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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을 처음 만난 건 정확히 지난달 30일. 내 집 들어오는 계단 앞에서였다. 함께 있던 그의 동료가 자리를 뜨는데도 그는 나를 쳐다보며 있었다. 동그란 얼굴에 부드러운 듯 또렷한 이목구비. 제법 오동통한 몸매지만 절대 둔해 보이진 않는, 전체적으로 호감형이었다.

'뭐지?' 하는 의아함과 동시에 그를 부르고 싶은 욕구. 이름을 몰라 눈빛과 손짓으로 인사를 건넸다. 그랬더니 성큼 다가와 손이 닿을 듯 말 듯한 자리에서 그 역시 화답을 했다. 소년 같은 귀여운 목소리……. 그리고 이내 푸근한 그의 체모 아니 체온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계단에 나란히 앉았다. 이번엔 내가 용기를 내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가 기분좋은 소리를 내며 지긋이 몸을 기댔다. 내려다뵈는 작고 둥근 정수리가 사랑스러웠다. 잠시 후 나는 집 안으로 들어왔고 다시 나갔을 땐 한동안 혼자 앉아 있던 그는 없었다.    

'개 같은 그놈'이 나타났다
 '개 같은 그놈'이 나타났다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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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가 다시 나타난 건 지난 11일. 집 앞 골목에서 큰 소리가 들려 문을 열었더니 그였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는 망설임 없이 계단을 올라와 문 앞까지 왔다. 그리고 맨땅에 털썩 몸을 뉘였다. 나는 반갑기도 당황스럽기도 해서 그의 행동을 보고만 있었다.

차가운 바닥에서 이따금씩 내 표정을 살피는 그가 안타까웠다. 결국 안으로 들어오라 내가 말했고, 잠시 머뭇대던 그가 시키는대로 했다. 막상 한 공간에 같이 있자 그는 살짝 긴장한 듯 보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더니 결국 하룻밤을 내 집에서 보냈다.

그것이 실수라면 실수였다! 날이 밝자 그가 본색을 드러낸 것이다. 대체 어디서, 왜 왔는지 알 수 없는 그가 떠날 생각을 안 했다. 호감은 여전했지만 그렇다고 다짜고짜 같이 살 수도 없는 일. 게다가 첫 만남에서 봤던 그의 '쿨한 매력'은 마치 가면처럼 벗겨지고 없었다.  

'놈'이 본색을 드러냈다
 '놈'이 본색을 드러냈다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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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 처음이 어렵지 그 다음은 물 흐르는 것과 같다. 일단 자리를 잡은 놈은 내 집의 모든 것에 재빨리 적응했다. 밥도 저 알아서 먹고, 잠이 오면 방석을 찾아 눕고, 심지어 알려주지 않은 화장실을 한 번에 찾아 용변을 보고, 무엇보다 시도때도 없이 다가와 몸을 부벼댔다.

그뿐만이 아니다. 녀석이 여느 제 종족과 가장 다른 점은 바로 '개스러움'이다. 한 마디로 '개 같은 놈'이다. 실내에서는 물론 가까운 곳에 외출을 할라치면 냉큼 따라붙어서는 졸졸 따라오는 것이다. 영역동물이면서 절제된 친밀감을 표현하는 고양이들에게서 쉬이 볼 수 없는 모습이다.

동네 사람들은 그런 녀석을 보며 "신기하네." "고양이는 안 저러는데." "어떻게 훈련시켰어요?" 한 마디씩 한다. 그리고 워낙 붙임성 있게 구니 당연 놈이 나의 식구라 여긴다. 사정을 아는 앞집 중국집과 옆집 미장가게 아저씨만이 "걔가 사람 볼 줄을 아네" 하며 웃었다.

