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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 한눈에

  • 삼성그룹은 대가성이 없고, 자신들은 피해자라고 주장하지만 최순실씨 측에 돈을 지원한 과정을 살펴보면 비상식적인 면이 많다.
  • 백번 양보해서 지원금을 뇌물로 볼 수 없다고 해도 법정형이 무거운 업무상 배임·횡령죄에 해당할 수 있다. 이것만으로도 구속 사유는 충분하다.
  • 이재용 부회장의 방어권 행사를 위해 불구속 재판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왜 유독 재벌이나 권력자만 방어권을 보장해주는가.
  • 재벌에만 엄격한 기준을 들이대면서 구속영장 발부를 어렵게 하거나, 일반 국민들에 비하여 방어권 보장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는 이미 파괴된 것이다.
430억원대 뇌물공여와 횡령·위증 등 혐의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종이백을 들고 19일 오전 의왕시 서울구치소 밖으로 걸어나오고 있다.
 430억원대 뇌물공여와 횡령·위증 등 혐의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종이백을 들고 19일 오전 의왕시 서울구치소 밖으로 걸어나오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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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의 영장기각,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대한민국은 재벌공화국임을 증명하는 순간이었다. 그동안 우리 법원이 재벌에 대해서는 금액에 비해서 처벌 수위가 낮았고 영장청구도 기각되는 사례가 빈번했다.

박영수 특별검사가 이재용 부회장에 대하여 구속영장을 청구한 사유는 이렇다. 삼성그룹이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 일가를 위해 미르·K스포츠재단에 204억 원,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16억2800만 원, 코레스포츠(비덱스포츠 전신)에 213억 원 등 430여억 원의 뇌물을 제공하였고, 이재용 부회장이 청문회에 출석해 증언하면서 최순시를 알았떤 시점 등에 대해 위증했다는 혐의다.

불안의 징조는 특검의 영장청구 때부터 감지되었다. 이재용 부회장의 소환조사를 마치고도 며칠을 기다리다 구속영장을 청구하였다. 영장청구가 늦어지자 언론에서는 검토해야 하는 법률적 검토가 많다거나, 아직 특검이 혐의에 대해서 완전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거나, 대가성을 인정할만한 객관적인 자료가 부족하다는 등의 평을 내놓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경제신문과 일부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경제의 어려움을 부각하면서 영장청구까지 하는 것은 무리라는 논지를 설파했다. 삼성의 경우 피해자일 뿐이라는 그룹 측의 논리를 전파하는 데도 힘을 보탠다. 급기야 특검은 '영장 청구 여부는 법과 원칙에 따라 정할 뿐'이라는 원칙을 내놓고 다음날 영장을 청구한다. 조용히 지켜보는 국민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던 것이다. 결국은 특검에서 영장청구를 미루는 모습이 구속영장을 기각하는 데 하나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영장실질심사를 담당했던 조의연 부장판사는 "뇌물범죄의 요건이 되는 대가관계와 부정한 청탁 등에 대한 현재까지의 소명 정도, 각종 지원 경위에 관한 구체적 사실관계와 그 법률적 평가를 둘러싼 다툼의 여지, 관련자 조사를 포함해 현재까지 이루어진 수사 내용과 진행 경과 등에 비춰 볼 때, 현 단계에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특검의 영장청구를 기각하였다. 자, 이제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의 기각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지 살펴보자.

삼성 합병과 최순실 지원, 부인할 수 없는 연결 고리

삼성그룹 서초사옥
 삼성그룹 서초사옥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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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사실관계에는 큰 다툼이 없는 것 같다. 이재용 회장 등 삼성그룹 관계자들 또한 자신들이 금품을 제공했다는 사실은 그대로 인정하고 있다. 문제는 금품을 제공한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세 가지로 갈라진다. 삼성그룹은 대통령 등 국가기관의 강요에 의해서 마지못해 제공한 것이라고 강변한다. 따라서 자신들도 피해자라는 입장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측은 유망한 체육 특기생의 육성이나 재단 또는 사업의 취지에 공감했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돈을 낸 것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특검은 삼성그룹이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필요했고, 합병 비율을 결정함에 있어서 삼성물산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였으며(제일모직을 1로 했을 때 삼성물산은 0.35), 국민연금이 가지고 있는 삼성물산의 주식이 합병에 찬성토록 하는 대가로 최순실, 박근혜 일가에 막대한 자금을 지원하였다는 것이다.

