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옥에 어서 오세요- 투르크메니스탄 다르바자
▲ [당신에게, 실크로드 33] 지옥에 어서 오세요- 투르크메니스탄 다르바자
ⓒ 정효정

관련사진보기


그곳엔 '지옥으로 향하는 문'이 있다. 투르크메니스탄 카라쿰 사막에 위치한 다르바자. 이곳에는 꺼지지 않는 불이 타오르는 가스 크레이터(gas crator)가 있다. 처음 이곳의 존재를 알게 된 것 인터넷 뉴스를 통해서였다. 이 독특한 지형은 '세계의 신기한 곳 Top5'같은 리스트에 언급되곤 했다.

지름 70m의 이 구멍은 1971년 구소련 지질학자들이 매립된 천연가스를 채굴하는 과정에서 지반이 붕괴돼 만들어졌다고 한다. 구멍에서 유독가스가 계속 나오자 이를 없애기 위해 불을 질렀다. 간단하게 태워서 없애자고 생각한 듯한데, 문제는 이 곳의 매장량이 상상을 초월했다는 것이다. 몇 주면 다 타서 없어질 것으로 판단한 것과 달리 41년째 타오르고 있다. 그래서 '꺼지지 않는 지옥의 불' 혹은 '지옥으로 향하는 입구'로 불린다.

키질쿰 사막, 다르바자에 위치한 가스크레이터, 지옥의 입구
▲ Door to Hell 키질쿰 사막, 다르바자에 위치한 가스크레이터, 지옥의 입구
ⓒ 위키피디아

관련사진보기


지구상에 존재하는 불가사의한 곳을 직접 본다는 매력이 있지만 문제는 접근성이다. 사막 한가운데 위치해있고 주변에 마을이 없어서 대중교통이 없다. 투어를 이용해야 하는데 투어 1인 가격이 200~250달러란다. 200달러를 내고 차를 한 대 대절해서 돈을 나눠 내는 편이 저렴하다. 친구에게 부탁해 운전기사 막심을 섭외했다. 그리고 숙소에서 만난 중국인 커플과 홍콩인 여행자까지 합세해 4명이서 가기로 했다. 출발은 그럴싸했다.

가스의 나라의 주유소. 우즈베키스탄엔 대우, 투르크메니스탄엔 현대차가 많다.
▲ 투르크메니스탄의 주유소 가스의 나라의 주유소. 우즈베키스탄엔 대우, 투르크메니스탄엔 현대차가 많다.
ⓒ 정효정

관련사진보기


사막을 달리다보면 이런 간이 휴게소나 매점을 볼 수 있다, 차이하네다.
▲ 키질쿰 사막의 소년 사막을 달리다보면 이런 간이 휴게소나 매점을 볼 수 있다, 차이하네다.
ⓒ 정효정

관련사진보기


시내에서 조금 빠져나오자 풍경은 낙타가 있는 사막으로 변했다. 그런데 막심의 운전 실력에 점점 의구심이 생긴다. 고속도로 운전이 처음인 듯했다. 불안하던 차, 이번엔 주변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모래폭풍이었다. 바람은 금방 멎었지만 가시거리가 갑자기 좁아졌다. 모든 풍경이 무채색으로 변했다. 하필 그때 반대편 차선에서 차가 다가왔다. 그러자 막심은 크게 놀라더니 핸들을 급하게 꺾었다. 차는 지그재그로 위험하게 흔들리다 멈췄고 그의 얼굴은 사색이 됐다.

모래폭풍 후, 갑자기 어두워지고, 후덥지근해졌다.
▲ 사막의 모래폭풍 모래폭풍 후, 갑자기 어두워지고, 후덥지근해졌다.
ⓒ 정효정

관련사진보기


모래 폭풍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그가 길을 모르는 것 같다는 점이었다. 가이드북과 다른 여행자들의 정보를 종합해 보면, 철로를 지난 후 보이는 첫 번째 차이하네(휴게소)에서 차는 오프로드로 향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차는 이미 차이하네를 한참 지났다. 다른 여행객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자 칼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길도 모르면서 우리를 데려다주겠다고 한 거야? 뭐 이런 운전기사가 다 있어? 난 이 사람에게 한 푼도 줄 수 없어!"

가뜩이나 심경이 복잡한데 칼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자 나까지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칼은 운전기사를 마구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당신, 길을 모르는 거야? 이 멍청이! 죽여 버릴 거야, 당신."

상황도 상황이지만 난 이 학교 교사라는 젊은 여행자가 아버지 뻘의 막심을 막 대하는 것에도 화가 났다. 길길이 날뛰는 칼을 최고의 인내를 가지고 조용히 시켰다. 그리고 땀을 뻘뻘 흘리기 시작한 막심에게 일단 아까 지나친 차이하네로 다시 가달라고 했다. 일단 차이하네에서 길을 물어보든, 다른 운전사를 섭외하든 할 수 있을 거다.

