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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 해제
'들꽃'은 일제강점기에 황량한 만주벌판에서 나라를 되찾고자 일제 침략자들과 싸운 항일 독립전사들을 말한다.

이 작품은 필자가 이역에서 불꽃처럼 이름도 없이 산화한 독립전사들의 전투지와 순국한 곳을 찾아가는 여정(旅程)으로, 그분들의 희생비를 찾아가 한 아름 들꽃을 바치고 돌아온 이야기다.  - 작가의 말

참취꽃, 식용, 약용, 관상용으로 쓰며 어린 순은 나물로 먹는다. 흔히 취나물이라고 한다. 지리산 사진작가 임소혁 씨 제공.
 참취꽃, 식용, 약용, 관상용으로 쓰며 어린 순은 나물로 먹는다. 흔히 취나물이라고 한다. 지리산 사진작가 임소혁 씨 제공.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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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 수로여행

우리 만주행 가족단(家族團) 일행이 신의주 역에서 궂은비를 주룩주룩 맞으며 찾아간 곳은 밀양 출신 손일민씨가 경영하는 여관이었다. 손씨는 밀양 갑부인데, 만주로 가는 사람들 뒤를 보살펴 주기 위해 신의주에서 여관을 하고 있었다. 이전에 병사(兵使) 벼슬을 한 탓인지 어른들은 '손 병사 집'이라고 했다. 우리 일행은 오랜 여행에다가 비까지 맞아 우중충했으나 그 집 부인이 친절히 맞아주며 불편한 곳을 손수 보살펴주었다.

압록강 도강을 검문하는 일제군경들
 압록강 도강을 검문하는 일제군경들
ⓒ 눈빛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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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은 그 집에서 이틀 묵는 동안 만주로 갈 준비를 했다. 일본 군경의 삼엄한 경비로 열차로 국경 압록강 철교를 넘어 만주로 가는 일은 매우 위험하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 가족단은 압록강 중류까지는 돛단배로 가는 수로를 택했다.

성산 당숙을 비롯한 어른들은 우선 압록강을 거슬러 올라갈 배 네 척을 구하고, 밥 반찬으로 소금 친 갈치도 몇 상자 샀다(훗날 만주에서 이 소금을 아주 요긴하게 먹었다. 만주는 내륙이라 소금이 매우 귀했기 때문이다). 배는 돛단배였고, 사공은 이곳 지리를 잘 아는 중국인들이었다. 이곳 지리에 밝은 현지인들은 육로로 가는 것보다 배를 타고 압록강을 거슬러 가는 것이 훨씬 수월하고 안전하다고 했다. 조선 사람들이 배를 타고 강에 떠 있으면 일본 순사와 마주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압록강(鴨錄江)은 '물빛이 오리 머리 빛과 같다'고 하여 붙어진 이름으로, 이 강은 백두산 남동쪽에서 발원하여 우리나라와 중국의 국경을 이루며 서해로 흘러간다. 압록강은 그 길이가 790여 킬로미터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강이다. 이 강은 두만강과 함께 일제강점기에 이 땅의 백성들이 정든 고향을 등지고 괴나리봇짐을 진 채 만주로 쫓겨 갔던 애환이 서린 단장의, 피 눈물의 강이었다. 망명길은 철길도 건너지 못한 채 강을 거슬러 몰래 도강했다. 망국민들은 이래저래 천덕꾸러기였다.

1910년대 신의주와 단둥을 잇는 압록강철교
 1910년대 신의주와 단둥을 잇는 압록강철교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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돛단배

우리 가족단은 마침내  압록강 어귀 신의주에서 돛단배를 탔다. 다행히 날씨가 좋아 돛단배는 바람을 타고 순조롭게 잘 나갔다. 하지만 해마다 삼사월은 가문 탓으로 압록강 강물이 줄어들어 물길이 얕아 돛단배가 더 이상 가기 어려운 곳에 닿으면 사람들은 배에서 내렸다. 뱃사공들과 일행 중 젊은 청년들은 힘을 합쳐 배에다 줄을 매어 끌기도 했다. 우리 일행이 신의주를 출발한 지 보름 동안 압록강을 거슬러 올라가며 물이 얕은 곳에서는 배를 묶어 두고 쉬어가며 그때를 이용하여 밥도 해먹었다. 배 안은 취사 기구가 있었고, 굴뚝도 있었다. 날씨가 좋은 날은 아이들도 뱃전에 나와 놀았다.

우리 일행 중에 오정현이라는 이가 있었다. 그는 서울 출신으로 홀로 독립 운동을 하고자 만주로 가는 길이었는데, 어쩌다 우리 일행과 합류했다. 그는 아이들을 무척 좋아했다. 그는 배가 강가에 닿을 때면 아이들 손을 일일이 붙잡아 배에서 내려줄 뿐만 아니라, 모래톱에서도 함께 놀아주었다.

화전을 부치기 직전의 진달래 꽃잎
 화전을 부치기 직전의 진달래 꽃잎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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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일행이 압록강을 거슬러 올라가던 그 무렵은 음력 사월 초순이라 강 양쪽 산기슭에는 진달래가 한창이었다. 오정현씨는 우리들을 그곳으로 데려갔다.

