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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타인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무기가 있기 마련입니다. 채권, 물리적 힘, 정보력, 나이, 학식, 계급이나 직급, 직무, 리더십, 갑을 관계 등 다양한 형태가 있을 것입니다. 이를 통해 타인을 협박하고 괴롭힐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도울 수도 있으며, 건전한 방향으로 개선시킬 수도 있습니다. 나쁜 방식도 있고 선한 방식도 있는 셈이지요. 우리 사회는 갑질, 물리적 폭력, 불법적인 채권추심, 왕따, 전관예우 등 부정적 방식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뉴스들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영향을 주는 사람과 영향을 받는 사람 모두를 우리는 흔히 이해관계자들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일방적이기보다 쌍방이 영향력을 서로 주고받는 관계가 더 많습니다. 그래서 복잡하지요. 사회적 책임이란 영향을 주는 사람의 적절하고 정당한 요구에 부응하고 영향력을 받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게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을 말합니다.

정부는 법과 제도, 정책 등을 통해 기업에게 선한 방향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대표적인 주체입니다. 특히 기업들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투자와 조달 관행을 통해서 말이지요. 관련 기업 활동으로 인해 예상되는 잠재적이고 부정적이고 인권영향을 완화시킬 수 있으며, 실제 기업에 의한 인권침해가 발생했을 때도 사법적인 방식은 물론 비사법적 방식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선한 방향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는 채널을 확보하고 있는 셈입니다.  

특히, 두 가지 이슈를 기업과 인권에 관한 국가행동계획에 반영해 국가가 법과 제도, 정책, 관행 등 다양한 측면에서 이를 실행하는 것은 대내외에 정부의 인권보호 의지를 천명하는 것은 물론 기업의 인권존중 책임에 대한 기대를 명확히 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사회책임네트워크(KSRN)에 함께 참여하고 있는 기업책임시민센터와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은 이러한 관점에서 현재 한국을 방문 중인 UN 기업과 인권에 관한 실무그룹(UNWG)과 미팅을 갖고 정부의 공공조달과 국민연금기금운용본부의 연기금 투자 관행을 개선하고 인권실사의무를 강화할 것을 골자로 하는 내용을 정부에 권고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공공조달', '국민연금 운용' 관련해 실무그룹에 의견 전달

지난 3월 21일 서울 국민연금공단 종로중구지사에서 한 시민이 국민연금 관련 상담을 받고 있다
 지난 3월 21일 서울 국민연금공단 종로중구지사에서 한 시민이 국민연금 관련 상담을 받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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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한해 우리나라 정부 및 공공기관의 공공조달 규모는 115조 원에 달합니다.  기업들로부터 물품을 구매하고, 공사, 용역 등의 발주를 하는 데 쓰이는 돈이 약 390조 원 규모의 국가 예산의 30% 수준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또한 국민연금기금운용본부가 운용하는 기금규모는 올해 2월 말 기준으로 한해 국가 예산을 훨씬 넘어서는 520조 원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는 직접 계약당사자가 되어 기업으로부터 물품과 공사, 용역을 조달합니다.

그리고 국민연금기금운용본부는 국가의 연기금 운용기능을 수행하는 특수한 공적기관입니다. 앞서 기술한 바와 같이 낙찰기업이나 연기금 투자 대상이 되는 기업들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인권을 고려하는 것만으로도 기업의 인권존중 책임 증진을 유도할 수 있는 엄청난 파급력을 지니고 있는 자금규모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권을 고려한다는 의미는 대상 기업의 인권존중 책임 이행을 위한 노력과 성과를 평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인권 침해 및 연루 회피를 위한 기업 시스템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기업에 의한 인권침해는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계약과 투자 이행 과정에서 관련 기업이 다시 인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재발방지 시스템을 구축하거나 피해자 구제에 적절하고 효과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영향력 내에서 관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공공조달과 관련해 정부에 권고해줄 것을 실무그룹에 요청한 것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국가계약법 시행령' 제42조 내용에 대한 개선 권고입니다. "국고의 부담이 되는 경쟁입찰에서의 낙찰자 결정"에 있어 "각 중앙관서의 장 또는 계약담당 공무원은 국고의 부담이 되는 경쟁입찰에 있어서는 예정가격이하로서 최저가격으로 입찰한자의 순으로 당해계약이행능력을 심사하여 낙찰자를 결정한다"고 강제하고 있어 입찰 참여 기업의 저임금 등 노동조건 악화요인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조달사업에 '공공성'을 고려하는 것과 "조달청장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장려하기 위하여 조달절차에 환경, 인권, 노동, 공정거래, 소비자 보호 등 사회∙환경적 가치를 반영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 '조달사업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2016년 1월)이 실효적으로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관련 시행령에 구체적인 비재무적 요소 평가 기준과과 관련 절차를 마련토록 하는 권고 요청을 했습니다. 

