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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모습
 걷는 모습
ⓒ 이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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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핵신문은 2012년 창간되어 지금까지 우리나라 탈핵 운동에 많은 이바지 해오고 있다. 그 핵심 인물이 윤종호 선생이다. 그는 고창 지역의 지역 신문으로 지역 사회의 혁신을 일으키던 중 후쿠시마 사태에 충격을 받고 탈핵신문을 창간하여 지금은 이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런 그가 도솔암에서 하루 휴식을 취하던 필자를 찾아왔다. 또 반가운 손님 두 분이 왔다. 2015년 가을부터 김광철 초록교육연대 대표의 주도로 매주 토요일마다 걷고 있는 탈핵희망 서울길 순례의 단골 참가자인 맹경숙님과 그 딸이 하루 동안 함께 걷기 위해 온 것이다. 도솔암 주지스님과 차를 마시면서 필자와 스님이 약 10분간 나눈 대화를 유심히 듣더니, 자유응답형 대화가 생각을 바꾸고 자극을 주는 데 상당히 효과가 있을 것 같다고 말한다. 맹경숙님이 묻는다.

"독일은 탈핵 운동의 역사가 깊지요?"
"네, 그렇죠. 1986년 체르노빌이 터졌을 때 800km 거리에 있는 독일 땅까지 방사능이 날아왔죠. 그것도 부자 동네인 뮌헨-바이에른에 많았죠. 그래서 이 동네는 우유도 먹지 못하고 그저 분유로 처리해서 매장할 생각만 했죠. 그 분유조차 악덕 업체의 손에 넘어가서 제3국으로 흘러 들어갔고 우리도 그 분유를 많이 수입했답니다."
"맙소사. 그때가 80년대 말이면.. "
"그런데 일찍이 1979년 스리마일 핵사고 때 심각성을 인지한 독일의 반핵운동인사들은 독일 정부가 체르노빌 사건을 겪고서도 그런 정부 태도에 변함이 없게 되자 결단을 내립니다."
"......"
"대학에서 소위 '문사철'을 전공했던 30대 40대의 나이 지긋한 반핵인사들이 공과대학에 다시 입학한 것이죠. 에너지전환기술을 익히기 위해서다. 대단한 결기입니다. 연마하고 졸업한 90년대 이후 그들은 에너지전환기술 사업을 창업하고 이를 세계에 전파합니다. 오늘날의 범용화된 에너지전환기술의 씨앗은 바로 이들의 결기에 있는 것이죠."

전봉준장군 생가앞에서
 전봉준장군 생가앞에서
ⓒ 이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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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준 생가를 지나면서 며칠 전 원불교 창시자 소태산 선생의 생가에 들렀을 때와 같은 맹세를 했다.

'기필코 탈핵을 완수해서 이 땅을 안전한 곳으로 만들겠습니다. 기운을 주십시오!'

원평이라는 곳에 들었을 때 동네 분들이 거친 말투로 묻는다.

"거 뭐 하고 있는 겁니까?"
"핵발전소 그만 짓자는 순례를 하고 있습니다."
"그럼 전기는요?"

어디서 많이 듣던 말투다. 잘 됐다 싶어 되받았다.

"우리나라에 핵발전소가 25개쯤 되는 건 알고 계시죠?"
"......"
"그게 전기 공급하는 비중이 몇 퍼센트쯤 되는지 아세요?"
"......"

말이 없다.

"기껏해야 나라 전기의 30%밖에 공급하지 못하죠. 평소에는 25% 정도밖에 못합니다! 고작 30%지요!"
"네? 그것밖에 안 된다고요?"
"그동안 이상한 홍보에 속으신 겁니다."
"......"
"근데 이게 터지면 끝나는 겁니다. 이 동네가 영광에서 한 50~60km 되나요? 터지면 도망갈 틈이나 있는지 모르겠네요. 30%에 목숨 걸 일 있나요?"
"......"
"몇 년 전에 옆 동네 부안에서 핵 폐기장 반대를 심하게 한 것 기억나시죠?"
"네."
"그런 나쁜 것을 계속 배출하는 게 핵 발전소라는 걸 알고 계시죠? 우리 세대 좀 편하게 살자고 자식, 손자 세대에게 몹쓸 짓 하고 있는 거 아닙니까?"
"......"
"인륜 파괴입니다."
"....."
"에너지 문제가 아니라 양심의 문제입니다. 어쩌자고 모른 체하십니까?"
"맞아요, 더는 지으면 안 되겠네요."

이쯤 하자 항복했다. 그리고 기념으로 탈핵 만화를 전달했다. 그리고 사진도 함께 찍었다.

군산넘어가는 들판의 무수한 송전탑과 송전선
 군산넘어가는 들판의 무수한 송전탑과 송전선
ⓒ 이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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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순례는 여러 사람이 함께하면 효과가 훨씬 크다. 하지만 혼자하는 순례도 나름의 효과가 있다. 걷는 리듬을 타고 가다 보면 명상을 하기 쉽다. 그리고 걸으면서 더욱 섬뜩한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지금 후손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본보기를 보이는 것 아닌가? 아이들에 자신들의 자식에게 그런 희생을 강요하는 전례를 우리가 보여주고 있는 것 아닌가? 정말 몹쓸 짓을 하는 것 아닌가?'