▲ 개 같은 고양이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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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생활 탓인지 처음 며칠은 졸면서도 낮게 으르렁대고 깜짝 놀라기도, 내가 제 예측과 달리 움직이면 종아리를 꽉 물기도 했다. 덕분에 피도 나고 멍도 들었다. 하지만 차츰 자는 모습이 편안해지고 물 때마다 입 주변을 꽉 잡거나 분무기로 물을 뿌렸더니 그 버릇도 사라졌다.

생긴 것도 하는 짓도 너무 예쁜데, 그렇다 해도 역시 같이 살기는 어렵다. 내게는 이미 평생을 지켜줘야 할 여섯 마리의 고양이 식구가 있고, 사실 내가 사는 공간은 나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람 여행자들이 오가며 묵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녀석의 내 집 출입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미안하지만 어설프게 사랑을 줬다가 분명 놈이 힘겹게 터득했을 길 생활의 노하우를 잃어버릴까, 그것이 가장 큰 걱정이다. 하지만 겨우 만 이틀 하고 몇 시간을 같이 했을 뿐인데 놈의 집착이 엄청나다.

집과 사람이 너무 그리운 녀석
 집과 사람이 너무 그리운 녀석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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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억지로 밖으로 밀어내 문을 잠그면 그때부터 운다. 칭얼대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목놓아 운다. 그러다 지쳐 그만두나 싶으면 아니다. 자리를 옮겨 골목에서 내 집 창문을 우러러보며 또 운다. 그 모습이 신기해 오가는 행인들이 죄다 한 마디씩 한다. 그렇게 밤새 반복.

녀석의 귀 끝은 아주 조금 잘려 있다. 이는 지자체나 동물보호단체에서 길고양이들을 대상으로 중성화수술을 했다는 표식이다. 잔인하다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잖아도 열악한 환경에 놓인 그들이 더 이상 번식을 하지 않고 사람 이웃의 도움을 받는 데 이롭게 하기 위한 정책이다.

그러니 놈의 오리무중 과거 중 명백한 사실 하나는 그가 중성화수술을 받았다는 것. 그 과정에서 어떤 사람들의 보살핌을 받았을 거라는 것. 그리고 가장 안타까운 것은 추측하건대, 녀석의 집과 사람에의 과도한 집착이 아마도 제 입장에선 '버림 받은' 상처 때문이지 않을까.

'연호'의 가족을 찾습니다!
 '연호'의 가족을 찾습니다!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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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고 있는 지금, 놈은 다시금 내 집에 들어와 저만치 의자 밑에서 자고 있다. 목이 쉴 만큼 울어댄 결과다. 그리고 녀석의 이름은 '연호'라 지었다. 사랑스러운 연노랑 털에 "으르렁으렁" 하는 게 꼭 아기 사자 같아서. 이제 "연호야" 하면 얼굴을 돌리고 역시나 '개처럼' 나에게 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연호의 가족이 되어줄 수는 없다. 앞서 말했듯 내게는 여섯 마리 고양이 식구가 있고, 그것은 내가 여섯 생명의 삶은 물론 죽음까지도 함께 해줘야 한다는 의미다. 이것이 내가 녀석과 함께 살지 않으려는 가장 큰 이유다.

나의 최선은 그의 가족을 찾는 데 힘을 보태는 것이다. 어쩌면 독자 분들 중 이미 연호와의 '묘연'을 직감한 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룻밤 정에도 이렇게나 홀랑 마음을 다 주는 이 고운 녀석을 평생 절대로 배신 않고 함께 해줄 분이라면, 어서 빨리 연락을 주시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연호'가 있는 곳은 부산 동광동입니다.



태그:#개같은날의오후, #개냥이, #고양이를부탁해, #고양이무는버릇, #길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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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니 삶은 정말 여행과 같네요. 신비롭고 멋진 고양이 친구와 세 계절에 걸쳐 여행을 하고 지금은 다시 일상에서 여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바닷가 작은 집을 얻어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이따금씩 찾아오는 멋진 '영감'과 여행자들을 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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