삼성그룹이 뇌물을 제공한 것이냐의 여부는 합병비율의 결정이 정당하느냐의 논리와 연결되어 있다. 삼성은 매우 정당하며 법적으로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당시의 주식가격과 자산가치의 비율을 따져봤을 때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비율을 1:0.35로 하는 것은 극히 타당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형식상으로 주식가치는 제일모직이 173,500원, 삼성물산은 66,300원이고, 자산총계는 삼성물산 26조 1556억 원, 제일모직 8조 1,833억 원이었기 때문이다. 영장을 심사한 판사도 이러한 점을 고려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합병비율은 단순히 주식가치나 자산 가치만을 평가해서 정하는 것이 아니다. 합병비율은 자산가치 이외에 시장가치, 수익가치, 상대가치 등의 다양한 제반요소의 고려가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이루어진 것이라야 한다. 다만 우리 대법원은 합병 당사 회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주권상장법인인 경우 증권거래법과 그 시행령 등 관련 법령이 정한 요건과 방법 및 절차 등에 기하여 합병가액을 산정하고 그에 따라 합병비율을 정하였다면 그 합병가액 산정이 허위자료에 의한 것이라거나 터무니없는 예상 수치에 근거한 것이라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합병비율이 현저하게 불공정하여 합병계약이 무효로 된다고 볼 수 없다( 대법원 2009. 4. 23. 선고 2005다22701 판결)고 판시하고 있어서 삼성그룹의 주장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합병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양쪽 회사의 주주총회 의결을 통과해야 한다. 그런데 당시 삼성물산의 주식 7.12%를 가지고 있던 사모펀드 엘리엇이 합병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표시하면서 임시총회 소집을 금지해달라는 가처분에 들어갔고, 소액주주들 또한 합병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삼성은 합병의결에 찬성하는 삼성물산의 주식이 필요했고, 국민연금이 가지고 있던 삼성물산의 주식이 찬성표를 던져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삼성그룹이 최순실 일가에 대한 지원을 약속하면서 청와대와 보건복지부를 통해서 국민연금에 압력을 가해 찬성을 이끌었던 것이다. 더욱이 합병에 관한 논의를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의결권 행사 전문위원회로 넘기지 않고 본부 내 투자위원회에서 결정함으로써 국민연금 내부의 적법한 기금운용 절차를 무시한 것이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전후에서 벌어졌던 비상식적인 사건들을 생각해보자. 먼저 삼성그룹이 최순실 측에 지원한 금액이 상상을 초월한다. 삼성그룹 입장에서는 큰돈이 아닐 수 있지만 그동안 삼성이 다른 운동선수 등에 지원한 것 등을 비교하면 설명이 불가능하다. 아무리 승마협회를 책임지고 있는 주관사라 하더라도 대단하지도 않은 승마선수에게 막대한 지원을 한다는 것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다른 숭마선수에 대한 지원은 어떠했는지 비교해보라. 최순실의 딸, 박근혜 대통령과 관련성이 없다면 그러한 지원을 했겠느냐 말이다.

대가를 바라지 않았다는 삼성의 주장, 그렇다면 문형표 등의 범죄 행위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삼성그룹의 이재용 부회장과 박근혜 대통령이 독대하고, 그룹 임원들이 최순실 측을 여러 차례 만나서 지원방법을 논의했던 것은 어떠한가? 국민연금이 내부절차를 어기고 찬성표를 던져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결국은 삼성의 최순실 일가에 대한 막대한 지원, 박근혜 대통령과 연결된 최순실 측의 청와대와 보건복지부를 통한 국민연금에 대한 압력,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으로 연결되는 고리를 자를 수가 없다.

위와 같은 구조에서는 삼성그룹이 최순실 측에 지원한 돈은 당연히 뇌물이 된다. 백번을 양보해서 뇌물로 보는 데 어려움이 있더라도, 그리고 대통령의 강요에 견디지 못하고 지원을 했다고 하더라도 개인의 돈이 아닌 회사의 돈을 지원했다면 당연히 업무상 횡령, 또는 업무상 배임에 해당한다.

