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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아~ 관리사무소에서 주민 여러분께 안내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 아파트 주민 숙원 사업인 지하 주차장 천장 마감재 철거와 재도장 및 바닥 에폭시 도장공사가 7월부터 9월까지 3개월간 실시됩니다..."

저녁 7시, 대부분의 아파트 주민들이 집에 머무를 시간이었다. 당직을 서는 경비아저씨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집집마다 울려 퍼진다. 지은 지 30년 가까운 아파트에서 주민들과 관리사무소가 보편적으로 소통하는 방식이다. 

지난 6월 18일과 19일 양일에 걸쳐 아파트 단지 내 아스콘 포장공사를 했다. 이때도 관리사무소 측은 단어 몇 개를 빼고 얼추 비슷한 멘트를 내보냈다. 우리 아파트 주민 숙원 사업인 아스콘 포장 공사를 이틀에 걸쳐 시행하니, 불편하더라도 17일 오후부터는 아파트 가까운 외부에 주차를 해주십사 하고. 

6월 17일 저녁부터 아파트 단지 내에는 차량이 단 한 대도 보이지 않았다.
 
아스콘 포장 공사가 시작되고 이틀째 되는 날, 롤러로 아스콘을 다지고 있다.
 아스콘 포장 공사가 시작되고 이틀째 되는 날, 롤러로 아스콘을 다지고 있다.
ⓒ 박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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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콘 포장 공사는 다음 날 아침 7시부터 시작됐다. 창문이란 창문은 죄다 닫았는데도 중장비의 요란한 기계음은 고막을 찢을 듯 시끄럽고, 굴착이라도 할라치면 지축이 흔들리는 듯 앉은 자리까지 격심한 진동음이 전해졌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이 원하는 일이고, 다수에게 편리를 제공할 공사임을 알기에 층간 소음과는 달리 스트레스가 적었다.

공사 둘째 날은 아스팔트를 깔고 단단하게 굳히는 작업이 이어졌다. 공사 첫날보다 소음은 많이 줄었지만, 아스팔트의 독하고 역한 냄새가 닫힌 창문 틈으로 숨어들었다. 집 안에 있는 것보다 집 밖이 나을 것 같았다. 이때가 아니면 이런 중장비들을 언제 또 볼까 싶기도 해서 카메라를 챙겨 들고 집 밖으로 나가 봤다.

'다행이다! 가깝게 지내는 경비아저씨가 근무하는 날이다.' 아군만 믿고 아파트 관리사무소 측과 현장 근로자분들께 양해를 구하고 공정별로 사진 몇 컷을 찍었다. 도로 위를 쌩쌩 달리는 큰 차들은 위압감을 느끼게 하는데, 아파트 주민들을 위해 애쓰는 분들이 모는 중장비는 멋져만 보였다. 한참 그 광경을 보고 있노라니, 말문만 트이면 아이들이 왜 그리 자동차 타령을 하는지 납득이 갔다.
 
아스콘 포장 공사 이틀째날, 롤러 작업에 이어 도색 작업이 시작됐다.
 아스콘 포장 공사 이틀째날, 롤러 작업에 이어 도색 작업이 시작됐다.
ⓒ 박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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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팔트가 굳자 늦은 오후부터는 주차 공간 표시와 통행 방향 표시 등 도색 작업에 돌입했다. 밋밋했던 도화지에 예쁜 색칠을 한 것마냥 휑했던 아파트 단지가 산뜻하게 물든다. 

더운 날씨에 내리 이틀 동안 문을 못 열고 지낸 주민들은 고역이었다. 하지만 긴팔 작업복을 입고 아침 일찍부터 공사를 진행한 현장 근로자들만큼은 아니었을 것이다. 잘 참아낸 여러 사람 덕분에 걷기 편한 길이 완성돼 갔다. 아스팔트를 단단히 굳혀야 해서 관리사무소에서는 다음 날 아침까지는 차량 진입을 막기로 정했다. 인내할 시간이 하루 더 연장됐다.

"맨날 이랬으면 좋겠어요" 아이들은 말했다 

저녁 무렵, 공사가 끝난 줄 알면서도 말끔해진 아파트 단지가 신기해서 자꾸만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러다 최근 수년간 볼 수 없던 광경 하나를 목격했다.

다른 날 같았으면 단지 안은 주차된 차들로 꽉 차 있어야 하고, 주민들은 인도로 다니거나 주차된 차들 사이를 요리조리 비집고 다녔을 것이다. 그런데 주차된 차가 없다 보니, 너른 단지 내에서 남자아이 둘이 맘 놓고 캐치볼을 하고 있다.

어느 집 애들인지 궁금해서 내려가 봤다. 삼형제네였다.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닐 남자아이 셋이 코로나19로 집 밖으로 잘 나오지도 못하다 차 없는 틈을 타 아파트 단지를 전세내고 있었다. 뻔한 답이 돌아올 줄 알면서도 땀을 뻘뻘 흘리며 놀고 있는 형제한테 질문을 던져 봤다.  

"오래간만이네. 차 없어서 너무 좋다. 그치?"
"네, 맨날 이랬으면 좋겠어요."


덜 굳은 아스팔트를 밟지 않으려고 발끝을 살피며 인도로 보행하는 어른들과 달리 형제는 단지를 활보하며 하고 싶은 것을 맘껏 하며 돌아다녔다.
 
도색 작업을 마치고, 차량이 없는 넓은 아파트 단지에서 형제가 캐치볼을 하고 있다.
 도색 작업을 마치고, 차량이 없는 넓은 아파트 단지에서 형제가 캐치볼을 하고 있다.
ⓒ 박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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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가 지어지고 초창기에 입주할 때만 해도 단지 내 차량이 지금처럼 많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러니 당시에는 아이들이 뛰놀 수 있는 공간이 넉넉해 놀이터를 따로 둘 필요가 없었다고 한다. 주차할 공간조차 부족한 지금은 아파트 제일 구석으로 놀이터가 밀려나 있다.

예나 지금이나 아파트 세대수에는 변함이 없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주차 공간은 부족해졌고, 밤이면 늦게 귀가한 차들이 도롯가에 열을 짓는다. 단지 내에서 왕왕 접촉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결국 관리사무소 측은 주민들 차량을 일일이 등록하여 주차 스티커를 발부하는 시스템까지 도입하기에 이른다. 

작년에는 아파트 인근에 20~30대는 너끈히 주차할 수 있는 쌈지 주차장도 생겨났다. 쌈지 주차장이 생기면 저녁마다 벌어지는 주차 전쟁이 끝날 줄로만 알았다. 예상은 한참을 빗겨 갔다. 그 사이 세대마다 차량 구매가 늘었을 리가 없는데도 말이다.

관리사무소에서 아스콘 포장 공사와 지하주차장 에폭시 공사를 왜 주민들 숙원사업이라고 말했는지 알고도 남는다. 지금 아파트는 주민들보다 주민들이 소유한 차량이 관리 중심에 놓여 있다.

그런데 이번 공사로 주민의 한 사람인 나는 차 없는 아파트가 얼마나 편한지 알아버렸으니 앞으로 이를 어쩌면 좋누.

태그:#차 없는 아파트 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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