다행히 최근 제한적으로 위 내용을 개선 보완할 수 있는 내용의 시행령 개정이 있었습니다. 2015년 말에 '추정가격이 300억 원 이상인 공사나 '문화재수리 등에 관한 법률' 제2조 제1호에 따른 문화재수리로서 문화재청장이 정하는 공사'에서는 "각 입찰자의 입찰가격, 공사수행능력 및 사회적 책임 등을 종합 심사하여 합산점수가 가장 높은 자를 낙찰자로 결정한다"로 개정되었기 때문입니다.

국민연금과 관련해서는 투자 대상 기업의 인권침해 사안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주주권리 행사를 통해 인권실사의무를 강화할 것과 이를 위한 제도적 장치로 독립적인 '윤리위원회'를 설치할 것을 내용으로 하는 권고를 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정부가 국민연금기금운용본부의 인권실사 책임 이행에 대한 기대를 명확히 표명하고 관련 지침서를 개발, 보급해야 한다는 것도 포함시켰습니다.

그래야만 "투자대상 기업의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이슈를 고려할 수 있다"는 국민연금법 취지에 부합할 수 있으며, "ESG 관련 부정적인 이슈가 생긴 기업에 직접 경영 관여를 실시하며, 투자 매니저가 이를 수행하는지 확인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책임투자원칙에도 부합한 투자행동이기 때문입니다. 

국민연금운용본부, '기업의 인권책임 증진'에 대해선 나 몰라라

국민연금기금운용본부는 2015년 말 기준으로 사업장 환경으로 인한 근로자들의 백혈병 사망과 연루된 삼성전자 지분을 8%, 밀양 송전탑 건설과정의 현지인 인권침해와 연루된 한국전력의 지분은 7%, 다년간 지속되고 있는 하청기업 근로자들의 산재사망과 연루된 현대중공업 계열의 현대미포조선 지분은 5.04%, 인도 제철소 건설과정에서 현지인 인권침해로 연루된 POSCO 지분은 10.4%(2014년 말 기준), 미얀마 가스전 개발과 우즈벡 면화사업장의 아동노동, 강제노동과 연루된 대우인터내셔널 지분은 9%(2014년 말),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소비자 사망사고에 연루된 레킷벤키저 지분은 0.13%(2014년 말)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한국사회책임투자 이종오 국장은 국민연금운용본부가 위와 같이 심각한 인권침해에 연루된 기업에게 개선을 요구하는 편지 한 장 발송하지 않았으며, 홈페이지에 게시된 의결권 행사내역을 보면 오히려 다른 주주가 투자대상 기업의 인권책임 증진을 위해 제안한 주주제안에 반대표를 던지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2016년 2월 26일, 애플의 주주총회에서는 투자 진출국 선정 가이드라인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할 것을 요구하는 주주제안이 상정되었습니다. 이에 국민연금기금운용본부는 반대표를 행사하였는데 그 이유는 애플이 이미 인권보호를 위해 자사 및 납품 업체에 대한 다양한 인권정책 등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2015년 6월에는 아마존과 페이스북에 같은 내용의 주주제안이 상정되었습니다. 그 내용은 인권리스크 평가 프로세스를 보고하라는 요구였습니다. 국민연금기금운용본부는 둘 다 반대표를 행사하였습니다. 아마존은 이미 직간접 고용직원에 대해 비교적 엄격한 인권 관련 정책을 보유하고 관련 활동이 있는 것으로 판단하였다는 것이 이유였고, 페이스북은 인권 관련 전반적인 정책을 채택하고 있지는 않으나 해당 산업의 특성상 개인정보 보호 및 활용과 관련된 정책을 수립 및 권고하고 있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위와 같이 의결권을 행사한 근거로 의결권행사지침 제4조의 2(책임투자) 내용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기금은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수익률 제고를 위하여 환경, 사회, 기업지배구조 등 책임투자 요소를 고려하여 의결권을 행사한다"입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김용구씨는 기업책임시민센터 사무국장으로 국가인권위원회 기업과 인권 실무그룹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태그:#유엔, #인권, #기업과 인권 실무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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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과 평화를 위한 국제민주연대는 2000년 창립이래로 인권과 평화에 기반을 둔 국제연대 사업을 통해 해외한국기업감시 및 민주주의와 인권연대활동, 그리고 국가인권위원회 감시활동을 해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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