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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년 전에 노예해방을 외치면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습니다. 100년 전에 여자에게 투표권을 달라고 하면 감옥에 집어넣었습니다. 50년 전에 식민지에서 독립운동을 하면 테러리스트로 수배 당했습니다. 단기적으로 보면 불가능해 보여도 장기적으로 보면 사회는 계속 발전합니다. 그러니 지금 당장 이루어지지 않을 것처럼 보여도 대안이 무엇인가 찾고 이야기해야 합니다."


케임브리지대 장하준 교수의 유명한 메모 내용이다. 지금 당장 실현 불가능한 정책이나 법안이라도 지속적으로 토론하고 공론화하고 싸워야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평범한 시민들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시대에 살면서 그 이념들이 지향하는 가치와 의미를 혼동하고 있다.

시민들은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고 민주주의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위해 싸워왔고 어느 순간 그것을 쟁취한 듯 보였다. 하지만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우리 옆에 있는 건 민주주의라는 가치가 아니라 그 민주주의라는 이름 뒤에 숨은 자본주의의 힘이었다.

스위스의 기본소득 법안 국민투표 실시

2016년 6월 스위스에서 기본소득 법안에 대한 국민투표가 실시되었으나 부결되었다. 한국의 언론은 스위스 국민들이 복지포퓰리즘을 당당히 거부했다고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했다. 그리고 이 기본소득 국민투표 부결을 일부 국내 지자체에서 시행하려는 청년배당 등의 복지제도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는데 활용했다.

하지만 스위스 기본소득 국민투표 부결에 대한 지배적인 해석은 이미 세계에서 최고 수준의 사회복지 혜택을 받고 있는 스위스 국민들이 현재의 사회복지시스템을 기본소득으로 대체해야 할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더구나 한국과 스위스는 복지에 대한 정부와 국민들의 개념 이해와 복지 수준이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기 때문에 한국 일부 언론의 단순 나열식 비교는 비웃음을 주기까지 했다.

최근 <우리의 당연한 권리, 시민배당(With Liberty and Dividends for All)>이라는 책이 출간되기도 했는데, 시민배당이라는 말을 사용하여 주체성을 강조하였을 뿐 기본소득이라는 개념과 큰 차이는 없다.

한국에서 기본소득이라는 개념은 위에서 언급한 스위스의 기본소득 국민투표 실시로 처음으로 대중들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대표가 국회 연설에서 이러한 기본소득 도입의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공론화 되었다.

기본소득에 대한 한국의 현실

기본소득은 노동의 여부와 재산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모든 국민에게 일정한 소득을 보장하는 것이다. '헬조선'이라고 불리는 요즘 대한민국에서 그야말로 꿈같은 이야기이며 영원히 불가능한 일로 여겨진다.

서울시는 1년 이상 거주한 29세 이하의 시민 중 주당 근무시간이 30시간 미만인 청년에게 최장 6개월 간 월 50만 원의 활동비를 주려했다. 이에 보건복지부가 서울시의 청년수당 지급을 정지하라는 '시정명령'을 내리며 제동을 걸었다.

기본소득이라는 개념에도 미치지 못하는 원시적이고 지극히 제한적인 수당제도도 중앙정부가 태클을 걸며 방해하는 나라에서 전 국민에게 일정 소득을 보장하는 기본소득은 너무 먼 나라 이야기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기본소득이나 무상급식 등의 보편적 복지제도를 이야기하면 항상 등장하는 논리는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복지재원 마련은 어떻게 할 것인가? 둘째, 삼성 이재용 같은 사람에게까지 복지를 해야 할 필요성이 있을까? 셋째, 복지혜택을 받는 국민들의 도덕적 해이와 노동 기피 현상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그들의 논리는 한결같다. 논리가 한결같다는 것은 그만큼 그 논리가 취약하다는 반증일 수 있다.

복지재원 마련은 세금을 올리면 된다. 한국의 세금 부담 수준은 다른 OECD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꼴찌 수준이다. 2013년 기준 한국의 부담률은 24.3%로 30개국 가운데 28위다. 이는 OECD 평균 33.7%과 비교했을 때 형편없는 수준이다. 세금 부담이 적고 그와 연계해 복지 수준도 낮은 구조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고령화와 산업구조 재편으로 실업률 상승이 사회 문제가 되는 상황에서 이러한 저 부담, 저 복지구조를 지속하는 것은 사회구조의 안정성 측면에서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세금 인상과 더불어 또 하나의 복지재원 마련 방법은 이 책에 나와있는 공기, 금융 기반 시설, 지적재산권 보호, 주파수 등의 공유재를 이용하는 기업이나 사람에게 실질적이고 의미 있는 사용료를 받아 이를 활용하는 것이다.

아직은 낯선 단어, 시민배당

복지혜택을 받는 국민들의 도덕적 해이와 노동 기피 현상? 이건 국민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개돼지'로 보는 것으로 논할 가치조차 없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본능은 끊임없이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다. 더 잘 살기 위해 더 행복해지기 위해 끊임없이 노동을 하고 이윤을 추구한다. 최소한의 소득 보장과 복지혜택을 주면 일을 하지 않고 놀고 먹는다는 발상은 인간 본성의 기본 개념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수준 낮은 인식 태도이다.

아직 기본소득이나 시민배당이라는 단어가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하다. 복지는 결코 국가가 국민에게 주는 시혜가 아니다. 복지는 민주주의 시민의 당연한 권리임을 인식해야 한다. 지금은 상식처럼 인식되고 있는 보통선거제도나 건강보험이나 기초노령연금 같은 제도도 처음에는 낯설고 사회적 반발이 심했다. 최근의 국내 상황이 역사는 반드시 진보한다는 말조차 무색한 평편이지만, 오늘 한 걸음 후퇴하면 내일 두세 걸음 전진한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살아가야 할 희망이 있다.


우리의 당연한 권리, 시민배당 - 기본소득으로 위기의 중산층을 구하다

피터 반스 지음, 하승수 해제, 위대선 옮김, 갈마바람(2016)


태그:#시민배당, #기본소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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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에 행복과 미소가 담긴 글을 쓰고 싶습니다. 대구에 사는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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