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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진주시의 비거 테마공원 조성사업을 둘러싸고 논란이다. 이에 강주인문학연구회가 문헌 등에 나타나 있는 ‘비거’와 관련한 글을 보내와 싣는다. <오마이뉴스>는 이와 관련한 찬반 논쟁글을 기다린다.[편집자말]
 
 진주시가 만든 <진주재조명 역사 미니다큐 - 비거>의 한 장면.
 진주시가 만든 "진주재조명 역사 미니다큐 - 비거"의 한 장면.
ⓒ 진주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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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비거에 관한 설화가 있을까

지금까지 살펴본 '비거' 이야기는 기록들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후대에 전해지고 있는 이야기의 핵심은 "(1) 임진왜란 때 (2) 김제인 정평구가 비거를 만들어 (3) 고립된 진주성에 갇혀 있는 성주를 구하였다"는 것이 사실처럼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이 이야기가 20세기 후반의 몇몇 저서와 아동용 동화에 부연되거나 각색되어 실려 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앞서 살펴본 것처럼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

옛날 이야기가 역사적 사실로 증명할 수 없을 경우에는 옛날부터 전해 오는 '설화'가 사실을 뒷받침해 주고 보충해 주기도 한다. 고구려 시조인 동명성왕에 관한 신화와 신라 시조 박혁거세에 관한 신화,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에 관한 설화가 그런 것이다.

그러면 비거와 관련된 설화가 있을까? 혹시 김제인 정평구의 고향인 김제와 진주성전투의 현장인 진주에 비거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 오고 있지 않을까?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1979년부터 1985년까지 전국의 설화를 조사하여 만든 <한국구비문학대계>의 진주 편에도, 경상대학교 안동준 교수가 진주의 설화를 모아 지은 <진주 옛이야기>(2003년) 어디에도 비거에 관한 이야기가 실려 있지 않다. 또한 진주 토박이 누구에게 물어보아도 비거에 관한 옛이야기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김제의 설화에 관해 연구한 한정훈님이 쓴 <설화에 나타난 실존 인물의 의미와 전승주체의 의식>(2013년)이란 논문에는 김제 사람인 '정평구'와 관련된 설화 목록이 실려 있다. <한국구비문학대계>, 김제군에서 발행한 <김제의 전통>, <벼골에 불던 바람> 등의 저서에 있는 정평구에 관한 설화 그리고 연구자가 직접 채록한 정평구에 관한 설화 등을 모아 만든 설화 목록이 실려 있는데 총 41편의 설화가 있다. 이 중에는 임진왜란 때 왜적을 박살낸 이야기도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이들 설화 어디에도 정평구와 비거 관련 이야기는 없다.

역사적 기록처럼 된 글에도 없고 설화에도 없는 비거 제작자로 정평구가 맨 처음으로 나타난 것은 앞서 살펴본 것처럼 1914년 8월 21일자 <매일신보>의 기사이다. 이 기사는 일제강점시대 민족의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 우리 민족도 과거에 '비거'라는 유인 비행체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그 기사 말미에 붙여 두었다. 그러면서 느닷없이 옛 이야기에는 없는 비거 제작자로 정평구를 변조해 넣었다.

그 근거는 정평구에 관한 이야기 중 다음 두 가지 이야기를 근거로 하여 정평구를 영웅으로 만든 것이라 유추할 수 있다. 하나는 김제에 널리 알려진 정평구의 설화 중에 정평구가 임진왜란 때 '왜적을 박살낸 이야기'를 들 수 있다. 또 하나는 김제 사람 송기면(1882~1956)의 문집인 <유재집(裕齋集)> 속에 들어 있는 '정평구전'에 '계사년 진양 난리에 그(정평구)의 친구가 포위당하자 계략을 써서 넘어 들어가 그와 함께 탈출하였다[癸巳 晉陽之亂 其友在圍中 用計超入 與之俱出].'라는 간단한 서술을 들 수 있다. 이 두 이야기는 '임진왜란, 진주, 왜적의 저항을 맞서 이겨냄'이라는 내용이 있기 때문이 이를 바탕으로 정평구를 비거 제작자로까지 올려 세운 것이 아닌가 싶다.

