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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정은임 아나운서
 고 정은임 아나운서
ⓒ MBC 웹진 언어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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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4일은 2004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정은임 아나운서의 기일이다. 그를 자꾸 떠올리게 되는 건, MBC의 지난한 투쟁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170일 파업 이후 12명의 아나운서가 부당전보를 당하며 버티고 있고, 12명의 아나운서가 퇴사를 당했다. 그밖에도 파업이나 소위 '찍힌' 아나운서가 어디 한둘일까. 그런데 입사하면서부터 찍힌 아나운서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정은임이었다.

"MBC 입사와 관련해 정은임씨에게는 한 가지 일화가 있다. 그가 입사했던 1992년은 MBC가 방송민주화를 내걸고 한창 파업 중이던 시기였다. 수습사원들에게 예의 노조불가입 각서가 강요됐고, 그는 입사동기 중 유일하게 방송사 간부의 요구를 거절하고 파업에 참여한 '강성'노동자였다." - 월간 <말> 2004년 1월호, "올드 걸 올드보이를 만나다" 중

1992년이라면 손석희 아나운서가 파업으로 인해 구속돼, 포승줄에 묶여서 환하게 웃던 사진을 남긴 그때다. 이 엄청난 파업에 새파란 신입이 참가했으니, 찍히는 건 당연할 터. 그는 방송국에서 아나운서가 맡는 주요한 일들을 하지 못했다. 심지어 그 유명한, 그를 전설로 만든 '정은임의 FM영화음악'(아래 정영음)마저 마음껏 할 수 없었다.

앞서 인용한 <말> 인터뷰를 보면 손석희 아나운서가 아나운서부장을 맡았던 2001년에도 그에게 1992~1995년도에 이어 영화음악 프로그램을 맡기려고 했다. 그러나 "끈을 잡았다"는 말이 도는 등 잡음이 일어나, 결국 2003년에 이르러서야 6개월 정도 '정영음'을 잠시 부활시킨다.

"내가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대목은 왜 그토록 '정영음'은 방송국에서 미움은 받았을까, 라는 의아함이다.(...) 1995년에도 그러했고, 2004년에도 똑같은 과정을 밟으면서 그녀의 방송은 그녀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중단되었다. 정은임씨가 라디오에서 맞이한 기쁨의 순간은 너무 짧았다(...)

정은임씨는 그녀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을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갖고 있었으면서도 단 한 가지 안타까움, 방송국에서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그냥 기다림으로 보내야만 했다. 가끔 텔레비전에서 비디오를 소개하거나, 혹은 내일의 날씨를 알리거나, 책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에 나오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프로그램들은 (내가 보기에) 그녀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 <씨네21> 467호, "당신 없이 누구랑 영화 이야길 하지?" (정성일 추도글) 중

정은임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

조용한 곳에 그를 두려던 방송국의 바람과는 달리, 새벽 1시의 1시간짜리 방송인 <FM 영화음악>에서 그는 전설이 된다. 젊은 씨네필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으며, 방송이 없어졌을 때는 '정은임 복귀 추진위원회'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적어도 내가 알기로 방송이 없어졌을 때 청취자들이 거칠게 '청취자 운동'을 했던 경우는 딱 두 명 있었다. 정은임 그리고 택시-버스-운송 기사분들의 톱스타, 'DJ 처리와 함께 아자아자'의 신철(철이와 미애의 그 철이 맞다). 방식은 다르지만 둘은 라디오에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쏟아 부었던' 사람들이다.

1990년대에 영화 <파업전야>를 다루고, 인터내셔널가와 임을 위한 행진곡을 아무렇지 않게 틀었으며, 한진중공업 김주익씨의 이야기를 오프닝으로 한 것은 지금도 회자되곤 한다. 그러나 내가 듣기에 정영음이 진정 위대했던 점은 '전위'에 서 있었다는 거다. 아마 1990년대여서 가능했을 수도 있겠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영화 음악' 프로그램이라는 건 당시 개봉하거나 혹은 명작이었던 영화를 소개하고 그에 맞는 노래를 트는 정도였다. 그러나 정영음은 개봉하지도 않은, 아니 한국에서 영영 개봉하지 못할 것 같은 영화에 대해 이야기했고, 치열하게 비평했다.

