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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도시계획은 여성적 도시(feminine city)나 여성의 평등을 주장하는 자유주의적 페미니즘을 넘어 페미니스트 인식론에 입각한 도시계획론이자 정치적 실천이다. 이는 남성 중심적 사고와 관료주의, 신자유주의 질서가 만들어낸 주류 도시 정책·법률·관례를 의심하고 질문하는 데에서 시작한다.

관료주의 도시계획이 보여주기 위한 그림을 그렸다면, 페미니스트 도시계획은 주변부에 밀려난 자들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듣고 성찰한다(Harding, 1995; Sandercock, 2000; Young, 2002, 1988). 뿐만 아니라 도시 저항 운동 또한 남성 중심적이라는 점을 비판한다.  

서울이라는 도시에 대한 요구는 점점 복잡해지고 있지만, 도시계획은 여전히 '전면철거 재개발'이라는 방식 외에 특별한 해결책이 없다. 대안으로 제시된 도시재생 사업도 지역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이는 도시계획가가 도시 문제를 시민들에게 직접 듣고 경험하지 않고, 조감도의 시선으로 도시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도시의 폭력성을 해결하려면 시선과 태도부터 바꾸는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세운도시재생과 세운재정비촉진지구 재개발

기존 재개발은 크게 두 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데,  첫째는 불평등의 심화, 둘째는 도시 다양성의 파괴이다. 재개발 사업은 낡은 주택을 철거하고 새 주택을 보급했다. 그러나 주택수가 늘어날 때 집주인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국가지표체계에 따르면 2005년의 서울의 주택수는 310만2000채로 주택보급률 93.7%이며, 자가 주택 비율은 44.6%였다. 반면 2016년에는 363만3000채로 주택보급률이 96.3%이고 자가 주택 비율은 오히려 42.1%로 2.5% 줄었다(국가지표체계, 2019).

또한 재개발 지역에서 원주민이 되돌아오는 비율은 10% 남짓이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재개발을 한다는 구실이 무색한 수준이다. 또한 전면 철거를 통한 재개발은 공간의 다양성과 지역의 역사를 파괴했다. 이 또한 공공의 이익에 반하는 일이다. 이러한 재개발의 부작용에 대한 반성으로 거주자 중심의, 지역의 자원을 활용한 도시재생 방식이 대안으로 제시된다.

서울시 역시 세운상가 일대를 도시재생 지역으로 선정하고 세운상가 존치 결정에 이어 도시재생 프로그램인 '다시 세운 프로젝트'를 발표한다. 그러나 시민들의 기대와 달리 세운도시재생은 '세운상가'만이 그 대상일 뿐, 나머지 구역은 기존의 재개발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 결과, 2018년 11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세운 3-1, 4, 5구역에서 약 300여개의 공업사가 순식간에 폭력적인 이주를 당했다. 이주 당시 약 10% 이상이 폐업을 했고, 나머지는 손해를 감수하고 주변 청계천 지역으로 쫓기듯 이주하거나 각지로 뿔뿔이 흩어졌다. 1년이 지난 현재, 서로가 거래처이기도 했던 떠난 상인들과 남겨진 상인들 모두 재개발의 압박과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계획 변경 결정 이후 주변 개발 현황 (출처: 서울시, 2017, <세운상가일대 도시재생 활성화계획 보고서> 31쪽)
 세운재정비촉진계획 변경 결정 이후 주변 개발 현황 (출처: 서울시, 2017, <세운상가일대 도시재생 활성화계획 보고서> 31쪽)
ⓒ 서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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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성이 훼손되는 원인을 찾아 해결해야 할 의무 

페미니스트 인식론에서 바라봤을 때 청계천-을지로 재개발의 단점을 '소수자에 대한 배려 없음, 조감도의 시선, 빈약한 거버넌스, 성찰성 없음'으로 요약할 수 있다. 페미니스트 인식론에 기반한 도시계획은 불편부당(impartiality)한 시선으로 기계적인 중립적 안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 주변으로 쫓겨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는 데서 시작한다.

청계천의 가치를 만들어온 당사자들은 재개발 과정에서 배제되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겨를도 없이 밀려났다. 서울시나 중구청이 시행사만이 아니라 철거된 세운 3-1, 4, 5구역 상인들의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들어주고 이를 반영한 대안을 조금이라도 고민했다면, 70년 넘은 상권이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지지는 않았을 테다. 

3구역 재개발에 관해 서울시와 중구청은 절차대로 진행했다고 한다. 이렇게 기업의 이윤추구에 대한 절차는 최대한 협조하고, 사회적 평등을 위한 개입은 최소화하는 도시계획을 "뉴 라이트 도시계획(New Right Urban Planning)"이라고 한다(Allmendinger, 2017; 전상인, 2007)..

