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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쓴다는 것은 드러내고 싶지 않은 더럽고 후미진 구석까지도 정직하게 적어내는 일이다. 비릿하고 볼품없는 속내는 용감한 사람만이 끄집어낼 수 있다. 오직 용감한 자들만이 스스로를 직면하고 자기 정화를 거쳐 비로소 도약하는 글로 나아간다. "서정은 세계의 자아화"라는 면을 여실히 보여주는 시는 더더욱 그러하다.

시는 더 적은 말로 더 많은 말을 전달하는 문학이다. 내가 생각했을 때, 시 속에 드러나는 것은 네 가지인 것 같다. 첫째, 시인이 놓여있는 시대상, 둘째, 시인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관점, 셋째, 시인이 경험한 개인적인 역사, 넷째, 그 속에서 시인이 발견한 의미. 이 모든 것이 시 한 편에 응축된다. 그래서 시를 쓰기 위해서는 오랜 습작과 긴 퇴고의 과정이 필요하다. 물론 태생적으로 천재적인 시인들은 예외다.

시는 결코 가벼운 감성팔이가 아니다. 비유와 상징, 묘사라는 기법을 통해 전개되는 시는 오랜 여운을 주고 계속 곱씹게 하는 문학이다. 시는 표면적인 의미보다도 내포된 의미가 깊을수록 더 긴 여운을 준다. 그래서 시인은 엄선된 시어를 통해 거대한 의미를 구조화하는 데 도가 튼 전문가라고 볼 수 있다. 식상하지 않은 참신한 은유와 묘사로 시대에 경종을 울리거나 인생 전체를 관조하고 통찰하는 시. 그런 시는 두 번 세 번을 읽게 된다. 좋은 시를 쓴 시인을 동경하는 일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수순이다.

시는 시를 쓴 시인이 누구냐에 따라 스타일이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어떤 소재를 좋아하는지, 어떤 묘사를 잘 쓰는지, 어떻게 색다른지, 주제의식을 던지는 방식이 어떠한지 등등, 시인마다 가지고 있는 탁월한 재능도 다양하다. 그래서 시에도 색깔과 모양이 있고 특정 시를 좋아하는 취향이 존재한다. 시를 좋아할 수는 있지만 좋아하는 시가 다른 것도 그런 이유다. 물론 취향과 성별, 종교와 국적, 나이 등등을 불문하고 모두의 마음에 감동을 주는 명시도 존재한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 에릭 핸슨의 아닌 것, 사무엘 울만의 청춘, 랭스턴 휴즈의 꿈, 웬델 베리의 최고의 노래, 정채봉의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나태주의 풀꽃, 홍시화의 눈 위에 쓰는 겨울 시, 기형도의 안개, 신경림의 나무, 박노해의 아름다운 나이테, 최영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 이소호의 사과문 등등. 나는 다양한 시를 좋아하는 편이다. 시인들이 내 선생님이고 시들이 내 교과서였다. 

한 문예지에 '나태주라는 슬픔'으로 글이 실렸었다. 그 글의 요지는 나태주 시인의 시들은 예술성, 창조성이 떨어지며, 모두가 공감할만한 보편적이고 평범한 정서만을 노래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나는 나태주 시인의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 글의 논지대로라면 나 같은 독자 역시 나 같은 시인 역시, 이 시대 시문학의 슬픔에 일조한 것일 테다.

문학의 유용함은 독자의 가슴에 와닿아 의미가 생길 때 만들어진다고 본다. 그래서 나는 "시란 자고로 유명한 시가 아니라 유용한 시가 진짜 시다"라고 하신 나태주 시인의 말에 깊이 공감한다. 한 인터뷰에서 나태주 시인은 자신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제 시가 대단하지 않은 것 같다고 해요. 저는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해요. 제 시는 대단한 시가 아니에요. 그런데 대단한 시라면 대단하지 않은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해요. 시는 대단하지 않아야 해요. 조그마해야 하고, 쉬워야 하고, 낮아야 하고, 부드러워야 하고, 이미 한 소리를 또 해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시인이 근엄한 표정을 짓고 '내가 시인인데 덤벼!' '니들이 게살 맛을 알아?'라고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나 시인인데, 나는 사실 잘 모르겠어요, 같이 놀아요'가 맞아요."

너무 어려운 시는 가슴에 와닿는 데 오래 걸린다. 누군가 해석해준 글이나 평론한 글을 보고 나서야 이해하게 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해되는 것과 감동이 오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겹겹이 쌓인 비밀을 파헤치면서 감동을 얻는 시도 물론 있었다. 그래서 내게 조금 어려운 시들을 음미하며 받아들여 보려 애쓰다가, 마침내 피할 수 없는 진실을 깨달았다. 내가 애써도 이해할 수 없는 시는 내가 쓸 수 없는 시라는 것을. 나라는 사람의 재질을 말이다.

고차원적이고 의미심장하며 여러 겹의 은유 속에 꼭꼭 숨긴 신비로운 의미를 가진 시, 그런 시가 좋은 때도 있다. 다만 나는 너무 철저하게 숨어버린 숨바꼭질 게임이 너무 어렵다. 시답잖은 시라 하여도, 부끄러움은 내 몫이라도, 나는 머리카락 몇 가닥 보이게 숨고 싶다. 숨바꼭질의 묘미는 찾는 그 순간에 있으니까.  
 
저자 양윤미/ 새새벽책방
▲ 오늘이라는계절 저자 양윤미/ 새새벽책방
ⓒ 새새벽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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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좀 더 친밀하게 독자에게 가닿길 바라는 출판사를 만난 건 운명인 것 같다. 나는 우리의 일상 자체가 예술이라 믿는다. 우리의 오늘이 가장 눈부신 계절이라 믿는다. 좀 더 작고, 더 낮은 마음으로, 친근한 소재로 적힌 나의 시들을 용기 내 꺼내본다. 시집에 실리게 될 39편의 시와 10편의 디카시, 5편의 에세이는 전부 "오늘", "지금 이 순간의 계절"에 대해 말한다.

나의 시집 <오늘이라는 계절>이 읽는 분들에게 달콤 쌉싸름한 여운을 주면 좋겠다. 가감없이 보여지는 나의 '자기 드러냄'이 밉지 않기를 바란다. 오늘을 견디는 유용한 이야기였으면 좋겠다. 나의 시들을 읽고 수많은 오늘들로 쌓아 올린 인생의 숲을 사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양윤미 시민기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claire1209)에도 업로드 됩니다.


오늘이라는 계절

양윤미 (지은이), 새새벽책방(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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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문화예술 교육 활동가/ 『오늘이라는 계절』 저자 - 5년차 엄마사람/ 10년차 영어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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