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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죽음이든 안타깝고 아까운 생명이다. 노인보다 젊은이의 죽음은 억울하고 더 애달프다. 아직 한참이나 더 남았을 미완의 생을 경험하지 못하고 반납하는 삶이란, 아껴먹던 맛있는 간식을 통째로 압수당한 기분이다. 최고의 재능으로 태어나게 해놓고, 그 화려한 매력을 써먹으려는 찰나에 다시 거둬들이는 얄궂음이라니. 신의 장난이라고 하기엔 심해도 너무 심하다.

<숨결이 바람 될 때> 책 표지
 <숨결이 바람 될 때> 책 표지
ⓒ 흐름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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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일은 누구든 겪고 싶지 않은 일이다. 최대한 뒤로 뒤로 미루고 싶다. 부모, 형제, 친구 어떤 이별도 쉽지 않다. 그 중에서도 배우자와의 사별은,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어떤 것과도 견줄 수 없는 큰 스트레스라고 한다. <숨결이 바람될 때> 주인공 폴 칼라니티는 이제 겨우 서른 여섯이다. 미래가 촉망되는 젊고 유능한 신경외과 의사였다.
"저는 40년의 인생 계획을 짰었어요. 첫 20년은 외과의사이자 과학자로, 마지막 20년은 작가로 살 생각이었죠. 그런데 갑자기 마지막 20년에 들어서게 됐으니, 어떤 계획을 세워야 할지 난감하네요.(...)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면 쉬울 텐데요. 2년이 남았다면 글을 쓸 겁니다. 10년이 남았다면 수술을 하고 과학을 탐구하겠어요."(p166)

그에게 얼마의 시간이 남았는지 알 수가 없다. 1년일지, 10년일지 확실하지 않다. 당장 내일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건 보통의 사람도 마찬가지지만, 불치병 진단을 받은 사람의 내일은 더 불안한 법이다.

"환자는 의사에게 떠밀려 지옥을 경험하지만, 정작 그렇게 조치한 의사는 그 지옥을 거의 알지 못한다."(p129)
"의사였을 땐 행위의 주체이자 원인이었으나, 환자인 나는 그저 어떤 일을 당하는 대상일 뿐이었다." (p172)
의사였던 저자는 폐암 선고를 받고 하루 아침에 환자가 되었다. 치료를 하던 중 종양이 줄어들며 병세가 조금 호전되자 레지던트 과정을 마무리하려는 의지를 보인다. 결과론적인 얘기긴 하지만, 그 욕심을 버려야 했다. 강도 높은 레지던트 과정을 다른이와 똑같이 견뎌내는 일이 쉽지 않았을 테다. 실제로도 호전되었던 증세가 급격히 악화되기 시작했다.

책 표지에 기록된 몇 마디 문구로 전체 내용을 짐작하고 시작한 책이다. 너무 슬플 것 같아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었다. 1부는 폴이 건강했던 시절의 자서전 같은 기록이다. 2부는 폐암 진단을 받고 의사이면서 환자로서 죽음과 마주한 이야기다. '그렇다면 2부는 집에서만 읽어야겠군' 하고 생각했다. 너무 눈물이 날까봐. 그러나 저자의 담담한 문체는 크게 눈물샘을 자극하진 않았다.

폴은 끝내 책을 완성하지 못하고 떠났다. 뒷 마무리는 아내인 루시가 완성했다. 아내의 글에서 크게 한번 울었다.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산소 마스크를 떼는 장면이었다. 8개월된 딸아이는 아무것도 모른 채 옆에서 놀고 있고 모든 가족이 폴을 바라보며 마지막을 준비하는 대목이었다.

최근에 읽은 남궁인의 <만약은 없다>가 자꾸 아른거렸다. 랜디포시의 <마지막 강의>도 겹쳐 떠올랐다. <마지막 강의>는 동영상으로도 봤는데 진정성이 느껴지는 명강의였다. 남궁인과 랜디포시의 책보다 많이 아프진 않았다.

남궁인의 책에는 극적이고 다양한 죽음이 많이 나온다. 유언을 못 남기는 죽음도 여럿 등장한다. 그것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글을 쓰면서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있었던 폴은 그들보다는 좀 나은 형편이라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다. 의미없는 비교지만 최근에 읽은 죽음에 대한 책 두 권이 서로 뒤섞인다.

새해가 시작된 지 이제 열흘이 지났다. 새해 벽두부터 죽음이 주제인 책을 읽는 것이 옳은 일일까? 망설였다. 그러다 새해라서 읽어야 하는 주제로 생각이 기울었다.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고 싶지 않은 주인공의 이야기는 뭔가를 계획하고 새롭게 시작하는 새해에 더 어울리는 주제가 아닐까.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는 의미있는 시간을 마주하는 것도 필요한 일이겠다. 누구나 유한한 삶을 산다. 한해를 잘 보내라는 덕담을 가장 많이 하는 시기다. 상대방의 행운을 빌고, 건강을 기원하고 복도 많이 받으라고 흔하게 인사한다.

집 밖에선 흔한 인사가 가족에게는 인색한 것 같다. 차분하게 나와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는 시간이 됐으면 한다. 소중한 건 늘 잃고 나서야 가치를 깨닫게 되니까 말이다.


숨결이 바람 될 때 -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

폴 칼라니티 지음, 이종인 옮김, 흐름출판(2016)


태그:#숨결이 바람될때, #폴 칼라니티, #외과의사,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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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탈을 꿈꾸지만, 매번 바른생활의 삶. 하고 싶은 걸 하며 살고 싶다. 하고 싶은게 뭔가는 아직도 찾고 있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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