꾸며낸 이야기라도 세월이 흐르면 역사가 될 수 있다는 허무맹랑한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상상으로 지어낸 이야기, 그리고 그 이야기를 변조해 만든 이야기가 아무리 세월이 흐른다 하더라도 사실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삼국유사에 '서동요'와 관련된 설화가 실려 있다. 이 설화 속에 백제 무왕이 선화공주를 배필로 삼게 된 이야기가 들어있다. 그런데 이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시대는 신라와 백제가 치열한 전쟁을 하던 시대라 국혼을 할 처지가 아니었다. 그래서 사학자들은 선화공주가 백제의 왕비가 되었다는 것이 사실일 수 없다고 의심해 왔다. 그런데 최근 익산 미륵사지 서편 석탑을 해체 복원하는 과정(2001년~2017년)에서 '사리봉안기'가 발견되었는데, 그 속에 "… 우리 백제 왕후[무왕의 배필]께서는 좌평(佐平) 사택적덕(沙宅績德)의 따님으로…"라는 구절이 쓰여 있어 무왕의 배필이 선화공주가 아니라는 사실이 무려 1400여 년이 지나 밝혀졌다.

이처럼 진주나 김제, 어디에도 오랜 세월 동안 전해오는 설화에 '비거' 자체는 물론이요, '정평구가 임진왜란 때 비거를 제작하여 사용했다'는 이야기가 없다. '비거'에 관해서는 예나 지금이나 널리 알려진 이야기가 없으며, '비거'는 종래 우리 겨레 누구에게도 관심거리가 아닌 실체가 없는 것이었다. 전해지는 설화, 특히 진주와 김제 어디 곳의 설화에도 '비거'에 관한 이야기가 남아 있지 않음이 이를 말해 준다.

10) 이규태의 비거에 관한 글 - 한국인의 생활구조

조선일보의 <이규태 코너>에 오랫동안 교양이 될 만한 글을 많이 써 온 이규태란 칼럼니스트가 있었다. 이 분이 지은 책 <한국인의 생활구조>(1984)에 '비거'에 관한 이야기가 들어 있다.

이규태가 지은 <한국인의 생활구조>에는 신경준의 <여암유고>와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 '비거' 관련 내용의 번역문을 거의 그대로 옮겨 놓았을 뿐 새로운 내용은 전혀 없다. 그런데도 역사적 고증없이 '비거'의 존재가 사실인 것처럼 표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우리 민족이 유능한 민족이라 말하고 있다.
 
비행기

손재주 세계서 우뚝

…… 세조 반정에 저항, 전라도 순창골에 낙향했던 신말주(申末舟)의 후손에 신경준(申景濬)이라는 실학자가 있다. 그 분이 지은「책차제(策車制)에 이 비행기의 원리와 임진왜란 때[원문에는 홍무연간으로 되어 있음] 비행기를 이용했던 사례가 소개돼 있다.

임진왜란 때 영남의 한 성이 왜적에게 겹겹으로 포위되어 있을 때 평소에 색다른 재간을 지녔던 어느 한 사람이 비차(飛車)를 만들어 차고 성 안에 날아들어 갇혀 있던 친지를 태우고 성 밖 30리 밖에 피난시켰다고 하고, 예로부터 우리나라에는 비차가 있어 왔고 한국 사람이 그 비차 만드는 데 특히 능했음을 지적하고 있다.[원문에 그런 내용이 없음]

바람 주머니를 부착

1810년에 저술된 실학자 이규경의『오주연문장전산고』에도 이 비차에 관한 견문이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미뤄 신경준의 비차설은 전혀 허황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 하나로 어느 한 원주 선비가 갖고 있는 전래된 비차술의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우리 한국의 비행기는 4명이 타게 돼 있는 4인승이요, 생김새는 고니[鵠]나 기러기와 비슷하고, 가죽으로 만든 북배[鼓腹]에서 바람을 일으켜 떠오르며, 돛처럼 바람을 갈라 하늘을 나는데, 맞바람에 부딪히면 거지 못하고 광풍을 맞으면 땅에 떨어지기에, 바람을 잘 보고 띄워야 한다.

또한 전주 선비 김시양(金時讓)이라는 이로부터 비차의 비술을 알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써 남기고도 있다. 노성(魯城)에 명재(明齋) 선생 윤증(尹拯)의 후손 윤달규(尹達圭)라는 이가 있는데, 본래 손재간이 능하여 비차 만드는 비법을 알고 있었는데, 이를 극비로 하여 남들이나 아들들에게까지 알리지 않아 그 비법이 전래되지 못하고 말았다 한다. ……
[한국인의 생활구조, 1984, 이규태 지음, 조선일보사 : 209~212]
 

이규태씨는 널리 알려진 문필가이니 '비거'에 관한 이야기가 역사적 사실인지 아닌지를 면밀히 고증하여 썼으면 좋았을 텐데, 인용만 하여 쓴 글에도 오류가 있기도 하고, 원문에 없는 내용을 덧붙여 독자들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있으니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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