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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판결, 법률, 법원·검찰 관련 소식 등 누구나 알아야 할 법률 정보를 소개하는 <간추려서 단번에 한 주간 법조계 소식>. 줄여서 <간단한 법> 12번째 이야기는 최근 무죄 판결을 모아봤다. 법정에 선 피고인들에게 법원이 무죄를 선고한 까닭과 배경은 무엇일까. 

① 새벽길 무단횡단 사망사고, 판단 기준은
② "비키라"는 경찰, 반말에 항의하는 취객에 수갑 채워
③ "집회장소 내 폴리스라인·경찰 배치는 위법"
④ 제주 해군기지 반대하자 강정포구 봉쇄

① 새벽길 무단횡단 사망사고, 판단 기준은

이른 새벽 도로를 운전하는 운전자는 어느 정도까지 사고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까. 최근 보행자의 신호 준수 의무를 시사해주는 재판이 있었다.  

이아무개(43)씨는 지난 1월 새벽 자동차를 타고 서울 강남구 세곡사거리 편도 4차로 중 3차로를 따라 주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교차로를 지날 무렵, 행인 A(50대 남성)씨가 갑자기 왼쪽에서 뛰어나와 오른쪽으로 건너가고 있었다.

미처 속도를 줄이지 못한 이씨는 A씨를 치었다. 병원으로 옮겨진 A씨는 6시간 만에 숨지고 말았다. 검찰은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으로 이씨를 재판에 넘겼다.

법원은 당시 현장 상황을 눈여겨봤다. 법원은 ▲ 당시는 어두운 새벽인 데다 A씨가 검정색 상의를 입고 있어서 식별하기 어려웠고 ▲ 사고가 난 곳은 중앙분리대로 무단횡단을 막고 있었으며 ▲ A씨가 이씨 차량 바로 앞에 있던 버스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점을 파악했다.

또한 법원은 블랙박스 영상을 통해서 이씨가 20m 직전에야 A씨를 발견했고, 당시 제한속도 시속 70㎞ 도로를 63.1㎞로 주행 중인 사실도 밝혀냈다.

통상 운전자가 위험을 인지하고 제동장치를 작동하여 감속이 이루어질 때까지 약 0.95~1초가 소요된다. 법원은 "이씨가 A씨를 발견하고 약 1초 후부터 속도가 급격히 줄어든 사실이 확인되므로 적절한 제동조치를 취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씨가 즉시 제동장치를 조작하여도 A씨와의 충돌을 피하기는 어려웠다"고 판단했다. 서울중앙지법(제21형사부 재판장 엄상필)은 5일 "사고에 과실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상대방도 신호를 지킬 것으로 믿고 운행한 사람에게 상대의 신호위반까지 예상하여 방지해야 할 주의의무는 없다는 원칙이 있다. 이것을 '신뢰의 원칙'이라고 한다. 이 사건에서 적용한 대법원 판례도 다음과 같다.

자동차 운전자는 통상 예견할 수 있는 사태에 대비하여 그 결과를 회피할 수 있는 정도의 주의의무를 다함으로써 족하고, 통상 예견하기 어려운 이례적인 사태의 발생을 예견하여 이에 대비하여야 할 주의의무까지 있다고 할 수 없다(대법원 1985. 7. 9. 선고 85도833 판결 등).

사망사고에서 이씨처럼 무죄가 나오는 경우는 흔치 않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서 사고를 피할 수 있었다면 법적인 책임을 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사건에선 배심원들이 만장일치(7명)로 무죄 평결을 내린 점이 크게 작용했다. 보행자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준 판결이다.   

② "비키라"는 경찰, 반말에 항의하는 취객에 수갑

법원은 그 전에 경찰들이 정씨를 체포하면서 수갑을 채우려 한 사실에 주목했다.
 법원은 그 전에 경찰들이 정씨를 체포하면서 수갑을 채우려 한 사실에 주목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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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9월 새벽 5시, 술에 취한 정아무개(38)씨는 대전 서구에 있는 포장마차 골목 앞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이 길은 인도와 차도가 구분되지 않았고, 평상시에도 통행인이 많은 거리였다. 그 무렵 폭력신고를 받고 출동 중인 경찰차가 정씨의 뒤에서 경적을 울렸다. 그리고 짧은 한마디가 들렸다.

"비키라고!"

경찰의 반말에 화가 난 정씨는 욕설을 하면서 비키지 않고 도로 한 가운데 서 있었다. 그러자 경찰들은 공무집행방해죄로 정씨를 체포했고, 검찰은 정씨를 벌금형으로 약식기소했다.

정씨는 약식명령에 불복, 정식재판을 청구했다. 경찰들은 "순찰자를 가로막은 후 상의를 벗고 몸에 물을 뿌리고 순찰차 보닛를 양손으로 치는 방법으로 20분간 공무를 방해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그 전에 경찰들이 정씨를 체포하면서 수갑을 채우려 한 사실에 주목했다.

다시 말해, 시간 순서로 보면 ①정씨가 도로를 걸어갔고 ②경찰이 경적을 울리며 반말로 비키라고 했고 ③화가 난 정씨가 비키지 않았고 ④경찰이 정씨를 현행범 체포하면서 수갑을 채웠고 ⑤정씨가 상의를 벗고 몸에 물을 뿌렸다는 것이다. 

