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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친데 덮친 격이다. 코로나19 특별관리 지역으로 추가된 경산의 아파트 단지에 재활용 쓰레기수거 거부통지가 날라 왔다. 관리소장이 황급한 목소리로 이 사태를 통보하면서 경고 겸 당부한다.

그동안 우리 아파트는 수거업체에 월 33만 원을 지불하면서 재활용품을 배출해 왔는데, 그쪽에서 이제 재활용품을 쌓아 놓을 공간도 부족할 뿐더러 코로나19 사태 이후 재활용품을 비롯해 쓰레기 선별 작업을 하는 작업자들이 출근을 거부하고 있다는 게다.

사실 지금까지 우리 아파트단지에서 이런 식으로 위탁업체에 맡겨 매월 일정액을 지불하면서 재활용품을 배출해 온 것 자체가 잘못된 일이다. 주민들이 재활용품 분리배출을 그냥 해오던 대로 편하게 처리하기위해 편법으로 그리 해온 것을 나는 이번 사태가 터지고야 알게 되었다. 본래 정상적인 방법은 재활용품 분리배출을 제대로 해서 경산시청이 무상으로 수거해 가야 하는 것이다.

정년 후 우리 집 쓰레기를 모아 버리는 일은 내 몫이 되었다. 쓰레기 버리기 위해 내려간 김에 아파트 주변을 가볍게 산책하고 집으로 올라오는 게 내 일상에서 사소한 습관이 되었다. 집사람이 종량제와 음식물 쓰레기는 비교적 엄격히 분리해 온 편이다. 어쩌다가 계란 껍데기나 생선 뼈 같은 것을 음식물 쓰레기에 넣으면 그건 그쪽이 아니라고 나무란다.

쓰레기 버리기가 몸에 배이니 내 나름 재활용 분리배출도 자연히 익숙해져 갔다. 근데 내가 그간 분리배출 기준을 지켜가면서 보니까 날이 갈수록 아파트에 분리배출이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는 걸 내 눈으로 확인 할 수 있었다. 비닐봉지에 종이를 넣어 그냥 버리는 사람, 음식 찌꺼기가 남아 있는 플라스틱 용기, 비닐과 플라스틱이 구분되지 않은 쓰레기 등이 다반사로 그냥 버려져 있다.
 
재활용 쓰레기수거 거부사태 이후 아파트에 쌓여 있는 쓰레기 더미
▲ 아파트에 쌓인 재활용 쓰레기 더미 재활용 쓰레기수거 거부사태 이후 아파트에 쌓여 있는 쓰레기 더미
ⓒ 김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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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내 눈에 띄는 대로 더러 분리해 주기도 했지만, 문제는 이런 관행이 일상화 되다보니 용역업체로부터 이런 배출 거부 사태까지 당하게 된 거다. 그러고 보니 우리 아파트 동 뒤편에 재활용품 배출 포대기가 그냥 겹겹으로 산더미처럼 쌓여 있지 않는가. 이렇게 문제가 터지는구나!

당하고 보니 코로나19도 그렇고, 내가 사는 아파트 쓰레기 대란도 우리네 일상이 자초한 재앙이다. 따지고 보니 다르면서 같은 문제다. 어째서인가?

코로나19는 근원적으로 지구(자연)의 힘과 인간의 힘 간에 균열이 생기면서 파생된 바이러스 대란이다. 이런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데에 지구의 75억 인간이 마구 버린 쓰레기가 원인 제공을 한 것일 터. 김근택 시인은 <석유동물 시대의 종말>(경향신문, 2020.01.03)에서 "옛날에는 가져가는 자가 도둑이었지만 요즘은 버리는 자가 도둑"이랬다.

전국에는 235개의 쓰레기 산이 있어, 약 120만 톤의 쓰레기가 악취와 가스를 품고 있단다(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임). 한번 생긴 쓰레기는 결코 흔적 없이 사라지지 않는다. 시인은 모든 쓰레기는 "묻으면 토양이, 태우면 공기가, 버리면 바다가 더러워진다"고 했다. 쓰레기 문제를 이보다 더 압축해서 표현할 수 있을까. 그야말로 촌철살인이다. 그는 칼럼에서 이렇게 경고한다.
 