물론 '신해철의 고스트스테이션'처럼 아예 '포맷' 자체를 파괴한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새벽 라디오' 포맷으로, 이런저런 일상 사연을 소개하기도 했다. 그러나 청취자들이 편지로 써서 보내는 영화에 관한 내용이나 묘하게 날이 서있는 정은임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들을 때면, 이 방송의 지향점이 다른 방송과는 다르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다. 보통의 라디오 프로그램이 대중을 좇아갔다면, 정영음은 '감히' 대중을 '우리의 방식대로' 끌어당기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이런 프로그램은 빠지면 돌이킬 수 없다. 정형화된 공간에서 대안을 찾고, 공동체를 건설하려는 그 에너지에 탄복하고 만다. 내겐 고스트스테이션과 정영음의 정신을 이어받은 '이주연의 영화음악'이 그랬다.

'라디오는 디제이가 80%'라고, 나는 감히 그렇게 생각한다. 제아무리 좋은 PD와 작가가 있더라도, 결국 디제이다. 디제이에 맞춰가는 것이다. 디제이가 소화 못할 프로그램을 만들 순 없는 노릇 아닌가. 앞서 인용한 정성일의 절절한 애정을 담은 추도문 중에서 유일하게 불만인 지점은 그가 홍동식 PD와 구성작가의 '카케무샤'가 되지 않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했다는 부분이다.

라디오는 영화가 아니다. 디제이는 배우가 아니다. 누군가의 페르소나가 되어 연기할 수 없다. 아마 정은임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면, 'FM 영화음악'이라는 프로그램은 완전히 다른 프로그램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의 진보적인 정치 성향이나 반골 기질 그리고 그가 영화 이야기를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가치' 등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게 이 프로그램을 이해하는 가장 올바른 방식이 될 듯하다.

87학번 운동권이었고, 입사하자마자 '반골'로 찍힌 그가 영화를 통해 전달하고 싶었던 것은 결국 '관점'이다. 주류적이고 관성적인 관점에서 벗어난, 문제를 해석하고 고민해볼 수 있는, 좋은 영화들이 담고 있는 그 '관점'말이다. 아주 오랜 시간, 가정, 학교, 주류 미디어들이 만들어낸, 오래 길들여져 당연하게 여겨지는 편안한 것들을, 좋은 영화들은 산산이 부순다. 그렇게 균열을 내고 개개인의 마음 속에 변화 혹은 도전의 씨앗을 심는다. 아마 그가 인생의 영화로 뽑았던 마이클 무어의 <로저와 나> 역시 그랬을 것이다.

"(한진중공업 김주익씨에 관한 오프닝 뒤) "오늘은 이 이야기 안 하면 목구멍에 가시가 돋힐 것 같다는 날은 꼭 직접 써요. 영화도 시선이 다르면 달리 보이듯이 어차피 방송을 진행하는 제 시선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굉장히 비난 많이 받았어요. 나더러 노동자에 대해 뭘 아느냐. 육체노동자로서의 노동자계급에 대해 뭘 아느냐고 이야기하더군요. 거기에 방송이나 언론의 허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너는 중산층이고, 한 달에 얼마 버니까 얼마 버는 사람들의 이야기만 하라는 거죠. 그들을 동정하거나, 연민하는 게 아니라 주위에 손배가압류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들 보면 괴롭고, 고민되고 그런 걸 이야기하고 다른 세상을 꿈 꿀 수 있는 거잖아요.(...) 왜 '8학군 기자들' 이야기가 나오겠어요. 방송국에도 정말 8학군 출신 기자들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점점 뉴스에서도 시선이 한쪽으로만 흐르게 돼요." - 월간 <말> 2004년 1월호, "올드 걸 올드보이를 만나다" 중

