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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에 처음 인도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이 여행기는 지난해 2019년 8월, 인도에 두 번째 방문했을 때의 내용으로 작성되었습니다.[기자말]
부탄 국경도시 푼촐링의 불교사원
 부탄 국경도시 푼촐링의 불교사원
ⓒ 이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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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들 사이에서 부탄은 정말이지 신비주의 국가였다. 그도 그럴 게 자유여행이 안 되는 건 물론, 오로지 패키지여행을 통해서만 갈 수 있기 때문이다. 4박 5일 일정에 200만 원 가까운 금액을 내야 하다 보니, 자연스레 부탄은 미지의 영역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경제성장률이 높은 국가가 아닌 행복지수가 높은 국가를 만들기 위한 국왕의 정책 중 하나로 여행자의 수를 제한하는 것. 여행자가 모여들면 모여들수록 해당 국가는 국가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생활방식을 잃어버리게 된다. 특히 경제 규모가 작거나 인도와 같이 물가가 저렴한 국가의 경우가 그렇다. 여행자들이 주로 찾는 숙소나 상점, 릭샤와 같은 교통수단은 현지인이 이용하는 금액보다 몇 배는 부풀려 진다.

하지만 여행자들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값을 낸다고 하여 이들이 과연 만족하며 살아갈까. 현대의 자본주의 국가 대부분이 그렇듯 아무리 쌓이고 쌓여도 부족하다고 느끼는 게 돈이다. 통장 잔액의 '0'의 개수에 따라 울고 웃으며 돈으로부터 시작된 인간관계에 치이는 게 자본주의 사회의 일상이지 않은가. 돈에 의해 움직이는 사회는 병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가 아닌 이상 사회가 존속되기란 어려운 듯하다. 기존에 자본주의의 대항마로 떠오는 체제는 대부분 몰락의 길을 걸었다.

부탄의 경우 인도의 보호국으로 매해 인도로부터 지원을 받는 데다 인구가 80만 명이 채 되지 않는 국가이다. 굳이 관광산업을 택하지 않더라도 인도와의 교류나 내수경제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자본주의 체제가 있다 해도 소규모라면, 국민 행복을 유지하는 데 큰 난관은 없지 않을까 싶다.
 
부탄 국경과 가까운 하시마라역으로 가는 길, 인도 기차에서 맞은 아침
 부탄 국경과 가까운 하시마라역으로 가는 길, 인도 기차에서 맞은 아침
ⓒ 이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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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은 더 이상 신기한 존재가 아닌 걸까
 
4년 전 기차에 처음 올랐을 때가 떠오른다. 외형이 다른 외국인을 향해 일제히 쏟아진 인도인들의 시선, 주위를 둘러볼 때마다 차내의 인도인 모두와 눈이 마주쳐 때론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 눈빛은 낯선 외국인을 향한 적대감의 표현이 아니었다. 신기함과 새로움을 받아들인다는 환영의 뜻을 담고 있는 눈빛이었다. 모든 게 얼떨떨해 창밖만 바라보고 있을 여행자에게 먼저 말을 걸고 음식을 나누어주던 사람들. 원래 같았다면 이 또한 경계해야 했지만, 일가족이 똑같이 먹는 음식임을 확인하고는 곧바로 의심을 풀었다.
 
인도 기차의 여느 객실이 그렇듯 여섯 명이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었고, 잠잘 시간이 되면 가운데 매트리스를 침대로 만들어 각기 다른 여섯 개의 침대를 만들었다. 한 시간 정도 지나자 맞은편 자리에 인도인 청년들이 자리를 메웠고, 서너 명이 일행으로 보였다. 지난번 인도여행과 같이 수많은 질문 공세 속에서 대화를 이어나갈 줄 알았다.

하지만 몇 마디 말만 주고받고 나서는 또다시 창밖만 바라보게 되었고, 그렇게 대화는 끝이 났다. 어쩌면 군인이라고 소개한 그들의 말에 나 또한 한 달 전까지만 해도 군인이었다는 말로 받아쳐 한국과 인도 양국의 군대 얘기로 대화의 공통분모를 찾으려고 했던 게 화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다시 생각해보면 낯선 외국인하고조차 따분한 군대 얘기를 나누고 싶었을까.
 
기차는 15시간을 달려 부탄 국경과 가까운 하시마라역에 도착했고, 기차에 머무는 동안 외국인인 나에게 사람들이 몰려온다거나 뚫어지게 쳐다보는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간 계속 외국인 여행자가 유입돼, 이제는 크게 신기하다 느끼지 않는 걸까. 아니면 인터넷 통신망의 발전으로 여행객은 관심 밖으로 멀어진 걸까.

지금 인도는 공항에서 와이파이가 되는 건 당연하고, 달리는 기차 안에서도 유튜브를 볼 수 있다. 아날로그에서 벗어나 개인이 우선시되는 현대사회의 모습으로 빠르게 변모하고 있었다.
 
