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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가는 거요? 그쪽으로 왜 올라가는 거요?"

남자가 소리를 질렀다. 호의적인 목소리가 아니었다. 

"저 위에 돈대가 있다고 해서, 돈대 보러 가요."
"안 돼요. 개인 사유지라 출입하면 안 됩니다."


남자는 완강했다. 돈대는 아직 보이지도 않는데, 그 근처에 가는 것조차 막았다. 

유적지 돈대가 사유지라니

지난 6월 하순에 지인과 '섬암돈대'를 답사하러 갔을 때 일이다. 섬암돈대로 가는 길을 발견하고 막 올라가던 참인데 제지를 당했다. 돈대 근처에 가보기도 전에 당한 냉대였다. 길을 막는 무슨 까닭이라도 있는 걸까. 궁금했지만 일단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개인이 소유한 사유지인 섬암돈대 터.
 개인이 소유한 사유지인 섬암돈대 터.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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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서 가보지 못했던 섬암돈대를 다시 찾아갔다. 이번에는 다른 길로 올라갔다. 신축 건물 공사장 뒤로 길이 있었다. 시멘트로 포장이 된 길은 꽤 넓고 좋았지만 신축 건물이 들어서면서 길이 좁아졌고 가림막을 쳐 놔서 잘 보이지 않았다. 그 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니 섬암돈대 터가 있었다.  

섬암돈대(蟾巖墩臺)는 강화군 길상면 장흥리에 있다. 장흥리는 김포에서 강화로 들어오는 초지대교에서 멀지 않은 데다 바다를 앞에 두고 있어서 인기 있는 지역이다.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보니 카페며 식당들도 많다. 그런데도 계속 땅이 개발되고 건물들이 들어선다.  

놀고 있던 유휴지들이 비싼 값에 거래가 되니 구릉 위에 있는 돈대 터라고 그냥 놔둘 턱이 있을까. 섬암돈대 터는 현재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사유지다. 문화유적지가 어떻게 개인의 소유가 될 수 있나 싶었지만 오랜 세월 방치되어 버려져 있다보니 그렇게 되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전망 좋은 돈대 터, 군침 흘릴 만하다

섬암돈대 아래는 온통 다 개발되었다. 돈대는 언덕 위에 있으니 개발의 손길이 미치지 않았지만 언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자본의 탐욕은 그 어떤 장애물도 다 제거하는데 돈대 터라고 비켜갈 리 있겠는가. 더구나 관리가 소홀한 돈대 터임에야 말해 무엇할까. 이미 개인이 이 터를 소유하고 있는 실정이니 이대로 가다가는 그나마 남아있는 흔적조차도 사라질까 염려된다. 

섬암돈대 터에는 농사용 부자재들을 넣어두기 위해서 설치한 듯 보이는 비닐하우스가 두 동 있었다. 돈대 터 둘레를 따라 철망도 처져 있었다. 설치한 지 오래 되었는지 철망은 녹이 슬어 있었다. 우리는 철망 너머로 그 안을 들여다 보았다.

성암돈대 터에는 개망초꽃이 가득했다. 돈대였음을 알려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동서 34m, 남북 32m에 둘레가 128m였을 거라 추정되는 큰 돈대였는데 규모를 짐작할 수 있는 것은 남아있지 않았다. 성벽의 높이도 3m 내외는 되었을테니, 멀리서 바라봤을 때 그 위용이 얼마나 대단했을까. 

그 옛날, 지금처럼 나무들이 우거지지 않고 주변에 돈대를 가리는 게 아무것도 없었을 때, 온 사방에서 돈대가 우뚝하게 보였을 것이다. 김포와 강화 사이의 해협을 오르내리던 배에서도 이 돈대는 훤하게 다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섬암돈대는 초라하다 못해 비루해 보인다. 이곳이 조선시대 나라를 지키던 돈대 터임을 알려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돌 무더기는 고사하고 안내판도 하나 없다. 당국의 무관심이 이 정도이니 돈대 터가 사유지로 넘어간 것은 당연하다 싶었다.   

