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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응희 춤, "꽃은 피어 웃고 있고" 중 진도아리랑 장면
▲ 임응희 춤, "꽃은 피어 웃고 있고" 중 진도아리랑 장면 임응희 춤, "꽃은 피어 웃고 있고" 중 진도아리랑 장면
ⓒ 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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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와 발해의 멸망 이후 반도국가로 쪼그라들면서 이땅의 민초들은 힘겨운 삶을 살아왔지만 그런 속에서도 흥과 가무를 놓지 않았다.

고대국가 부여에서는 추수가 끝난 12월 모든 백성이 모여 하늘에 제사지내고 추수를 감사하며 가무음곡을 즐기는 영고(迎鼓), 삼한시대에는 해마다 10월에는 하늘에 제사하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던 무천(舞天) 행사가 있었다. 

고대로부터 우리 조상들의 DNA에 춤과 노래가 체화되어 온 것이다. 그토록 혹독했던 외우내환에서도 한민족이 이웃 대륙 민족들에 비해 건강한 독자성을 유지하는 비결이라 할 것이다.

그 중심에 아리랑이 있었다. 아리랑의 기원을 둘러싸고 여러 학설이 전개되고 아직 정설(定說)이 나오지 못한 상태이지만, 어느 측면에서 그렇기 때문에 더욱 겨레의 대표적인 노래임을 확인하게 된다. 관이 만든 노래라면 그 권력이 사라지면 운명을 함께하는 것이 일반 법칙인데, 민이 창작하고 면면히 이어져 온 것이어서 그만큼 생명력이 길고 다양성을 보인 것이다. 관의 규격화된 형식을 벗어나 민중의 정서와 애환을 담았기 때문이다.

아리랑은 한민족의 정서와 사유를 표현하면서, 기쁠 때는 환조로, 슬플 때는 애조로, 만나서는 애국가로, 헤어질 때는 망향가로 불린다. 또한 아리랑의 담긴 가락에는 갈등과 화해, 한과 원, 밝음과 어둠, 체념과 좌절을 넘어 극기와 소망을 담는다.

일반적으로 아리랑이 비애와 체념을 주조로 하는 것처럼 인식되지만 우리 민족 정신사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기고, 해원상생의 원리를 모티브로 삼고 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날 버리고 가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

별리의 아픔, 배신의 원심은 증오나 저주가 아니라 "십리도 못 가서" 기껏 '발병'이 난다. 벼락을 맞거나 염병에 걸리라는 저주가 아닌 '발병'이다. 발병이 나면 어찌할 것인가, 다시 자기 곁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날 버리고 가는 님이 결국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는 애틋함과 소망이 아리랑의 본심이 아닐까.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기는 한민족의 원형인 것이다. 화해와 극기의 심원한 철학이 가락으로 읊어진 것이다.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이면 민초들이 손에 손잡고 불렀던 민의 노래 아리랑이 역사무대에 공식 등장한 것은, 1882년 4월 6일 조ㆍ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티콘데로가(Ticonderoga)호의 함상군악대가 두 나라의 국가 대신에 〈양키 두들(Yankee Doodle〉과 아리랑을 연주했다. (주석 1)

이 경우 조선정부의 작용으로 아리랑이 연주되었는지의 여부는 알려진 바 없다. 다만 고종황제와 명성황후가 아리랑의 애호자였다고 한다.

"고종(갑오정월 1894) 때는 원임각신 민영규 주관 하에 궁중에서 '아리랑 경창대회'를 열고 입상자를 뽑아 금은상을 주었다 한다. 민비가 아리랑을 무척 애호함으로써 궁녀들 간에 크게 유행했으며 궁밖으로까지 퍼져 나갔다 한다." (주석 2)

이제까지 우리는 궁궐에서는 궁중무용과 아악(雅樂) 만이 연주되는 것으로 알려진 데 비해 아리랑을 애호하고 연주했다는 것은 특이하다 그래서 조ㆍ미 수호통상조약체결 과정에서도 연주하게 되었을 것이다. 


주석
1> 김연갑, <8도 아리랑 기행1>, 298쪽, 집운당, 1994.
2> 박민일, <머릿말>, <한국 아리랑문학연구>, 강원대학교 출판부, 1989.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문화열전 - 겨레의 노래 아리랑]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태그:#겨레의노래, #겨레의노래_아리랑, #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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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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