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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그림책 모임을 무사히(?) 마쳤다. 이후 몇 주 사이에 참여자가 두 명 늘었다. 도서관에서 우리 모임을 지켜보던 사서 봉사자가 합류했다. 다른 한 명은 모임 글을 올렸던 카페를 통해 연락을 해왔다. 내가 생각하는 최대 인원은 8명 정도. 이제 한 자리 남은 셈이다.

첫 모임 발제는 내가 했고, 그 다음부터는 순서를 정했다. 당장 두 번째 모임부터 걱정이었다. 그림책을 읽고 감상을 나누는 거라면 괜찮다. 하지만 우리 모임은 그림책이라는 장르에 대해 공부하는 모임이다. 다른 모임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선 각자 맡은 이론서 부분을 충분히 소화해야 한다. 그림책 공부가 처음인 이들에게는 쉽지 않을 테다.

모임 전 발제자들에게 연락을 했다. 혹시 도와줄 건 없는지 물어보고 함께 보면 좋을 그림책을 따로 준비했다. 발제하는 이가 가장 많이 배운다는 유익은 얻어가되 부담은 최대한 덜어주고 싶었다.

다 같이 모이면 좋은데 쉽지 않다. 갑자기 배탈이 나는 건 막을 수 없고, 급한 일이란 원래 급하게 생기는 거니까. 한 번은 모임날 아침에 발제를 맡은 이가 바삐 연락을 해왔다. 아이가 장염에 걸렸다고 한다. 사실 이럴 때를 대비해 항상 대타로 뛸 준비를 했었다. 성실하게 참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언제나 돌봐야 할 가정이 먼저다. 그런데 아이를 친정 엄마에게 맡기고 온다는 것이 아닌가. 고마웠다. 모임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한 명 더 있다는 사실에 힘이 났다.

모임의 힘, 그림책의 힘

모임 중에, 한 참여자가 그림책을 보다 의문이 생겼다며 이야기를 꺼냈다. 문제의 그림책은 다비드 칼리가 쓴 <모두를 위한 케이크>다. 케이크를 먹고 싶은 생쥐가 달걀을 찾아 떠난다. 생쥐는 동물들을 만날 때마다 케이크 재료를 하나씩 얻고 마지막으로 달걀까지 구한다. 그리고 부엉이에게 오븐을 빌려 케이크를 굽는다. 하지만 케이크 재료를 보탠 동물들은 생쥐가 아무것도 내놓은 게 없다며 케이크를 주지 않으려 한다. 다행히도 생쥐가 달걀이 있느냐고 묻지 않았으면 애초에 케이크는 생각도 못 했을 것이란 걸 깨닫고 케이크를 공평하게 나눈다.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일은 어렵지만 정말 멋진 일이라며 끝을 맺는다.

이 그림책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러 가지다. 우정과 나눔에 대한 이야기로 보기도 하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분배의 문제로 해석하기도 한다. 나는 정신 활동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로 기억하고 있었다. 추운 겨울날을 대비해 프레드릭이 햇살을 모았던 것처럼 말이다.

"말 만한 생쥐에게 케이크를 꼭 나눠줘야 하나요? 케이크가 아니라 집이라면요? 누가 집을 짓자고 했어요. 그래서 누구는 벽돌을, 누구는 땅을 제공하고 집을 지어요. 그럼 집을 짓자고 말만 한 사람도 그 집에 같이 살게 할 건가요?"

이 그림책 모르는 사람도, 알고 있던 나도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기발한 적용이었다. 당연히 나눠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듣고 보니 헷갈린다는 참여자도 있었다. 그림책을 해석하는 건 독자의 자유다. 그 자유를 침해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록 집 짓는 이야기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나는 다시 그림책을 집어 들었다. 내가 놓치고 있던 건 없었을까?

이럴 경우 정답은 대부분 그림에서 찾게 된다. 역시 그림을 유심히 보니 생쥐의 노력이 보인다. 생쥐는 달걀을 찾으러 갈 때 가장 앞장서서 걷고, 두더지를 만나기 위해 깜깜한 땅굴에 용감하게 몸을 던진다. 친구들이 가져온 케이크 재료를 섞는 것도 생쥐고, 자기 몸 보다 큰 반죽 그릇을 짊어지고 오븐을 찾아가는 것도 생쥐다.

생쥐는 아이디어만 내지 않았다. 엄청난 열망을 가지고 케이크를 만들기 위해 수고했다. 생쥐의 노력이 보이자 케이크를 못 먹게 되었을 때 뚝뚝 눈물 흘리던 장면이 더 찡하게 다가온다. 얼마나 먹고 싶었던 케이크인데, 얼마나 고생했는데.
 
