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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불쑥 세상을 덮쳤다. 연일 뙤약볕으로 날이 뜨겁다. 아이들은 벌써부터 물놀이를 시작했다. 피서를 가야 제격인 날들이다. 그런데 우리집은 피서를 가지 못하고 있다. 사장님이 때 이른 휴가를 허락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피서보다 메르스(중동 호흡기 증후군) 피난이 급하기 때문이다.

26개월인 우리 아들은 6월 5일부터 다니던 어린이집을 자체 휴원하고 남양주 외가로 피난을 떠났다. 사실 그 전부터 어린이집에 보내는 게 걱정이 됐다. 정부나 거대언론, 의사들이 메르스에 대해 지나친 공포심을 갖지 말라고 아무리 말해도 집에 기저귀를 찬 아이가 아장아장 걸어 다니면 세상 온갖 질병에 겁을 집어 먹기 마련이다.

하물며 그 정체를 제대로 파악조차 못하고 있으며 확실한 치료약도 없는 질병이라는데 등골이 서늘해지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메르스의 정체가 세상에 공개된 날부터 아이를 집에만 두고 싶었지만 맞벌이에 농번기라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다행히 처가에서 먼저 피신을 종용해주시기에 애를 데리고 부랴부랴 달려간 게 6월 5일이다.

애를 보내놓고 우리 부부만 서울집에 있자니 생활이 많이 달라졌다.

외식이 줄었다. 우리 부부야 지병 없이 건강하다. 외식하다 바이러스 묻혀온다고 해도 큰 문제는 되지 않으리라고 본다. 하지만 우리가 매개체가 되면 어쩌나 싶어 최대한 낯선 환경과 외부인은 접촉을 피하며 산다. 단골집에 들러 오랜만에 신혼분위기 내며 오붓하게 돼지갈비 2인분에 소맥 한 잔 하고 오면 좋으련만 아무래도 내키지 않는다. 무슨 과학적인 근거가 있어서가 아니다. 마음이 무거워서다.

대형마트에는 안 가게 된다. 불특정다수인의 왕래가 크면 클수록 바이러스가 옮겨올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에서다. 먹고는 살아야하니 동네 마트에는 간다. 가되 가능하면 사람이 없는 시간대를 골라 재빠르게 들어가 필요한 물건만 골라 나온다. 바이러스 감염도 감염이지만 마른 기침이라도 하게 되면 쏟아지는 불편한 시선의 무게가 천근만근이다. 되도록 체류 시간을 줄이는 게 마음이 편하다. 동네 마트에서도 배달은 해 주지만 한 바구니도 못 채우는 식료품을 배달받기가 민망하다.

술 약속을 잡지 않는다. 애도 없겠다. 홀가분하다. 저녁에 시간이 남는다. 그간 어린이집 때문에 1년 가야 한 번 만나지 못한 친구들과 오랜만에 회포를 풀기에 적기다. 그런데 연락이 뚝 끊겼다. 내가 먼저 연락을 하자고 마음 먹었다가도 애는 피신시켜 놓고 술 먹으러 세상을 활보하는 게 영 마뜩지가 않다. 무거운 마음 질질 끌고 돌아다녀봐야 어깨만 뭉치고 찬 술 먹어봐야 행여 얹힐까 무섭다.

이왕이면 온라인 쇼핑을 한다. 처가에 애를 맡겼으니 오고갈 때 뭐라도 좀 들고 다녀야 한다. 농사일 하시는 분들이라 손에 상처가 많다. 반창고를 사다 드리면 좋겠다 싶었다. 평소 같으면 약국에 갔을 텐데 이번에는 온라인으로 구매했다. 이런 것도 파는구나 싶어 반갑기까지 했다. 동네마트에서 파는 건 거기서 사지만 그 외의 것들은 온라인 쇼핑이다. 지금 이런 상황이 좋은 세상인지 나쁜 세상인지 아리송하다.

건강식품을 챙겨 먹는다. 평소에 건강은 음식으로 지켜야 한다는 소신이 있었지만 건강식품을 부러 찾아서 먹지는 않았다. 비싼 게 첫 번째 이유고 그 다음이 약처럼 챙겨 먹어야 한다는 게 귀찮아서다. 그런데 이제는 홍삼회사에 다니는 친구가 던져주고 간 홍삼액을 때때로 챙겨 먹는다. 귀찮을 법 한데도 저절로 손이 간다. 전에 없던 일이다.

술을 자주 먹는다. 집이 적막하다. 절간같다. 아이의 웃음이 이렇게 컸던가. 집에 들어가면 일부러 텔레비전을 켠다. 그러면 메르스 뉴스가 어김없이 머리꼭지로 흘러 나온다. '땡메'뉴스다. 긍정적인 소식이든 부정적인 소식이든 자꾸 메르스, 메르스 듣다 보면 창졸간에 이산가족된 설움이 북받친다.

채널을 바꾼다. 예능 프로그램을 본다. 하지만 머릿속의 메르스는 나가질 않는다. 울적해져서 술잔을 채운다. 잠이 올 때까지 술을 마신다. 자고나면 몸이 찌부드드하다. 몸이 무거우니 하루가 힘겹고 저녁이면 또 불안하고 쓸쓸하다. 하루하루 술잔을 채우는 횟수가 늘어간다.

벌이가 신통치 않다. 메르스가 본격화된 게 6월 초인데 그때부터 가게 매출이 뚝 떨어졌다. 이윤은 둘째치고 문의전화부터 눈에 띄게 줄었다. 겨우 4월부터 적자를 면하고 흑자로 돌아서서 힘이 났었는데 요즘은 무릎에 힘이 들어가질 않는다.

채워지지 않는 통장 잔고를 매일같이 확인하다 보면 어디다 대고 화를 내야할지 몰라 우울해진다. 내 인생 언제는 태양같이 밝았었느냐 싶어 마음 다잡으려다가도 훅훅 떨어지는 매출추이는 나를 자꾸만 쪼그라들게 하고 불안하게 한다.

애를 피신시키고 나서 좋아진 거라고는 설거지와 빨래를 적게 한다는 것, 외식, 외출을 줄이니 생활비가 준 것 정도다. 대신 마음은 자꾸만 쓸쓸해지고 때때로 끝없이 울적해진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상태가 얼마나 지속될지 알 수 없다는 거다. 어떤 정치인은 메르스를 이겨내자는 차원에서 핏줄까지 데리고 외식을 하는 모양이던데 나같이 소심한 아버지는 그저 미션 임파서블이다.

자주 다투고 더러 큰 소리도 냈지만 대체로 알콩달콩 한 집에서 모여 살았던 우리 세 식구. 언제 다시 오붓하게 모여 앉아 편안한 마음으로 웃으며 저녁식사를 할 수 있을까? 정말 이 뜨거운 여름에 벌벌 떨며 우울함을 버텨내는 것 말고는 뾰족한 방법은 없는 걸까?

덧붙이는 글 | 아날로그캠핑 블러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메르스, #피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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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기업하면서 세상 사람들과 소통하려고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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