무단 변경시 처벌 사항

원래 이곳에는 돈대 터임을 알려주는 안내판이 있었다. 작년 봄에 섬암돈대를 찾았던 지인은 안내판이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 나무에 기대어 세워놓았다고 했다. 그런데 그 안내판이 없었다. 있을 만한 곳을 다 찾아봤지만 보이지 않았다. 

안내판에는 섬암돈대의 간단한 이력과 함께 이곳을 무단으로 변경할 때의 처벌 사항을 알려주는 문구도 적혀 있다. '주변 및 현상을 무단 변경시에는 문화재보호법 제 194조 2항에 의거 10년 이하의 징역이나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음을 알려 드린다'라고 적혀 있는 안내판이다. 그런데 그 안내판이 사라져 버렸다. 강화군청에서는 확인하겠다는 말 뿐이다. 
 
바닥에 아무렇게나 엎어져 있는 안내판을 나무에 기대어 세워 놓았다.(2021년 4월)
 바닥에 아무렇게나 엎어져 있는 안내판을 나무에 기대어 세워 놓았다.(2021년 4월)
ⓒ 이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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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의 칼 끝이 섬암돈대 턱 밑까지 왔다. 신축 건물이 들어서면서 돈대로 올라가던 길을 갉아 먹었다. 이러다 어느 순간 섬암돈대 터도 개발되는 것은 아닐까. 문화재로 지정이 되지 않은 돈대라 관리와 보호에 소홀한 면은 있지만 그래도 이곳은 엄연히 문화유적지인데, 설마 개발하지는 못할 것이다.  

풀이 무성하게 자라있는 돈대 터를 둘러본다. 나무 그루터기 옆에 삐죽이 보이는  길고 넓적한 돌 두어 개가 그나마 이 곳이 돈대 터임을 증명해주는 듯하다. 그러나 그 뿐, 돈대 성벽에 쓰였을 석재들은 보이지 않았다. 

철저하게 파괴된 돈대였다.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빈 터마저 사유지이니 말해 무엇할까. 돈대 아래 들판은 초록 양탄자를 깔아놓은 듯 푸르렀지만 그 평야를 가능케 해준 섬암돈대는 사라져 버렸다. 

돈대 터에 들어선 정미소

섬암돈대에서 내려와 차를 달려 초지2리로 갔다. 길상면 초지리는 들판을 가운데 두고 섬암돈대가 있는 장흥리와 마주보고 있다. 두 동네 사이에 있는 드넓은 들판은 바다를 메워 만들었다. 이 평야는 섬암돈대의 석재들을 이용해 쌓은 제방 덕분에 생겼다.

이 너른 들판에서는 밥맛 좋기로 소문난 강화섬쌀이 생산된다. 마을 안에는 이 들판에서 수확한 벼를 도정해주는 정미소가 있다. 드넓은 장자평 들판이 한때 바다였다는 것을 몰랐던 것처럼 정미소와 그 인근이 돈대 터였다는 것도 전혀 몰랐다.  
 
강화지도(1875년 이후)에 기록되어 있는 장자평돈대
 강화지도(1875년 이후)에 기록되어 있는 장자평돈대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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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평돈대의 위치도(1918년)
 장자평돈대의 위치도(1918년)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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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평돈대(長者坪墩臺)는 강화군 길상면 초지리에 있었다. '있다'가 아니라 '있었다'라고 한 걸로 봐서 알 수 있듯이 지금은 돈대가 없다. 터조차 남아 있지 않으니 장자평돈대는 완벽하게 소멸한 돈대다.  

