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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를 옹호하는 목소리 중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어를 금지시킨 정책을 통해 동부 러시아계 주민들을 차별했다"라고 주장이 온라인 상에서 꽤 퍼지고 있다. 우크라이나어와 러시아어는 과연 어떠한 관계이며, 우크라이나에서는 실제로 러시아어 화자에 대한 차별이 존재했을까?

이전 기사에서도 잠시 다룬 적이 있듯,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어가 '공용어'였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우크라이나는 1996년 헌법에서 우크라이나어를 '유일한' 공용어로 지정했다. 따라서 학교 교육이나 공공기관 등에서는 당연히 공용어인 우크라이나를 사용한다. 하지만 TV 프로그램이나 영화, 신문 등에서는 러시아어도 상당 부분 사용되어 왔고 러시아어 전문 채널과 신문 역시 존재한다.

그러던 중 2012년 친러 성향의 야누코비치 정권 때, 인구의 10% 이상이 사용하는 언어에 대해 해당 지역 '공식어'로 사용할 수 있다는 언어법이 발표된다. 그로 인해 동부 상당수 지역에서 러시아어를 '공식어'로 사용할 수 있게 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국가 전체의 언어 정책에서 러시아어가 유일한 '공용어'인 우크라이나어와 동등한 지위를 갖게 된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또, 2014년 유로마이단 혁명 이후 들어선 정권이 개정한 언어법은, 러시아어와 러시아어 사용자에 대한 차별이라기보다 야누코비치 정권이 만든 악법을 원래대로 되돌린 것이다. 게다가 개정된 언어법은 관공서나 교육기관 그리고 TV 등의 매체에서 우크라이나어 사용 비율을 높이겠다는 것이지, 일상 대화에서의 러시아어 사용을 금지시킨 것은 아니다.

특히 개정된 언어법은 2014년에 개정 논의가 시작되어 2019년에 개정된다. 그 사이 러시아의 크름반도 강제병합, 돈바스 반군 지원 등,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위협은 지속되었고, 그로 인해 러시아에 대한 우크라이나인들의 감정은 악화 일로를 걷게 된다. 즉, 우크라이나어 중심 정책의 배경에는 러시아의 위협 역시 일정 부분 영향이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어와 러시아어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럽의 언어 다양성에 대한 이해가 우선되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단일 언어로 한국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이중언어자(바이링구얼) 혹은 다중언어자(멀티링구얼)에 대한 이해가 보편화되어 있지 않다. 

인기 예능프로그램인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 중인 축구선수 박주호의 자녀들이 보여주는 외국어 능력이 화제였다. 나은이가 독일어나 영어를 자연스럽게 말하는 장면들이 방송되며 많은 이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나은이 어머니의 출신국가인 스위스는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로망슈어, 총 4개 언어가 공용어로 사용된다. 또, 벨기에는 네덜란드어, 프랑스어, 독일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이렇듯, 오래전부터 전쟁도 많고 그만큼 국경선 변화도 많았던 유럽에서는 한 나라 안에서도 다양한 언어가 사용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한 나라 안에서 언어권이 다른 지역의 사람들과 소통이 전혀 불가능할까? 그렇지 않다.

벨기에를 예로 들자면, 프랑스어가 주로 사용되는 왈룽지역에서는 프랑스어 의무교육 외에도 네덜란드어 역시 제2언어로 교육한다. 이처럼, 유럽의 상당수 지역에서는 태어나서 자라는 환경 자체가 이중언어자 혹은 다중언어자가 될 수밖에 없는 환경인 것이다.

우크라이나어와 러시아어

우크라이나의 언어 환경 역시 유럽의 다른 지역들과 마찬가지이다. 우크라이나는 특히 서부지역을 중심으로 우크라이나어가 주로 사용되어왔지만, 오랜 기간 소련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러시아어 역시 사용할 수 있다.

그뿐 아니라 1930년대의 스탈린에 의한 인위적인 대기근인 '홀로도모르' 이후, 우크라이나인의 인구가 감소한 자리에 많은 러시아인들이 이주해 오면서, 러시아어 사용자는 더욱 늘어갔다. 그렇다면 러시아계 주민 즉 러시아어 화자에게 있어서 우크라이나어는 어떨까?

소련 해체 이후, 우크라이나는 우크라이나어를 '유일한 공용어'로 지정했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당연히 우크라이나어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졌다. 

나는 과거 리비우 지역을 여행할 때, 버스투어에 참가한 적이 있다. 투어 가이드의 설명은 우크라이나어로 이루어졌는데, 그 투어팀에는 러시아인 관광객도 참여했다. 가이드의 설명을 듣던 러시아인 관광객들이 "절반밖에 못 알아듣겠어"라고 토로하던 기억이 난다.

이는 바꿔 말하면, 우크라이나어 교육을 전혀 받지 않은 러시아인들도 '절반씩이나' 알아들을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또,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어와 러시아어가 60% 정도 유사하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다시 말하면, 아무리 러시아계 주민이라고 하더라도,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나 우크라이나의 학교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우크라이나어가 유일한 공용어로서 관공서 등에서 사용된다고 하더라도, 언어 때문에 일상생활에 어려움이 생길 정도는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어와 러시아어의 유사성, 대부분의 우크라이나인들이 러시아어를 사용할 수 있다는 점 등을 생각하면, 우크라이나는 왜 처음부터 러시아어에 대해 '공용어' 지위를 인정하지 않았는지 의문이 든다.