해는 지고 있고 모래폭풍의 여파로 더욱 어둡다. 바람은 멎었지만 공기에는 매캐한 모래로 가득했다. 첫 번째 차이하네에서 물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우리는 엉뚱한 길을 가고 있었다. 지옥의 불은 여기서 동쪽으로 오프로드 40km를 더 가야한 단다. 문제는 막심이다. 고속도로 운전도 자신이 없는 막심이 오프로드를 갈 수 있을 거 같지 않다. 다시 수소문해서 80불에 트럭을 빌렸다.

휴게소 같은 개념의 간이 음식점이다. 모래폭풍 전의 사진이다.
▲ 고속도로의 차이하네 휴게소 같은 개념의 간이 음식점이다. 모래폭풍 전의 사진이다.
ⓒ 정효정

관련사진보기


한번 모래폭풍이 지나가면 주위는 무채색으로 변한다
▲ 사막의 휴게소에서 한번 모래폭풍이 지나가면 주위는 무채색으로 변한다
ⓒ 정효정

관련사진보기


러시아제 트럭을 타고 가길 30분. 저 멀리서 붉은 빛이 보인다. 지옥의 문이다. 차에서 내리자 열기가 훅 끼쳐온다. 불길은 정말 지옥에서 올라오는 것처럼 거세게 타올랐다. 열기로 인한 바람도 강하다. 특히 불길 근처로 갔을 때는 몸이 흔들려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다.

다르바자 가스크레이터. 지름 70미터의 불구덩이다
▲ 지옥의 문 전경 다르바자 가스크레이터. 지름 70미터의 불구덩이다
ⓒ 정효정

관련사진보기


기묘한 광경이다. 중국인과 홍콩인 일행들은 점프샷을 찍으며 신났다. 하지만 난 아까 벌어진 일에 에너지를 너무 썼다. 홍콩인 칼은 끊임없이 소리를 질러댔고, 나는 새로 빌리게 된 트럭 때문에 막심과 가격 협상을 다시 해야 했다. 나머지 중국인 두 명은 상관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팔짱만 끼고 있었다. 모든 상황은 내가 컨트롤해야 했고, 어느새 내 목소리는 아주 낮아졌다.

지옥의 문을 구경하는 사람들
▲ 지옥의 문 지옥의 문을 구경하는 사람들
ⓒ 정효정

관련사진보기


조심조심 다가가 구멍을 내려다보니 구멍 벽과 바닥은 흙이 파여진 그대로다. 나무도 풀도 없이 불은 그냥 허공에서 저절로 타오르는 것 같다. 가스다. 보이지 않지만 가스가 가득할 터였다. 41년을 타도 끝이 보이지 않는 매장량이다. 불가사의한 광경이긴 하다.

불안이나 질투, 분노 같은 보이지 않은 감정들이 우리 마음을 태우듯, 이곳에선 눈에 보이지 않는 가스가 끊임없이 불길을 뿜어내고 있었다. 오갈 곳 없는 감정들이 모두 모여 저곳에서 태워지면 어떨까라는 상상을 해봤다. 세상 어딘가에 감정의 소각장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옥의 문' 체험은 그 과정이 진짜 지옥이었다.

아무 것도 없는 바닥과 벽, 허공에서 불이 타고 있었다.
▲ 가스크레이터 내부 아무 것도 없는 바닥과 벽, 허공에서 불이 타고 있었다.
ⓒ 정효정

관련사진보기


가장 가기 까다로운 곳중의 하나이기에 여행자들의 흥미를 자극하는 곳이다.
▲ 지옥의 불을 사진에 담는 여행자 가장 가기 까다로운 곳중의 하나이기에 여행자들의 흥미를 자극하는 곳이다.
ⓒ 정효정

관련사진보기


"지옥에 어서오세요"
▲ 다르바자 지옥의 문앞에서 "지옥에 어서오세요"
ⓒ 정효정

관련사진보기


사막에서 연료가 바닥나면

돌아오는 길도 수월하지 않았다. 시간은 자정을 넘었다. 대낮에도 운전이 서툴렀던 막심이 깜깜한 야간운전을 제대로 해낼 리가 없다. 그는 정말 천천히 조심조심 차를 몰았다. 이 속도로 언제 300km 떨어진 아슈하바트까지 돌아갈는지 모르겠다.

무엇보다 막심이 졸기라도 할까봐 걱정이었다. 막심은 계속 졸린 기색이었고, 나는 그런 그를 깨우기 위해 라디오에서 나오는 알지도 모르는 러시아 노래를 크게 따라 불렀다. 뒷좌석의 다른 여행자들은 어느새 잠이 들어 있었다. 그런데, 새벽 4시. 막심이 '벤젠, 벤젠'이라고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벤젠이 뭐야?"

