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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18일부터 열흘간 광주에서 있었던 일. 저는 이 일에 대해 스무 살이 되어서야 제대로 알게 되었습니다. 대학교 동아리 방이었는지, 강의실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아요. 선배들이 틀어준 영상에선 총을 든 군인들이 시민들을 무참히 짓밟고 있었습니다.

"저거 진짜예요? 저게 우리나라라구요?"라고 선배들에게 물었고, 선배들은 멍하고 어두운 표정으로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군인들이 어떻게 자국 국민들한테 저럴 수 있죠?"라고 또 물었고, 그 뒤 우리는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스무 살이 될 때까지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었다는 게 저는 놀라웠습니다. 어른들은 그날의 일에 대해 입을 꾹 닫았습니다. 그래서 그날의 일들은 대체로 은밀한 방법으로 그 당시에 아이였거나, 그 뒤에 태어난 우리들에게 전해졌습니다. 그날의 일을 알게 된 우리들은 슬픈 마음으로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 생각해봐야 했습니다.

인간이 지닌 근원적인 숭고함과 야만

책 리뷰
 책 리뷰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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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열흘 간의 기록을 다룬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에서도 그날의 일을 어른들 몰래 접하게 된 한 아이의 모습이 나옵니다. 아이는 어른들이 쉬쉬거리며 하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어른들은 목소리를 낮춰 이야기하고, 누군가가 이야기를 하면 맞은편 사람은 눈을 깜박이며 입을 벌린 채 말을 잇지 못합니다. '시상에', '시상에 뭔 일이단가' 탄식이 이어집니다. 아이는 어른들 몰래 사진집을 펴 봅니다.

내가 몰래 그 책을 펼친 것은, 어른들이 언제나처럼 부엌에 모여 앉아 아홉 시 뉴스를 보고 있던 밤이었다. 마지막 장까지 책장을 넘겨, 총검으로 깊게 내리그어 으깨어진 여자애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을 기억한다. 거기 있는지도 미처 모르고 있었던 내 안의 연한 부분이 소리 없이 깨어졌다. - <소년이 온다> 중에서

제가 스무 살이던 시절과도 지금은 많이 다릅니다. 이제 우리는 비밀스럽게 어른들의 사진첩을 몰래 펴 볼 필요가 없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어디에서도 그날의 자료를 구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 마음이 쉽게 생기지 않습니다. 그러려면 우리 "안의 연한 부분이 소리 없이 깨어"지는 경험을 해야 하니까요.

책에는 살아남은 자로 은숙이 나옵니다. 은숙은 그날의 경험 뒤로 대학에 진학하지만 끝내 마치지 못하고 한 출판사에서 일을 하게 됩니다. 그 출판사에서 새로 펴 낼 책에는 이런 내용이 실려 있었습니다.

군중의 도덕성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무엇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흥미로운 사실은, 군중을 이루는 개개인의 도덕적 수준과 별개로 특정한 윤리적 파동이 현장에서 발생된다는 것이다. 어떤 군중은 상점의 약탈과 살인, 강간을 서슴지 않으며, 어떤 군중은 개인이었다면 다다르기 어려웠을 이타성과 용기를 획득한다. 후자의 개인들이 특별히 숭고했다기보다는 인간이 근본적으로 지닌 숭고함이 군중의 힘을 빌려 발현된 것이며, 전자의 개인들이 특별히 야만적이었던 것이 아니라 인간의 근원적인 야만이 군중의 힘을 빌려 극대화된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 <소년이 온다> 중에서

인간이 지닌 근원적인 숭고함과, 인간이 지닌 근원적인 야만이 그해 광주에서도 극대화되었습니다. 열여섯 살 동호, 열아홉 살 은숙, 선주, 진수 등이 도청에 있었습니다. 그 아이들은 도청 상무관에서 계엄군에 의해 살해된 시체들을 관리했습니다. 동호, 선주, 진수는 도청이 무너지는 날에도 집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이날 이 아이들과 함께 도청에 남았던 당시 스물세 살이었던 살아남은 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 <소년이 온다> 중에서

내가 선한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 양심이라는 보석이 내 이마에 박힌 것 같은 기쁨. 그는 그날 도청에 남은 아이들도 그 양심이라는 보석을 느꼈을 거라 처음엔 생각합니다. 하지만 곧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아이들이 죽음이 뭔지나 알고 있었을까요.

