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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누구도 예외를 두지 않는 게 있습니다. 생로병사라는 궤도입니다. 동서고금 어느 누구도 태어나지 않고, 늙지 않고, 병들지 않고 죽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 늙고 다 죽습니다. 생자필멸(生者必滅 태어난 자 필히 죽는다)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잘 살아보겠다고 머리를 싸매가며 고민하고, 출세 좀 하겠다고 별별 수단까지 다 동원하는 사람은 흔해보여도 늙어 가는 걸, 죽어 가는 걸 몇 며칠 동안 정말 진지하게 생각해 봤다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아 보입니다.

신세타령을 하듯 걱정은 합니다. 하지만 막연하고 추상적입니다. 돈을 벌려고 하는 노력만큼 진지하지도 않고, 출세를 하려고 하는 야망만큼 구체적이지도 않아 보입니다. 세월이 흐르니 어쩔 수 없이 늙어갈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정도의 피동적 반응으로 느껴지는 경우가 왕왕입니다.

언젠가 벌어질 일임에도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하기를 싫어한다. 그 결과 대부분 아무런 준비 없이 그 단계에 도달한다. 도움을 필요로 할 때 어떻게 살 것인지 거의 신경 쓰지 않고 지내다가 뭔가 해 보기에는 너무 늦은 시기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 <어떻게 죽을 것인가> 95쪽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어떻게 죽을 것인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 (지은이 아툴 가완디 / 옮긴이 김희정 / 펴낸곳 부키(주) / 2015년 5월 29일 / 값 1만 6500원)
 <어떻게 죽을 것인가> (지은이 아툴 가완디 / 옮긴이 김희정 / 펴낸곳 부키(주) / 2015년 5월 29일 / 값 1만 6500원)
ⓒ 부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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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죽을 것인가>(지은이 아툴 가완디, 옮긴이 김희정, 펴낸곳 부키(주))는 바로 이 문제, 우리가 살아가면서 허점처럼 놓치고 있는 '노'와 '사', 어떻게 늙어가는 게 잘 늙어 가는 것이고, 어떻게 죽어가는 것이 정말 인간답게 죽어가는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더듬어 가며 진지하게 고민해 보도록 견인해주고 있습니다.   

하버드대 의과대학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가 소개하고 있는 내용들은 어떤 병에 어떤 치료를 해 완치시켰고, 어떤 환자에게 어떤 수술을 해 목숨을 연장시켰다는 따위의 내용들이 아닙니다. 전문적이지도 않고 복잡하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주변에서 무심코 봐 넘겼을 수도 있는 사례들을 생각하게 하고 되돌아보게 하는 내용으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어렴풋 짐작은 하고 있으나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지 않아 어둡고 캄캄한 터널처럼 생각되는 게 노후와 맞닿아 있는 죽음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책에서는 어둡고 캄캄한 터널을 더듬어 나가듯 노후의 삶과 죽음에서 맞아들이거나 챙겨야 할 요소, 준비하거나 선택해야 할 인자들을 여러 사례들을 통해 구체적으로 고민해 보도록 유도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잘 살아간다는 건 잘 죽어간다는 역설이기도합니다.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사람은 응당 집에서 죽어야 한다는 가치가 사회적 통념이었습니다.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다가도, 임종이 다가오면 객사(客死)를 피하기 위해 환자를 집으로 모시는 게 당연한 사회·문화적 가치가 우선이던 시대가 그리 오래 전이 아닙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집에서 모시던 부모도 늙고 병들어 임종이 가까워지면 병원으로 옮겨 임종을 맞는 게 일반화되었습니다.

여기서 궁금해집니다. 최후의 시간(죽음)만큼은 집에서 가족과 함께 보내게 해 주던 과거의 임종과 지금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경우처럼 병원에서 맞게 하는 임종 중 죽음을 맞이하는 당사자가 진정으로 선택하고 싶은 임종은 어느 쪽 임종일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입니다.

