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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명주동 세월호 벽화그리기에서 밑그림을 그리고 있는 정열음양
 강릉 명주동 세월호 벽화그리기에서 밑그림을 그리고 있는 정열음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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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바탕도색작업을 해둔 벽면에 밑그림을 그리고 있는 청년들
 미리 바탕도색작업을 해둔 벽면에 밑그림을 그리고 있는 청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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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오전 10시 강원도 강릉시 명주동 좁은 골목에 청년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파스텔톤의 밝은 벽면 다섯 개가 청년들을 맞이했다. 곧이어 몇 개의 페인트 통과 붓, 색을 조합하고 덜어서 쓸 페트병이 놓여졌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조별로 맡은 벽화의 도면을 가지고 며칠 전 바탕작업을 해둔 벽면에 연필로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미술을 전공하거나 벽화 전문가인 사람들은 없었지만 표정만큼은 사뭇 진지해 보였다. 이들은 세월호 벽화그리기 프로젝트를 위해 모인 강릉의 10~30대 청년들이었다.

강릉의 청년들이 함께 한 두번째 세월호 벽화그리기 프로젝트

작년 12월에도 강릉에서 청년들이 모여 첫번째 세월호 벽화그리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강릉 서부시장 네 곳에 벽화가 완성됐다(관련기사: 강릉 서부시장의 노란 배, 왜 사라졌을까). 지난 3월 강릉에서 세월호 북콘서트가 열린 후에는 세월호 유가족 임세희양 부모님과 신호성군 어머니 그리고 삼성반도체 노동자 고 황유미씨 아버지 황상기님과 함께 벽화를 둘러보기도 했다.

강릉 서부시장 세월호 벽화를 함께 둘러본 세월호 유가족분들과 삼성반도체 노동자 고 황유미씨 아버지 황상기님
 강릉 서부시장 세월호 벽화를 함께 둘러본 세월호 유가족분들과 삼성반도체 노동자 고 황유미씨 아버지 황상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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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에 대한 메시지가 낡은 재래시장 서부시장 골목에 스며들었다. 어둡고 녹슨 화장실 문과 칙칙했던 대문, 시멘트 계단 위에 밝은 그림들이 자리잡자 시장상인들과 지나다니는 사람들 사이에 긍정적인 반응이 생기기 시작했다. 세월호 이야기는 민감하다며 달가워하지 않던 분위기도 조금씩 줄어들었다. 청년들은 봄이 오면 한 번 더 모여 그림을 그리자 하고 헤어졌다. 다시 4월. 약속한 대로 청년들은 강릉 명주동 다섯 개 벽면에 그림을 그리게 됐다.

세월호 벽화그리기를 하면서 가장 힘든 건 벽화를 그릴 벽을 구하는 일이었다. 이미 곳곳에 벽화가 많이 그려진 동네였기에 벽화 작업 자체에 대한 이미지는 좋았다. 하지만 '세월호'를 꺼내는 순간 분위기는 달라졌다. "세월호는 좀... 차라리 단오에 대한 걸 그려주면 좋을 것 같은데"하는 난감한 반응과 "세월호는 안 돼"하고 딱 잘라 거절하는 단호한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괜찮겠다고 허락이 떨어져 최종 디자인 작업까지 마친 상태에서 결국 안되겠다는 전화를 받기도 했다.

벽화가 허락된 뒤에도 수시로 디자인 조율을 해야 했다. 노란 리본, 세월호 배, 아이들의 이미지에 이르기까지... 어렵게 허락한 벽주인 분의 심기(?)를 해칠까 조마조마한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이거 세월호 이야기예요"

지난 3월 30일 사전모임에서 세월호 벽화그리기 프로젝트' 진행에 관해 듣고 있는 청년들. 설명이 끝난 뒤 간단한 자기소개와 참여하게 된 계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지난 3월 30일 사전모임에서 세월호 벽화그리기 프로젝트' 진행에 관해 듣고 있는 청년들. 설명이 끝난 뒤 간단한 자기소개와 참여하게 된 계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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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벽의 이물질을 긁어내고 벽화그리기에 필요한 바탕작업을 하는 청년들.
 낡은 벽의 이물질을 긁어내고 벽화그리기에 필요한 바탕작업을 하는 청년들.
ⓒ 진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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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 세월호 벽화 그리기를 함께 한 사람들 중 몇몇을 포함해 SNS상의 홍보 포스터를 보고 벽화 그리기에 참여의사를 밝힌 청년들은 스무 명 남짓이었다. 벽화를 그리기 전에 먼저 오프라인에서 사전모임을 하고 기획의도를 공유하고 통성명을 했다. 이후 벽화를 그릴 낡은 벽을 깨끗하게 긁어내고 코팅액과 바탕색을 칠하는 작업을 했고 11일에는 본격적인 벽화 그리기 작업을 했다.