부탄으로 가는 길, 인도측 국경도시 자이가온
 부탄으로 가는 길, 인도측 국경도시 자이가온
ⓒ 이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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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주의의 나라 부탄으로
 
터미널은 생각보다 남쪽에 있었다. 부탄 국경까지는 1km 정도 더 가야 했다. 평소 같았으면 걷고도 남을 거리였겠지만, 배낭을 메고 있는 데다 여느 대도시를 능가하는 혼잡함과 시끄러움에 걸을 생각은 이미 씻은 듯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렇다고 릭샤와 같은 교통수단을 타고 싶지는 않았다. 언제 또 가격 흥정을 하는 등 소모적인 행동을 이어나갈 것인가. 인도에 온 지 채 3일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이미 모든 걸 알아버린 듯 귀찮게 느껴졌다. 이전에 인도에 한 번 왔던 탓이겠지. 

그때쯤 누군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버스에서 내릴 때 잠깐 봤던 사람. 흙먼지 날리고 매연 가득한 마을과 어울리지 않게 하얀색 원피스를 입고 있던 사람. 인도인보다 좀 더 하얀 피부에 눈매가 짙지 않고 동아시아계 사람과 비슷한 외형. 그가 부탄 사람이라는 건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경적이 끊이질 않는 혼잡한 상황 속에서 영어로 대화를 나눈다는 게 보통 일은 아니었지만, 부탄의 국경도시 푼촐링까지 동행할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내게 안도감으로 다가왔다. 합승 릭샤에 오르자 5분도 채 안 되어 국경이 모습을 드러낸다.

별다른 출입국절차 없이 마주할 수 있는 부탄, 물론 국경도시 푼촐링에 한해서만 별다른 절차 없이 입국할 수 있고, 수도 팀푸나 다른 지역으로 넘어갈 때는 수속절차나 비자, 기타 서류까지 일일이 확인한다고 한다. 어차피 다른 지역으로 넘어가는 길은 하나밖에 없다 보니 이를 검사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지 않을까.
 
푼촐링 시내, 건물 한 편에 부탄 국왕 내외의 사진이 걸려있다.
 푼촐링 시내, 건물 한 편에 부탄 국왕 내외의 사진이 걸려있다.
ⓒ 이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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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와 다르게 경적을 울리지 않는 자동차와 시내 한복판에 자리한 불교사원, 건물 한편 걸린 국왕 내외의 사진을 보니 영락없는 부탄이 맞긴 맞나보다. 새로운 나라에 왔다고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누르는 내 모습이 이곳 푼촐링에 일터가 있는 그의 눈에는 꽤 신기하게 보이긴 하겠다.

그는 오늘 하루 동안 여기저기를 다니며 가이드를 해주기로 했다. 어디를 갈까 하다 악어가 있다는, 현지인이 아니면 아무도 모를 소박한 동물원과 한국의 것과 비슷한 정겨운 분위기의 채소시장을 둘러봤다. 특별한 관광지는 아니었지만, 현지 그대로의 것을 멀리서나마라도 볼 수 있어서 좋을 뿐이었다.
 
부탄의 화물트럭, 화려한 외관은 남부 아시아지역 어디든 공통인 듯하다.
 부탄의 화물트럭, 화려한 외관은 남부 아시아지역 어디든 공통인 듯하다.
ⓒ 이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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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느지막한 시간이 되자 비가 세차게 내렸다. 다시 인도로 넘어온 다음 시장을 둘러보고 있었는데,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비가 쏟아지는 거였다. 우선 자이가온에 있는 그의 집에서 비를 피했다. 해가 질 무렵이 되면 나는 버스를 타고 기차역으로 가기로 했다. 그는 근처에 있는 교회에 간다고 했다.

비를 피해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하지만 그보다 감사한 건 그의 가족들의 따뜻함이었다. 예고되지 않은 이방인의 방문에도 반갑게 맞아주며 밀크티 한 잔 내주시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사람에 치이고 지치는 인도 여행, 하지만 이 마음을 치유하는 것 또한 언제나 사람이었다.
 
자이가온의 버스터미널, 혼잡한데다 영어가 제대로 통하지 않아 동행한 이들이 없었다면 버스를 놓쳤을 지도 모른다.
 자이가온의 버스터미널, 혼잡한데다 영어가 제대로 통하지 않아 동행한 이들이 없었다면 버스를 놓쳤을 지도 모른다.
ⓒ 이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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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그의 남동생과 함께 터미널까지 동행하기로 했다. 해는 이미 지고 비는 여전히 쏟아지는데 버스가 과연 있긴 한 걸까. 택시를 타야 하지 않을까 했던 걱정과 달리 버스는 30분에 한 대 꼴로 운행하고 있었다. 다만 버스의 상태가 좋지 않고 테이프로 대충 덧댄 창문 틈새로 빗물이 새어 옷가지가 젖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앉아 갈 수 있음은 물론, 버스를 타기까지 도와준 이들이 있었으니. 그저 좋을 뿐이다.

버스는 두 시간여를 달려 기차역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때 가서야 알았다. 내가 가진 기차표는 지정된 좌석이 없는 대기 표였다는 것을. 다음 목적지는 여기서 20시간 거리다. 어쩐지 너무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싶더니, 오늘 밤 편하기 자긴 제대로 글렀구나.

태그:#부탄여행, #인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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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을 마음에 품고 현실을 바라봅니다. 열아홉 살의 인도와 스무 살의 세계일주를 지나 여전히 표류 중에 있습니다. 대학 대신 여행을 택한 20대의 현실적인 여행 에세이 <우리는 수평선상에 놓인 수직일 뿐이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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