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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회가 열렸다. 할머니도, 엄마도, 이모도 오지 못했다.

오늘의 일기. 날씨 쨍쨍. 우리 엄마를 소개할까 해요. 우리 엄마의 별명은 '예스맘'이에요. 왜냐하면요, 교수님들 부탁을 잘 들어주니까요. 우리 엄마는 부탁이라면 뭐든지 들어주는 사람 같아요. 저도 그래서 살짝 부탁을 드렸어요. 운동회 때 꼭 오시라고요.

아이는 엄마가 오면 신나는 운동회가 될 것이라며 어서 내일이 오면 좋겠단다. 결과는? 엄마는 오지 못했다. 엄마의 직업은 시간강사다. 교수 심사를 앞두고 대리 수업, 담당 교수 갑질 아래 골프장 따라가기, 그리고 엄마의 수업 준비 등으로 운동회에 갈 수 없다. 엄마는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럴 수도 있지 뭐, 하루 이틀 일들이 아니니까. 한두 번 운동회에 빠진 것이 무슨 큰일이라고 호들갑이란 말인가.

우리 사회 비정규직 문제가 그렇다. 잘 들리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는다. 개천에서 용난다는 그릇된 신화 속에서 조금만 고개를 돌리면 보일 것을 외면해 왔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전체 임금노동자 1988만 3000명 중 비정규직 노동자는 841만 2000명으로 전체 비율 42.3%인 것으로 드러났다.

박근혜 정부 출범한 2013년 832만 8000명에서 2016년 869만 6000명까지 그 수가 증대되다가 조금씩 감소하는 모양새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감소 추세가 일자리가 창출되어서가 아니라 저임금의 임시 파트타임 등의 시간제 노동자가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보는 분석도 있다.

이제 우리 사회는 비정규직의 제도화된 사회 문제뿐만 아니라, 좀 더 들어가 비정규직인 사람들의 삶의 문제도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 2012년 세상에 나온 <비정규 씨, 출근하세요?>는 그런 점에서 의미있는 동화다. '왜 사람은 쾌적한 환경에서 돈을 벌 수 없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하는 책이니까.

더작가, 『비정규 씨, 출근하세요?』
 더작가, 『비정규 씨, 출근하세요?』
ⓒ 사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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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쓴 사람은 한 사람이 아니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어린이 책 작가들(아래 '더작가')이 한 획씩 힘을 보탰다. '더작가'는 2008년 일제고사를 반대하던 교사들이 해직되는 모습을 마냥 지켜볼 수만은 없어 뜻있는 어린이책 작가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모임이다. 용산참사, 희망버스, 쌍용자동차 해직 노동자 지원 등 사회 여러 문제에 참여해 사회를 향해 목소리를 냈다.

책은,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만화와 여섯 편의 동화로 구성하였다. 책을 펼쳐보면, 아이들의 그림 일기로 시작하는 '운동회가 열렸다'가 먼저 보인다. 처음 이야기를 꺼낸 운동회에 오지 못하는 가족 이야기가 주를 이른다. 시간 강사인 엄마뿐만 아니라, 이야기 속에는 할머니, 이모도 모두 비정규직이다.

할머니는 우주 최강 힘 센 간병인이다. 건강상 멀쩡한 데 하나 없어도 좋단다. 일만 할 수 있다면 말이다. 주 6일, 144시간 근무. 십년을 하루 같이 일했다. 마땅히 한끼 점심식사 할 데를 찾는 것도 힘이 든다. 창가는 식사하면 안 되는 장소라 간호사가 지적했다.

휴게실은 환자 보호자용 공간이라고 했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화장실 옆이었다. 그렇게 밥을 먹었다. 알선 업체에 문의하기 위해 문을 두드렸다. 돌아오는 말은 하루 쉬는 데 대체할 사람 비용을 할머니에게 부담하라고 한다. 그래서 할머니는 손녀의 운동회에 갈 수 없었다.

