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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8일 금요일, 금오름나그네들이 오름 올라가는 날이다. 지난주에 갔던 거친오름과 이름이 같은 또 다른 구좌의 거친오름이 목표였다. 봉개의 거친오름은 전혀 거칠지 않았는데, 구좌 거친오름은 진짜 거칠까? 거칠다면 얼마나 거칠까? 대천동 승마장 주차장에서 오후 3시에 만났다. 8명 중에서 7명이 모였다. 손자 돌봐주러 간 한 할머니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맞은편에 있는 체오름에서 본 거친오름 모습이다.
▲ 거친오름 맞은편에 있는 체오름에서 본 거친오름 모습이다.
ⓒ 신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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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천동4거리에서 송당 쪽으로 가다가 안돌오름 방향으로 좌회전한다. 길이 울퉁불퉁한데, 차가 의외로 많다. 무슨 일이지? 옆에 나그네가 알려준다. 모 일간지에서 안돌오름 부근 삼나무숲을 최고의 사진찍기 좋은 장소로 선정했단다.

그 이후로 많은 사람, 특히 신혼부부가 사진찍으러 몰려 온단다. 정말 그 부근 가까이 가자 차가 수십 대가 서 있고, 결혼복 차림의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언론의 힘이 대단함을 알 수 있었다.

정체구간을 지나서 우리는 더 나아갔다. 표지판이 하나 나타났다. 작년에 재선충예방나무주사를 놓았다는 표지판이었다. 이게 거친오름의 안내판 역할을 했다. 오름은 별로 높지는 않은 듯했다. 유명하지 않은 오름이라 안내판도 따로 없다. 표지판 옆으로 철조망을 통과해서 들어간다.
  
삼나무숲과 잡목숲 경계에 올라가는 길 찾기가 어렵다.
▲ 거친오름 아래자락 삼나무숲과 잡목숲 경계에 올라가는 길 찾기가 어렵다.
ⓒ 신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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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 아랫자락은 삼나무숲이다. 길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겨우 찾아 찾아 올라간다. 삼나무숲이 끝나고 잡목숲이 나타나는데, 잡목숲으로 들어가는 길 찾기가 가장 어렵다. 이러저리 왔다갔다 하면서 겨우 찾았다. 역시 길은 희미하다. 거친오름 이름 값을 하는가?

길 중간에 재선충으로 죽은 소나무를 잘라 쌓아서 천막으로 덮어 놓았다. 역시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은 오름 같다. 길 관리를 전혀 하지 않은 듯했다. 야자매트 깔린 좋은 오름 길에 익숙한 우리들은 당황해 한다.
 
온갖 풀과 관목으로 덮혀 있고 깊이는 얕다.
▲ 거친오름 분화구 온갖 풀과 관목으로 덮혀 있고 깊이는 얕다.
ⓒ 신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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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한 길을 뚫고 분화구 능선에 도달했다. 억새같은 억센 풀과 작은 관목이 뒤엉켜 걷기가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오른쪽으로 돈다. 가장 무서운 게 청미래덩굴과 찔레나무다. 

덩굴이 길을 가로 막고 있으면 난감해진다. 가시달린 덩굴 줄기가 얼마나 단단한지 잘라지지도 않는다. 찔레나무 가시는 근처만 가도 살을 파고 든다. 이들이 자리잡고 있으면 도저히 나아갈 수 없다. 여기까지 왔으니, 눈으로 분화구 한바퀴 돌고 내려가잔다. 그래도 왼쪽으로 가 본다.

약간 수월했다. 조금씩 나아간다. 저 만치 가장 높은 곳이 보인다. 낫이 하나 있으면 길을 만들기가 수월할 것 같다. 찔레나무가 길을 막고 있으면 발로 밟아 길을 만들고 그렇게도 못하면 돌아간다. 돌아가서 길이 만들어지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더 멀리 돈다.

원형 분화구는 깊이가 얕았다. 크기도 작은 편이다. 그러나 한 바퀴 돌기는 어떤 오름 분화구보다 어려웠다. 멀리 한라산이 선명하게 보인다. 사방이 트여 전망이 좋다. 가장 젊은 내가 길을 만들고 뒤이은 나그네가 길을 다듬는다. 그러면 여성나그네가 뒤따라 온다. 그야말로 혼신의 힘을 다해 돈다.
 
분화구 능선에 가막살나무가 빨간 열매를 맺었다.
▲ 가막살나무 열매 분화구 능선에 가막살나무가 빨간 열매를 맺었다.
ⓒ 신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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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화구 능선에 가막살나무가 빨간 열매를 익히고 있다. 봄에 하얀 꽃으로 온 산을 아름답게 치장하더니 이젠 빨간 열매로 산을 물들이고 있다. 어릴 때 산에 올라 저 열매를 따 먹곤 했다. 오랫동안 까마득히 잊고 있었는데, 제주 오름에서 만났다. 

분화구 능선을 천신만고 끝에 한바퀴 돌았다. '천신만고(千辛萬苦)', 말그대로, 맵고도 맵고 아프고도 아프게 돌았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지들이 좋아서 고통을 당했으니, 할 말은 없다. 

힘들게 출발점에 되돌아왔으니 쉬지 않을 수 없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허기가 다 진다. 간식을 모두 꺼내 나눠 먹는다. 단소를 꺼내 산조 한바탕을 원풀이 하듯 불어본다. 왠지 단소소리조차 거칠다. 아무리 그래도 거친오름의 거칠고 거친 모습을 이길 수가 없다.
 
분화구 능선 돌다 만난 연보라색 꽃
▲ 엉겅퀴 오형제 분화구 능선 돌다 만난 연보라색 꽃
ⓒ 신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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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한바퀴 다 돌았을 때, 풀 속에서 엉겅퀴 오형제를 만났다. 연보라색이 아득한 그리움을 끌어내고 있다. 잎이 가시로 덮혔으니 가시엉겅퀴인가 보다. 독수리 오형제는 지구를 지키고, 엉겅퀴 오형제는 이 거친오름을 지키고 있다. 

실컷 먹고 쉰 뒤에 우리는 내려간다. 올라 왔던 길로 내려가는 것이니 어려울 건 없다. 엉겅퀴 오형제를 저 거칠기 짝이 없는 오름에 내버려두고 내려오는 맘만 짠하다.

지난주에 봉개에 있는 그야말로 얌전해빠진 거친오름을 걷고 우리들은 자만에 빠졌나 보다. 그래서 자신만만하게 구좌 거친오름에 왔다가 된통 당했다. 이름 그대로 정말 거친오름이었음을 인정한다.

거칠고 거친 거친오름을 새롭게 알게 되어 맘이 뿌둣해졌다. 고생하고서라도 새로운 오름을 만났다는 즐거움을 혹시 아시나요?

태그:#거친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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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살고 있습니다. 낚시도 하고 목공도 하고 오름도 올라가고 귤농사도 짓고 있습니다. 아참 닭도 수십마리 키우고 있습니다. 사실은 지들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 개도 두마리 함께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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