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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카톡이 왔다.

'우혁이 입학이 3월 2일이래요.'
'그래, 내일모레네.'
'엄마, 아빠와 함께 오세요.'
'가도 되겠나?'
'학부모들은 학교에 들어가지 못하고, 다만 입학식이 끝나면 운동장에서 기념사진은 찍게 해 준다고 하네요.'
'그나마 다행이구나.'

 
며칠 전 외손자가 지금 입학하는 학교의 병설 유치원을 졸업했다. 졸업식 때 가보지 못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때는 코로나19가 확산하여 확진가 많았고 설을 하루 앞두고 명절 이동으로 대유행을 염려하여 정부가 각종 모임과 거리두기를 엄격히 시행하는 바람에 참석하지 않았다.

딸이 또 전했다.

'그나저나 큰일이에요, 학생이 너무 많아 학교 운동장에 컨테이너가 설치되었어요.'
'아니 신입생이 얼마나 많기에 임시 교실을 그렇게 지었단 말이냐?'
'한 반에 스물일곱 명씩 무려 13반이에요.'
'엄청나네.'

 
외손자 우혁의 초등하교 입학
▲ 축하 꽃다발 외손자 우혁의 초등하교 입학
ⓒ 정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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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저출산으로 인해 폐교되는 학교가 늘어 나고 대학은 신입생이 없어 교직원이 학생들을 찾아다닌다는 '학생 찾아 삼만리'라는 신문기사를 보기도 했는데 이곳 부산시 강서구는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들이 많단다.

낙동강 하구 삼각주에 신도시를 조성하고, 그 위에 대단지 아파트가 건설되자 인구가 급격히 늘었지만 기존의 학교로는 학생 수를 다 수용하지 못해 일어난 일이다. 작년 말에 또 하나의 아파트 단지가 입주를 하면서 어느 정도는 예상했지만 이 정도 일 줄이야.
 
'반은 미리 배정 받았으며 혼자 들여보내야 한다는데 제대로 반을 찾을지 걱정이에요.'
'하하 그렇게 걱정하는 네가 더 걱정이구나.'
'그렇죠.'

 
큰일이예요 아이들이 너무 많아요
 

3월 2일은 나의 하나뿐인 외손자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태어나고 첫돌을 맞아 개구쟁이라도 좋으니 튼튼하게만 잘 자라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사를 쓴 지가 엊그제 같은데, 그새 훌쩍 커서 유치원을 졸업하고 이제 초등학생이 되었다(관련 기사 : 거꾸로 태어난 외손자, 무엇을 잡을까). 

그러나 딸은 아직도 걱정이다. 지금까지 어디를 가나 아이를 늘 데리고 다녔고 코앞의 유치원 등하교는 물론 외가인 바로 이웃 아파트에 사는 우리 집에도 지금까지 혼자 보내지를 않았다.
 
전날 밤, 입학식에 참석하기 위해 입고 갈 옷을 준비하다가 아내가 물었다.

"당신 초등학교 입학식은 어땠어?"
"옆집 형아하고 갔지."
"뭐라고요. 옆집 아이랑?"
"왜?"
"아니 그 먼 길을, 시어머니와 같이 안 가고? 세상에~"
"뭘 그리 놀래? 그 시절은 다 그랬는데."
"그럼 학교에서 돌아 올 때는?
"몰라 그 뒤로는 기억이 안나네."

 
같은 시대를 살아왔지만 도회지에서 자란 아내는 시골의 아이들의 생활을 이해하지 못했다. 베이비붐 세대여서 아이들도 많았지만 당시는 부모가 매번 참석하기도 쉽지 않았다. 바깥출입을 잘 하지 않으셨던 어머니는 그래도 나의 왼쪽 가슴에 이름표와 손수건을 정성껏 달아 주시면서 옆집의 한 살 많은 2학년 아이에게 신신당부를 했고, 나는 그 형과 함께 학교로 갔다. 
 
외손자 우혁이 초등학교 입학식
▲ 엄마와 함께 외손자 우혁이 초등학교 입학식
ⓒ 정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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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식을 추억하다
 
"옛날에 너의 아빠는 초등학교 입학식에 옆집 형과 갔단다."

입학식 날 아침, 딸을 만나자마자 아내는 어제 밤 이야기를 하며, 너무나 황당하다면서 크게 웃었다.

"정말? 아니, 엄청 멀지 않나요, 산길이고 강도 건너야 했을 텐데."
"이해가 안되제?"
"아빠, 진짜예요?"
"그럼, 그러니까 우혁이도 이제 혼자 다니게 내버려 두어라."

 
그러나 딸을 대신해 아내가 거든다.

"아직은 안 돼요, 주위가 온통 차들이고 또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데."

내가 살던 고향은 면내에 있는 학교가 집에서 멀리 있어 학교 가는 길의 강은 다리가 놓이기 전이라 징검다리를 건너야 했고 비가 와서 큰물이 지면 좁고 험한 산길을 돌아서 다녔다.
 
아침에 딸은 잔뜩 주눅이 든 아이를 학교로 데려가 방역수칙에 따라 교실로 들여보냈다. 저쪽에서 선생님이 오라고 손짓하자 너무 긴장했는지 눈도 맞출 새 없이 갑자기 후다닥 뛰어가자 그 모습이 짠해서 눈물이 났다고 했다.

그러자 아내가 딸에게 지난 얘기를 했다. 네가 입학할 때 선생님께 조금이라도 잘 보이려고 그랬는지 오늘처럼 추운 날에 연두색 봄 원피스 입혀 보내서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며. '몸도 약한 네가 얼마나 추웠겠니' 하자 딸도 기억난다며 둘이서 지금도 당시를 어제 일처럼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작년에 개교를 한 학교를 바라보며 잠시 옛 추억에 잠겨 있을 때 교실에서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그새 이들을 데리러 온 학부모와 아이들이 운동장에 모였다.

가방을 메고 아직도 긴장이 풀리지 않은 아이와 사진을 찍었다. 사진 찍기를 몹시 싫어하는 아이를 달래 겨우 찍은 이 사진으로 먼 훗날 우혁이가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를 추억하겠지. 바람도 쐴 겸 조금 외곽으로 나가서 점심을 하려 했으나 아이가 힘든 것 같아 집에서 식사를 하였다.
 
 코로나 시대의 입학식
 
외손자 우혁이 초등학교 입학식 참석
▲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외손자 우혁이 초등학교 입학식 참석
ⓒ 정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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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마치자 궁금한 것을 물어도 좀처럼 대답을 않던 아이가 그제야 재잘재잘 이야기를 했다. 아직 친구를 사귀지는 못했는데 같은 유치원에서 다닌 아이가 두 명 있었고 강당에 모였을 때는 아이들이 많아 놀랐다고 했다. 강당 바닥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을 때는 눌린 발 복숭아 뼈가 너무 아팠는데도 꾹 참았다며 멍이 든 다리를 걷어 보였다.
 
"저런, 아이고 우리 강아지. 그럴 땐 이렇게 다리를 쭉 펴도 된다."

할머니가 안쓰러워하자 나도 한마디 했다. 소심한 건 나 닮은 것 같다고 흐흐. 휴대전화로 찍어 온 사진을 보니 온통 마스크 쓴 모습뿐이다. 이래저래 그동안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코로나 시대의 입학식 풍경이다. 

태그:#입학식, #신입생, #초등학교, #외손자, #코로나 시대 입학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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