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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과 향이 더 진한 옥수수는 이렇게 생겼습니다.
▲ 짝째기 옥수수 맛과 향이 더 진한 옥수수는 이렇게 생겼습니다.
ⓒ 이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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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짝째기(짝짝이) 신발이야."

농장에서 일을 마치고 들어오는 남편이 상기된 얼굴로 바구니를 내밀며 활짝 웃었다. 커다란 봉투에 옥수수가 가득한데 한결같이 잘려 있었다. 짝째기라는 말이 이해되었다. 상태가 나쁜 것도 아니었다. 갓 따온 싱싱한 옥수수를 마음껏 먹게 된 것으로 충분했다. 탄성과 함께 탱글탱글한 알갱이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나를 지그시 바라보는 남편의 눈길이 느껴졌다. '좋아해서 다행이다.'

찬바람 부는 날씨에 먹는 따끈한 옥수수

신발 장수가 짝째기를 신는다더니 옥수수를 수확해서 보기 좋고 살진 건 여기저기 선물로 보내고 우리 집엔 벌레 먹어 잘린 반쪽짜리를 가지고 온다. 남편은 온전한 게 아니라는 말을 짝째기 신발로 표현했다. 가끔 못난이 농작물을 가져오면 신발장수 운운하며 투덜거렸다. 이후 남편은 짝째기라는 말로 미안함을 대신했다.

이야기에서 나오는 신발장수는 형편이 가난해서, 팔다가 남아서 짝째기로 신었을 거라 생각했다. 그것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겠구나 싶다. 신발장수는 어쩌다 짝을 잃은 신발 한 짝을 팔 수도 버릴 수도 없다. 에라, 모르겠다 버리기엔 마음이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짝째기 신발을 신게 된 건 없어서가 아니라 애정의 다른 표현이었을 거다. 반쪽짜리 옥수수와 외짝 신발은 주인의 사랑을 더 많이 받는다고 말하면 너무 미화시킨 걸까.

두 달 전, 감자를 캐고 그 자리에 옥수수를 심었다. 남편이 씨앗 심는 기구를 땅에 꽂으면 흙이 벌어지고 나는 그 곳에 옥수수 두 알을 넣었다. 이유를 묻자 싹이 안 나올 걸 대비하는 거라고 했다. 혼자서 심으면 서너 배는 더 오래 걸린다며 거들어 주는 내 몫을 치켜세웠다.

뙤약볕에서 천 개 정도를 심고는 지쳐 쓰러질 것 같은 내게 추석 즈음엔 또 옥수수를 먹게 될 거라며 선물로 나눠먹자고 격려했다. 이미 한 차례 옥수수를 따먹은 후여서 그다지 군침 도는 말도 아니고 먹을 것 많은 가을에 사람들이 좋아할지 의구심이 들었다.

웬걸.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부는 날씨에 먹는 따끈한 옥수수는 그 향기가 더했다. 무엇보다 따기가 무섭게 삶아서 먹는 맛은 먹어본 사람만 알 수 있는 꿀맛이었다. 이 달콤하고 향기 가득한 옥수수를 기다리는 지인들을 위해 남편은 서둘러 상자에 담았다. 20키로까지는 택배비가 똑같다며 옥수수로 부족한 공간을 단호박으로 메꿔 몇 곳에 부쳤다. 평소 고마웠던 지인들과 형제들에게도 나누고 그때그때 생각나는 사람들이 임자다.

옥수수를 나만큼이나 좋아하는 큰언니는 주 고객이다. 얼마 전 시험 삼아 삶지 않고 옥수수 수염만 제거한 후 껍질을 씌운 채로 냉동실에 보관했다. 먹고 싶을 때 꺼내 삶았는데 맛이 그대로였단다. 그동안은 있는대로 삶아서 냉동실에 보관하느라 번거로웠는데 좋은 방법을 발견했다며 신나했다.

보관법이 새로울 건 없었지만 습관을 바꾸기란 쉽지 않았을 거였다. 아마도 언니는 어디선가 들었던 보관법을 혹시나 해서 시도해 보았는데 만족스러웠고, 앞으로는 좀 더 편하게 먹을 수 있게 된 것이 즐거운 모양이었다.

내년에는 옥수수를 얼마나 심어볼까?

밭농사를 수확하다보면 언제나 크기나 모양, 상태가 고르지 않다. 우리만 먹기에는 늘 많아서 나눠먹게 된다. 남을 준다고 생각하여 좋은 것을 분리하고 상처가 났거나 볼품없는 것들은 손질해서 우리가 먹도록 따로 놓는다. 남편의 수고가 보여서 허투루 버리기가 미안하고 아깝기 때문이다. 시장이나 마트에서 좋은 것을 고르기 위해 뒤적거리는 손길과는 사뭇 다르다. 좋고 예쁜 것만 골라먹는 본성도 농부의 아내가 되면서 사그라 들었다.

즐겨먹는 감자도 마찬가지다. 캐면서 이미 긁히고 잘린 감자는 집으로 가져온다. 그나마 탁구공만한 것들은 지인의 식당에서 감자조림이 되어 환영받는다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여름 내내 우리 식탁엔 감자가 빠진 적이 거의 없다. 감자볶음, 감자샐러드, 감자국, 감자전, 감자를 과하게 넣은 된장찌개 등이 돌아가며 올라온다. 이제 감자는 질리지 않은 식재료 중 하나가 되었다.

먹어도 먹어도 줄지않는 식재료는 양파다. 양파는 작은 것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꽤 많아서 뒤처질 게 없지만 주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작은 건 우리 몫이다. 생양파 마니아인 남편은 양파의 단맛을 쌈장과 함께 즐겨 먹는다. 지난 해부터는 에어프라이어에 구운 양파도 빠지지 않으니 양파냄새가 몸에 배고도 남을 정도다.

양파를 먹어본 몇 분은 남편 칭찬이 자자하다. 오래 두고 먹어도 단단하고 달다며 또 보내달라고도 한다. 가까운 중화요리 가게에서는 내년에도 꼭 부탁한다고 할 정도다. 몇 년째 양파 농사를 잘 짓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다. 실패와 농부경력이 쌓이면서 낳은 결과다.

짝째기 옥수수를 찌는 아침엔 앞집과 독립한 아들에게도 전달한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끈한 옥수수. 비록 반쪽짜리여도 훈훈한 정은 옥수수 향처럼 가득하다고 말하고 싶다. 내년에는 옥수수를 더 많이 심을까? 행복한 고민에 빠진다.

덧붙이는 글 | 브런치와 블로그 게재 예정입니다.


태그:#옥수수, #짝째기, #농부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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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육십부터.. 올해 한살이 된 주부입니다. 글쓰기를 통해 일상이 특별해지는 경험을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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