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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에서 섬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섬은 유토피아적 동경의 세계다. 천진무구의 아름다운 자연과 일상에서 보기 어려운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기대감 때문이다. 거꾸로 섬에 사는 사람들은 그곳을 탈출하고 싶은 고립의 세계이기도 하다. 어느 곳에 존재 하느냐에 따라 섬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다를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은 섬에서 태어납니다."

지난 2018년 맹골죽도를 대상으로 한 KBS 다큐 '공감'의 첫 내레이션이다.

"좋고 나쁘고가 어디 있어! 태어났으니 살지."

이 다큐에 나온 할머니의 말이다. 어떻게 보면 관조적이고 운명적으로 느껴지는 할머니의 답변은 이 섬에서 지금껏 살아오게 만든 질긴 삶의 끈처럼 느껴진다.

이 다큐의 제목은 '바위에 붙어사는 섬' 맹골도다. 맹골도 사람들의 삶을 가장 현실적으로 표현한 말 같다. 농토라곤 없는 바위로 이루어진 맹골도 주민들이 바닷가에서 미역과 같은 해초류를 뜯어 살아가고 있는 것을 표현한 듯하다.

천혜의 자연과 아름다운 풍광 때문에 이 일대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는 맹골도는 여행으로 찾는 이들에게는 낙원처럼 느껴진다. 맹골도에 막 도착하기 전 바다 위로 멀리 가물가물 병풍도가 보인다. 거대한 암벽으로 이루어진 병풍도는 바다 위에서 커다란 성체처럼 떠 있다.
 
아득하게 신기루처럼 보이는 병풍도는 누구나 염원하는 이상향의 세계를 연상시킨다.
▲ 맹골도 가는 길에 보이는 병풍도 아득하게 신기루처럼 보이는 병풍도는 누구나 염원하는 이상향의 세계를 연상시킨다.
ⓒ 정윤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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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하게 희미한 모습으로 다가오는 이 섬은 오래전 사람들이 꿈꾸었던 파라다이스를 떠오르게 한다. 아마도 이는 고단한 현실에서 벗어나 도달하고 싶은 누구나의 꿈이 아닌가 싶다. 병풍도는 그렇게 가까운 실체로 다가오지 않고 아득한 모습으로 있다가 사라진다.
 
온통 바위로 이루어진 맹골도는 아름다운 경관을 보여준다.
▲ 맹골도 해안 전경 온통 바위로 이루어진 맹골도는 아름다운 경관을 보여준다.
ⓒ 정윤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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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골도에서 맞이하는 아침은 평화롭고 고즈넉하다. 섬에서 맞이하는 아침은 항상 고요하고 먼 세계에 와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는 작은 섬에서 맞이하는 아침은 그래서 더 선명하다.

맹골도의 노을은 망망대해의 먼 서해로 물들고 아침 해는 거차도 방면 섬들 사이에서 떠오른다. 아침해는 언덕바지에 오밀조밀 붙어 있는 마을과 바다, 섬의 조화를 통해 평화로움과 아름다움을 합작한다.
 
멀리 거차도 위로  아침해가 떠오를 때의 고즈넉한 모습이 아름답다.
▲ 일출무렵의 맹골도 멀리 거차도 위로 아침해가 떠오를 때의 고즈넉한 모습이 아름답다.
ⓒ 정윤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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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골도 언덕에서 보면 이곳의 센 물살을 볼 수 있다. 밀물과 썰물이 교차할 때면 섬과 섬 사이로 조류가 맹렬한 기세로 빠져나간다. 웬만한 배는 역류하여 오르기 힘든 물살이다.

최고품질 미역
 
맹골도 해변은 모두 미역밭이라 할만큼 자연산 미역이 잘 자란다. 맹골도 주민의 주 수입이 미역에서 나온다.
▲ 맹골도 미역채취 맹골도 해변은 모두 미역밭이라 할만큼 자연산 미역이 잘 자란다. 맹골도 주민의 주 수입이 미역에서 나온다.
ⓒ 정윤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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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 조류의 흐름 때문에 맹골도에서 나는 미역은 맛과 품질이 좋기로 유명하다. 마을 사람들은 목숨을 걸듯 이 바위에 붙어 있는 미역을 채취하여 생계를 유지한다. 맹골도 바위 주변에는 미역, 톳, 돌김, 청각 등의 해초류와 해산물들이 많아 섬 주민들은 이것들을 채취하여 살아왔고 지금도 특별히 변한 것은 없다. 고단한 삶의 여정이 바위와 함께 해온 세월이었다.