그것도 특정 경제범죄 가중 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해당하므로 법정형이 매우 무겁다. 그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구속사유가 되는 것이다. 흔히 다툼의 여지가 있으므로 방어권 행사를 위해서 불구속으로 재판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 헌법상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 필요한 말이다. 그런데 그러한 방어권 보장이 재벌이나 권력자를 위해서만 필요한 것인지 반문하고 싶다.

사실관계와 대가성 부인한 이재용, 법원은 왜 놔줬나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수사를 맡은 특별검사팀의 이규철 대변인이 19일 오전 서울 강남구 특검사무실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 기각 처분에 대한 입장 발표하기 위해 들어서고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수사를 맡은 특별검사팀의 이규철 대변인이 19일 오전 서울 강남구 특검사무실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 기각 처분에 대한 입장 발표하기 위해 들어서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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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구속영장을 발부하는 사유로 증거인멸, 도망할 염려, 주거부정을 든다. 그렇지만 영장실질심사 단계에서 구체적으로 증거인멸이나 도주의 우려가 있는지를 살피지는 않는다. 우선적으로 구속영장 청구서에 기재된 범죄사실에 대해서 어느 정도 소명이 되었는지를 살핀다. 증거관계를 살펴서 그러한 범죄사실을 인정할 개연성이 있으면 충분하다. 그러한 범죄혐의가 인정된다면 형량이 어느 정도 될 것인가도 고려해야 한다. 그래서 범죄사실이 소명되고 중형의 선고가 예상된다면 구속영장을 발부한다. 그리고 그 사유로 증거인멸이나 도주의 우려가 있다고 쓴다(정확히는 해당란에 체크를 한다).

오랫동안 영장실질심사를 경험했던 필자는 이재용 부회장의 영장기각에 대하여 쉽게 수긍하기 어렵다. 우선 이재용 부회장은 사실관계를 부인한다. 대부분의 진행은 회사 임직원들이 담당한 것이고 자신은 구체적인 내용을 모른다는 것이다. 사실관계를 그대로 인정하면서 법률적인 판단만 다르다는 것과는 구별된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경우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면서 영장을 발부한다.

대가성의 경우에도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은 연결고리를 생각하면 쉽게 벗어나기 어렵다. 대가성에 의문이 있다고 하더라도 특가법상의 업무상배임이나 횡령을 인정하기에는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 따라서 범죄사실에 대한 소명도 충분한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해당 범죄사실이 유죄로 인정될 경우에는 상당히 높은 법정형이 예상된다. 구속영장을 발부하는데 모든 조건을 충족하고 있는 셈이다.

언론은 조의연 부장판사를 의연하게 원칙을 지키는 법관이라 칭송하고, 또 다른 일부에서는 조 부장판사가 그동안 롯데그룹 비리 의혹에서 신동빈 회장, 폴크스바겐 배출가스 조작 사건에서 박동훈 전 사장,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에서 존 리 전 옥시 대표 등의 구속영장을 기각한 것과 관련하여 재벌기업에 너무 관대하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한다.

이재용 부회장은 대한민국 국민의 한사람이다. 일반적으로 국민들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하는 기준이 그대로 적용되어야 한다. 재벌기업에만 엄격한 기준을 들이대면서 구속영장 발부를 어렵게 하거나, 일반 국민들에 비하여 방어권 보장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는 이미 파괴된 것이다. 재벌 앞에서만 유난히 움츠러드는 듯한 대한민국의 권력기관이 우려되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정범 기자는 법무법인 민우 소속 변호사이자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입니다.



태그:#이재용영장기각, #이재용영장실질심사, #이재용삼성그룹, #조의연부장판사, #특검영장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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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변호사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겸임교수(기업법, 세법 등)로 활동하고 있는 김정범입니다. 공정한 사회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함께 더불어사는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배치되는 비민주적 태도, 패거리, 꼼수를 무척 싫어합니다. 나의 편이라도 잘못된 것은 과감히 비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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