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ATNC는 아시아 45개국의 노동조합과 시민단체가 모인 단체로 초국적 기업의 반노동, 인권경영을 감시하는 곳입니다.

아시아 초국적기업 감시 네트워크(ATNC)를 위해 태국으로 갔다
 아시아 초국적기업 감시 네트워크(ATNC)를 위해 태국으로 갔다
ⓒ 박성주

관련사진보기


지난 10월 21일부터 10월 25일까지, 아시아 초국적 기업 감시 네트워크 격년 회의가 열린다기에 3박 4일 태국 방콕으로 여행길에 올랐다. 공항에 내려 호텔로 가는 택시에서 삼성의 광고판이 몇 번이나 눈에 들어왔다. 남들이 느낀다는 감흥보다는 글로벌 기업답게 노동탄압과 착취 1등 기업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른 새벽 호텔에 도착하여 잠시 눈을 붙인 후 기상, 회의실에 도착했더니 각기 다른 의상과 외모의 아시아 각국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국가별 간단한 인사로 행사를 시작했다. 일본, 대만,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대략 16개 국가에서 50여 명의 사람이 참석했다. 서로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모였기에 언어가 소통의 장벽이 될 순 없었다.

우선 한국에서 왔고 삼성전자 서비스 노동조합 활동을 하고 있다고 나를 소개했다. 모두 의아해하며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소개시간 뒤에는 나라별 노동 상황과 문제점, 노동탄압 사례를 설명했다.

노동자를 노예로 부리는 초국적 자본

아시아 초국적기업 감시 네트워크(ATNC)를 위해 태국으로 갔다
 아시아 초국적기업 감시 네트워크(ATNC)를 위해 태국으로 갔다
ⓒ 박성주

관련사진보기


이야기를 듣다 보니 아시아에는 여러 나라가 있지만 한국과 일본처럼 초국적 자본이 있는 나라와 그러한 자본이 진출한 나라로 구분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국과 일본의 현재 사안은 노동자의 목줄을 죄는 노동시장 개악이었다. 그 외 나라들은 먹고 사는 문제,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피해, 산업재해 등 최소한의 노동권과 기본적 문제들이 현안이었다.

언제부터인지 삼성, 현대, LG, 혼다, 스즈키, GM, 나이키, 월마트 등 자본들은 더 싼 인건비와 물류비 절약을 위해 산업화가 진행되지 않은 아시아 국가들로 찾아들었다. 이곳에 사는 원주민들은 조상 대대로 살던 곳을 낯선 외국 기업들에 빼앗기고 쫓겨났다. 그들은 삶의 터전을 빼앗긴 대신에 자본의 공장에 취직할 수 있었다.

더 많은 이익을 내기 위해 진출한 자본은 노동자가 아닌 노예로 이들을 부렸다. 최소한의 생활임금마저 보장받지 못했다. 그마저도 사는 곳을 빼앗겨 지방으로 이주해 공장 근처 방을 얻고, 생활하는데 한 달 급여의 50% 정도를 지출한다. 최저임금과 기본근무 시간조차 법으로 강제하지 않으니 그 외 노동환경 조건은 볼 것도 없었다. 그저 노동자는 시키는 대로 일하고 주는 대로 받고 살아야만 한다.

초국적 자본의 권력, 갑 중의 갑은 '삼성'

이러한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설립하기도 했지만 조직률이 미비하고 노조탄압의 강도가 높다 보니 노동조합을 만들기도 어렵고 투쟁도 소극적인 느낌이었다. 스즈키에 노동조합을 만들려고 시도한 9명의 노동자는 해고된 후 취직도 안 된다고 한다.

이들 중 이주민 노동자의 노동환경은 더욱 열악했다. 어차피 있으나 마나 한 노동법의 최소한마저 보장받지 못한다. 자본은 노동자를 마음대로 부려 먹고 폭력과 착취, 감금까지 했다. 사용자와 노동자의 관계가 아닌 주인과 노예의 삶을 살고 있었다. 이주민 노동자들은 정규직 일자리를 얻는 것이 불가능해 3개월 단위로 계약해 자본에 일회용 취급을 받으며 일하고 있었다.

공통으로 나오는 이야기는 자국의 노동환경과 열악한 처우였지만 각국의 발표자 입에서 삼성이라는 단어가 심심치 않게 나왔다. 많은 초국적 기업이 있지만 삼성이 진출한 나라의 담당자들은 모두가 삼성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다른 기업들이 주로 착취와 탄압이 문제라면 삼성은 직업병이라는 큰 상처를 주고 있었다.

