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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성장 시대는 이렇게 온다' 표지
 "포스트 성장 시대는 이렇게 온다" 표지
ⓒ 산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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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대량멸종의 초입에 있는데 기껏해야 당신네가 얘기할 수 있는 거라곤 돈과 영원한 경제 성장이라는 동화뿐이네요."

2019년에 그레타 툰베리가 한 얘기다. 그녀는 돈과 성장을 "동화"라고 말했다. 생활에 절실한 것이 돈이고 먹고 살려면 영원한 성장을 추구해야 하는데 아직 '진한 세상 물정을 겪어보지 못한 소녀 툰베리'야말로 동화 속에 있다고 비웃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요즘 청년들에게 부자가 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개소리다. 부모 세대보다 못사는 세대 얘기가 널리 퍼졌다. 저성장에 접어든 자본주의에서 부자와 권력은 여전히 성장할 것처럼 떠든다. 이것은 분명 동화다.

노동 생산성이 정점을 찍은 것은 반세기도 더 전의 일이다. 노동 생산성이 감소한 추세는 중요하다. 노동 생산성이 정체되거나 감소하는 경제에서 GDP 성장을 위한 유일한 방법은 노동을 쥐어짜는 것이다.

기반이 허약한데 성장을 위해 돈만 찍어 내다 거품을 만들어 폭삭 주저앉은 것이 금융위기였다. 그러나 위기의 피해자들을 희생해 위기의 설계자들을 구제하는 불의가 명백히 드러났다.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모두 성장에 사로잡혀 있었다. 녹색이든 아니든, 끝없는 성장은 비참한 결말로 끝이 날 한 편의 동화다.

성장을 멈추고 균형이 필요한 몸처럼

미국에서 평균 행복지수의 최고치와 최저치 사이 차이가 1970년대 중반 이래 5%를 넘지 않을 정도로 거의 일정했다. 1970년대 초 사이에 아주 미미한 행복지수 상승(2%)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 이후로 평균 행복지수는 3%가량 하락했다. 이때 미국 경제 규모는 3배 이상 증가하고 있었다. 지난 40년 내내 평균 소득이 늘어났지만, 그렇다고 미국인이 더 행복해지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GDP 성장을 사회 진보와 동일시 하는 때가 있었을지 몰라도 오늘날 그런 사고는 명백히 무너지고 있다.

우리 몸은 수백만 년에 걸쳐 진화했고, 최적화된 건강에 이르기 위해 복잡한 조합의 시스템을 발전시켰다. 그중에서도 가장 명백한 것은 몸의 에너지 균형이다. 일단 충분히 성장하고 나면 건강한 유기체는 지속적이고 부단한 소비 증가가 아니라 건강한 균형을 통해 외부 공격에 맞서고 자신을 유지한다.

부족한 몸은 영양 부족에 빠지고 넘치는 몸은 과잉 소비한다. 탁월한 건강은 둘 사이에 있다. 식량이 너무 적으면 성장이 건강에 기여한다. 그러나 식량이 너무 많은데도 끊임없이 증대하기에만 골몰하다가 재난에 빠진다. 자본주의 경제는 칼로리를 과다 제공하도록 진화했다. 성장을 진보로 혼동해 왔다. 이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 잘못이다.

몸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물질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생각, 느낌, 관계, 사물을 창조하는 것은 물질을 추월한 것이다. 둘 중 하나에만 관심을 쏟는다면 다른 목표에 관심을 쏟을 가능성은 훼손되고 감소된다. 반면에 몰입에 관심을 집중하면 우리는 더 지구 친화적으로 살 수 있다.

스포츠, 공예/창작 활동, 사회적 교류, 연애, 명상 같은 사색적 실천, 이 활동들은 전부 환경에 부담을 적게 주는 것들이지만, 이 활동에 참여한 이들은 높은 수준의 몰입과 행복을 고백한다. 몰입은 포스트 성장 세계를 위한 기초를 우리에게 제공한다.

