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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비례대표 7석이 사라졌다. 잡아먹을 듯이 싸우던 거대 양당은 선거구 획정 문제에서 손을 맞잡았다. 덕분에 소규모 진보정당이 여의도에 입성할 가능성은 더 낮아졌다.

한국 정치가 환골탈태하기 위해서는 선거구 개편이 필수적이다. 지금처럼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 하에서는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가 정치를 통해 올바르고 공정하게 대변되지 못한다. 한국 정치의 진화를 위해서는 민주주의 본연의 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선거제도가 개편되어야 한다.

오랜 기간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 논의해 온 바, 개편의 방향은 응당 비례대표 의석을 확대하는 것이다. 그런데 새누리당과 더민주당은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 갔다. 소수 정당에게 자신들의 기득권을 절대 양보할 수 없다는 선전포고를 한 셈이다.

처음으로 원내 진입을 노리는 '녹색당'에게는 안 좋은 소식이지만. 애초에 선거는 소수정당에게는 가혹한 불공정 게임이다. 게임 룰이 한두 개 바뀐다고 해서 휘청거릴 이유는 없다.

<손자병법>에 '일점돌파'라는 게 있다. 승리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선택해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다. 작은 구멍 하나가 방죽의 댐을 무너뜨리는 것과 같은 이치다. 나는 보수 정치 기득권의 횡포 속에서 녹색당의 '원내 1석'은 지금의 정치판을 아래로부터 뒤흔들 '일점돌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믿음의 근거는 책 <숨통이 트인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거대한 소수, '녹색당'의 출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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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통이 트인다> 표지 .
ⓒ 포도밭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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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정치를 바꾸기 위해서는 '팀'이 필요합니다. 몇몇 인물에 의존해서는 시스템을 바꿀 수 없습니다. 팀플레이를 할 수 있는 제대로 된 팀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좋은 정당'입니다. 제대로 된 정당은 자신만의 가치와 비전을 가지고 수십 년이 걸리더라도 변화를 이뤄내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흔히 권력 의지를 말하지만, 정치공학적인 권력의지가 아니라 시스템을 바꾸겠다는 의지를 가진 팀이 필요합니다. 그런 팀이 존재하고 힘을 얻어야만 시스템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이 가능합니다. (14쪽)

<숨통이 트인다>는 이번 총선에 출사표를 던진 녹색당 비례대표 후보 5인과 당의 총선 정책을 소개하는 책이다. 녹색당의 비례대표들은 2년을 임기로 하는 '임기순환제'를 채택하고 있다. 비례대표로 선출된 후보자들이 2년씩 돌아가면서 비례대표직을 수행하게 된다. 이것은 정치를 '개인'에 의존하는 방식이 아닌 '팀플레이'로 하겠다는 녹색당의 철학을 반영한 것이다.

사라져가는 야생동물과 공장식 축산업으로 고통받는 동물들을 조명해 온 황윤 다큐멘터리 감독은 "동물을 폭력적으로 대하는 세상은 인간이 인간에게도 폭력적이고 잔인하게 대하는 세상이라는 것이 증명되고 있다"며 "동물들의 고통을 줄여나가는 사회에서는 인간 사회의 많은 불평등과 폭력도 더불어 해결될 것"(33쪽)이라고 강조한다.

최근 녹색당은 당의 이름에 걸맞게 '동물권'을 총선의 주요 의제로 내걸고 '동물권 선거운동본부'를 출범시켜 화제가 됐다. 이를 통해 동물보호의 구체적인 정책과 제도를 이슈화 한다는 계획이다.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 운영위원인 김주온 후보나 망원동에서 마을공동체 운동을 하고 있는 신지예 후보는 '젊은피'다. 이들은 청년세대를 대표하면서도 구체적인 정치의제에서 자기 목소리를 분명히 주장한다.

