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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점에서 뛰는 아이들, 이로 인한 피해는 누구 책임?

어린아이들, 활동성이 과한 아이들이 음식점에서 뛰어놀다가 뜨거운 음식을 서빙하는 직원과 부딪쳐 화상을 입었다면 이때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어린아이들, 활동성이 과한 아이들이 음식점에서 뛰어놀다가 뜨거운 음식을 서빙하는 직원과 부딪쳐 화상을 입었다면 이때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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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점에서 뛰는 아이들을 제지하는 종업원에게 돈 내고 서비스 이용하는데 왜 내 아이를 혼내서 주눅 들게 하냐며 큰소리치는 부모를 본 적이 있다. 손님이 돈을 내겠다고 하니 주인도 종업원도 더 이상 반박하지 못하고 물러섰다.

부모의 지원으로 아이는 자유를 얻었다. 그러나 어른들의 부딪침을 본 아이는 눈치를 보며 적당히 놀았다. 부모들은 기분 나빠하며 음식값을 치르고 나갔다. 아이가 눈치가 있어 다행인 순간이다. 한 번은 주인이 물러서지 않자 싸움이 났다. 다른 손님이 주인 편을 들어 손님끼리 싸우는 바람에 판이 커졌고 가운데 낀 주인이 어쩔 줄 모르는 경우도 있다.

어린아이들, 활동성이 과한 아이들이 음식점에서 뛰어놀다가 뜨거운 음식을 서빙하는 직원과 부딪쳐 화상을 입었다면 이때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뛰어다닌 아이들 책임으로 선을 긋는 경우는 드물다. 고객 우선이라는 모토를 가진 대부분 회사들이 자체 배상, 종업원 개인 배상 등으로 문제를 해결할 것이다. 망아지처럼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제대로 제지하지 못한 부모의 책임은 많이 간과된다. 언론에서도 이런 상황은 호들갑을 떨며 업주의 주의 부족에 따른 과실을 질책한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아이가 다친 것은 무척 불행하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평소에 부모가 음식점에서는 뛰면 안 된다는 주의 교육을 했더라면 아예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음식점주 혹은 종업원이 직접 주의를 주는 경우 대개 수긍하지만 내가 본 사례처럼 적반하장으로 내 아이의 기를 죽인다며 항의하는 부모도 더러 있다.

그 자리에서는 말을 못하고 SNS에 본인의 관리 부실과 자녀의 잘못을 감춘 채 음식점을 비난하는 글을 올려 음식점주와 종업원이 피해를 본 사례도 등장한다. 이런 경우 그 고객은 블랙리스트 혹은 진상 고객쯤으로 지칭할 수 있으리라.

최근 음식점이나 카페에서 어린아이의 출입을 금지하는 '노키즈존(No kids zone)'이 늘어나 논란이 되고 있다. 일정 연령(5세, 7세, 미취학 등)을 정해놓고 해당 연령 이하의 어린이는 출입을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왜 이런 게 생겨났을까?

바로 앞서 언급한 적반하장의 부모 탓이다. 아이의 잘못 혹은 아이를 교육하지 않은 자신의 잘못은 간과한 채 남의 탓만 하는 거다.

노키즈존을 도입하거나 찬성하는 업주들은 아이들이 소란을 피워 다른 손님들에게 피해를 줄 뿐만 아니라 안전사고가 발생할 위험도 있기 때문에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한편으로는 진짜 나쁜 고객도 있다. 아이들이 테이블 사이를 뛰거나 옆 테이블의 고객을 방해해도 아이를 저지하지 않는 부모는 물론 테이블 위에서 기저귀를 가는 부모, 기저귀를 자리에 그대로 버리고 가는 부모, 아이가 수저와 컵, 휴지 등을 다 헤집어도 제지하지 않는 부모 등 실제 진상 고객 유형은 다양하다.

노키즈존이 생긴 것 자체가 씁쓸하다

단어 속에 차별이 있는 노키즈존이 결코 옳다는 건 아니다. 아이를 가진 것 자체를 문제로 치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 동반 입장이 안된다면 아이를 가진 집은 외식조차 할 수 없다는 말인가?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어느 쪽 주장이 타당한가를 따지기 전에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 자체가 씁쓸하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노키즈존'이라는 말이 등장하기 전부터 이런 문제는 줄곧 있어왔다. 영화관이나 공연장에서는 관람객에게 핸드폰 소리도 제한해 달라고 프로그램 시작 전에 반복적으로 안내를 한다.

