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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 조력자살 한국인과 동행한 4박 5일>
 책 <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 조력자살 한국인과 동행한 4박 5일>
ⓒ Kim Ayo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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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당신은 조력사로 생을 마감하려는 사람과 스위스까지 함께 가 줄 수 있는가?
둘째,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한계상황에 처한다면 본인도 조력사를 택하겠는가?

여기 두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저는 이 두 질문에 답하는 책을 냈습니다. <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란 제목으로. 

스위스로 떠나는 생의 마지막 여행

2021년 8월 26일 목요일, 한국 시각 오후 7시경, 스위스 바젤에서 64세로 생을 마감한 한 남자가 있습니다. 저의 오랜 독자라는 인연으로 스위스까지 동행했지만, 그 전에는 얼굴 한 번 본 적 없던 사람이었습니다. 그 분은 폐암 말기 환자로, 두 번의 시술을 받았지만 2년 후 재발했고 저와 연결이 되었을 때는 주치의가 예상한 여명을 석 달 정도 넘긴 상태였습니다.

스위스에서 조력사를 택한 한국인으로는 2016년, 2018년에 이어 아마 세 번째일 것 같습니다. 죽음의 전 과정이 본인에 의해 이뤄졌고, 저는 그 과정을 전부 지켜보았습니다. 그는 지금 공주의 한 추모공원에서 영원한 잠을 자고 있습니다. 

"스위스로부터 안락사가 승인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느낌이 어땠냐고요? 그동안 깊이 생각했고 오래 준비해 왔기 때문인지 담담했습니다. 슬픔이나 아쉬움, 회한, 두려움과 같은 감정은 없었습니다. 이제 언제 생을 마감할 것인가만 결정하면 됩니다. 이제 저는 버킷리스트 같은 것은 없습니다. 그냥 하루하루 편안하게 평범한 일상을 살 뿐입니다. 그러다가 때가 되면 스위스로 생의 마지막 여행을 떠날 것입니다. '원 웨이 티켓'을 손에 쥐고..."

편도 티켓을 쥔 그 분과 왕복 항공권을 지닌 나, 그 엇갈린 경로를 머릿속에 그려보는 것으로 스위스행은 시작되었고, 드디어 그분을 만났을 때는 건강한 사람이라면 비행기를 오래 탄 탓이라고 여겨질 정도의 약간 지쳐 보이는 것만 빼고는 그에게서 말기암 환자라 할 만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신 작가님, 와 줘서 고마워요. 먼 길 오느라 고생 많았지요?"

그가 분위기를 띄우자 동행자들의 긴장도 누그러지면서 약간의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었습니다.

"뭐야, 형님, 멀쩡하구먼. 이렇게 건강한데 왜 이런 결정을 하고 그래요."
"내가 너무 생생해서 서운한가? 하지만 모두들 따끈할 때 날 만져 봐. 이제 이틀 후면 나는 싸늘하게 식을 테니까."


스위스 도착 2일째, 조력사 단체에서 담당 의사가 찾아왔고, 마지막 면담 후 '최종 사인'을 하신 후 이런 말씀을 하셨지요.  

"두렵지는 않은데 어릴 때 달리기 출발선에 섰을 때처럼, 아니면 대중 앞에서 연설하기 전처럼 가슴이 두근거리고 긴장되네요. 어떤 면에선 설레기도 해요. 내일 아침에 데리러 온다고 했어요. 저승사자가 찾아오는 거지만 엄밀히는 내가 저승사자를 찾아가는 거지요."

조력사 시행 하루 전, 그분 생애의 마지막 밤, "오늘 밤은 잠들지 않으려고 해요. 인생의 마지막 밤을 잠으로 보내고 싶지 않으니까. 모든 순간을 깨어서 느껴보려고 해요. 지상의 모든 순간, 모든 마지막을"이라는 말씀과 함께 기어코 날이 밝았고 오전 10시경 안락사 시행 장소로 이동했습니다. 