그러나 재개발은 '공공사업'이므로 공공성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을 때는 그 원인을 적극적으로 찾고 해결할 의무가 있다. 서울시는 시민들에게 세운 구역 전체를 도시재생을 한다고 했으나, 세운상가에 한해서 도시재생을 하고 나머지는 기존의  '전면철거' 방식을 선택했다.

하지만 세운상가 입주 상인들, 주변 상인들, 세운상가 입주 예술가와 메이커들 모두 그 사실을 정확히 알지 못했다. 세운상가 바로 옆 세운 3구역에서 30년 동안 공구 사업을 하다 강제 이주당한 한 상인은 서울시에 배신감이 든다고 이야기했다.
"세운상가가 복원되었을 때 저희는 옆에서 좋았어요. 아, 우리도 이제 새롭게 세운 하고 같이 연결되어서 우리도 같이 산업이 형성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여기도  같이 연결되어 있었으니까. 세운상가가 살아 있다면 당연히 여기도 살아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근데 그걸 살려 놓고 1년 지났더니 바로 (재개발이) 들어와 버리니까 황당하죠. 세운상가를 끼고 양 옆의 상가들이 같이 다 형성이 되어서, 네트워크로 형성되어 있는 시장이거든요. 근데 저분들은 어떻게 저것만 살려놓고 이걸 다 죽인다고 그러니까 이건 뭐, 모가지만 해놓고 나머지는 다 잘라버린다는 거 아니야. 그럼 이게, 정책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아야 하는데, 본인들은 그걸 모르는 거예요" (세운3-1 구역 상인, 2019년 1월 인터뷰)
세운도시재생 사업은 네트워크로 형성되어 있는 시장을 파괴하고 상인들을 내쫓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공공사업의 공공성이 이렇게 훼손되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원인이고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조감도의 시선에서 도시 사용자의 시선으로

페미니스트 도시 계획은 시선의 위치를 중요시한다. 조감도의 시선으로 도시를 바라보던 모더니즘 시대와 다르게, 지금의 도시는 도시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시선으로 미시적으로 바라보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Jacobs, 1961). 그렇지 않으면 도시가 가진 다양성과 복잡성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보수적 언론들과 일부 전문가들은 청계천 장인들의 기술이 구식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억측'은 남루한 건물 외관에서 비롯된 것일 뿐, 실제로 청계천에서 시간을 보내며 지역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면 그처럼 단순한 판단을 내릴 수 없었을 것이다. 서울시의 한 도시관료는 "세운상가에서 바라 본 청계천 지붕이 너무 지저분하다"고 말했다. 만약 그 공무원이 단 한 번이라도 공장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고 무엇을 생산하는지 관심을 가졌다면 청계천을 단순히 낡은 공간으로 치부할 수 있을까?

청계천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이곳은 커다란 연구소이자, 예술 작업실이다.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가 2019년에 실시한 산업생태계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청계천과 을지로 지역의 산업 관계망을 분석한 결과, 고객의 20% 이상의 대학연구소, 기업연구소, 국공립연구소, 의료기기 개발 업체 등으로 밝혀졌다. 또한 중요한 산업 연결망 주체로 카이스트(KAIST)와 한국과학기술원(KIST)이 나왔다. 이는 아주 단순한 사물에서 정밀한 기계 부품까지 깎는 청계천의 기술력이 하이 테크놀로지 산업이나 기술혁신 분야와도 연결된다는 뜻이다.

또한 많은 예술가와 메이커들은 작품이나 시제품을 만들 때 청계천을 찾는다. 청계천 3가에서 8가까지 분포된 4만여 개 공장과 유통상가들은 수십 년간 적극적으로 협업하여 산업생태계를 만들어 왔다. 도시 사용자의 시선으로 보면, 이러한 제조 생산구조를 아파트와 맞바꾸는 도시계획은 수긍하기 어렵다.
 
 지금은 철거된 세운3-1, 4, 5구역의 공업사 골목 경관
 지금은 철거된 세운3-1, 4, 5구역의 공업사 골목 경관
ⓒ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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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버넌스 모델의 한계 
  
페미니스트 인식론에 기반한 도시계획은 '거버넌스'에 대해 질문한다. 왜냐하면 참여는 늘 조작될 수 있고, 참여하는 주체 간의 힘이 평등하지 않기 때문이다. 헉슬리(Margo Huxley), 미라프탑(Faranak Miraftab), 세이저(Tore Sager) 같은 도시계획가들과 페미니스트 학자 프레이저(Nancy Fraser)가 하버마스(Jürgen Habermas)의 '공론장' 이론에 영향을 받은 '거버넌스' 모델이나  '커뮤니케이션' 모델을 비판하는 이유이다.

이는 세운도시재생에서 나타는데, 서울시는 거버넌스 모델에 따라 세운상가에 한해 설명회와 공청회를 개최했다. 하지만 설명회와 공청회는 보통 2시에 열렸고 행사 바로 전 날 공지했기 때문에, 혼자 가게를 운영하는 상인들은 관심이 있더라도 참여가 불가능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역시 형식적이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그 시간에 참석이 가능한 상인들은 누가 있었을까? 어떤 목적으로 누구를 위해 열린 설명회이자 공청회였을까?

