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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기회와 과정이 제공돼야 한다는 '절대적 평등'과, 기존의 사회적 격차를 완화하기 위해 상황에 따라 차등적 분배가 이뤄져야 한다는 '상대적 평등'이 그것이다. 다소 상충하는 개념처럼 보이지만 우리 사회가 진정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가 되려면 이 두 가지의 적절한 균형이 필요하다.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진 평등은 완전한 평등이 될 수 없으며, 이는 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역행이다.

여자도 군대 가라는 목소리엔 '상대적 평등'이 빠져있다. 여성이 똑같이 병역을 분담해야 진정한 남녀평등이 실현된다고 믿는 건 '절대적 평등'에서만 입각하여 바라본 지엽적 논리다. 그 이면에 자리한 뿌리 깊은 성차별과 남성과 여성의 사회적 격차는 외면한 주장이기 때문이다.

현재 여성 징병제 담론이 터져 나온 배경엔 여성 할당제나 여성 우호 정책에서 비롯한 '이대남'들의 분노가 자리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와 같은 여성 관련 법안들이 실행될 수밖에 없던 맥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여전히 해소되지 않는 남녀 임금 격차와 20%에도 못 미치는 고위직 여성 비율 그리고 가사 분담 굴레에서 반복되는 여성의 경력 단절 사례 등이 그 예다.

이처럼 기울어진 현실을 함구한 채 이어지는 논의는 '반쪽짜리 평등'에 불과하다. '나도 갔으니 너도 가'라는 '절대적 평등' 의식 이전에 기존의 차별과 격차를 완화하기 위한 차등적 분배, 다시 말해 '상대적 평등'에 대한 논의가 먼저 필요한 때다.

'상대적 평등'을 외면한 사회는 극심한 양극화로 치닫게 된다. 불평등을 완화하려는 사회적 노력이 없는 상태기 때문이다. 여성 징병제가 실현 가능성이 적다는 걸 알면서도 허울뿐인 담론이 계속되자 젠더 갈등은 그 어느 때보다 극단화됐다. 더욱이 분열된 공론장에서 발전적인 의제들이 논의되기란 어렵기에, 정작 필요한 성 평등 정책과 담론은 수면 아래도 가라앉았다.

젠더 이슈 이외에도 마찬가지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반대했던 인국공 사태나 지역민에게 부여되는 채용 우대 정책에 반발하던 청년 세대의 모습이 대표적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뿌리 깊은 불평등을 외면한 채 그저 절대적으로 똑같은 기회와 과정을 제공하는 것만이 진짜 평등이고 공정이라 맹신했다는 점에 있다.

비정규직의 열악한 처우 그리고 지역민과 사회적 약자가 처해있던 불평등한 환경을 고려하지 않았던 이들의 분노는 결국 계층 갈등으로 이어지며 분열했다. 한쪽으로 기울어진 반쪽짜리 평등의 한계다.

'상대적 평등'이 회복돼야 한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맞춰주려는 노력은 민주주의 사회에 반드시 요구되는 가치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권은 우리 사회에 여성 할당제나 성 평등 정책이 왜 필요하며 어디까지 시행돼야 할지를 설득하고 논의해야 한다. 여성이 징집되면 성 평등이 해결된다는 기계적인 평등의식을 넘어 기존에 존재하던 불평등과 사회적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청사진이 필요하단 의미다.

더불어 '이남자'들이 느끼는 분노의 핵심은 사실 '여성'이 아닌 이 '사회'에 있다. 군 복무 보상 체계를 검토한다든가 청년 세대의 일자리와 사회적 안전망 확충을 실행하는 등의 노력이 병행된다면 소모적인 젠더 갈등의 돌파구가 마련될 것이다.

표심에서 벗어나 민주 사회의 발전을 위해 제 기능을 하는 정치권을 기대한다. 우리 사회가 절대적 평등과 상대적 평등의 올바른 균형을 이뤄갈 수 있도록, 비로소 완전한 평등과 정의가 실현될 수 있도록 말이다.

태그:#여성징병제, #군대, #젠더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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