벽화는 페인트의 농도를 조절하지 못하면 금방 붓자국이 생기고, 한 번만 발랐을 경우 바탕색이 올라와 제 색상을 내기가 쉽지 않다. 먼저 칠한 부분이 채 마르기 전에 색의 경계부분에 손을 댔다간 번지기 십상이었다. 보기엔 쉬워 보여도 페인트를 사용해 벽을 꾸미는 일은 결코 녹록하지 않았다. 벽화 그리기가 처음인 초보자들에겐 무엇보다 정성이 필요했다.

페인트가 마른 뒤 같은 색을 두 번 이상 꼼꼼하게 발라야 하는 작업에는 집중력과 세심함이 동시에 요구됐다. 서로 다른 색상의 페인트와 색소를 사용해 필요한 색을 만들어 내는 것도 쉽지는 않았다. 잘 만들어진 색은 조별로 나눠쓰고 다 마른 곳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나서서 덧바르며 벽화는 조금씩 모양새를 갖춰나갔다. "에이, 이게 거북이라고?" "여기 너무 이상해"하며 장난을 주고 받던 그림들이 어느새 그럴듯한 벽화가 되어 갔다.

밑그림 위에 본격적인 색을 입히는 작업을 하는 모습
 밑그림 위에 본격적인 색을 입히는 작업을 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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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모양을 갖춰 나가고 있는 벽화
 조금씩 모양을 갖춰 나가고 있는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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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세월호 이야기예요"

벽화를 그리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지나갔다. 연세가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부터 배달하는 아저씨 그리고 동네 상인들과 일반 주민들까지 벽화를 보면서 예쁘다, 수고한다, 동네 이쁘게 만들어주니 고맙다 하는 응원의 말이 이어졌다. 단순히 예쁜 그림을 그리기 위해, 동네를 꾸며보고 싶어서 하는 활동이 아니었기에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달려가 이 그림이 '세월호'에 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간이 허락할 때는 취지에 관한 긴 부연설명도 해드렸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모두 긍정적인 반응이 되돌아왔다.

최종완성한 세월호 첫번째 벽화
 최종완성한 세월호 첫번째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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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완성한 세월호 두번째 벽화
 최종완성한 세월호 두번째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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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완성한 세월호 벽화 세번째
 최종완성한 세월호 벽화 세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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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완성한 세월호벽화 네번째
 최종완성한 세월호벽화 네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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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완성한 세월호벽화 다섯번째
 최종완성한 세월호벽화 다섯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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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명 남짓한 청년들이 오래된 동네에 있는 낡은 벽에 삼삼오오 모여 다섯개의 작은 벽화를 그렸다. 손에, 옷에, 얼굴에 페인트를 묻혀가며 열심히 그렸다. 세월호가 가라앉은 지 1년이 되어간다. 시간이 흐른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잊혀진' 그리고 '잊혀져야 할'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었다. 안타까웠다.

손에 든 것은 붓이었으나 희망을 그리고 싶었다. 삼포세대, 사포세대라 불릴 만큼 각자가 마주해야 하는 삶은 치열했지만 그래도 함께 행동하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잊혀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무심코 보게 되는 벽에 그리면 그걸 바라보는 사람들도 한 번쯤 더 생각해주지 않을까 싶었다.

이번에 그려진 벽화들은 강릉 명주동 공연장 '단' 오른쪽 골목에서 만날 수 있다. 또한 벽화에 대한 홍보활동 및 세월호와 관련한 강릉청년들의 다양한 활동에 관한 소식알림은 이번주 토요일(18일)에 열리는 명주 프리마켓에 설치될 부스를 통해 진행할 예정이다. (위치는 세월호 벽화 골목 내)

강릉 명주동 세월호 벽화 완성모습
 강릉 명주동 세월호 벽화 완성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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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박순옥 기자

덧붙이는 글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63438

기사에 언급된 첫번째 강릉 세월호 벽화그리기에 관하여 다뤘던 오마이뉴스 2014년 12월 18일자 기사입니다.



태그:#강릉세월호벽화, #강릉청년벽화그리기, #세월호벽화그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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