죽음은 막연한 것이 아니라는 진실

동행자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 명씩 돌아가며 각자의 휴대전화로 그분과 사진을 찍었습니다. 일부러 환하게 웃고 최대한 고개를 꺾어 얼굴이 닿는 포즈를 취하는가 하면, 과장되게 팔짱을 끼거나 한쪽 손은 그러쥐고 다른 손으로는 그분의 어깨를 얼싸안기도 하면서 안타까워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그분은 표정에도 몸에도 움직임을 싣지 않았습니다. 마치 벤치에 설치되어 있는 동상을 배경 삼아 사진을 찍는 것처럼 움직이는 것은 우리뿐이었습니다. 감정을 감추려는 우리의 호들갑에 잠시 희미한 미소를 짓는가 싶었지만 그뿐이었습니다. 얼굴에도 쓸쓸한 표정이 지나갔지만, 그 또한 아주 잠시였고 또 한 번 결코 화답할 수 없는 농담이 끼어들었습니다.

"야, 내가 무슨 연예인 같구나. 나하고 사진들 찍느라고 난리인 걸 보니."

"이제부터 충분히 시간을 드릴 겁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모두 하고 작별 인사를 나눈 후 준비가 되면 저희를 부르시면 됩니다."

"이렇게 와 줘서 고마워요. 모두들 수고 많았어요."


담담한 어투에 따스한 표정, 이 순간을 위해 얼마나 '예행연습'을 했으면 저럴 수 있을까요.

"어디로 가시는 건가요?"

제가 물었습니다.

"글쎄요... 어디든 가겠지요."
"좋은 데로 가실 것 같나요?"
"있다면 갈 것 같아요."
"지금 누가 가장 보고 싶으신가요?"
"어머니요. 부모님이 마중 나와 계시면 좋겠어요."


"인제 그만 가야겠어. 먼저 갈게. 나중에 만나자고. 그리고 수목장을 하게 될 테니 꼭 한 번 와줘." 스위스에서 함께 머무는 동안 수목장에 꼭 와달라는 말을 두 번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남에게 결코 폐를 끼치지 않는 성격이라는데 두 번씩이나.

"밖에 사람을 불러 줘."

그러나 아무도 나서지 못했습니다.

"어서. 모두 배고플 거야. 내가 어서 가야 점심을 먹지."

마지막 순간까지 기가 막힌 배려였습니다. 본인이 어서 죽어야 우리가 점심을 먹는다니. 조카가 마지못해 문밖에 사인을 보내자 작은 카메라와 거치대를 들고 담당자가 들어왔습니다.

"이제 모두 조용히 하세요. 짧은 동영상을 찍어야 하니까요."

그리고는 그를 향해 정면으로 카메라를 설치했습니다. 이내 카메라의 녹음 버튼을 누르더니, 자기의 말을 또렷하게 복창하라고 했습니다.

"I'm sick, I want to die. I will die(나는 아프고 죽길 원하며 죽을 것이다)."

그가 그 말을 따라 하자 녹화는 끝났고, 약물 팩이 걸렸습니다.

"마음의 준비가 되면 밸브를 손수 돌리세요. 그러면 수 초 안에 편안히 잠드실 겁니다."

설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 분이 밸브를 돌렸습니다. 순식간의 일이었습니다. 설명을 하던 남자도 흠칫 놀랐고 우리의 입에서도 짧은 탄식이 나왔습니다.

"아, 졸리다..."

그 말을 끝으로 5~8초 남짓한 사이에 고개가 옆으로 떨어졌고, 입가에는 희미하게 미소가 떠올랐습니다. 그 분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스스로 밸브를 돌려 약물을 주입해 삶과 죽음의 경계를 찰나로 넘던 그 순간, 저는 그 분의 발을 식어갈 때까지 잡고 있었습니다. 뇌리에 쐐기처럼 박힌 그 장면, 제 인생을 통틀어 가장 강렬한 체험이었습니다.

이 책을 내는 저의 목적은 내게 인연이 닿은 한 사람의 죽음을 안타까워하고, 그것을 계기로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과, 인생이 얼마나 유한한가를 돌아보는 것입니다. 죽음이 막연한 게 아니라, 생전 안 죽을 것 같은 게 아니라 동전처럼 삶의 이면에 딱 붙어있는 거란 사실을 그 분의 죽음을 통해 확연히 깨달았던 것입니다.

안락사에 초점을 두기 전에 죽음 자체가 이제는 양지로 나와야 합니다. 사는 이야기의 한 자락으로 죽음도 일상 대화의 주제가 될 수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모든 죽음은 삶을 이야기하고 있으니까요.

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 조력자살 한국인과 동행한 4박5일

신아연 (지은이), 책과나무(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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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생. 이화여대 철학과 졸업. 저서 『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좋아지지도 놓아지지도 않는』 『강치의 바다』 『사임당의 비밀편지』 『내 안에 개있다』 등 1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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