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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시를 읽지 않는 시대'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불리는 까닭, 시를 읽지 않아서가 아니라 시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금이나마 익숙함을 만들어 드리기 위하여 일주일에 한 편씩 시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오늘 소개하는 시와 산문은 네이버 블로그 '시를 읽는 아침'에 동시에 소개됩니다.[편집자말]
이별은 미의 창조
- 한용운

이별은 미의 창조입니다
이별의 미는 아침의 바탕 없는 황금과 밤의 올 없는 검은 비단과 죽음 없는 영원의 생명과 시들지 않는 하늘의 푸른 꽃에도 없습니다
님이여 이별이 아니면 나는 눈물에서 죽었다가 웃음에서 다시 살아날 수가 없습니다 오오 이별이여
미는 이별의 창조입니다

- 한용운 시집 <님의 침묵> 중에서


한용운 시인을 생각하면 '님의 침묵'을 떠올립니다. 또는 '알 수 없어요'나 '나룻배와 행인'를 떠올리게 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오늘 소개한 '이별은 미의 창조'를 좋아합니다.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역설의 미학, 그 핵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용운 시인을 소개하는 까닭은 이제 곧 3월 1일이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1919년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참여하고 체포되어 3년간의 복역을 하기도 했습니다. 여러 시인이 변절을 한 반면, 민족의 자존심을 끝까지 지켰죠.

그러나 시인은 광복을 맞이하기 1년 전 향년 65세의 나이로 입적을 하게 됩니다. 비록 광복을 보지 못했지만, 극락에서 기쁘게 광복을 맞이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역설의 미학
 
'미가 이별의 창조'일 수 있는 까닭은 이별이 '거자필반'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미가 이별의 창조"일 수 있는 까닭은 이별이 "거자필반"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 envato ele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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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시인의 시 중 '역설의 미학'이 가장 극명하게 담겨있는 시입니다. 그래서인지 '이별은 미의 창조'라는 제목도 쉽게 이해되지 않습니다. 어떻게 이별이 미의 창조가 될 수 있을까요. 역설과 변증법적 사유방식은 한용운 시인만의 독특함이라기보다 불교적인 사유에서 출발했다고 보는 것이 적당합니다.

전통적으로 불교(선종)에서는 '불립문자(不立文字)'의 진리를 탐구하기 위하여 역설과 부정의 변증법을 사용했습니다. 불립문자란 '언어문자의 형식에 집착하지 않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법을 전하고 깨닫는다'는 의미입니다. 불립문자를 깨닫는 방법이 바로 화두 던지기인데요, 그래서인지 '미는 이별의 창조입니다'라는 문장도 시인이 던진 화두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 시는 '님의 침묵'의 연장선상에서 읽으시면 편합니다. '님의 침묵'에서 화자는 얘기합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라고요. 이 문장에서 '회자정리, 거자필반'을 떠올리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이 문장은 중·고등학교 때 국어시험의 단골이기도 했습니다.

회자정리 거자필반

'미가 이별의 창조'일 수 있는 까닭은 이별이 '거자필반'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화자는 이별 없는 만남을 '아침의 바탕 없는 황금과 밤의 올 없는 검은 비단과 죽음 없는 영원의 생명과 시들지 않는 하늘의 푸른 꽃'이라고 얘기합니다.

화자가 말하고자 하는 역설의 최종적인 의미는 3행에 있습니다. 이별은 '눈물에서 죽음을 바라는 행위'가 아니라, '웃음에서 다시 살아남기를 바라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결국 이 시에서 말하고자 하는바, 이별을 통해서 죽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살아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습니다. 이것을 마지막 행에서 수미일관으로 강조합니다. '미는 이별의 창조입니다'라고요.

그렇다면, 시인이 왜 이 시를 썼을까 생각해 봅니다. 중의적으로 읽어낼 수 있겠지만, '민족'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잃어버린 조국을 안고 살아가야만 하는 서글픈 시인 자신과 우리 민중들에게 각별한 감동과 위안을 주기 위함이 아니었을까요.

또한 끝도 보이지 않는 일본제국주의 치하 또한 언젠가 끝날 것이라는 믿음, 조국의 광복이 찾아오리라는 희망을 품기 위한 믿음에 근거했을 것입니다.

시 쓰는 주영헌 드림.

덧붙이는 글 | 시와 산문은 오마이뉴스 연재 후, 네이버 블로그 <시를 읽는 아침>(https://blog.naver.com/yhjoo1)에 공개됩니다.


태그:#한용운시인, #이별은미의창조, #님의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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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쓰기'보다 '시 읽기'와, '시 소개'를 더 좋아하는 시인. 2000년 9월 8일 오마이뉴스에 첫 기사를 송고했습니다. 그 힘으로 2009년 시인시각(시)과 2019년 불교문예(문학평론)으로 등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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