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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시 자전거를 아시나요? 앞으로 페달을 돌리면 앞으로 나아가고, 뒤로 페달을 돌리면 뒤로 나아가는 자전거입니다. 페달을 거꾸로 돌려, 그 저항력으로 제동을 잡는 자전거죠.

한 번 빠르게 달리고 있는 픽시 자전거를 세우기 위해, 페달을 강제로 뒤로 굴린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자전거가 빠르게 달리고 있는 만큼 멈추는 데 어마어마한 무리가 따르겠죠?

엔진브레이크를 사용하면 엔진에 무리가 생긴다고 생각하신 분이라면, 위 비유를 그대로 머릿속에 떠올릴지도 모르겠습니다. 픽시 자전거를 억지로 멈추려 할 때 그렇듯, 엔진브레이크를 사용 시 엔진에도 엄청난 무리가 생긴다는 논리로 말이죠.

하지만 이는 잘못된 비유입니다. 굳이 이야기하자면 억지로 뒤로 페달을 굴리며 픽시 자전거를 세우려한다기보단, 그냥 발은 자전거 페달에 올려만 놓고 관성으로만 자전거가 나아가게 하여 자연스럽게 멈추려 한다는 비유가 정확합니다. 다만, 자전거 크랭크 안에 마찰력 등 회전 저항이 생겨서 자전거가 더 빨리 멈추게 되는 것이죠.

엔진의 실린더는 흡입-압축-폭발-배기의 4가지 행정을 거치는데, 엔진브레이크를 사용하면 연료가 차단되어 폭발 행정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자전거 페달을 위에서 내리 누르던 힘이 사라진다는 것이죠. 픽시 자전거의 페달을 반대로 굴린다는 논리가 이 때문에 들어맞지 않게 됩니다.

엔진브레이크를 사용하는 순간 차는 관성의 힘으로만 나아가게 되는데, 이때 기존 엔진-크랭크-미션-바퀴로 전달되던 힘이 거꾸로 바퀴-미션-크랭크-엔진으로 전달됩니다.

잠깐, 자전거의 기어를 떠올려볼까요? 페달과 연결된 '직접 회전하는 기어'와 뒷바퀴 쪽에 있는 '맞물린 기어'를 떠올려봅시다. '작은 기어'가 '큰 기어'를 돌릴 때는 '작은 힘'으로도 돌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큰 기어'가 '작은 기어'를 돌릴 때는 상대적으로 '큰 힘'이 들어갑니다. 이를 우리는 기어비, 또는 변속비라 부릅니다. 

기어비는 회전수에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작은 기어로 큰 기어를 돌리면 힘은 적게 들지만 회전수는 줄어들게 되죠. 회전수가 줄어들지만 비교적 적은 힘으로 큰 기어를 돌릴 수 있습니다. 반대의 경우엔 힘은 많이 들지만, 회전수는 높아질 수 있습니다. 이 원리를 사용한 것이 바로 엔진 브레이크입니다.

참고로 언덕에서 주행 시 힘이 필요할 때 차량의 기어를 낮추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기어가 1단인 상태에서는 직접 회전하는 기어(이하 구동기어)는 작고 이와 연결된 돌려지는 기어(이하 메인기어)는 큽니다. 단수가 올라갈수록 기어의 크기 차이는 줄어들며, 회전수를 높여 속도를 올릴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이때 엔진이 회전을 하지 않는다면 속도는 당연히 줄어들게 되겠죠.

자, 이제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볼까요? 엔진브레이크를 위해 엑셀에서 발을 떼면 어떻게 될까요? 우선 엑셀에서 발을 뗀 순간 연료 분사가 일시 정지됩니다. 엔진 내부의 회전 관성은 남아있겠지만, 연료가 엔진을 돌리던 힘은 사라지는 것이죠. 기존 엔진의 힘+관성의 힘으로 나아가던 차는 엑셀에서 발을 뗀 순간 오로지 관성의 힘으로만 나아가게 됩니다. 실은 이 자체만으로도 엔진브레이크가 시작됐다고 할 수 있죠.

그리고 아까 엔진-크랭크-미션-바퀴로 전달되던 힘이 거꾸로 전달됩니다. 그러면서 바퀴와 연결된 메인기어가 엔진과 연결된 구동기어를 돌리게 되는 것이죠.

안 그래도 메인기어가 크기가 더 작은 구동기어를 돌려야 한다면 더 많은 힘이 들어가야 하겠죠. 이 상황에서 기어를 낮추면, 더 많은 크기 차이가 생기므로 힘이 더 많이 들게 될 겁니다. 이 때문에 '부하'가 생겨 브레이크가 걸리는 겁니다.

하지만 이 '부하'가 차에 안 좋은 영향을 주진 않느냐구요? 아닙니다. 5단에서 4단, 4단에서 3단으로 기어 단수를 낮췄을 때 부하가 생긴다는 논리라면, 반대로 1단에서 2단, 2단에서 3단으로 기어 단수를 올리며 가속을 할 때도 똑같이 부하가 생겨야 하지 않을까요?