미취학 아동의 입장을 제한하는 것은 공연 중간에 소란을 떠는 아이들 때문에 관객의 관람 몰입을 막는다는 이유이며 이는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다만 그렇다 보니 아이들이 태어난 후 극장 영화 관람은 어린이용 만화 관람이 전부요 어른 영화를 영화관에서 부부가 함께 본 적은 물론 공연다운 공연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지속적인 안내에도 불구하고 프로그램 중간에 벨 소리가 울리는 상황은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이것과 유사하면서도 다른 카페와 음식점의 노키즈존 안내는 최근 등장한 문제다. 일부 여성 단체에서는 공식적인 항의를 전달하기도 했다.

사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외식을 하기가 어려웠다. 아이들은 밖에서 비교적 얌전한 편이지만 그래도 호기심이 왕성할 시기라 가만히 앉아있기보다는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싶어하고 이것저것 만지고 싶어 한다. 수저나 컵을 못 헤집게 손이 안 닿는 곳으로 다 치우고, 돌아다니지 못하게 유아용 식탁의자에 묶어 두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답답해한다.

집에서처럼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해서 스트레스를 받거나 졸릴 때면 울기도 한다. 그래서 부부가 번갈아가며 아이를 봐주고 식사를 해야 하는데 우리 집의 경우 쌍둥이인지라 어른 하나당 아이를 하나씩 돌봐야 한다.

그래서 나는 외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아이를 낳기 전의 나는 그렇지 않았다.) 외부 환경을 어색해하는 아이들 모습도 어려웠고 쌍둥이 남매를 두고 부부가 쩔쩔매다가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게 허겁지겁 먹은 뒤 비싼 가격을 치러야 하는 것도 싫었다.

그런 불편한 마음이 아이에게 전해져서 아이한테 괜히 스트레스 주는 것 같아서 미안하기도 했다. 식사를 포기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적도 있다 보니 아이들이 어릴 때는 외식도 자주 못했고 그래서 외출도 거의 안 하고 못했다.

아이를 이유로 모든 부모들이 나처럼 외식을 자제하라는 얘기는 아니다. 아이들이 초등학생이 되어 가끔 외식을 하러 음식점에 가면 나에게도 드디어 외식을 자유롭게 할 날이 왔다며 흐뭇한 마음이 든다. 그간 아이들을 동반한 외식은 힘들어서 못한 거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엄마들이 내 자식은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것이다. 우는 것뿐만 아니라 똥 싸는 것까지 예쁘기 때문에 그게 남에게는 피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가 어렵다. 때로는 '애들이 다 그렇지'라는 논리로 이해를 바라기도 한다.

하지만 내 자식과 남의 자식이 다르게 보이듯, 남들 눈에도 내 자식은 그냥 남일 뿐이다. 무조건 이해해주기는 어려운, 나에게 피해를 주면 싫은 존재인 거다.

때문에 예쁜 내 자식이 괜히 욕먹지 않게 하려면 부모가 잘 해야 한다. 공중도덕과 예의범절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아이에게도 중요한 가르침이다.

프랑스 육아를 다룬 어떤 책에 음식점에서 예절을 지키지 않는 자녀의 뺨을 때리는 부모를 보고 놀랐다는 부분이 있었다. 뺨까지 때릴 필요는 없겠지만 공공 규칙의 준수와 타인에 대한 배려는 삶에서 무척 중요한 가치다. 일부의 몰지각한 엄마들 때문에 노키즈존이 생겼고, 그로 인해 다른 개념 있는 엄마들까지 불편을 겪게 된다.

하지만 이를 바꿀 수 있는 것도 부모다. 좀 더 남을 배려하는 엄마들이 많아진다면 노키즈존도 자연스레 사라지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네이버 개인블로그 (http://blog.naver.com/nyyii)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70점엄마, #노키즈존, #쌍둥이육아, #워킹맘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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