녹색당은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기본소득제에 대한 '정책 로드맵'를 제출하고 있다. 왜곡된 조세제도를 바로잡고 예산낭비를 막는 방법으로 재원을 마련해, 2017년부터 3년간의 부분시행을 거쳐 2020년에는 전 연령대 기본소득제 지급을 목표로 한다.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과 탈핵-에너지 전환도 녹색당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이슈다. '부산시민햇빛에너지협동조합' 이사장인 구자상 후보는 "환경운동 세력이 여전히 정치의 문제에서 손님의 입장으로 있는 듯한 모습은 문제"라며 "인간의 삶의 원형을 뒤흔드는 환경 문제에 정치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총선에 뛰어들었다"고(142쪽) 말했다.

국회의원 한 석의 존재감은 남다를 것

녹색당은 비례대표 임기순환제 뿐만 아니라 대의원도 '추첨제'로 뽑고 있다.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완하고 당원 누구나 대의원이 될 수 있도록 하면서도, 당내 선거가 정파간 세력 다툼의 장이 되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다. 보수와 진보를 통틀어 여타의 정당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이것은 정치적 기득권으로부터 자유로울 뿐만 아니라 스스로 어떤 기득권도 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정치 엘리트에 의한 지배를 특징으로 하는 현대 대의정치 하에서 직업 정치인이 정치적 기득권에 초연하기란 쉽지 않다. 여기에 파벌을 형성하고 자파의 이익을 중심으로 정치를 좌지우지하려는 욕심까지 생기면, 민의는 사라지고 정치는 오직 그들만의 기득권 다툼으로 전락한다.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후 지역민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음 국회의원 공천을 받기 위해 4년을 뛴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소리가 아니다. 내가 녹색당을 신뢰하는 이유는 당권이나 국회의원 배지에 연연하지 않는 태도 때문이다.   

정치는 다수 의석을 가진 정당이 좌우하기도 하지만 소수가 만들어내는 진정성 있는 목소리가 큰 울림을 일으키기도 한다. '쪽수 싸움'도 물론 중요하지만, 쪽수를 초월해 쪽수를 무색하게 만드는 것도 정치의 묘미가 아니던가. 밀양송전탑 반대 대책위 사무국장 이계삼 후보는 "단 한명의 문제 제기가 근본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다"며 "녹색당 국회의원 한 석의 존재감은 남다를 것"(78쪽)이라고 확신했다.

부패인사의 총리 임명을 저지하기 위해 23시간 '필리버스터(의회 안에서의 다수파의 독주를 막기 위해 이뤄지는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행위)'를 불사하고, 지역구의 할머니와 손녀가 비가 와도 편히 다닐 수 있도록 개울에 손수 다리를 놓는 정치인. 부정한 청탁을 위해 뇌물을 주는 은행장의 면전에 돈다발을 뿌리고, 무분별한 개발 공약과 선을 그으며 온갖 비난에도 불구하고 지역민을 설득하는 정치인. 드라마 <어셈블리>의 주인공 진상필 의원의 모습이다. 구태의연한 우리 정치에 이런 정치인 한 명쯤 있어도 되는 것 아닌가? 드라마를 보는 내내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어둠을 저주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필요한 것은 한 자루의 촛불을 켜는 일입니다. 캄캄한 밤길에 주저앉은 이가 더듬어 길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거대한 조명탑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한 자루 촛불이면 넉넉합니다. 녹색당은 너와 내가 손잡고 밝힌 따뜻한 촛불의 불빛으로 힘없고 약한 이들, 세상사에 좌절한 이들을 불러 모을 것입니다.' (80쪽)

녹색당이 비례대표 1석을 얻으려면 정당 지지율 3%를 획득해야 한다. 선거구 획정에서 비례의석의 축소되어 여의도로 가는 문이 더 좁아지긴 했지만 어쩔 것인가. 이계삼 후보의 말대로 국가권력과 민중이 맨 몸으로 부딪치는 정치의 부재 상황을 막으려면 어차피 다른 답은 없다. 오직 투표 뿐이다.

덧붙이는 글 | <숨통이 트인다> (황윤, 이계삼 외지음 / 포토밭출판사 펴냄 / 2015.12.)

이 기사는 이민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yes24.com/xfile340)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숨통이 트인다 - 녹색 당신의 한 수

황윤 외 지음, 포도밭출판사(2015)


태그:#녹색당, #총선, #국회의원, #선거구, #비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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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시골 농촌에서 하루 하루 잘 살기 위해.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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