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고종황제는 일제의 국권침탈에 맞서 독립국임을 대내외에 알리기 위해 제네바협약에 가입했습니다. 대한적십자사의 역사는 1905년 칙령 제47호로 대한적십자사 규칙을 반포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얼마 가지 않아 일제에 의해 일본적십자사와 강제 합병되었으나 1919년 임시정부에 의해 대한적십자회가 설립되어 명맥을 이어왔습니다. 해방 이후에는 1949년 법률 제25호에 따라 대한적십자사 조직법이 공포되어 조직을 갖추고 현재까지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대한적십자사는 한국전쟁 포로송환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섰을 뿐 아니라 납북자 문제, 재난재해 구호, 민주화운동 부상자 및 희생자구호, 남북 이산가족 상봉, 혈액 사업, 재해 및 분쟁지역 활동가 양성, 해외 재난복구 지원 등에서 활약했습니다. 정부가 하기 곤란한 활동과 사회의 어두운 면을 보듬고 밝게 비추는 일에도 노력해 왔습니다.

그러나 많은 활동과 역할에도 대한적십자사는 지금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인도주의 실천을 위한 독립기구로서의 위상은 희미해지고 국민에게 '헌혈'이라는 단어로 대변되는 단체 정도가 되었습니다. 청소년과 20~30대 청년층의 참여는 현저히 줄었습니다.

무엇보다 적십자회비 납부가 눈에 띄게 감소했습니다. 특히 일반 공과금 납부 고지서와 비슷한 지로통지서 발송을 통한 적십자회비 모금은 많은 국민에게 반감을 샀습니다. 잊을만하면 터지는 대한적십자사의 재정 문제도 국민의 신뢰를 잃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삼중 회계감사 시스템 운영을 통한 재정의 투명성 강화와 다양한 적십자회비 모금 방법 고안 등을 약속했으나 여전히 국민에게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매년 반복되는 지로통지서 발송을 통한 적십자회비 모금 논란과 관련해 이렇다 할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지 않으면서 사실상 사회적 요구를 무시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현 대한적십자사 회장도 취임 당시 이 문제를 해결할 것처럼 이야기했으나 지금까지는 아무런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습니다.

대한적십자사는 왜 모금방법을 바꾸지 않을까?

해답은 먼저 대한적십자사 구성원들의 인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국민의 반감에도 대한적십자사는 이러한 모금방법이 국제사회의 모범사례 혹은 특이사례로 주목받는다는 점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부에서 예산을 전액 지원하거나 복권 등 수익사업을 통해 운영자금을 충당하는 다른 나라와 달리 한국은 각 가정과 사업장에 적십자회비 납부 지로 통지서를 보내 얻어진 자금으로 운영합니다. 더 의미 있고, 적십자사의 자율적이고 독립적 운영이 가능하므로 적십자이념을 실천하기 쉽다는 이유에서입니다. 

또한 모금방식을 일반모금 방식이나 다른 수익사업 방식으로 변경할 경우 현 수준의 자금 확보를 장담할 수 없고, 그에 드는 노동력이나 인건비 등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부정적 현실 인식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국회의 계속되는 지적에도 섣불리 나서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대한적십자사의 예산을 100% 정부 예산으로 지원하는 것은 많은 부담이 따르고, 대한적십자사의 역할과 그 특성에 비추어 볼 때도 매우 조심스럽기 때문입니다. 다른 수익사업을 통해 운영자금을 마련하도록 하는 것 또한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적십자회비 모금방식을 바꾸는 것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었습니다. 적십자사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모금 금액은 2013년 약 517억 원, 2016년 약 507억 원, 2017년 약 472억 원으로 계속 감소하고 있습니다. 인구감소와 경제 환경 변화 등은 대한적십자사의 운영상 어려움을 더욱 가중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그렇다면 해법은 없을까? 

당장 시급한 문제는 적십자회비에 대한 국민의 반감을 없애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현행 지로 통지서를 통한 모금 방식을 국민이 공감할 방법으로 바꿔야 합니다. 단기적으로 어렵다면 최소한 중장기전인 계획을 제시하는 등 태도를 보여야 할 것입니다. 

또한 적십자회비 모금 방식 변경은 필연적으로 모금 방법의 다변화를 수반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대한적십자사의 인력과 조직운영에 적합한 모금 방법 발굴, 지속 가능한 모금 계획을 수립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대한적십자사 운영의 효율성과 효용성에 대한 냉철한 검토를 바탕으로 많은 논란과 어려움을 헤쳐나가야 하는 매우 곤란한 과정이 될 것입니다. 이 과정은 반드시 거쳐야 하기에 내부 구성원들의 공감과 동참이 성공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대한적십자사의 변화를 원활히 진행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제도적으로 완료하고 정착시키기 위해 입법부인 국회의 참여와 도움도 절실합니다. 비록 적십자회비 모금과 관련된 문제이지만 근본적인 해결은 정부와 국회의 지원에 달렸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한적십자사는 자신들의 미래가 모금방법 개선에 달렸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국회와 긴밀하게 협의해 우리 사회가 수용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을 마련하길 바랍니다. 대한적십자사가 분단국가에 적십자사의 역할과 임무를 제대로 완수할 수 있는 안정적 환경을 구축하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