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시대를 판단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편한 길이 답일 수도 있고, 고난의 길이 그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편적으로 역경을 선택하는 게 옳다는 니체의 말이 맞는다. 당대 우리 정치는 혼돈 속에 있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복잡하다. 무엇이 선인지를 확신할 수 없다. 누구를 지지한다는 이유로 손가락질받기도 한다. 이 상황에서 선택은 각자의 몫이지만, 그 답을 니체에게 묻는 게 맞을 것 같다.

 
고려대 한국사학과 정태헌 교수가 한중일 6인의 인물을 통해 근대 전환기를 읽어내다
▲ 정태헌 <혁명과 배신의시대> 고려대 한국사학과 정태헌 교수가 한중일 6인의 인물을 통해 근대 전환기를 읽어내다
ⓒ 21세기북스

관련사진보기

 
고려대 한국사학과 정태헌 교수는 100여년 전 복잡했던 한·중·일 세 나라에서 각자의 길을 선택한 6명을 골라냈다. 책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한 사람은 혁명의 아이콘이고, 한 명은 배신의 아이콘이다. 이 인물들은 역사의 판단을 받은 듯도 하지만 여전히 논란의 선상에 있는 듯하다. 다만 저자는 자신의 기준으로 이 인물들을 평가한다. 물론 후세도 지금의 정치 인물을 놓고, 그들의 길을 평가할 것이다.

그리 두껍지 않은 책에 6명을 다루는 일이 주마간산의 느낌을 줄 수 있지만 사학 전공자답게 글을 절제하면서 쓴 만큼 충분한 무게감을 갖고 이들을 만날 수 있다. 6 인물 중 5명은 1880년대에 출생했고, 가장 늦게 1892년생인 이광수가 태어났다. 이들은 20대를 전후해 20세기를 맞았다.

누구나 인정하듯 이 시기는 변혁의 시기였다. 당연히 어떤 길을 가는 게 맞을지에 대한 확신을 갖기 힘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각자의 길을 선택했는데, 그 결과는 비교적 명확하다. 민중의 고통을 외면하고 영달을 선택할 사람과 변화 속에서 자신의 길을 치열하게 고민한 사람의 결과는 차이가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대판 악비와 진회가 된 두 사람

중국에서는 혁명으로 루쉰을, 배신으로 왕징웨이를 선택했다. 몸을 고치는 의사가 되기 위해 일본 유학을 떠났지만, 마음을 고치는 사상가로 변모한 그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다. 지금도 루쉰은 공산주의 중국과 자본주의 대만에서 같이 읽히는 인물이다. 당대 명사 가운데 그런 이는 쑨원 정도가 비교된다.

저자는 루쉰이 일본 유학한 시기에 만난 사회진화론을 저항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이런 변화가 가능했다고 본다. 제국주의는 약육강식과 우승열패, 적자생존을 바탕으로 한 사회진화론으로 약한 국가를 침략했다. 이런 사상 앞에 루쉰은 니체 등의 사상을 바탕으로 극복하고, 각 나라의 전통과 사상을 중시하는 사상체계를 갖는다.

루쉰은 단순히 사상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1918년 발표한 소설 '광인일기'를 시작으로 문학으로 자신을 읽어내게 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인다. '희망이란 본시 있다가도 없다고도 할 수 없는 거였다'로 시작하는 '고향'에서처럼 그는 '다니는 사람이 많다 보면 거기가 곧 길이 되는 것이다'는 믿음을 만들기 위해 부지런히 글과 강의를 한다.

이런 루쉰의 자세는 1928년 이후 나타난 공산주의 계열과의 혁명문학 논쟁에서 공격받을 수밖에 없게 한다. 루쉰은 이 순간에도 자신을 괴롭히지 않고, 적극적으로 공산주의를 공부하고, 의견을 제시한다. 1936년 10월 쉰다섯의 나이로 영면한다.

루쉰보다 두 살 어린 1883년생 왕징웨이를 저자는 '쑨원의 정치적 후계자로서 혁명에 투신했으나, 권력만 좇다가 끝내 중국을 배반한 한간(漢奸)'으로 정리한다.

처음에는 혁명의 대열에 참여하지만 그는 1927년 상하이 쿠데타부터 1937년 난징대학살까지 그는 순간적으로 자신을 바꾸면서 강한 자를 선택하고, 자신이 그 주인 노릇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간다.

결국 1943년 도조 히데키가 주도하던 대동아회의에 중국 측 수족이 되면서 그 정점을 찍는다. 다음해 그는 사망해 난징에 있는 쑨원묘 옆에 묻히는데, 장제스는 나중에 그의 묘를 폭파한다.

개인적으로 중국에 있으면서 루쉰의 흔적을 수십 번은 만났을 것이다. 그의 고향인 샤오싱은 물론이고 상하이, 칭다오, 광저우에 있는 그의 유적지들을 만났다. 왕징웨이는 묻힌 인물이지만 그의 참모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 <색계>를 통해 그 분위기를 만날 수 있었다.