지난해 지구촌에서는 기후변화를 직시하자는 거대한 바람이 일었다. 우리 젊은이들도 거리에 나와 지구를 살려달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태극기와 촛불집회의 함성에 묻혀버렸다. 지구가 성하다면 저들의 구호는 또 다른 미세먼지로 기록될 것이다. 하늘 향해 주먹을 내질러도 정작 하늘은 보지 않는다. 해와 달이 그 빛을 잃으면 무엇이 남을 것인가. 우리가 믿었던 것들이 미세먼지를 뒤집어쓰고, 우리가 사랑한 것들이 쓰레기에 덮여 있다. 시간이 없다. 태양마저 마스크를 쓰면 석유동물의 시대가 저물 것이다.
 
섬칫하다. 태양마저 마스크를 쓰는 날은 온생명의 종말일 터. 시간이 없다는 데 우리는 여전히 태평하다. 불난 집에 불 끄는 일보다 더 화급한 일은 없다. 지금 우리는 불난 원인을 두고 왈가왈부하거나 불이 난 이후에 어찌 살 것인가(경제문제)를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다. 게다가 정치인들이 내뱉는 말의 바이러스가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는다.

문제는 우리 자신의 일상을 조금씩 바꾸어 가야한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보내온 재활용품 분리배출 방법의 요지는 이렇다. 플라스틱 가운데 페트병은 뚜껑을 벗겨 내용물을 깨끗이 비워 물로 행구고, 상표 라벨은 떼어내 납작하게 밟아서 배출하란다. 기타 플라스틱류는 재활용 마크가 있는 것만 골라 분리배출 하란다.

비닐은 과자봉지와 라면봉지만 재활용이 되고 나머지는 대부분 종량제봉투에 넣어 버려야 한다. 스티로폼은 흰색으로 된 것만 배출하란다. 이것은 지금까지의 분리배출 방법을 보완하는 정도라기보다는 완전히 새로운 각오로 재활용품 분리배출을 제대로 하라는 거다.

어찌할 건가? 과연 분리배출 방법이 제대로 지켜질 건가? 당장은 쉽지 않겠지만 세심한 주의를 기우려 당연히 바로잡아야 한다. 재활용품 쓰레기를 아파트에 그냥 쌓아놓고 살지 않으려면 달리 대안이 없다.

우연찮게도 고금숙의 <우린 일회용이 아니니까: 쓰레기 사회에서 살아남는 플라스틱 프리 실천법>(2020)이라는 따끈한 신간이 내 손안에 들어왔다. "우리가 가진 유일한 인생은 일상"(카프카)이라는 데, 저자는 '대문자' 운동 체질이 아니라 사소한 일상에서 의미를 찾는 '소문자' 삶을 사랑한단다. 그는 자신이 어쩌다 '쓰레기덕질'이 된 걸 이렇게 고백한다.
 
주변에서 어쩌다 플라스틱 반대 활동가가 되었냐고 묻는데 뭐,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냥 마구 쓰고 마구 버리는 행동에 단전으로부터 올라오는 깊은 빽침을 느꼈을 뿐. 플라스틱을 한번 쓰고 버리기엔 대가가 너무 크다. 그러니 일회용 플라스틱 따위는 줄이고 줄여 사라지게 하는 수밖에 없다. 이런 결심으로 동네 망원시장에서 비닐봉지 없이 알맹이만 사는 "껍데기는 가라. 알맹@망원시장"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금숙, 2020, pp.15-16)
 
이 세상의 '기본값'은 한번 쓰고 버리는 것으로 세팅되어 있지만, 저자의 일상은 일회용 플라스틱이 없이도, 지금은 안간힘을 쓰지 않고도 별일 없이 굴러가게 되었단다. 내 일상이 바뀌어야 고만큼 세상이 바뀐다.

한 밤의 도둑처럼 찾아와 세계로 퍼져가는 코로나19도 우리네 습관적(문화적) 일상이 만들어 낸 재앙이다. '인류세'(Anthropocene)에서 지구의 운명은 75억이 빚어내는 일상에 달려 있다.

우선 나부터, 우리 동네부터 가능하면 쓰레기 배출을 줄이고 재활용 분리배출이라도 제대로 지켜야 할 터. 이러다간 더 강한 바이러스에게 언제 다시 당할지도 모른다. 그간 우리는 너무 편한 대로만 살아왔다. 지금은 절제(쓰레기 줄이기)가 정의이자 곧 생존 문제가 된 시대다.

태그:#쓰레기 더미, #코로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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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둥이로 태어나 지금은 명예교수로 그냥 읽고 쓰기와 산책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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