이모는 방송작가다. 이모는 신기한 능력을 가졌다. 자면서 글쓰기, 인간 오뚝이, 물만 먹고 버티기, 외줄타기 등이 그렇다. 이모는 소위 외주업체에 고용된 글 쓰는 노동자다. 연예인을 쉽게 만날 수 없는 방송 종사자이다. 책에는 없는 내용이지만 최근에 상품권 페이 지급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아이와 함께 책을 읽으며 곁들어 주면 좋은 내용이지만, 아이가 왜 라고 물어보면 뭐라고 답해야 할까.

이 외에도,'빨간 딱지'에서도 한 아이가 나온다. 그 아이는 집안에 버릴 물건에 빨간 딱지를 붙이기 위해 기웃거린다. 왜냐하면 넓은 아파트에 살다가 좁은 방 두 칸짜리 집으로 이사를 와서 발 디딜 틈도 없이 답답했기 때문이다. 물건들이 말을 한다. 우리를 버려서는 안 되는 이유를 말이다. 그리고 아빠가 좁은 집으로 이사 온 사연을 들려준다.

"아빠가 오죽하면 우리를 못 버리겠냐? 아빠 회사는 원래 나라에서 운영하던 곳이었어.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회사가 부자 기업에 팔리더니, 하루 아침에 아빠 친구들이 쫓겨난 거야(중략) 항의하던 아빠마저 해고 됐어."(39쪽)

아빠가 집에 오면 피곤한 이유, 밥 먹을 기운도 없다고 한 이유를 이제 조금은 알 것 같은 아이의 이야기를 그저 흘려들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한다면 '이모를 위한 마술피리'와 '브라보 마이 패밀리'에는 어떤 내용이 숨어 있을까? 책을 읽기 전에 아이에게 상상을 해보라고 하면 좋을 듯하다. 하나는 공연계에 비정규직을 다루고 있고 다른 하나는 마트에 종사하는 직원의 이야기다. 그리고 은근슬쩍 뒷 부분에는 편의점 알바하는 아들의 이야기도 다루었다.

마지막, '행복한 강대희'에서는 자발적 취업 거부자인 강대희씨의 뻔뻔한 언변이 독자를 포복절도하게 할 것이다. 강대희와 김태희의 멘토 멘티 놀이 속에서 대학 등록금과 꿈에 관한 그들만의 대담이 펼쳐진다. 

'일회용'이라는 이름을 달고 세상에 나오는 것들도 많지요. 일회용 컵, 일회용 젓가락, 일회용 도시락... 사람이 가게 진열대 위에 있는 물건처럼 사용 기한, 유통 기한, 가격 따위를 새긴 채 사갈 사람을 기다리는 꼴이 되어 버린 겁니다. (4~5쪽)

평범한 사람들이 지금, 여기에 일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담은 모습을 알차게 말하는 책은 찾기 어려웠다. 무겁다, 우울하다로 대변되는 감정들 속에, 그럴싸한 직업을 아주 당연하게 아이들에게 말했다. 공부 열심히 하라고. 정규직이 되라고. 

아침에 파이팅을 하고 점심 때 사람을 괴롭히고 저녁에 그 사람이 울며 나가는 풍경이 있는 비정규직 사회였다. 슬픔을 무겁지 않게, 그리고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목소리가 필요했다. 그 대상이 아이들에게 다가가는 것이라면 더욱 좋았다.

책을 다 읽은 다음에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해주는 것은 어떨까? 기간제 선생님과 정규직 선생님들은 다를 것이 없다고, 그것은 어른들의 부적절한 시스템일 뿐 너희를 가르치는 능력에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니라고... 어쩌면 그것이 진짜 교육이지 않을까.


비정규 씨, 출근하세요?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어린이책 작가 모임(더작가) 지음, 사계절(2012)


태그:#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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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생. 전남대학교 일반대학원 문화재협동학 박사과정 목포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학석사. 명지대 문예창작학과졸업. 융합예술교육강사 로컬문화콘텐츠기획기업, 문화마실<이야기>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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