장자평돈대도 강화의 다른 돈대들처럼 숙종 5년(1679)에 축조되었다. 1875년에 작성된 고지도를 통해 보면 돈대 앞은 바닷물이 들어왔던 갯벌 지형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1918년도에 작성된 지형도에는 돈대 표기가 없다. 이로 봤을 때 장자평돈대는 그 이전에 이미 소멸된 것으로 여겨진다. 장자평돈대가 있던 초지2리 동네 앞 들판은 1875년에서 1918년 사이에 간척을 했고, 그때 섬암돈대와 장자평돈대의 석재들을 반출해서 제방을 쌓는 데 이용했을 것이다.  

1999년 육군박물관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정미소가 있는 자리가 장자평돈대 터임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이 자리는 옛 지표의 해안선과 너무 붙어 있어 위치상 돈대가 들어서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대부분의 돈대는 해안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는데 이는 석축의 하중을 견디기 위해서라도 바닷가와 바로 붙어 있는 지점은 돈대가 자리잡기에 부적합하기 때문이다.

2019년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장자평돈대는 정미소에서 북서쪽으로 10m 떨어진 지점부터가 아니었을까 하고 추측된다. 정미소 자리에서는 면석과 석재들이 보이지 않았지만 10m 뒤 지점에서는 다수의 면석과 돈대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석재들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장자평돈대 터 인근에 있는 돌 무더기.
 장자평돈대 터 인근에 있는 돌 무더기.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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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대의 석재로 쓰였을 것 같은 면석들이 민가의 화단이나 밭둑에 더러 보인다. 빈 터 한 귀퉁이에 있는 한 무더기의 돌을 호박넝쿨이 뒤덮고 있다. 역시 돈대의 석재로 쓰였을 것으로 보인다. 장자평돈대는 세월의 흐름 속에 사라졌지만 흔적을 여기저기 남겨 놓았다. 

장자평돈대가 사라진 자리에 집들이 들어섰고,동네가 생겼다. 새로 생긴 동네라 이름도 '신촌(新村)'이라 불렀다. 신촌 인근에는 '장자말'이란 이름의 동네도 있다. 부자들이 많이 사는 마을이라 장자말(장자마을)이라 불리었던 동네였다. 장자평돈대는 그 동네 이름을 따서 지었으리라.  

성주괴공, 자연의 진리         
   
장자평돈대는 세월의 흐름 속에 사라졌다. 이름만 남아있는 장자평돈대를 되살릴 길은 없을까. 사라진 것은 그것대로 의미가 있으니 그냥 두는 것도 타당하다 여겨진다. 하지만 이곳이 과거 돈대가 있었던 곳이라고 알려주는 안내판이라도 하나 세워두면 어떨까. 

이름만 남아 있는 장자평돈대 터에 안내판을 세우자. 신촌 마을 사람들에겐 자부심이 될 것이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마을을 다시 한 번 바라볼 것이다. 안내판 하나 세우는 게 뭐 그리 어려우랴. 관계 기관에서 마음만 먹으면 당장이라도 실행할 수 있을 것이다. 

삼복 더위에 돈대를 보러 갔다. 섬암돈대도 장자평돈대도 이름만 남아 있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돈대 터에서 세월의 무상함을 느낀다. 태어난 것은 언젠가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게 자연의 이치이니 돈대 역시 마찬가지이리라. 이름밖에 없는 섬암돈대와 장자평돈대에서 성주괴공(成住壞空️)의 진리를 되새겨본다. 

<섬암돈대 기본 정보>

- 소재지 :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장흥리 272
- 입지 : 동쪽으로 돌출된 곶의 동쪽 구릉 정상부
- 축조 시기 : 1679년(숙종5)
- 규모 : 둘레 - 128m(추정치), 너비 -동서 34m, 남북 32m
- 형태 : 사각형 모양(추정)
- 문화재 지정여부 : 비지정

<장자평돈대 기본 정보>
- 소재지 :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초지리 1055, 1056
- 별칭 : 장자말돈대
- 입지 : 해안가에 인접한 평탄대지
- 축조 시기 : 1679년(숙종5)
- 규모와 형태 : 현재 완전히 멸실되어 추정 불가
- 문화재 지정여부 : 비지정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강화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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