우크라이나는 소련의 해체로 인해 생겨난 나라라고 많은 사람들이 오해한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폴란드, 오스트리아 제국, 러시아 제국 등으로부터 민족 독립을 이루기 위한 민족주의 운동이 이어져 왔다.

그러다 소련에 병합되기 전 1917년에 우크라이나는 짧은 독립을 맞이한다. 그리고 1921년 소련에 병합되는데, 우크라이나는 결코 자진해서 소련에 들어간 것이 아니었다. 1917년부터 1921년 사이에 우크라이나의 독립을 추구하는 세력과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볼셰비키 사이의 전쟁이 벌어지고, 결국 볼셰비키 세력에게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세력이 패하면서 소련에 병합된 것이다.

게다가, 1930년대의 홀로도모르(스탈린의 집단농장 정책에 의한 인위적인 기근)에 의해 우크라이나인들이 대거 굶어 죽는 사건이 벌어진 것 등, 소련 치하의 우크라이나는 소련 중앙정부에 의해 가혹하게 수탈당하는 식민지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고 볼 수 있다.

때문에, 소련 해체와 함께 다시 독립을 맞이한 우크라이나에서 우크라이나어 중심 정책이 시행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러시아어 화자가 많다고 해서 러시아어를 공용어로 지정하자는 것은, 마치 우리가 일제 식민지에서 벗어나 독립을 맞이했을 당시, 일본어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많으니 일본어도 공용어로 지정하자고 주장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이다.

게다가 우리는 국어 순화 운동을 통해 일본식 표현을 우리말로 바꾸는 작업을 오랫동안 해 오고 있지 않은가. 물론, 우크라이나어와 러시아어는 한국어와 일본어의 관계보다 훨씬 더 유사성이 높은 언어이기에 완전히 금지시키기는 어렵다. 그래서 공식적인 공용어는 우크라이나어만 지정하되, 일상적으로는 러시아어도 사용하는 형태로 우크라이나의 언어 환경이 조성되어 온 것이다.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어 화자에 대한 차별은 없었나?

러시아 프로파간다의 주장을 그대로 옮기는 일부 누리꾼들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어 금지 정책을 시행해서 러시아계 주민들을 차별했다'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앞서 언급한 우크라이나 언어법 개정에서 알 수 있듯이 일상적인 러시아어 사용을 금지하는 정책이 아니다.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상황에 대해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장면을, 얼마 전 젤렌스키 대통령이 부차 지역을 방문한 뉴스에서 확인할 수 있다. 부차 지역은 러시아군이 퇴각한 후, 러시아군에 의해 집단학살을 당한 민간인 시신들이 대거 발견되면서 전 세계적인 공분을 불러일으킨 곳이다.

지난 4월 4일,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대통령은 부차 지역을 직접 찾아 현장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주민들에게 구호물품을 나눠주는 현장에 대통령이 등장하자, 주민들이 대통령을 향해 '다른 곳으로 피하지 않고 국민들과 함께 있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대통령에게 감사를 전하는 부차주민들
 대통령에게 감사를 전하는 부차주민들
ⓒ YTN 뉴스영상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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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은 러시아어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Владимир, спасибо что Вы остались с народом, никуда не уехали.(블라디미르, 아무데도 가지 않고 사람들과 함께 있어 주셔서 고마워요.)
Все Вас благодарят, что Вы с нами(우리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Спасибо Вам(감사합니다.)
Спасибо(감사합니다.)
Все люди благодарят Вам(모든 이들이 당신에게 감사합니다.)


화면에 비친 여성 이외에도 주변 사람들이 '스빠씨바(Спасибо)'라고 외치는데, '스빠씨바'는 러시아어로 '감사합니다'라는 표현이다. 우크라이나어로 '감사합니다'는 표현은 '댜크유(Дякую)'로 러시아어 표현과는 발음과 표기가 전혀 다르다.

즉, 주민들은 대통령을 향해 아무런 거리낌 없이 러시아어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나 러시아군의 만행으로 인해, 러시아에 대해서는 치를 떠는 그 부차 지역에서 말이다. 우크라이나의 언어 환경은 이어지는 대통령의 대답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Вы молодцы (여러분이 훌륭합니다. : 러시아어)
Ви все це витримали (여러분들이 다 견뎌낸 거죠. : 우크라이나어)


젤렌스키 대통령은 하나의 발언 안에서 우크라이나어 문장과 러시아어 문장을 섞어서 사용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우크라이나어 표현을 러시아어로 'Вы всё это выдержали'로 고칠 수 있는데, 발음, 표기, 단어 등에서 차이를 보인다.

이것이 바로 유럽의 언어 다양성이자, 우크라이나의 언어 환경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예시이다. 일상에서의 러시아어 사용을 금지시키고 러시아어 화자를 차별했다면, 과연 이런 장면이 우크라이나에서 나올 수 있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우크라이나에서의 우크라이나어 중심 정책은 주권국가로서 당연히 취할 수 있는 정당한 정책이다. 게다가 여기에는 러시아의 끊임없는 위협 역시 한몫했다고 할 수 있다. 또, 우크라이나어 중심 정책으로 인해 러시아계 주민, 러시아어 화자들이 차별당하거나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 역시 생각하기 어렵다.

러시아 프로파간다를 그대로 옮기며 우크라이나의 언어정책을 비난하는 것은, 언어의 다양성과 다양한 언어 문화가 한데 어우러져 살아가는 다문화사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데서 비롯된 오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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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다문화사회전문가. 다문화사회와 문화교류에 특히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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