죽음이 뭔지 모르는 아이들은 군인들이 도청을 급습해 왔을 때도 총을 쏘지 못합니다. 그대로 군인들에게 잡히고 맙니다. 그날 군인들이 소지한 탄환은 총 팔십만 발. 그 도시의 인구는 사십만. 시민 모두를 죽이고도 남을 탄환을 들고 쳐들어온 야만의 세계와 아이들의 숭고한 세계는 이렇게나 달랐습니다.

기억해야 한다

모진 고문을 당했던 살아남은 자는 이렇게 묻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이 질문에 정확히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은숙의 출판사에서 펴 낼 책에서 저자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에게 남은 질문은 이것이다.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문장 '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서 '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를 전 '인간이 잔인해지지 않기 위해'로 읽습니다. 인간이 잔인해지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저는 기억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 존재인지를 기억하는 것. 그리고 그 기억을 안고 사는 겁니다. 다신, 잔인해지지 않기 위해.

또 기억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얼마나 선해질 수 있는 존재인지를 기억하는 것. 그리고 그 기억을 안고 사는 겁니다. 잔인해지려 할 때마다 이 기억을 기억해야 겠지요. 우리 안의 연한 부분이 깨어진 후 그 위에 덧씌워질 건 이러한 기억들일 겁니다.

이 책 <소년이 온다>는 그날을 기억하기 위해 쓰여진 책이었습니다. 그날  그곳에서 행해진 일과, 그날 그곳에 있던 사람들을 기억하기 위해.

책은 총 7장으로 나뉘어 있고, 각 장의 화자는 모두 다릅니다. 7장 모두에서 소년 동호는 기억되어집니다. 동호 친구 정대도 동호를 기억하고, 은숙도 동호를 기억하고, 진수도, 동호 엄마도 동호를 기억합니다. 중3이라고 하기엔 작기만 했던 동호. 착하기만 했던 동호. 손을 이끌고 엄마를 햇빛 있는 데로 끌고 가던 동호. "엄마아, 저기 밝은 데는 꽃도 많이 폈네. 왜 캄캄한 데로 가아, 저쪽으로 가, 꽃 핀 쪽으로" 가자고 말하던 동호.

1장에서 작가는 동호를 '너'인 2인칭 시점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동호를 기억하는 우리가 화자가 되는 것입니다. '너'는 친구 정대의 죽음을 봤습니다. 잔인하게 찢겨진 시체들을 봤습니다. 그 시체들을 바라보는 유족들의 얼굴을 봤습니다. 너무 무서운 나머지 죽은 정대를 그대로 놓고 온 자신을 봤습니다. '너'는 가족의 시체를 찾으러 온 노인을 보며 생각합니다.

채머리 떠는 노인의 얼굴을 너는 돌아본다. 손녀 따님인가요, 묻지 않고 참을성 있게 그의 말을 기다린다. 용서하지 않을 거다. 이승에서 가장 끔찍한 것을 본 사람처럼 꿈쩍거리는 노인의 두 눈을 너는 마주 본다.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을 거다. 나 자신까지다. - <소년이 온다> 중에서

은숙이 마지막으로 본 동호는, 도청이 함락된 그날, 무서움에 눈꺼풀을 떨고 있었습니다. 이 책을 통해 동호를 기억하게 된 우리는,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해 도청에 남고 말았던 동호의 손을 이끌고, 꽃 핀 쪽으로 데려오려 합니다. 동호는 밝은 곳을 좋아하던 아이였습니다.

덧붙이는 글 | <소년이 온다>(한강/창비/2014년 05월 19일/1만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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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창비(2014)


태그:#한강, #소설, #한국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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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킥복싱>, <매일 읽겠습니다>를 썼습니다. www.instagram.com/cliann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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