심지어 재개발 구역으로 묶인 세운 3구역이나 6구역에서는 형식적인 공청회 마저 열리지 않았다. 세입자들뿐만 아니라 대다수 지주들도 정확한 재개발 소식을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서울시 조례에 명시된 사전협의체도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고, 상인들과 장인들은 사업시행인가가 무엇인지 관리처분인가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갑자기 퇴거 통보를 받았다.

작년 초부터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와 상인들은 형식적 거버넌스가 아니라 서울시와 제대로 된 협의체 구성을 주장했지만, 여전히 제대로 된 협의체는 시작되지 않은 상태이다. 
 
 세운상가 인원만으로 구성된 주민협의체 (출처: 서울시, 2017, <세운상가일대 도시재생 활성화계획 보고서>, 90쪽)
 세운상가 인원만으로 구성된 주민협의체 (출처: 서울시, 2017, <세운상가일대 도시재생 활성화계획 보고서>, 90쪽)
ⓒ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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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적인 전환과 성찰 필요 

페미니스트 도시 계획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성찰성이다(Harding, 2016, 1995). 관료주의 도시 계획의 특징은 '우리는 절대 틀릴 수 없다'는 태도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수나 오류가 나면 아무 일 없었던 듯이 삭제된다(Holston, 2009).

올해 초 박원순 시장은 철거를 멈추겠다고 했지만, 실상 현장에서는 시행사가 상인들을 하나둘씩 쫓아내고, 사람들이 오가는 길을 막고 공사를 하고 있다.  2019년 말에 상인들을 위한 대책이 나온다고 했지만 아직 소식이 없다. 1년 전 3-1,4,5 구역의 상인들이 쫓겨났을 때 상황이 되풀이되고 있다.  

도시에서 갈등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관료주의는 자신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갈등은 '없는' 것으로 축소하고 은폐하기 때문에 갈등이 증폭된다. 이명박 전 시장은 청계천 복원 당시 상인들과 천 번의 대화를 했다고 했지만, 가든 파이브는 처참하게 실패했다. 그 이유는 '참여'를 사업의 정당성을 만들기 위한 형식적인 도구로만 이용했고, 실제 상인들의 목소리는 거의 반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청계천·을지로의 가치를 만들어온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그 동안의 실수를 성찰하지 않는다면 세운도시재생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은선  /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 연세대학교 도시공학과 박사수료,
을지로3가에서 리슨투더시티를 동료들과 운영하고 있다. 도시를 페미니스트 인식론에서 바라볼 때 전환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 참고 문헌

Allmendinger, P., 2017. Planning theory. Palgrave.
Harding, S., 2016. Whose science? Whose knowledge?: Thinking from women’s lives. Cornell University Press.
Harding, S., 1995. “Strong objectivity”: A response to the new objectivity question. Synthese 104, 331–349. https://doi.org/10.1007/BF01064504
Holston, J., 2009. Insurgent citizenship in an era of global urban peripheries. City & Society 21, 245–267.
Huxley, M., 2000. The Limits to Communicative Planning. Journal of Planning Education and Research 19, 369–377. https://doi.org/10.1177/0739456X0001900406
Jacobs, J., 1961. The Death and Life of Great American Cities. Random House‎, New York.
Miraftab, F., Wills, S., 2005. Insurgency and Spaces of Active Citizenship: The Story of Western Cape Anti-eviction Campaign in South Africa. Journal of Planning Education and Research 25, 200–217. https://doi.org/10.1177/0739456X05282182
Sager, T., 2017. Communicative Planning, in: The Routledge Handbook of Planning Theory. Routledge, pp. 105–116.
Sandercock, L., 2000. When Strangers Become Neighbours: Managing Cities of Difference. Planning Theory & Practice 1, 13–30. https://doi.org/10.1080/14649350050135176
Young, I.M., 2011. Justice and the Politics of Difference. Princeton University Press.
Young, I.M., 2002. Inclusion and democracy. Oxford University Press on Demand.
Young, I.M., 1988. Five faces of oppression. Geographic thought: A praxis perspective 55–71.
국가지표체계, 2019. 국가지표체계 [WWW Document]. URL http://www.index.go.kr/potal/main/EachDtlPageDetail.do?idx_cd=1239 (accessed 1.28.19).
박은선, 2019. 페미니스트 저항 도시 계획. 공간과 사회 14–62.
장미경, 2002. 생활정치와 페미니즘-생활자치운동 사례 분석을 중심으로. 동향과 전망 182–199.
전상인, 2007. 계획이론의 탈근대적 전환에 대한 비판적 성찰. 국토계획 42, 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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