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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한국노총 산하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는 하루동안 성과연봉제 등 노동개혁에 반대하기 위한 총파업에 돌입했습니다. 파업에 참여한 이들은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 모여 집회를 열었습니다. [편집자말]
엄마는 결혼하기 전에 한일은행에서 일했다. 엄마는 훌륭한 인재였고, 승진을 여러 번 약속받았지만 동생을 낳고 나서는, 주말 부부로 살면서 육아와 직장을 양립할 수가 없었다. 세상은 그런 걸 배려해 주지 않았고, 엄마는 회사를 그만두고 아빠가 있는 대구로 내려왔다.

가세가 기울고 나서 엄마는 한빛은행에 다시 들어갔다. 한일은행이 한국상업은행과 합쳐져서 생긴 은행이었다. 예전에 함께 일했던 남성 동료들은 지점장이 돼 있었고, 엄마는 'CS 상담'으로 그 회사에 다시 들어갔다. Consumer Satisfaction(고객 만족). 화가 난 사람들의 전화를 하루 종일 받는 자리였다. CS 센터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나이가 많건 적건 99% 여성이었다.

텔레마케터의 연봉은 아주 싼 기본급과 단계별로 나누어진 끝없는 성과급으로 이뤄져 있었다. 엄마는 언제나 성과급의 최종단계까지 받았다. 그러기 위해서 엄마는 가장 빨리 출근을 했고, 가장 늦게까지 남아서 일을 했다. 밤 10시가 넘어서 집에 들아오면 노안이 찾아오기 시작하는 눈으로 한밤이 될 때까지 은행상품에 대해 공부했다. 주말에는 도서관에 틀어박혔다.

텔레마케터들이 분주하게 일하고 있다 (해당 기사와 관련없습니다)
 텔레마케터들이 분주하게 일하고 있다 (해당 기사와 관련없습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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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결국 그 센터의 500명 중에서 제일 처음 승진한 사람이 됐다. 그 500명을 관리하는 슈퍼바이저 직함을 달았고, 엄마의 기본급은 다른 사람들보다 높아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엄마가 '성과급'에서 자유로워진 것은 결코 아니었다. 타인들의 성과를 관리하는 것도 '성과'였고, 그걸 비교 당하면서 엄마는 또 성과급을 받아야 했다. 회사의 이름이 우리은행으로 한 번 더 바뀌고도 한참 뒤까지 엄마는 그곳에서 일했다.

'나쁜 제도'는 누구에게 가장 먼저 손을 뻗을까

물론 나는 엄마가 목표를 성취하는 타입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하는 엄마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엄마는 자신이 그 안에서 가장 인정받는 노동자라는 사실을 뿌듯하게 생각했고, 나는 엄마가 그런 감정을 느낄만한 자격이 있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엄마는 늘 피로했고, 어딘가 아팠고, 가끔 가족들에게 삶에 대한 분노를 터뜨렸다. 나쁜 제도는 약한 사람들에게 먼저 적용된다. 나는 이 제도가 나쁘다는 것을 엄마의 목이 쉬어가는 과정 속에서 보았다. 엄마는 이제 너무 몸이 아파서 회사에 다닐 수 없다.

엄마의 예전 회사 동료들은 요즘 '위비멤버스'를 깔아달라고 주변에 부탁하는 데에 열심이다. 언론에서는 실패한 서비스라고, 행원들이 '다단계'를 해서 간신히 유지하는 앱이라고 욕을 한다.

나와 오빠와 여동생은 각기 다른 엄마 회사 동료들의 행원 번호를 받아서 위비멤버스를 깔았다. 이게 다 '성과'로 카운팅 돼 꼭 받아야만 한다고 했다. 휴대폰 판매업에서 일하는 오빠는 그 '성과' 제도를 아주 잘 이해하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10개가 넘게 위비멤버스를 깔도록 했다고 엄마에게 들었다. 그 얘기를 하면서 엄마는 오빠를 자랑스러워 했다.

회사 1층 은행에 "23일 파업해서 업무를 하지 않는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는 것을 보았다. 어제 기업은행에선 파업참가자 명단을 제출하지 않으면 퇴근시키지 않겠다며 직원들을 감금했다고 한다. TV조선은 예의 귀족노조 이야기를 또 들고 나왔다.

한국노총 한국금융산업노동조합이 23일 파업에 들어간 가운데, 경남은행 한 지점 현관에 '고객 안내문'이 붙어 있다.
 한국노총 한국금융산업노동조합이 23일 파업에 들어간 가운데, 경남은행 한 지점 현관에 '고객 안내문'이 붙어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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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연봉제가 이제 저성과자 해고지침과도 연결돼 있다고 한다. '성과'를 비교하고, 누굴 죽일지 결정한다. 언제나 그렇다. 나쁜 제도는 약한 사람들한테 먼저 적용된다. 그들이 참아내는지 확인해보고 난 다음에는 확대된다. 그 약한 사람들을 기반으로 그렇게 된다. 그런 식으로 세상이 조금 더 나빠진다.

금융노조가 이겼으면 좋겠다. 하지만 설령 이기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세상이 나빠지는 속도를 줄이기라도 했으면 좋겠다. 아니, 역시 이겼으면 좋겠다. 아무도 그렇게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태그:#은행 파업, #금융노조 파업, #금융노조, #텔레마케터, #성과연봉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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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소설을 씁니다. 기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 혹은 그 역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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