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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에 무슨 보건실이냐며 타박하기도 하지만, 보건실은 치료의 기능만 있는 게 아니다.
 21세기에 무슨 보건실이냐며 타박하기도 하지만, 보건실은 치료의 기능만 있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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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교사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는 경험 중 하나는, 보건실 이용에 대한 규범을 달리 이해하는 상반된 입장의 중간에 놓이는 일이다. 말하자면, 아이들이 시도 때도 없이 보건실에 드나들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은 절제된 생활습관을 익히는 데 방해가 된다는 쪽과 아이들이 오죽 힘들어 갈 곳이 없으면 보건실에 가겠느냐며 보건실 이용을 너그럽게 봐야 한다는 쪽 사이에 놓이는 것이다.

보건교사가 너무 친절하면 보건실 이용 학생이 한없이 늘어나 걱정이고, 그렇다고 엄격하게 하면 보건실 이용을 꺼려하니 어느 기준이 옳은지 모르겠다는 토로도 제법 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교직 경험이 늘어갈수록 보건실은 누가 뭐래도 학교의 숨은 허브가 되어야 하지 않나 싶다.

어떤 이는 학교 밖에 병원이 천지인데, 21세기에 무슨 보건실이냐며 타박하기도 하지만, 보건실은 치료의 기능만 있는 게 아니다.

매일 보건소를 들르는 덕에 알게된 이야기

매일 보건실에 들러 체온을 측정하는 현서(가명). 담임선생님께 들으니 예전에 왕따의 경험이 있어 친구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한다고 하셨다. 늘 정상 체온인데도 열이 나는 것 같다며 하루에 한 번씩 보건실을 찾아오니, 혹 오지 않는 날은 무슨 일이 난 것 아닌가 싶은 걱정도 든다.

그런데 자주 마주하면서 우연히 현서의 숨은 취미를 알게 되었다. 자신만의 소설을 써서 블로그에 공유하는데, 그게 너무 재미있어 날밤을 새워 내게 혼난 적이 있을 정도. 간간히 글은 잘 쓰는지 물어보는데, 무표정이었던 아이가 이제는 제법 희미하게 웃는 모습을 보인다.

경후(가명)는 단체 결핵 검진에서 누락되어 한동안 애를 먹였다. 결핵은 대표적인 호흡기 감염병으로 X-선 검진을 통해 결핵 이환 여부를 빨리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근데 경후는 단체 검진 일에 결석하는 바람에 제때 검사를 못했다. 그 뒤로 몇 차례 불러 근처 보건소에 가서 X-선 검진을 하도록 안내했는데도 다음에 가겠다고 약속하고는 그 뿐이었다.

안 되겠다 싶어 혼낼 요량으로 불렀더니, 어머니께서 중환자실에 입원하셔서 병원에 들르는 데다 매일 1시간여 넘게 지하철로 등하교를 하느라 피곤해서 못 갔다는 뜻밖의 답변을 들었다. 그 후 경후가 원하면 점심시간마다 보건실에서 단 몇 십분이라도 재웠는데, 아이의 태도가 훨씬 부드러워졌다. 

민수(가명)는 교과 선생님께서 수업에 집중도 못하고 반항적인 태도가 보인다며 보건실로 내려 보내셨다. 묻는 말에도 대답을 잘 안 하고, 표정도 어두운 데다 잠이 온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혹시나 싶어 '혹시 힘들어서 술 마셨니?' 물었더니, 그제야 고개를 푹 숙이는 녀석. 다음에는 마시면 안 된다고 주의를 준 후 1시간을 재우고 났더니, '선생님, 엄마 같으세요' 뜬금없는 고백(?)을 하고는, 다시 곱상한 소년으로 돌아왔다.

온갖 사연 많은 아이들의 공통점은 어딘가 도망칠 시공간을 찾는다는 점이다. 어쩌면 보건실이야말로 아이들의 마지막 보루 같은 곳이 아닐까. 오죽하면 일본은 교실에 들어가기 두려워하는 학생들이 보건실로 오기만 해도 등교로 인정해주는 양호학교 제도를 두었을까.

중학생들의 성장기를 그린 만화 콘도 요시후미의 <귀를 기울이면>에는 보건 선생님이 아이들의 일상생활에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사춘기 아이들과 함께 밥도 먹고 고민도 들어주는 보건교사의 삽화를 보면서, 분명 감독은 학창 시절에 따스한 보건 선생님을 만났겠구나 확신이 든 적이 있다.   

아이들의 생활 습관이 조금 흐트러지면 어쩌랴, 이 많은 학생 중에서 단 한 명이라도 보건실이 그나마 숨 쉴 공간이 되어, 학교에 적응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보건실의 기능을 극대화하는 것 아닐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부천자치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보건실, #보건교사, #학교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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