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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조선 사상을 설파하는 김지하씨
▲ 남조선 사상을 설파하는 김지하씨 남조선 사상을 설파하는 김지하씨
ⓒ 조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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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본령은 아무래도 문인이다. 글쓰기가 본업이다. 본업으로 돌아왔다. 1982년 시집 <타는 목마름으로>에 이어 연말에 <대설 남(南)> 제1권을 간행했다. 출감 후 사실상 처음으로 쓴 작품이다. 가끔 서울 나들이나 원주의 치악산을 오르는 것 말고는 대부분 이 책의 집필에 매달렸다. 2권과 3권은 이듬 해 간행되었다.

<대설 남>은 그 구성이 "첫째는 수산(水山)이라, 둘째는 무두판이라 셋째는 출관(出關)이라 붙여"져 "그 각각이 다시 세 마당씩 쯤으로, 그 각각이 또 다시 세 대목 쯤으로"(1권 26~27면) 이루어진다.

<대설>이란 명칭에 대해서 저자는 "시끌시끌한 잔망스러울 '소(小)'자, 소리 '설(說)'자 잔소리 '小說' 따위나, 저 혼자 아는 소리 남은 죽어도 모를 소리 두 편 이상 읊어대면 시시할 시자 (詩) 나부랭이로써 말하고 노래할 수 있겠느냐"(1권 17)고 하였으나, 기실 "소설이 엉터리라는 얘기가 아니고 소설이든 시든 대설처럼 쓸 수도 있는 얘기" (<신동아> 6월호 <최일남이 만난 사람>참조)라고 해명한다. 

그러나 작품 <남>의 흐름에 비춰 볼 때 <대설>이란 우연히 붙여진 게 아니라 기존의 문학적 양식이 지닌 답답함에서 새 출구를 찾아보려는 의도에서 생성되었음을 느끼게 한다. (주석 1)

그는 '남(南)'과 관련 무진 관심을 보였다.
<대설 남>외에도 <남녘 땅 뱃노래>(김지하 이야기 모음)를 펴내고 뒷날 <남조선 뱃노래>로 개제하여 간행했다. 김지하는 증산교의 창도자인 강일순의 사상을 빌어 '남'을 설명한다.

그가 '남조선 사상' 이라고 했을 때의 '남'은 나머지라는 뜻이고 '남조선'은 남아 있는 조선사람이라는 뜻이다. 유교 믿고 불교 믿고 기독교 믿고 다 믿고 뽐내고 다니는 사람말고, 지지리 못나고 이것도 못하고 저것도 못하고 유교ㆍ불교ㆍ기독교 다 믿어 봐도 여기서도 혜택 받지 못하고 환영받지 못하고 그래서 이것저것 다 믿을 수 없는 소외된 사람, 뿌리뽑힌 사람, 버려진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이제 막 시작된 후천개벽에 있어서의 주역이라고 말했다.

이런 것에서 출발하여 혼란과 상극과 파탄에 접어든 인류 전체ㆍ생태계 전체ㆍ영계(靈界)전체, 하늘과 땅과 인간 모두 합쳐 우주 전체의 정치적 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주석 2)

김지하의 '남'은 "나머지 조선사람"을, 뿌리뽑힌 민중을 의미한다. 그래서 연작의 대설 <남>은 <오적> 등 담시와는 또 다른 장르로서 소외된 민중에 관한 문학적 소양과 상상력을 어김없이 발휘한다. 어떤 내용을 남았는가. 

<남>은 우선 그 무대가 광역의 우주로부터 한반도 구석까지이고, 시간은 태고적부터 초현대적 시대까지를 상징하는, 동서고금 어느 나라 문학에서도 볼 수 없었던 시공적 웅대성을 보여준다. 소재적 웅대성과 걸맞게 그 양식에서도 작가는 "큰 거짓말"로 "판소리에 적지 않게 의존" 하면서도 (<동아일보> 84년 10월 2일자 최원식 교수와의 대담) "온갖 잡동사니, 세상살이의 고상한 것과 지저분한 것을 다 받아들이며, 노래와 시를 다 거두어 들이고, 욕설, 잡담, 우수꽝스러운 것을 막론하고 다 포괄한다는 뜻에 있어서 광대소리, 큰소리라고 할  수 있"(<학원> 1984. 10월호 김홍규)는 장르의 통합과 융화와 계승을 시도하고 있다. (주석 3)

그의 책이 잇따라 출간되고 베스트셀러에 오르기 시작하자 비판의 목소리도 거세게 나타났다. 70년대 암암리에 그의 문학을 구해 접하고 아끼며 더불어 울분을 쌓아온 독자들은, 이러한 김지하의 변모에 어리둥절하며 심한 배신감을 느끼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서슴치않고 비난의 화살을 퍼붓는다. 도대체 김지하는 70년대에 행동해왔던, 그리고 저 탁월한 산문 <양심선언>에서 우리 모두와 약속했던 "생명이 붙어있는 한까지 독재정권에 대항하여 투쟁할 것"이라는 신념을 포기한 것인가.

그는 정녕 사이비 종교의 싸구려 교주로 전락하고 말았는가. 아니면 '담시'나 팔아먹고, '대설(大說)'이라는 기상천외의 양식을 고안하여 천박한 호기심이나 울거내려는 상업주의와 결탁해버린 것은 아닌가. (주석 4)

위기철은 김지하에 대한 이같은 비판을 소개하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우리는 이제 좀 더 냉정해져야 할 것이다. 아직까지 엄연히 역량을 발휘하고 있는 한 시인을 70년대라는 신화(神話)로 덮어씌워 버리는(그것이 열광의 형태이든 배신감의 형태이든) 것은 바람직한 일이 못 된다. 우리가 진정 따져보아야 할 일은, 80년대 김지하 문학의 변화가 과연 근본적인 믿음까지 변해버린 '변절'인가, 아니면 단순한 문학적 대응양식 상으로 변한 '변모'인가 하는 점이다. (주석 5)

<대설 남>의 한 대목이다.

 힘 있어 끗발 좋은  들이야 매일매일이 잔치요 초친 지랄이겄지마는 
 끗발 없는 중생들은 매일매일이 줄초상이다
 논일 밭일에 흙파기, 산파기, 돌파서 보석캐기, 성쌓기, 탑쌓기, 비석세우기,
 전쟁 나가기
 대제국 확장에, 대역사
 노역에, 지상도솔천 건설에
 죽도록 일을 하고 두들겨맞고 다 뺏기고 주리고 병들어 소리없이 죽어가고
 입 뻥끗 한번 못 하고
 손발의 무거운 쇠사슬 끄으는 소리 절그럭 절그럭 절그럭
 땅을 기는 네 발 달린 짐승꼴이 되어
 …(중략)…
 꿈마다 울며불며 부른다
 몸부림치며 불러싸는다. (주석 6)


주석
1> 임헌영, <김지하의 '대설 남'이 말하는 것>, 임헌영 외, <김지하 그의 문학과 사상>, 104쪽, 세계, 1985.
2> 김지하, <밥>, 앞의 책, 43~44쪽.
3> 임헌영, 앞의 책, 105쪽.
4> 위기철, <살아있는 문학을 위하여, 김지하 시의 운동ㆍ민중ㆍ문학적 고찰>, <김지하 - 그의 문학과 사상>, 38~39쪽.
5> 앞의 책, 39쪽. 
6> 김지하, <대설 남(2)>, 131쪽, 창작과비평사, 1984.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인 김지하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태그:#김지하, #시인김지하평전, #김지하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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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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