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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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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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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태어났다고 꼭 한국에서 살아야 하는 법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몸의 뿌리는 한국에 있을지언정, 영혼의 뿌리는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가끔 책을 읽다 보면 이런 이야기를 만납니다. 생전 처음 여행 온 어느 나라에서 작가는 고향에 온 듯한 평온함을 느끼죠. 그리고 과거의 모든 것을 버리고 그곳에 터를 잡고 살기 시작합니다. 더없이 행복함을 느끼면서요.

저는 이런 이야기를 만날 때마다 가슴이 두근두근 합니다. 참 멋진 삶이라는 생각을 하게 돼서요. 우리는 우리 자신의 행복을 위해 일생에 한 번쯤은 이런 모험을 해볼 수도 있을 거예요.

우리의 행복이 꼭 지금 이곳에 있으리란 법도 없을 겁니다. 지금 이곳에서는 도통 행복을 찾을 수 없는데, 누군가가 억지로 행복을 찾으라 윽박을 지른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런다고 행복이 찾아지진 않지요. 그 사람은 윽박을 지르는 대신 '너는 왜 행복하지 않니?'라고 물어보는 게 좋을 겁니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이 행복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면 좋겠죠.

개인이 사회 속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면, 사회에 더 많은 책임이 있을 겁니다. 물론, 개인 또한 본인의 행복을 위해 노력을 해야겠지만, 여기엔 분명 한계가 있죠. 사회가 제시하는 가치가 편협하면 편협할수록, 그 사회에서 불행을 느끼는 개인들은 늘어갑니다.

그럼 개인들은 박탈감과 자괴감, 우울감 등을 안고 살아가게 되지요. 하지만 힘없는 개인이 사회를 바꾸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개인들은 자신이 더 행복할 수 있는 사회를 직접 찾아 나서기도 합니다. 바로, 장강명 소설 <한국이 싫어서>의 주인공 계나처럼요.

한국이 싫어서 호주로 간 계나

<한국이 싫어서>의 계나는 보통의 이십대입니다. 특출나게 잘나지도, 그렇다고 심하게 못나지도 않은 일반적인 이십대. 그런 계나가 한국을 떠나 호주로 갑니다. 왜 떠났느냐. 계나는 말합니다. 한국이 싫어서라구요.

계나의 부모님은 가난합니다. 낡은 빌라에서 아이 셋을 키워냈습니다. 열심히 살았건만 삶은 나아지지 않았죠. 겨울이 되면 집에서도 장갑을 끼고 있어야 합니다. 계나는 홍대를 나와 증권회사에서 일을 하게 됐습니다. 장기적 커리어에는 신경 쓰지 않고 그저 백수가 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면서 일을 하지요.

일도 힘이 들지만, 특히 출퇴근이 고역입니다. 출근 길 지하철 2호선에 끼어 몸이 으스러질 것 같은 경험을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근무를 끝내고 아침에야 집으로 돌아온 계나는 울면서 생각합니다. 도대체 이 생활을 언제까지 해야 하냐구요. 그런다고 삶이 나아지지도 않을 텐데요.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것 같다고 생각하던 계나는 마음을 먹습니다. 한국을 떠나자! 호주로 가자!

호주에서 만난 친구에게 계나는 이민을 결심한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한국에서는 딱히 비전이 없으니까. 명문대를 나온 것도 아니고, 집도 지지리 가난하고, 그렇다고 내가 김태희처럼 생긴 것도 아니고. 나 이대로 한국에서 계속 살면 나중엔 지하철 돌아다니면서 폐지 주워야 돼." -<한국이 싫어서> 중에서

책에서 보여지듯, 계나는 호주로 가서 고생, 고생, 생고생을 합니다. 한국에 남아 있었더라면 이 정도로 고생을 하진 않았을 거에요. "우드 유 라이크 썸 씽 투 드링크?"라는 영어도 못 알아 듣던 계나가 어학원을 거쳐, 대학원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영주권에 이어 시민권을 따기까지 바닥을 몇 번 쳤는지 모릅니다. 그래도 계나는 마침내 해내고 말죠.

그럼 계나는 왜 사서 고생을 하며 기어코 호주에서 시민권을 따낸 걸까요. 정말, 단지 한국이 싫어서였을까요. 그건 아니었습니다. 그 이유는 계나가 남자 친구인 지명이와 두 번째로 헤어지면서 한 말에 나타나 있습니다. 계나는 말합니다.