법원은 ③만 놓고 보면 단순히 길에 서서 비키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공무방해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한 ⑤의 행위는 부적법한 체포에 항의한 것으로 정당행위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대전지법(형사 5단독 이혜린 판사)은 4일 "범죄의 증명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③ "집회장소 내 폴리스라인·경찰 배치는 위법"

쌍용자동차 희생자 추모와 해고자 복직을 위한 범국민대책위원회(쌍용차 대책위)는 2012년 4월부터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해고자 복직 등을 요구하며 천막농성을 벌여왔다. 서울 중구청은 덕수궁 돌담이 훼손된다는 이유로 2013년 4월 천막을 철거하고 화단을 설치했다. 그 뒤 농성을 계속하려는 쌍용차 대책위 측과 이를 저지하려는 경찰 사이의 충돌이 계속됐다.  

2013년 7월 쌍용차 대책위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소속 변호사 등 30명은 이곳에서 '화단설치규탄 및 집회의 자유를 위한 집회'를 열었다. 그러자 경찰은 집회공간과 화단 사이에 플라스틱 질서유지선(폴리스라인)을 설치하고 그 뒤 경찰관을 배치하는 방식으로 집회를 '감시'했다.

집회 주최측은 집회공간 내에 경찰관 배치와 폴리스라인 설치가 집회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판단, 경찰측에 철수를 요청했다. 경찰이 이에 응하지 앉자 참석자들은 직접 폴리스라인을 치우고 경찰들을 밀어냈다.

검찰은 집회에 참여했던 민변 소속 류하경 변호사와 민주노총 박성식 대변인을 특수공무집행방해와 집시법위반으로 기소했다. '피고인'들은 "위법한 공권력 행사에 맞선 정당행위"라고 맞섰다.   

법원은 피고인들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집회의 자유는 표현의 자유와 더불어 민주적 공동체가 기능하기 위하여 불가결한 근본요소"라며 "집회의 시간, 장소, 방법과 목적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보장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경찰의 조치가 집회의 자유에 상당한 제한을 가져왔다고 평가했다. 법원은 ▲ 질서유지선 제거로 충돌이 발생하기 전까지 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는 전혀 없었던 점 ▲ 경찰의 의도와 달리 화단 앞 경찰관 배치가 오히려 일반인 통행 방해 가능성이 큰 점 ▲ 경찰들과 질서유지선이 협소한 집회장소를 둘러싸고 참가자들을 포위하는 형국이 된 점 등이 근거였다.

게다가 ▲ 경찰들이 참가자들를 주시하고 직접 채증활동을 벌여 마치 삼엄한 감시와 통제를 받는 분위기가 형성된 사정을 볼 때 "질서유지선 설정이나 경찰력 배치는 필요 최소한의 범위를 벗어나 과도하게 집회의 자유를 제한하였다"고 판단했다.

결론적으로 "경찰력 배치를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공익적 가치가 이로 인해 침해되는 집회의 자유의 기본권적 가치보다 더 우월하다고 보기 어렵다"며 경찰의 공무집행은 위법하다고 판시했다.     

서울중앙지법(형사 5단독 정용석 판사)은 "위법한 공권력 행사에 대항하여 이를 회복하기 위한 행위로써 상당한 이유가 있다"며 지난달 29일 류 변호사 등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앞서 민변 소속 권영국 변호사도 8월 20일 서울중앙지법으로부터 무죄를 선고받은 바 있다. 검찰은 이 사건들에 전부 불복, 항소장을 제출했다. 집회를 '질서유지' 차원에서만 접근하는 이들에게 판결문 한 대목을 소개한다.   

"집회의 자유는 소수의 보호를 위한 중요한 기본권이다. 소수가 공동체의 정치적 의사형성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능성이 보장될 때, 다수결에 의한 공동체의 의사결정은 보다 정당성을 가지며 다수에 의하여 압도당한 소수에 의하여 수용될 수 있는 것이다. 헌법이 집회의 자유를 보장한 것은 관용과 다양한 견해가 공존하는 다원적인 '열린 사회'에 대한 헌법적 결단인 것이다."

④ 제주 해군기지 반대하자 강정포구 봉쇄

제주 해군기지 공사중단을 외치는 이들
 제주 해군기지 공사중단을 외치는 이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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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 제주에서도 공무집행방해 무죄 판결이 나왔다. 제주지법(제2형사부 재판장 허일승)은 해군기지 반대 시위를 막기 위해 강정포구를 봉쇄한 경찰에 저항한 강정주민들에게 "죄가 없다"고 판결했다.

강정마을 주민과 환경운동가들은 해군기지 건설 반대와 환경오염 감시를 위해 카약을 타고  기지건설 예정지를 순찰해왔다. 그런데 2012년 경찰은 아무런 사전 설명 없이 강정포구 해안을 원천봉쇄해 카약 운항을 차단했으며 이에 저항하는 주민들을 연행했다. 그러자 주민들이 강력하게 항의하면서 경찰과 물리적 충돌을 빚었다.

이 사건으로 조경철 강정마을회장 등 주민 5명은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의 기대와 달리, 법원은 경찰의 조치를 비판했다. 법원은 "강정포구 원천봉쇄는 적법한 직무집행으로 평가될 수 없다"면서 "적법성이 결여된 직무행위를 하는 경찰관에게 대항하여 폭행을 가하였다 하더라도 공무집행방해는 성립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 강정포구 앞바다 운항행위가 당장 제지하지 않으면 곧 인명·신체에 위해를 미치거나 재산에 중대한 손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절박한 상태였다고 인정하기 어렵고 ▲ 카약을 타고 환경오염을 감시한 강정마을 주민들이 설사 기지건설 예정지를 출입할 의사가 있었더라도 경범죄에 해당할 뿐이며 ▲ 경찰들이 주민들에게 미리 고지 못할 정도로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고 보기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무죄 판결로 경찰과 검찰은 체면을 구겼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싼  민·형사 소송은 지금도 끊이지 않고 있다.

○ 편집ㅣ홍현진 기자



태그:#간단한법, #무죄, #공무집행방해, #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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