있을 수 없는 금기가 버젓이 벌어지고 있고, 그걸 우리는 외면하고 있다. 독일인들이 일찌감치 그런 윤리적인 문제를 간파하였기에 후쿠시마 핵 사고 직후 '17인의 윤리위원회'를 구성한 것 아니겠는가? 다음 날 전북대 교수님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였더니, 이분들도 공감했다.

"맞네요. 핵 발전소 문제를 방관하는 것은 양심을 파괴하는 것이네요."

그러는 동안에 누군가가 물었다.

"만약 새 대통령이 탈핵 의지가 있다 하더라도, 핵 마피아가 없어질까요?"

얼른 대답했다.

"간단합니다."
"어떻게요?"
"전국의 열 개쯤 되는 원자력공학과를 원전안전 및 해체학과로 바꾸게 하면 됩니다."
"....."
"지금 원전해체 시장이 엄청 큽니다. 전 세계 핵발전소가 445개 있는데, 국제원자력기구(IAEA) 조사로는 향후 50년간 1000조 원 시장이 형성될 거랍니다. 연간 20조 원 시장이죠. 이명박 정권이 아랍에미레이트에 5조 원짜리 1기 수출하려고 5년간 공들인 것에 비하면 엄청난 시장입니다. 이 주제로 3년 전에 불교계와 원불교계가 공동주최로 국제 세미나도 개최했지요. 수명이 다한 원전의 조기 해체를 유도함으로써 안전을 적극적으로 확보해가는 전략으로 말입니다."
"......"
"그런데도 우리는 이쪽 분야에 기술도 없고 전문 인력도 제로입니다. 서울대와 한양대만 해도 해체 과목 자체가 없습니다. 다른 학교는 볼 것도 없지요. 고리1호기 폐쇄 결정되었으니 이를 필두로 앞으로 50년간 스무 개나 해체해야 하는데 인력 배양도 못 하고 있어요. 학생들 생각하면 이런 블루오션으로 가야죠."
"......"
"해체 분야 외국인 저명기술자와 교수를 초빙하고 국내 기존 연구자도 원전 해체 쪽으로 영역을 확장해서 대응하면 되지요. 요는 밥그릇 뺏는 게 아니라 밥그릇 모양만 바꾸라는 건데, 이것도 거부하는 마피아들이 있어요."

필자가 들고 다니는 현수막에 적혀 있는, '날 적마다 좋은 국토'라는 말은 사찰에서 새벽예불을 올릴 때 외우는 '이산혜연선사의 발원문'에 있는 구절이다. 방사능 오염은 헤아릴  수 없는 시간 동안 지속된다. 윤회로 새 세상에 태어나도 방사능으로 오염된 세상을 만날까봐 두렵지 않은가, 라는 경고도 함축하고 있다.

<오마이뉴스>에 보도된 필자의 완주에서 익산까지의 순례 기사를 보고 용인에 사는 장동범님이 달려와 함께 걸었다. 어느 식당에 들렀는데 그 주인이 좋은 일 하신다고 밥값을 받지 않는다. 익산을 거쳐 군산 가까이에 있는 임피 부근의 들판은 온갖 종류의 송전탑과 송전선들로 가득했다.

석 달 전 순례 때 비해 확연히 느낀 것은 이제 우리도 태양광 혁명기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농촌의 웬만한 건물에는 대용량 태양광 패널이 설치되어 있다. 값이 작년의 절반 값인 데다, 최근 정부 보조금이 상당한 수준으로 지원되었다고 한다. 한눈에 보아도 현저히 늘어났다.

태양광으로 무장한 완주의 어느 공장 - 이미 태양광혁명이 벌어지고 있다
 태양광으로 무장한 완주의 어느 공장 - 이미 태양광혁명이 벌어지고 있다
ⓒ 이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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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태양광을 포함한 자연 에너지 부문에서 엄청난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약간 지난 통계이긴 하지만 21세기 들어서 12년간 6만7천 명에서 36만6천 명으로 6배 가까이 늘었다. 원료가 공짜인 데다, 설비 제조뿐 아니라 설치/유지 관리 등을 지역 기업이 맡고 있어 지역 경제가 활성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거다. 핵 발전소와 화석 발전소가 갖는 중앙집중식 공급 체제를 동네에서 자립형으로 충당할 수 있다. 송전탑, 송전선도 필요 없고 국토 파괴도 없다.

연일 계속되는 폭염을 피하여 새벽길을 재촉하면서 겨우 마지막 목적지인 군산까지 도달했다. 세어보니 3주다. 악천후 등으로 부득이하게 교통편을 이용한 구간을 제하면 대략 걸은 거리는 약300km. 그동안 음으로 양으로 많은 분에게 도움을 받았다. 감사드린다.

이번 순례의 가장 큰 소득은 핵발전소 문제는 에너지문제 이전에 안보의 문제요, 생명의 문제요, 그리고 무엇보다 양심의 문제라는 것을 새삼 깊이 새긴 것이다. 핵 발전소 위험을 모른체 하는 것은, '자식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행위'를 자식들이 본보기 삼도록 조장하는 엄청난 반인륜이라는 것을.



태그:#핵발전소 위험, #양심의 문제, #원전안전및해체학과, #태양광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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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소비자주권행동 공동대표(2021~2022)를 거쳐 현재 언론개혁시민행진단장을 맡고 있다. 올해(2023년)2월 수원대 교수(도시계획)에서 정년퇴직하였고 현재 국토미래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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