"사람은 가진 게 없어도 행복해질 수 있어. 하지만 미래를 두려워하면서 행복해질 순 없어. 나는 두려워하면서 살고 싶지 않아." -<한국이 싫어서> 중에서

계나는 한국에선 미래를 그릴 수 없었습니다. 행복한 미래를요. 이건, 비단 경제적인 미래만을 말하는 건 아닙니다. 만약, 부잣집 아들에, 직업이 기자인 지명이의 청혼을 계나가 받아들였다면 계나는 안정된 생활권 안에 편입될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계나는 그러지 않기로 해요. 하루 6시간을 자면서 피곤에 절어 일을 하는 지명이의 모습을 봤기 때문이죠. 지명이를 좋아하지만, 지명이의 그런 삶이 계나를 슬프게 할 거라는 걸 계나는 알았습니다.

계나는 생각해요. 주변 사람들의 밝은 표정을 보며 살고 싶다고요. 화를 내거나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살고 싶진 않다고요. 집도 안 커도 되고, 명품 백 같은 것도 필요 없다구요. 그저 매일매일 웃으며 살고 싶다구요.

계나는 또 생각해요. 당당하게 살고 싶다고요. 물건을 팔면서 손님에게 고개를 숙일 수는 있겠지만, 자존심이나 존엄성까지 팔고 싶지는 않다고요. 혹, 접대를 받는 상황이 오더라도 결코 상대방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진 않을 거라고요. 그런데 이런 삶이 한국에선 가능할 것 같지 않다고요. 그래서, 지명이와 살 수 없다고요.

계나는 처음엔 한국이 싫어서 호주로 떠났습니다. 그런데 6년이 지난 지금은 한국이 싫지 않아요. 계나는 지금 행복해지기 위해 호주로 가는 거에요. 호주에서라면 행복해지기가 더 쉬울 거라는 직감이 들었거든요.

우린 어떻게 살아야 할까

책은 계나의 호주 이민 성공기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작가가 책을 통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가 '떠나라!'는 아닐 겁니다. 이민을 조장하기 위해 책을 썼을 리는 없을 거예요. 한번 생각해 보자는 걸 겁니다. 계나가 왜 한국을 떠나게 됐는지를요. 왜 우리에게 대한민국이 좋은 나라가 아니게 됐는지를요.

그리고 여기에서 더 나아가 저는 작가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느꼈어요. 책에서 계나는 자기 삶을 스스로 바꾼 혁명가입니다. 자기에게 유리한 판으로 용기 있게 건너가 그곳에서 새 삶을 시작하죠.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이렇게 선뜻 용기 있는 삶을 선택하지 못합니다. 우리 대부분은 계나가 아니라, 오히려 계나 주변 인물들 일 거에요. 계나의 대학 친구들과 계나의 자매들처럼요.

계나가 호주에서 크고 작은 모험들을 겪으며 판을 갈고 있을 때, 친구들과 자매들은 정체해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전혀 변하지 않죠. 하는 말도 옛날과 똑같고, 하는 일도 여전합니다. 그리고 연신 투덜대죠. 그런 주변 물들을 보며 독자들 역시 답답함을 느낍니다. 그래서 계나가 그들에 대해 하는 이와 같은 평에 수긍을 하게 되지요. 계나는 생각합니다. 그들은 상황을 바꾸고자 하는 의지 자체도 없고, 근본적인 해결책에도 관심이 없다구요. 왜냐하면, "근본적인 해결책은 힘이 들고, 실행하려면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니까."

삶을 바꾼 혁명가 계나와, 몇 년 째 정체해 있기만 한 계나 주변 인물들. 아마 우리는 계나와 계나 주변 인물들 사이 어디쯤의 인생을 살고 있을 겁니다. 물론 계나보다 더 뻗어나간 사람도 있겠고, 완전히 주저앉아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요. 하지만, 그건 지금 이 순간까지의 삶입니다. 우리의 삶은 앞으로도 계속 될 거예요. 그리고 앞으로의 삶을 우리가 어떻게 이끌어가는 지가 더 중요하겠지요. 계나처럼 살지도 못하겠고, 계나 주변인물들처럼 살기도 싫은 우리들. 우린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작가가 우리에게 던진 질문이 바로 이것 아닐까요?

덧붙이는 글 | <한국이 싫어서>(장강명/민음사/2015년 05월 08일/1만 3천원)



한국이 싫어서

장강명 지음, 민음사(2015)


태그:#장강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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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킥복싱>, <매일 읽겠습니다>를 썼습니다. www.instagram.com/cliann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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