이 두 사람을 중국인들의 가장 대조적으로 본다면 북송 말기 충신을 대표하는 악비와 간신을 대표하는 진회를 떠올린다. 악비는 사당이 세워져 충신으로 추앙받지만 진회는 그 입구에서 무릎 꿇고 있는데, 지나는 이들의 침을 받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우리 혁명가로 조소앙을 고른 이유

정교수는 우리나라에서 혁명을 대표하는 인물로 조소앙을, 배신을 대표하는 인물로 이광수를 선택했다.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혁명적 인물을 말한다면 김구나 안창호, 신채호, 여운형, 조만식 등도 있을 텐데, 조소앙을 선택했다. 아마 조소앙이 그간 월북 인사로 대중적인 인지도가 약했기 때문에 그를 선택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파주 출신인 조소앙 선생은 조부에게 한학을 배우다가 열여섯살이 된 1902년 성균관 경학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1904년 한일의정서가 채택된 것에 분개해 상대를 알기 위해 일본 유학 시험을 치고, 일본으로 건너가 새로운 정치에 눈을 뜬다. 조소앙도 캉유웨이나 량치차오를 통해 유교도 다시 발견하고, 서구 법체계도 공부한다.

다만 그는 자신의 영달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이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데, 8년간 쓴 유학일기 '동유약초'에 고스란히 그 내용을 담는다. 이 과정을 통해 루쉰이 그랬듯이 사회진화론을 극복하고, '진화의 기념을 인권의 신장과 평화의 확립 등으로 전환'한다. 그의 생각은 그냥 멈추는 것이 아니라 1919년에 쓴 '대한독립선언서'나 삼균주의 사상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그가 같이 정리한 사상은 군주정을 회복할 것이 아니라 국민주권 국가로 갈 수 있는 사상적 기초가 된다. 조소앙은 중국으로 건너가 유지하는 데 힘을 쏟는다. 1930년에는 안창호, 김구 등가 한국독립당을 결성하고, 이후 의열단 김원봉 등과도 협동전선을 만드는 등 공헌을 한다. 1941년에는 해방 후 우리 정치의 근간이 된 '대한민국 건국강령'을 직접 기초한다. 해방 후 공간에서 활동하지만, 한국전쟁 때, 납북되어 1958년 영면한다.

상대적인 인물인 이광수를 묘사할 때 저자는 간단히 '근대의 힘을 추종하며 내선일체를 부르짖는다'라고 평한다. 스스로 천재이기를 자초하던 이광수는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를 기초하기도 하지만 결국 자기애에 빠져서 일본의 길을 선택한다. 이 과정에는 독립계열에 대한 배신뿐만 아니라 아버지처럼 따르던 안창호를 등 돌리는 등 그다운 행동이 많다.

그러다가 민족개조를 통해 힘을 키우자는 실력양성론에 빠지고, 결국은 전체주의 세계관으로 몰입한다. 이후 조국의 청년들에게 전쟁터에 나가라는 망발은 물론이고 창씨개명 등에 참여한다. 결국 '조선인은 피와 살과 뼈가 일본인이 돼야 한다'고까지 변화한다.

해방 후 이광수도 당연히 반민특위의 체포 대상자가 되어 1949년 1월에 체포된다. 하지만 6월 이승만의 비호 아래 경찰의 습격으로 반민특위가 해체되고, 불기소되지만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에 의해 보호받다가 폐결핵으로 사망한다.

이 시대 혁명가와 배신자는 누구일까

정 교수는 일본에서 혁명의 인물로 후세 다쓰지를, 배신의 인물로 도조 히데키를 소개한다. 후세 다쓰지는 일본인이지만 우리나라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은 분이다. 자신의 나라가 제국주의가 빠져들었지만 그는 독립운동으로 투옥된 많은 우리 투사들을 변호한다. 또한 지금도 '식민지 근대화'에 빠진 이들이 많은데, 당시부터 일본이 쌀을 수탈하는 근본적인 구조를 분석해서 이야기하고, 같이 저항해준 인물이다.

후세 다쓰지도 다큐멘터리를 통해 소개됐지만 그가 같이했던 박열 등도 최근에 이해가 넓혀지는 만큼 우리 독립운동사의 중요한 한 편이 된 인물이다. 유대인을 구한 쉰들러에 비견될 후세 다쓰지의 반대편에 있는 인물이 일본의 2차 대전을 이끈 도조 히데키다.

엘리트 군인으로 성장한 도조는 1941년 '살아서 포로로 수모를 당하지 말 것. 또한 죽어서도 죄나 재앙을 남기지 말 것'을 강조한 '전진훈'을 발포했다. 태평양 전쟁 후반기에 수많은 일본인들이 살아서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한 만큼 사실상 지금 일본의 쇠퇴에도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도조는 일본인들에게 살아서 포로가 되지 말라 했지만, 자신은 미국의 포로가 되고, 전쟁 법정에서 사형당하는 부끄러운 최후를 맞는다.

책은 사람을 다루지만, 경제적인 관점에서 통찰력 있게 근현대 역사를 봐오던 시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글을 중시하는 역사가답게 문장 하나하나도 가능하면 객관적인 사실을 기초하려는 정성을 느낄 수도 있다. 중요한 인물들의 핵심 포인트를 잘 뽑아냈다.

짧은 책 읽기를 통해 같은 시대 안에서 서로 다른 미래를 꿈꾼 6인을 만날 수 있다. 결국 100년 전 인물은 지금 이 시기에도 다양한 모습으로 환생해서 이 현대를 이끌어 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시기에 누가 조소앙의 삶을 살고, 이광수의 삶을 사는지를 판단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자신의 영달이 아니라, 이 나라의 미래를 심모원려 하면서 자신을 불사를 수 있는 의지가 있는가를 보면 된다.

혁명과 배신의 시대 - 격동의 20세기, 한·중·일의 빛과 그림자

정태헌 (지은이), 21세기북스(2022)


태그:#정태헌, #조소앙, #이광수, #후세다쓰지, #루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디케이아이테크놀로지 상무. 저서 <삶이 고달프면 헤세를 만나라>, <신중년이 온다>,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7권 출간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