정은임이 남긴 '가치',  젊은 언론인들이 지켜갔으면

지난 3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사옥앞에서 ’PD수첩’ ‘시사매거진2580’ ‘경제매거진 M’ ‘생방송 오늘 아침’ ‘생방송 오늘 저녁’을 제작하는 시사제작국 소속 PD와 기자 32명이 제작 중단을 선언하며 김장겸 사장, 김도인 편성제작본부장, 조창호 시사제작국장 사퇴와 PD수첩 이영백 PD 대기발령 철회 등을 요구했다.
▲ MBC PD-기자 제작거부 선언 지난 3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사옥앞에서 ’PD수첩’ ‘시사매거진2580’ ‘경제매거진 M’ ‘생방송 오늘 아침’ ‘생방송 오늘 저녁’을 제작하는 시사제작국 소속 PD와 기자 32명이 제작 중단을 선언하며 김장겸 사장, 김도인 편성제작본부장, 조창호 시사제작국장 사퇴와 PD수첩 이영백 PD 대기발령 철회 등을 요구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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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정은임이 지금의 MBC를 보면 "파쇼 방송"이라고 말하지 않을까? 애초에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지 못하게 만드니, 관점이 생길 리가 없다. 어떠한 변화도, 실험도 전면적으로 차단된다. '구조'에 접근하기는커녕, 노동자들이 흘리는 눈물 하나 찍지 못한다. 그렇게 그의 동료들과 선후배들은 거대한 벽 앞에 서 있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 MBC는 10년 사이에 영화같은 현실을 왔다갔다한다. 실제로 영화가 만들어졌다. 하나는 황우석 사건을 다룬 '제보자'고 다른 하나는 최승호 PD가 MBC를 망친이들을 다룬 '공범자들'이다. 진실을 위해 국가는 물론 대중들과도 맞서 싸운 이들이, 정권의 부역자들에 의해 끊임없이 좌절을 겪었다. 진보냐 보수냐 문제를 넘어, 지금 MBC에는 정은임이 우리에게 전달해주고 싶었던 가치들은 깡그리 사라진 것이나 다름 없다.

진보의 가능성을, 약자·소수자로 향하는 시선을 '영화 전문 프로그램'을 통해 보여주려고 했던 정은임은 젊은 언론인들에게는 하나의 '계보'다. 그래서 정은임은 정권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미디어가 탄압받거나, 갈피를 못 잡고 있을때, 호명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존재이기도 하다.

2004년 당시 노조여성부장으로서 그는 회사 내 탁아소 설립을 추진하고 있었다. 그러나 MBC 내의 탁아시설은 2014년 상암동으로 방송국을 이전해서야 만들어졌다. 변화는 조금 슬프지만, 아주 오래 걸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역사의 진보에 대한 믿음을 가지는, '버티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결국 변화는 일어난다.

MBC를 비롯한, 지금도 이 사회에 '다른 관점'을 부여하려는 수많은 젊은 언론인들이 어디선가 '영화처럼' 희망의 씨앗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 정은임을 기린다.

"부안 내부에서는 이미 핵 폐기물 유치에 대한 찬반이 갈리고 있는데, 투표가 민주주의가 아니라 투표에까지 가도록 치열하게 부딪치는 과정 자체가 민주주의라고 오현석씨는 생각한다고 하셨어요. 동감입니다. 오현석씨는 예전에 영화와 관련 없는 정체 불명의 사연을 우리 영화음악 게시판에 올려도 될까요 라고 한 번 질문을 하신 바로 그분이시죠. 하지만, 우리가 영화를 통해서 우리 삶의 문제를 다시 직시하고 그 힘으로 우리의 삶을 다시 돌아본다는 의미에서 영화는 삶 전반에 대한 시각을 넓혀준다라고 말씀하시면서 글을 올려주셨던 게 기억이 나네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 정은임의 FM 영화음악 중


태그:#정은임, #정은임의FM영화음악, #정은임의영화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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