엔진브레이크 사용시 rpm이 치솟는 걸 두고, 엔진의 회전수가 빨라진 만큼 피스톤 운동도 빠르게 일어나며, 덩달아 엔진 내부의 마찰도 더 빨리 더 많이 일어나는 거 아니냐 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rpm이 치솟는 건 몇 초 밖에 안 되는 짧은 순간일 뿐이고 그 뒤로는 차량의 속도와 rpm이 부드럽게 줄어들죠.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건, 엔진브레이크 시 피스톤 운동이 더 빨라지며 엔진 내부에 생기는 마찰은, 엔진을 가속하면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그 회전마찰이라는 겁니다.

물론 엔진브레이크 사용 시 피스톤의 내부나 피스톤의 상하 운동을 회전 운동으로 전환하기 위해 연결된 부품들, 그리고 엔진의 회전 부위 등 여러 부위에서 커다란 마찰 저항이 생겨날 겁니다. 하지만 이런 마찰 저항과 함께 더 큰 저항인 진공저항이 생겨납니다.

아까 엑셀에서 발을 뗀 순간 연료 주입이 일시 중단되어 엔진 내부의 폭발 행정이 일어나지 않는다 했죠? 엄밀히 이야기하면 폭발 행정이 100% 중단되는 건 아닙니다만, 일단 이 부분은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실은 가솔린 엔진은 흡입 공기량을 제어해서 엔진의 속도를 조절합니다. 엑셀에서 발을 떼면 엔진으로 들어가는 공기를 제어하는 스로틀 밸브가 닫히는 구조죠. 4행정 엔진의 경우 실린더가 흡입-압축-폭발-배기의 과정을 거치는데, 엔진 브레이크시 바퀴가 엔진을 돌리게 되잖아요? 그럼 크랭크와 연결된 실린더들 또한 상하로 움직이면서 흡기와 배기 행정을 하는데, 스로틀 밸브가 닫혀있어서 공기가 잘 안 빨리게 되는 겁니다. 마치 주사기의 입구를 손으로 막고 피스톤 운동을 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 연출되는 거죠.

이러니 가솔린 엔진에서는 마찰 저항뿐만 아니라 진공 상태에서의 공기 저항도 함께 일어나는 겁니다. rpm이 순간 치솟다가도, 금세 줄어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정리해 보자면, 저는 엔진브레이크 사용을 선풍기에 비유하면 좋을 듯합니다. 선풍기를 5단으로 돌리다가 4단으로 낮췄을 때 선풍기에 부하가 걸린다고 이야기하지 않는 것과 같다는 거죠. 일반적인 엔진이나 미션의 작동원리, 수명 등에 비춰볼 때, 엔진브레이크시 생기는 마찰, 진동, 부품의 소모, 마모도 등 발생하는 모든 영향력들이 너무나 미비해서 굳이 따질 필요가 없다는 논리입니다.

게다가 요즘 모든 오토차량에는 엔진보호 프로그램이 있어서 말도 안 되는 상황, 이를 테면 막 가속을 하다가 갑자기 엔진브레이크를 건다고 해도 레드존까지 rpm이 치솟거나 하진 않습니다. 한마디로, 정말 작정하고 기어를 한꺼번에 2~3단씩 건너뛰며 내리는 등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연출하는 게 아니라면 엔진에 무리를 주려고 해도 줄 수 없다는 겁니다.

엔진브레이크시 엔진이나 구동 부품 전체에 가해지는 힘은 엔진을 가속할 때 가해지는 힘보다 훨씬 약합니다. 자동차의 변속 원리를 잘 생각해보면, 어차피 기어를 2단에서 3단으로, 3단에서 4단으로 올리며 가속하는 원리나, 반대로 4단에서 3단, 3단에서 2단으로 기어를 내리며 엔진브레이크를 사용하는 건 같은 원리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 글이 엔진브레이크를 이해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엔진브레이크의 원리편! 여기서 마칩니다.

덧붙이는 글 | 최근 엔진브레이크를 자주 쓰면 엔진에 무리가 가는지에 대해 기사를 썼습니다.(관련기사: 엔진브레이크, 자주 쓰면 엔진에 무리 갈까? / http://bit.ly/2ciih9p) 기계와 자동차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엔진브레이크 사용에 대한 오해를 스스로 풀어보자는 게 기사의 출발이었죠.

박병일 명장님의 도움을 받아 기사를 작성했으나, 저 스스로가 차량에 대한 전문가는 아니었기 때문에 엔진브레이크의 원리, 차량 부품, 기계공학적인 전문 용어 등은 상세히 다루지 못했습니다.

당시 박병일 명장님의 말씀만을 그대로 기사화시킨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어, 이번 시간을 통해 엔진브레이크의 원리를 상세히 다루어보려 합니다. 부디 많은 운전자들이 엔진브레이크 사용에 대한 오해를 풀고, 안전운전 하셨으면 합니다.



태그:#엔진브레이크, #자동차, #브레이크, #원리, #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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