사람이 쉽게 접근하기 힘든 바위에는 최고 품질을 자랑하는 미역이 자생한다. 미역은 조선시대에 곽전(藿田)이라 하여 전답을 사고팔 듯 하였다. 한때 이 섬의 소유자였던 녹우당 해남윤씨가에는 곽전 고문서가 있다. 섬사람들은 이곳을 '갱번'이라 하여 공동으로 관리하고 이곳에서 나는 미역을 공동채취하여 나누어 가진다.

미역은 오래전에도 그 가치가 컸지만 지금도 높은 가격에 팔리고 있어 부가가치가 높은 해산물이다. 미역은 20가닥이 1뭇으로, 1뭇은 100만 원 가량을 오갈 만큼 높은 가격에 팔리고 있다.

맹골도 사람들은 일년 중 미역을 채취하는 것이 가장 큰 일이고 행사다. 이 때문에 미역을 관리하고 채취하기 위해 떠났던 섬도 돌아온다. 어찌보면 맹골도 사람들이 지금껏 흩어지지 않고 모여 살 수 있게 한 가장 큰 매개체이기도 하다.

맹골죽도는 왼딴 섬 같지 않게 깨끗하게 개조한 집들이 들어서 있고 관광객들이나 낚시객들이 머물 수 있는 민박집도 있다. 민박집에는 약간 낡아 보이기는 하지만 펜션 못지않게 전기밥솥, 가스레인지, 냉장고, 에어컨, 텔레비전, 선풍기를 다 갖추고 있다. 좌변식 화장실과 샤워시설도 갖추어져 있어 문명의 편리함을 다 누릴 수 있다.

맹골도는 물 사정이 좋지 않은 편이지만 집집마다 큰 저수 탱크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물을 사용하는 데에는 크게 불편함이 없어 보인다. 머리도 감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물은 충분히 나왔고 온수기로 인해 따뜻한 물까지 나온다. 민박집 방 밖으로는 바다가 보이는 맹골도가 한눈에 들어와 아름다운 뷰를 방 안에서 감상할 수 있다.

전기의 혜택은 이곳의 문명을 가장 빠르게 변화시켰다. 1998년부터 맹골도에 내연발전소가 운영되어 전기를 쓰는데 제약이 없을 뿐만 아니라 밤에도 가로등이 적막한 섬마을을 밝힌다.

아름다운 자연과 식생
 
육지에만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 뽕나무가 자생하고 있다.
▲ 맹골도 자생 뽕나무 육지에만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 뽕나무가 자생하고 있다.
ⓒ 정윤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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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골도의 자연풍광 만큼은 순진무구 그 자체다. 마을과 선착장 주변을 빼고는 사람들의 자취가 거의 없기 때문에 자연의 원형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맹골도에서는 육지에서 보기 힘든 식물들이 자생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해양성 기후에 맞는 다양한 식물들이 분포하고 있는데 그중 자생 뽕나무와의 조우는 다소 의외다.

맹골죽도의 북쪽 뱀머리 언덕 일대에는 키 작은 뽕나무가 자생하고 있다. 바람 많은 언덕 탓인지 키가 자라지 않아 납작하게 버티고 있다. 육지의 누에 키우는 뽕나무만 생각하다가 섬에서 만나는 뽕나무가 생소하게 느껴진다.

맹골도 일대에는 섬에서 자생하는 것으로 알려진 방풍도 자주 눈에 띈다. 방풍은 향약(鄕藥)의 하나로 약용으로도 재배하고 있다. 자생 방풍을 옮겨 심은 것인지 민가 안마당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오랜 고립의 시간이 주는 적막감과 새로운 문명이 주는 변화 사이에 서 있는 맹골도. 그렇게 맹골도는 혼재된 시간 속에 있다. 순진무구 태초의 자연을 느끼고 싶으면 맹골도 언덕바지에서 서해바다를 향해 서보라. 모든 상념들이 사라질 것이다.

태그:#맹골도, #병풍도, #미역밭, #곽전, #뽕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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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를 중심으로 지역의 다양한 소재들을 통해 인문학적 글쓰기를 하고 있다. 특히 해양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16세기 해남윤씨가의 서남해안 간척과 도서개발>을 주제로 학위를 받은 바 있으며 연구활동과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 <녹우당> 열화당. 2015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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