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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의 시골장날   할머니가 채소를 팔고 있다.
▲ 장날 채소파는 할머니 경주의 시골장날 할머니가 채소를 팔고 있다.
ⓒ 배남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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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의 시골집을 오가며 지낸 지가 벌써 10년이 되어간다. 시골집에 내려가 나무를 가꾸면서 한가하게 지내면 마음이 편안하다. 처음에는 텃밭도 만들어 상추, 고추, 부추, 호박, 방울토마토 등 야채를 심어서 길러 먹었다. 그러다가 사마천이 쓴 사기(史記)의 순리열전(循吏(列傳)에 나오는 고사를 다시 읽고는, 깨우치는 바가 있어 텃밭농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순리는 '엄격하고 청렴한 관리'라는 뜻으로 순리열전에는 다섯 명의 관리를 골라 일화를 실어놓았다. 이야기는 짤막하지만 의미있는 깨우침을 깊게 주고 있어 읽을 만하다. 그중에서 세 번째로 노나라 재상 공의휴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엄격한 관리생활로 사익을 추구하지 않는 대표적인 인물로 칭찬하고 있다.
 
사마천의 사기는 본기, 세가, 열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 사마천의 사기 사마천의 사기는 본기, 세가, 열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 배남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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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휴는 선물을 일절 받지 않고 사적인 생산 행위를 절대로 하지 못하게 했다. 좋아하는 생선을 보내오자 먹고 문제가 되면, 앞으로 좋아하는 생선을 먹을 수 없다며 돌려보냈다. 맛이 좋다고 집에서 채소를 기르지 못하게 밭을 갈아엎었다. 집에서 짠 베가 좋다고 하자 불태우고 직녀를 내보냈다. 그러면서 밭 가는 농부와 베 짜는 여인은 어디서 물건을 팔겠는가 하면서 탄식했다고 한다.

나는 공의휴의 고사를 읽으면서 깨우치는 바가 있어, 다음해부터는 텃밭에 채소기르는 일을 중단해버렸다. 비록 관리는 아니고 평범한 주민이지만 농민들이 기르는 채소를 사먹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나까지 텃밭농사를 하면서 농민이 생산하는 채소의 소비를 줄일 필요는 없겠다는 자각이 든 것이다. 물론 그 양이야 지극히 미미하고 의미도 없겠지만 그래도 그렇게 하고 싶었다.
 
5일장날 노점을 열고 채소를 팔고 있다.
▲ 장날 풍경 5일장날 노점을 열고 채소를 팔고 있다.
ⓒ 배남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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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농사를 그만둔 뒤로는 장날에 나가 채소를 사먹게 되었다. 5일장이 서는 읍내장터에 나가면 할머니들이 집에서 기른 온갖 채소들을 가지고 나와 팔았다. 장터에 노점을 펼쳐놓고 파는데 철따라 다양한 채소들이 계속 나왔다. 할머니들이 돈이 아쉬우니 무엇이든지 가지고 나와 팔았던 것이다. 덕분에 집에서 기를 때보다 훨씬 더 많은 채소를 사먹을 수 있었다.

돈도 별로 들지도 않았다. 1000원이면 상추 한 무더기를 사서 실컷 먹을 수 있었다. 부추, 고추, 깻잎, 쪽파, 마늘, 가지 등 여러 가지 채소들을 2천원이면 넉넉하게 사먹을 수 있었다. 또 할머니들이 팔아주면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 모습도 보기 좋았다. 천원, 이천원이면 서울에서는 돈도 아닌데, 정말 소중하게 받아 챙기는 모습이 아름답게까지 보였다.
 
장날에 산 방풍나물, 달래, 더덕, 냉이, 원추리, 쑥떡
▲ 장날 산 봄나물 장날에 산 방풍나물, 달래, 더덕, 냉이, 원추리, 쑥떡
ⓒ 배남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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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장날 나가서 사먹는 재미를 들였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것이 첫물부추였다. 부추가 겨울을 나고 이른 봄에 처음 자라난 것을 첫물부추라 하였다. 잎이 가늘고 길이도 짧지만 부드럽고 향기가 있어, 맛과 영양이 좋기로 소문이 났다. 그래서 첫물부추는 사위에게도 주지 않는다는 말까지 있다. 이렇게 아까운 부추도 할머니들이 가져와서 팔았다. 천원 어치를 사서 무쳐먹으면 맛이 아주 좋았다.

또 봄에는 할머니들이 산나물을 많이 가지고 나와서 맛있게 사먹을 수 있었다. 냉이, 달래, 원추리, 방풍나물 등 봄나물을 2000원이면 한보따리를 주어서 여러번 삶아먹을 수 있었다. 봄나물의 맛을 알고 취미를 들이고서는, 장날마다 나가 새로운 나물이 나왔는지 살피면서 사게 되었다. 그리고 할머니들과 농담을 주고받으면서 장보는 재미까지 생겨났던 것이다.
 
2018년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을 기념하여 심은 고추
▲ 고추 모종 2018년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을 기념하여 심은 고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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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작년에 남북정상회담을 하는 것을 보면서, 감격의 기념으로 고추 여섯 포기를 사다 심었다. 남쪽의 문재인 대통령과 북쪽의 김정은 위원장을 비롯하여 여섯 명이 대표로 회담하여 그 숫자를 따른 것이다. 텃밭을 따로 만들지 않고 마당의 나무 옆에 간단히 심었다. 재미삼아 고추가 잘 자라듯 남북정상회담도 잘 발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본 것이다.

그러나 서울에 가서 집을 비우면 물을 주지 못해 고추는 잘 자라지 못했다. 결국 남북정상회담의 운명처럼 고추도 자라지 못해 거의 못 따먹었다. 올해 다시 고추 10포기를 사다 심었다. 사먹는 고추가 바로 따먹는 고추의 맛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어 심은 것이다. 고추는 많이 열리지는 않았지만 점심 반찬 정도는 되었다. 밥먹기 전에 얼른 따서 씻어 쌈장에 찍어먹으면 싱싱하게 맛이 좋았다.
 
시골장날 할머니들이 야채를 팔고 있다.
▲ 장날 풍경 시골장날 할머니들이 야채를 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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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서 텃밭농사는 하지 않지만 고추는 다시 심게 된 것이다. 공의휴의 원칙에는 살짝 빗겨났지만 고추 몇 포기 정도는 괜찮을 것 같다. 내년에도 고추만 몇 포기 심을 생각이고 텃밭농사를 다시 하지는 않을 것이다.

장날에 나가 할머니들에게 채소를 사먹는 즐거움을 그대로 살리고 싶다. 겨울이 시작되니 봄날의 장터가 기다려진다. 빨리 봄이 와서 장날에 나가 할머니들이 봄나물을 팔면서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태그:#텃밭농사, #경주 시골집, #시골장날, #사마천 사기열전, #공의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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