혹자는 국가 경제가 좋아지고 개인별 살림이 나아지면서 생긴 또 하나의 경향인 후자, 병원에서 맞는 임종일 거라 생각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냉정히 살펴보면 이런 조치, 집에서 모시던 부모도 늙고 병들어 임종이 가까워지면 병원으로 옮기는 행위는 살아있는 자 입장에서 내린 이기적 판단일 수도 있습니다.  

책에서 소개하는 연구결과에 따르면 과거에는 어느 나라나 집에서 임종을 맞는 게 보편적이었다고 합니다. 경제가 발달하면서 병원에서 임종을 맞게 하는 경향이 사회적 현상으로 대두되지만, 경제가 더 발달하게 되면 삶의 마지막 시간을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쪽으로 다시 바뀌는 경향으로 분석되고 있다고 합니다.

요양원, '현대판 고려장'이라는 오명 벗어나려면

토머스는 자신이 이런 제안을 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자신이 '요양원에 존재하는 세 가지 역병'이라고 부르게 된 무료함, 외로움, 무력감을 공략하는 것이 이 계획의 목표라고 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살아 있는 생명을 요양원 안에 들여야 할 필요가 있었다. - <어떻게 죽을 것인가> 163쪽

2008년, '암에 대처하기coping with Cancer'라는 전국 규모 프로젝트에서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말기 암 환자가 기계적인 인공호흡, 전기적 심폐 소생술, 심장 압박 치료 등을 받거나 죽음이 임박한 상황에서 중환자실에 들어가 집중 치료를 받았을 경우 그런 인위적 개입을 받지 않은 사람들보다 마지막 일주일에 경험한 삶의 질이 훤씬 나빴다는 걸 알 수 있다. - <어떻게 죽을 것인가> 239쪽

언제부터인가 노인병원이나 요양원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고 있습니다. 대가족 제도가 무너지고 핵가족화에 따른 사회적 현상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어떤 이들은 노인요양원을 '현대판 고려장'이라 일컫기도 합니다. 

병들고 연로한 부모를 잘 모시려고 모신 요양원이 현대판 고려장으로까지 회자 되는 건 토머스가 요양원에 존재하는 세 가지 역병이라고 주장한 '무료함', '외로움', '무력감'이 결코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토머스가 요양원에 존재하는 세 가지 역병을 공략해 성공한 비법은 어렵지도 않고 소모적이지도 않습니다. 누구라도 조금만 진지하게 생각하면 떠올릴 수 있는 삶의 본질이었기에 결과로 얻어지는 성과는 노인들 삶을 본질적으로 향상시켜 주는 알파며 오메가였습니다.

오늘 하루를 잘 산다는 건 오늘 하루를 잘 죽어간다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 세상 누구도 예외를 두지 않는 게 '생로병사'라면 나 또한 예외일 수 없습니다. 지금 여기서 살고 있는 하루하루는 '어떻게 잘 살기위한' 아등바등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 여기에 맞춘 초점은 그 길이가 너무 짧아 인생이라는 긴 안목을 찾아가는 데는 자칫 우여곡절을 낳는 빗나간 방향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통해 조명해 보는 삶은, 초점이 조금 긴 삶이긴 하지만 울림과 공감을 가져다 줄 진지함입니다. 나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더불어 죽어가고 있는 뭇사람들을 위해 마음으로 읽고, 되새김질을 하듯 가슴에 새겨두면 지금 당장만 잘사는 게 아니라 현대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인간다움으로 마무리 하게 될 수 있을 거라 기대됩니다.

덧붙이는 글 | <어떻게 죽을 것인가> (지은이 아툴 가완디 / 옮긴이 김희정 / 펴낸곳 부키(주) / 2015년 5월 29일 / 값 1만 6500원)



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KBS 선정 도서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부키(2015)


태그:#어떻게 죽을 것인가, #김희정, #부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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