데 이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 없이 싱글세가 언급되다니 젊은이들이 분개한 것도 지나친 일은 아닐 것이다.

젊은이들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남부럽지 않게 키우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 우선적으로 안정된 직장에 가족이 함께 살 수 있는 집이 있어야 하고, 맞벌이에도 아이를 양육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현실은 신규취업자의 팔할이 비정규직이고 부동산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아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으며 사회적 보육시스템 역시 불안하기 짝이 없다. 때문에 선뜻 결혼해 가정을 꾸릴 만한 젊은이가 많지 않은 것이 당연한데 부동산과 노동에 관련된 정부정책들은 오히려 이와 역행하고 있으니 답답하기 짝이 없다.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도 가지지 않는 무자식자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증가할 것이다. 저출산 문제를 먼저 겪었던 해외의 사례를 볼 때 한국의 출산률 역시 계속 감소할 것이며 그로 인한 사회,경제적 충격이 몰아칠 것이라 판단하는 게 합리적이다.

<88만원 세대>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우석훈 교수의 신작 <솔로계급의 경제학>은 이와 같은 문제에 직면한 한국사회에 던지는 제언이다. 그는 책의 서두에서 문제의 핵심이 출산률이 아니라 혼인률임을 입증하고 젊은이들이 결혼을 하지 못하게끔 하는 사회적 제약이 존재함을 밝힌 후 젊은 세대가 직면한 불안한 삶과 그로 인한 문제에 사회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사실 그가 제안하는 방안들은 그리 새로울 것이 없으며 냉정하게 이야기하자면 문제의식 역시도 그렇다. 하지만 현재의 한국사회는 새로울 것 없는 문제의식조차 받아들이지 않는 위정자들이 장악하고 있다. 바로 이 점에서 청년들의 문제를 객관적인 시각에서 써내려간 이 책이 의미를 갖는다고 하겠다.

솔로계급에게 빵과 장미를!

불평등과 양극화의 문제가 날로 심화되고 있음에도 한국사회는 이를 더욱 강화하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 비정규직과 파견노동자의 비율을 줄이고 고용의 안정성을 높여야 하는데 대법원은 쌍용차 노동자들의 해고를 정당화하는 판결을 내놓는다. 더욱 경쟁적이 되어가는 사회풍토 속에서 복지체계와 최저시급 등이 선진국 수준으로 나아갈 것 같지도 않다. 노동조건이 갈 수록 열악해짐에도 노동자에 대해 엄격한 사회적 시선이 존재하고 어처구니없게도 누리예산과 무상급식의 대결구도가 빚어져 언론에 오르내린다. 그 사이에 정부는 돈을 풀어 부동산 가격을 떠받치고 청년들은 분위기 파악도 못하는 싱글세 논란에 분개한다.

협동조합 등 지역적,사회적 경제체계를 구축하고 보편적 복지를 실시하며 가족 친화형 기업을 육성하고 교육을 개혁한다. 현재로선 저자가 무자식자 시대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제안한 방안 가운데 어느 하나도 전면적으로 시행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이로부터 극적인 혼인률 증가와 출산률 증가가 이루어질 것 같지도 않다. 때문에 저자 역시 '완화' 이후 '적응'의 장을 마련한 것일 테다. 하지만 완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적응은 지나치게 큰 충격을 남길 것이 분명하고 우리는 완화를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책의 제목에서 솔로계급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정말 솔로가 계급일까? 만약 솔로가 계급이라면 이는 가난하여 결혼도 출산도 포기한 슬픈 계급일 것이다. 대표성을 가진 정치세력도 존재하지 않고 이들을 위한 정책 역시 기대하기 어려운 열악한 계급일 것이다. 솔로계급의 소멸이 아니라 탈출을 꿈꿔야 할지도 모를 우리 시대의 젊은이들에 저자가 던지는 마지막 제언은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아기들에게 줄 일용식인 바게트를 달라며 베르사유로 달려간 프랑스의 어머니들처럼 절박하게 사랑하고 절박하게 항거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이로부터 정치적 사회적 '해체'를 시도할 수 있으냐는 것이다.

'완화'와 '적응'의 장이 끝난 후 저자가 던진 마지막 메시지는 결국 사랑이다. 인류에 대한 사랑, 이웃에 대한 사랑, 피붙이에 대한 사랑, 나 자신에 대한 사랑. 사랑에 기대어 미래를 그려야 할 만큼 우리가 처한 현실이 암울한 것일까? 하지만 이러한 결론 역시 온전하지는 않은 듯하다. 오늘날 한국의 솔로들은 서로 사랑하는 것 같지 않고 슬프고 절망할지언정 간절해보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한국 솔로들의 미래는 아닐 것이다. 우리는 간절해져야 하고 서로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이로부터 솔로들의 이야기가 청년들의 이야기로 확장되어야 하며 청년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정치세력이 형성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루이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는 프랑스의 어머니들에게 바게트를 주지 않았다. 프랑스의 어머니들이 직접 그들의 빵과 장미를 얻어냈다. 저자가 이 이야기로부터 무얼 말하고 싶었는지는 명확하다. 우리를 구하는 건 오로지 우리의 행동 뿐이다.

덧붙이는 글 | <솔로계급의 경제학> 저자 우석훈 / 한울아카데미/ 2014.09.29 / 301쪽/ 1만 8500원



솔로 계급의 경제학 - 무자식자 전성시대의 새로운 균형을 위하여

우석훈 지음, 한울(한울아카데미)(2014)


태그:#솔로계급의 경제학, #한울아카데미, #우석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적어봐야 알아듣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