한국에서도 반도체 노동자 중 수많은 희생자가 나왔고 그 가족들이 긴 시간 싸워오며 이제야 삼성에서 보상과 사과를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막상 재발방지와 보상의 범위를 약속하지 않고 있다. 한국 밖 힘없는 국가의 힘없는 노동자들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로 질 좋은 상품을 생산할 것을 얼마나 강요했을지, 굳이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한 노동자는 삼성의 사업장에는 젊은 여성들이 많이 근무하고 그 여성들은 불임으로 고통스러워하고 있다고 했다. 어렵게 아이를 가진다 해도 유산이 되고, 유산이 안 되어 아이가 태어나면 기형아 출산율이 높다고 했다. 그러나 삼성에서는 아무런 대책도 내지 않을 뿐 아니라, 노동과 관계가 없다고 하니 이 얼마나 무책임한가?

누군가 한국의 민주노총 노동운동에 대해 관심을 두고 질문하기도 했다. 우리가 지금 저들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노동환경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정부 혹은 자본이 우리에게 준 것이 아니라, 민주노총이 그동안의 모진 탄압에도 굽히지 않고 투쟁해온 결과라는 걸 다시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삼성의 빛과 그림자

아시아 초국적기업 감시 네트워크(ATNC)를 위해 태국으로 갔다
 아시아 초국적기업 감시 네트워크(ATNC)를 위해 태국으로 갔다
ⓒ 박성주

관련사진보기


나는 이날 '삼성의 빛과 그림자'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삼성은 또 하나의 가족이라 포장하며 국민의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김연아 등을 광고 모델로 쓰며 한국인으로서 애국심과 자부심을 느끼게 하고 한국과 삼성을 동일시하려 한다. 한 해 삼성의 광고료만 2조 7천억 원이 든다. 한편 삼성의 계열사들은 각 분야에서 일등을 차지하고 있다. 삼성은 무선통신을 시작한 이후로 가파르게 순이익을 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빛을 내기 위한 그림자는 더욱 어두워진다. 어린 고등학생 취업생들이 직업병으로 죽어가고 있지만, 삼성은 직업병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삼성 테크윈·탈레스·종합화학·토탈 소속의 수많은 노동자는 하루아침에 다른 회사로 팔려가야 했지만, 그들의 회사 매각 소식을 신문을 통해 알았다. 또한 나는 소속된 삼성전자서비스에서 장시간 노동과 육체노동, 감정노동에 시달리며 일했지만 위장도급으로 최저임금조차도 보장받지 못했다.

문제의 원인은 삼성의 무노조 원칙에서 시작되었다. 노동자들의 권리인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노동자를 노동자가 아닌 소모품이나 노예로 보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에 맞서 우리는 싸웠고 결국 단체협약을 체결하였다. 하지만 삼성은 여전히 약속을 어기고 있다. 나의 발표가 끝나고 많은 질문이 쏟아져 나왔다.

"한국에서 백혈병 노동자 투쟁 상황은?"
"삼성 문제에 대한 한국 민주노총의 입장은?"
"발표자는 삼성의 노동자인가? 활동가인가?"
"삼성서비스노조가 정말 삼성에서 인정한 노조가 맞는가?"
"삼성서비스 노동자가 생산직 노동자들을 조직화할 수 있는가?"
"삼성의 노조 파괴 문건의 내용은?"

초국적 자본에 대응하는 국제적 연대를 조직하자

질문에 대한 대답이 이어진 후 투쟁방향에 대한 토론을 진행했다. 언어의 장벽과 상황의 차이가 있었지만, 나는 한 문장, 한 문장을 통역 받아 한 박자 늦게라도 의견을 전했다.

각국의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한 캠페인을 진행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구체적이고 명료한 투쟁방안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중요한 것은 초국적 자본이 분열시키는 노동자들이 뭉쳐서 대안을 고민하고 실천을 조직한다는 것이다.

2년간의 활동방향에 대한 논의 이후, 각 나라로 돌아가서도 국경을 넘어선 노동자들의 연대를 이어가자는 결의가 있었다. 거리는 멀지만,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SNS를 이용하여 일상적으로 소식을 공유하고 지속적인 만남을 통해 공동의 투쟁방안을 고민해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앞으로 내가 발로 딛고 있는 현장에서부터 삼성과의 싸움을 재개하면서도 국제적 연대의 끈을 놓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덧붙이는 글 | 위 글은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홈페이지에 게시되었습니다.

박성주 시민기자는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부지회장입니다.



태그:#삼성전자서비스지회, #아시아초국적기업감시네트워크, #ATNC, #삼성, #삼성전자서비스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삼성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뉴스를 만듭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