생쥐가 달걀을 구하러 두더지가 사는 땅굴에 뛰어 들고 있다.
▲ 그림책 <모두를 위한 케이크> 생쥐가 달걀을 구하러 두더지가 사는 땅굴에 뛰어 들고 있다.
ⓒ 미디어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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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모임에서 <모두를 위한 케이크>를 같이 보았다. 함께 생쥐의 마음을 따라가며 그림을 자세히 살폈다. 반갑게도 처음 의문을 품었던 참여자도 집에 돌아가 다시 한번 그림책에 대해 생각해 봤다고 했다. 첫 모임 때 그림책이 왜 좋은 지 몰라 와 봤다 했던 그이는, 겨우 세 번째 모임 만에 그 답을 어렴풋이 찾았다고 말했다. 그림책엔 각각의 세상이 있고 우리는 그림책을 읽으며 그 세상을 여행하는 거라고.

그 고백에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그림책을 좋아하게 만들어 주리라 장담한 뒤, 머리를 쥐어뜯으며 몇 날 며칠을 보냈는데, 이리 빨리 깨달음을 얻을 줄이야. 그림책이 가진 힘을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다.

서로 배워 고마운 사람들

그림책 이론서를 보다 보면 금방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다. 일러스트레이션이 특히 그렇다. 대학원에서 일러스트레이션에 대해 배우고 처음으로 그림이 재밌다고 느꼈다. 그 뒤론 어디를 여행 하든 미술관은 꼭 들렀고, 좋아하는 화가도 생겼다.

하지만 그림은 어디까지나 예술가의 영역.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 한 권 읽는다고 도가 트일 리 없다. 그래서 미술 전공자가 모임에 참여하고 싶다 연락해 왔을 때 누구보다 격하게 반겼다. 내 계획(?)대로 일러스트레이션에 대한 부분이 나오면 그이가 설명을 보탠다. 앞으로도 쭉 그랬으면 좋겠다.

모임에 다양한 질문이 오간다는 건 좋은 일이다. 아무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누군가 하는 이야기만 듣다 가는 것보다는 백 만배 낫다. 하지만 어떤 질문들은 나를 긴장시킨다. 가장 대답하기 어려운 건 단연 육아와 관련된 것이다. 아이가 유치원에서 맞고 왔을 때 대처 방법이랄지, 학교에서 문제행동을 보일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와 같은 질문들이다.

참여자들은 모두 나보다 육아 선배다. 나는 육아를 책으로 배운 초보 엄마일 뿐이다. 뇌를 한껏 쥐어짜 내 몇 마디 해보지만 영 시원치 않다. 그럴 때마다 구원의 손길을 뻗는 이가 있으니 바로 대학생 자녀를 둔 참여자다. 육아 만렙의 그녀는 대번에 문제를 파악하고 처방을 내려준다. 우리는 모두 금쪽이의 엄마가 되어 귀를 쫑긋한다. 열 명의 오은영 박사님이 부럽지 않다.

나는 원래 무슨 일이 생기면 귀찮다 할 정도로 여러 사람에게 물어보는 편이다. 솔직하게 조언을 구하고 도움을 받는 게, 방구석에서 혼자 고민하고 씨름해서 모범 답안을 정리하는 편보다 낫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림책 공부 모임은 그게 잘 안됐다. 나 혼자 해결사가 되려고 했다. 운영자라는 타이틀 혹은 책임감이 궁지로 몰아넣었을까? 그림책 공부가 처음인 사람들과 함께 한단 생각에 더 열정을 가졌던 게 독이었을까? 배운 것으로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부채의식도 한몫했으리라. 내가 뭐 <유퀴즈>에 나올 만한 대단한 사람이나 된다고 이런 부채의식에 시달렸는지.

모임이 끝나고, 한 참여자가 오늘도 많이 배웠다고 톡을 남겼다. 그러자 너도 나도 서로 많이 배웠다, 수고했다며 이야기를 나눈다. 모임에 참여하지 못한 아쉬움을 표현하기도 한다. 처음으로 참여자들의 마음이 보이자, 나도 모르게 씩 웃음이 났다. 서로 배워 고마운 사람들과 모임을 하게 되어 좋다.
 
생쥐가 자기 몸보다 더 큰 반죽 그릇을 가지고 부엉이네 집에 올라가고 있다.
▲ 그림책 <모두를 위한 케이크> 생쥐가 자기 몸보다 더 큰 반죽 그릇을 가지고 부엉이네 집에 올라가고 있다.
ⓒ 최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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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책이랑 언니 모임이랑 뭔가 잘 어울리는데?"

모임 이야기를 함께 자주 하던 후배가 <모두를 위한 케이크>를 보더니 우리 모임과 닮았단다. 나도 얼핏 그런 생각을 했던 터라 어느 지점이 비슷한지 금방 캐치했다.

"그래? 생쥐가 나 같나?"

어쩌면 생쥐도 친구들과 함께여서 케이크 만들기에 더 열심을 냈을까? 생쥐뿐만 아니라 친구들 중 그 누구 하나라도 없었으면 케이크를 완성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시작했지만 나 혼자라면 할 수 없었던 이 모임처럼 말이다. 생쥐와 동물 친구들이 자신의 것을 내어놓아 '모두를 위한 케이크'를 완성했던 것처럼 이 모임도 참여자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모두를 위한 모임'이 되기를 바라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태그:#시민모임, #그림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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