그러니 그는 계기판을 가리킨다. 연료계 바늘이 0에 가까워지고 있다. 가솔린이 떨어졌다는 소리였다. 등줄기가 싸해졌다. 이곳은 사막 한가운데 있는 고속도로다.

길은 외길, 지나다니는 차도 거의 없다. 다른 중앙아시아의 도로사정에 비해 거의 완벽한 도로상태를 지니고 있다.
▲ 쭉 뻗은 사막길 길은 외길, 지나다니는 차도 거의 없다. 다른 중앙아시아의 도로사정에 비해 거의 완벽한 도로상태를 지니고 있다.
ⓒ 정효정

관련사진보기


얼른 GPS를 켜서 인근 마을을 검색해 봤다. 40km 정도 떨어진 곳에 마을이 하나 있다. 여기서 연료가 떨어지면 방법이 없다. 마을까지 도착할 수 있을까. 암 걸릴 거 같은 기분이었다. 결국 한참을 시속 50km로 달려 차는 아슬아슬하게 주유소에 도착했다. 주유소 불빛이 보이자 막심은 헤벌쭉 웃는데, 나는 솔직히 울 뻔했다.

마지막까지 알지도 못하는 러시아 노래를 따라 부르며 아슈하바트에 도착했다. 시간은 새벽 5시 30분. 차에서 내리면서 막심에게 10달러를 더 주었다. 이 운전 실력으로 무사히 돌아온 것만 해도 고마웠다. 그리고 그에게 덧붙였다. "아저씨, 다음부터 장거리 운전은 하지 마세요." 그가 알아들었을까?

지옥 호텔에 도착해서 일단 씻었다. 아까 모래폭풍 여파로 머리엔 모래가 껴서 푸석푸석했다. 눈에도 들어갔는지 따끔거렸다. 창 밖을 보니 인공 불빛은 꺼지고 동이 트기 시작한다.

건너편 아파트엔 위성 수신 안테나가 빼곡하다. 러시아 위성 TV를 보기 위해서다. 2011년 대통령이 미관상 보기 흉하다는 이유로 위성안테나 철거를 지시했는데 아직도 남아 있다. 마치 세상과의 마지막 소통 방법이라는 듯.

투르크메니스탄은 매년 '자유 상황이 최악인 12개 국가, 혹은 지역'에 포함된다.
▲ 위성안테나가 가득한 아파트 옥상 투르크메니스탄은 매년 '자유 상황이 최악인 12개 국가, 혹은 지역'에 포함된다.
ⓒ 정효정

관련사진보기


모스크에서 행사를 마치고 나온 학생들
▲ 아슈하바트의 일요일 모스크에서 행사를 마치고 나온 학생들
ⓒ 정효정

관련사진보기


오늘이 투르크메니스탄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지난 5일 동안 있었던 일을 생각하니 새삼 착잡하다. 고귀한 도시 메르브의 나라, 이상한 대통령의 나라, 엽기적인 호텔의 나라, 미친 야경의 나라, 지옥의 불이 타오르는 나라였다. 시간이 지나면 이 곳에서 겪은 이 모든 일들이 지나간 추억이 될까. 언젠가 웃으며 다시 이곳을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제 국경을 넘으면 이란이다.

무슨 행사인지 모두 빨간 전통복에 양갈래 머리를 했다
▲ 투르크메니스탄의 소녀들 무슨 행사인지 모두 빨간 전통복에 양갈래 머리를 했다
ⓒ 정효정

관련사진보기


카스크레이터는 아슈하바트와 히바로 넘어가는 다쉬오구즈 국경 사이의 카라쿰 사막에 위치.
▲ 다르바자 지옥의 문 카스크레이터는 아슈하바트와 히바로 넘어가는 다쉬오구즈 국경 사이의 카라쿰 사막에 위치.
ⓒ 정효정

관련사진보기



○ 편집ㅣ박순옥 기자

덧붙이는 글 | 2014년 4월부터 10월까지의 여행 중, 실크로드- 경주, 중국,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이란, 터키, 로마의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동쪽과 서쪽을 잇는 실크로드의 과거 이야기와 현재 진행형 이야기입니다. 더불어 히스테리가 극에 달한 노처녀의 한풀이이기도 합니다. 실크로드에서 건져낸 이야기를 점과 점으로 이어, 글을 읽는 당신의 마음에 또 하나의 실크로드가 그려졌으면 합니다.



태그:#실크로드, #투르크메니스탄, #가스크레이터, #지옥의 문, #다르바자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방송작가, 여행작가. 저서 <당신에게 실크로드>, <남자찾아 산티아고>, 사진집 <다큐멘터리 新 실크로드 Ⅰ,Ⅱ> "달라도 괜찮아요. 서로의 마음만 이해할 수 있다면"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