그러면 우리들은 산기슭에서 진달래꽃을 듬뿍 따서 꽃다발을 만들곤 했다. 나도 부지런히 진달래꽃다발을 만들어 춘옥이 손에 쥐어주기도 했고, 춘옥이도 진달래꽃잎을 듬뿍 따서 내게 건네 주었다. 그러면 우리 아이들은 진달래 꽃잎을 따서 먹었다. 그때 춘옥이와 은이 누이는 임은동에서 진달래 화전 부쳐 먹던 얘기를 했다.

우리 일행은 여러 날 배 안에서 밥을 해먹었는데 날마다 반찬은 소금에 절인 갈치와 젓갈뿐이었다. 하루는 평안도 쪽으로 배를 대고 자갈밭에 쉬는데 평안도 여자들이 봄나물을 강물에 씻고 있었다. 큰집 어머니가 그들에게 나물을 사려고 하자 인심 좋게도 거저 줘서 그걸 삶아 소금에 무쳐 먹었다. 그러자 입안뿐 아니라 뱃속까지도 개운했다.

우리 망명 가족단이 압록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지루한 여행은 날마다 계속되었다. 돛단배에는 방이 두 개 있었는데, 승객이 많아 방안은 늘 복잡했다. 그래서 아이들은 잠자는 시간이 아닌 때는 뱃전에서 놀았다. 봄이지만 해가 중천에 떠오르는 한낮이면 햇볕에 머리나 등이 따가웠다. 비가 오는 날은 하는 수 없이 방안으로 들어가는데 그때는 선실 위의 뚜껑을 닫기에 어두컴컴했다.

우리가 탄 배는 돛단배라 바람이 불면 잘 가다가도, 바람이 멎으면 강을 거슬러 올라가지 못하여 사공들은 배를 강둑에 묶어두고 다시 바람이 불기를 무작정 기다렸다. 그럴 때면 남자들은 강가에서 시를 읊었고, 여자들은 빨래를 했다. 우리 아이들도 강가에서 소꿉놀이를 하거나 피라미를 잡았다.

중국 지안에서 바라본 압록강과 북한 산하(1999년 제1차 항일유적지 답사때 촬영)
 중국 지안에서 바라본 압록강과 북한 산하(1999년 제1차 항일유적지 답사때 촬영)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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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인

그럴 때면 언저리 만주인들이 우리를 보고자 몰려왔다. 우리는 그들을 구경하고, 그들은 우리를 구경했다. 서로 쳐다보며 구경하는 셈이었다. 만주인들은 대체로 깨끗하지 못했다. 여자들은 머리에 철사를 구부려 만든 '머리틀'을 올려놓고 머리카락을 그 위에 덮어 머리 모양을 한껏 커 보이게 했다. 그들은 세수도 제대로 하지 않았는지, 귀와 목 뒤에는 때가 많았다. 그런데도 그들은 화장을 짙게 했다.

특히 만주 여인들 얼굴에 가루분을 하얗게 발라 놓은 걸 처음 봤을 때는 마치 이야기 속의 귀신을 보는 듯했다. 만주 남자들은 애 어른 없이 머리꼭대기에 밥그릇 뚜껑만큼 머리칼을 둥그렇게 남겨놓고 나머지는 모두 빙 둘러 깎았다. 그리고 그 남겨놓은 머리칼을 길게 땋아 풍물놀이 때 상모 꼬리처럼 뒤에 늘어뜨리고 다녔다.

돛단배는 낮 시간은 강을 쉬엄쉬엄 거슬러 올라갔다. 하지만 밤이 되면 인가가 있는 근처에 배를 매어놓고 날이 새기를 기다렸다. 아이들은 강물 위에서 지내는 밤이 무척 무서웠다. 강 양편 산기슭에서 나는 짐승들의 울음소리도 무서웠고, 한밤중의 강물 흐르는 소리조차도 무서웠다. 그래서 날이 저물면 아이들은 방안 이불속으로 몸을 숨겼다.

압록강을 얼마쯤 거슬러 올라가니 절벽 위에 관왕묘(關王廟)가 있었다. 뱃사공도 쉴 겸 우리 일행은 배에서 내려 그곳에 올라갔다. 관왕묘는 바위 사이의 큰 건물로 관왕을 비롯하여 삼국지에 나오는 유비, 장비 등 팔척 장신의 커다란 상이 모셔져 있었다. 만주인들은 관왕묘에서 장수와 복을 빌고 있었다.

통화로 가는 압록강 수로여행은 참으로 지루하고 고생스러웠다. 특히 음식이 마땅치 않아 가장 고통스러웠다. 중국 뱃사공들은 배 안의 방 한 칸에 살림을 차리고 살았다. 그들은 뱃삯을 받아 돈을 버는 한편, 선객들을 상대로 생선이나 젓갈류를 팔아 부수입을 올렸다. 우리 가족단은 몇 날 며칠 똑같은 반찬만 먹자 나중에는 입에서 비린내와 함께 구역질이 났다. 만주로 가는 망명길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신의주에서 출발한 돛단배가 마침내 보름 만에 닿은 곳은 지린성 통화현 화전(花甸)이었다. 그동안 같은 배를 타고 왔던 오정현씨와는 거기서 작별했다. 그는 상하이로 간다고 했다. 그새 정이 듬뿍 들어 어른 아이없이 모두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며 전송했다.

[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지리산 사진작가 임소혁 씨의 들꽃사진을 제공받아 머리사진으로 배치합니다. 귀한 사진작품 게재를 허락해주신 임소혁 작가에게 큰 고마움을 전합니다.



태그:#들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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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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