사회는 멋지게 자란다

쾌락은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강력한 동력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를 끊임없이 편안함과 이완 상태로 유혹하는 보수적인 힘이기도 하다. 반면, 즐김은 영혼에 영양을 제공한다. 즐김에서는 무질서로 이끄는 힘과 부패에 대한 승리가 동반되기 때문이다. 즐거움을 주는 몰입은 자아와 세계의 경계를 넘어선다.

속도에 휩쓸리는 시대에 느린 분야가 매우 바람직한 거처다. 그 분야는 창의성과 손재주가 필요한 작업 그리고 돌봄 노동이다. 그 나무 그늘에서 자신들이 쉴 날이 결코 없을 것임을 번연히 알면서도 노인들이 나무를 심을 때, 또는 아프리카 시골에서 권리를 거의 누리지 못하는 가난한 여성들이 그런 일을 실제로 할 때, 사회는 멋지게 자라난다.

실물 경제에 자금을 조달하는 대신 금융권은 금융권에 자금을 조달하느라 바빴던 금융과 투자를 바꾸자. 투자를 투기가 아닌 미래에 대한 행동으로 보자. 첫째는 생태적 투자가 있다. 기후, 대지, 해양, 강, 숲, 생물 서식지, 즉 지구라는 우리의 집 보호에 자원을 할당하는 행동이다. 둘째는 돌봄 투자다. 삶의 유지를 촉진하는 자산들인 주택, 병원, 학교, 상점, 먹을거리, 생물학적 필수재 등이다. 셋째는 창의적 투자다. 충족감 높으며 지속 가능한 인간 세계를 창조하는 데 기여하는 자산들인 공동체 공간들, 만남의 장소들, 예술적인 장소들, 예술 작품들이다.

변혁은 가능하다

넘어서야 할 것은 첫째로 인간적인 가치들을 희생시켜며 최대한 생명을 상품으로 변질시키는, 만족을 모르는 과정이다. 둘째로 사회의 필요를 희생시키며 자본 소유자들에게 혜택을 주는 화폐 시스템이다. 셋째로 빼앗긴 자들의 권리보다 권력을 우선에 두는 정치 행태다.

바꿀 수 있을까. 팬데믹이 오자 어떤 일이 벌어졌던가. 곧바로 이동을 제한하고 경제도 과감히 멈추게 했다. 급격한 변혁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심지어 서구 자본주의에서조차 그렇다는 것을 보았다. 점진주의로는 그런 변혁을 성취할 수 없다.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서둘러 도입되었던 구명보트 같은 조치들은 지지부진한 협상 결과물이 아니었다. 코로나19로 위기가 오자 긴급하고 실용적인 조치가 필요했다. 세계적으로 대응은 거의 순간적이었다. 실행의 양상은 점진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즉각적이었고 체계적이었다.

충격에 가까울 정도로 민첩하게, 코로나바이러스 위기는 자본주의가 그토록 오래 부인해오던 것, 즉 정부가 사회의 건강에 개입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필요할 경우 정부가 극적으로 개입하고, 조업이 중단된 작업장의 노동자에게 유급 휴직을 제공하고, 시민의 생계를 보호하고, 돌봄에 투자하고, 적절한 변혁 수단으로서 권력을 행사하여 금권을 누르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하여 야생 염소들이 웨일스의 홀란두 마을로 내려오고, 스모그가 잔뜩 끼는 날이 다반사이던 베이징에 푸른 하늘이 나타나고, 히말라야산맥에서 200km 떨어진 인도에서 30년 만에 처음으로 산맥을 보게 되는 치유가 일어났다. 이런 것을 가능하게 하는 길은 이윤을 위해 끝없는 성장을 강요하는 권력에 맞선 시민의 불복종이다.

대전환과 새로운 번영을 위한 사유를 위한 책 <포스트 성장 시대는 이렇게 온다>는 영원한 성장이 가능할 것이라고 선동하는 권력과 헤어질 결심을 촉구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조건준 아유 대표가 쓴 글입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발행하는 격월간 <비정규노동> 9, 10월호 '책 만나기' 꼭지에도 실렸습니다.


포스트 성장 시대는 이렇게 온다 - 대전환과 새로운 번영을 위한 사유

팀 잭슨 (지은이), 우석영, 장석준 (옮긴이), 산현재(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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