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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사람을 그리는 어반스케치를 하면서 서울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생각합니다. [기자말]
행주성당 한옥 성당 왼쪽이 팔작지붕, 오른쪽은 맞배지붕이다. 양쪽에서 그리고 가운데서 이어붙였다. 한옥 성당 양쪽 위에 보이는 성모의 집은 사실 한 건물이다. ⓒ 오창환

어반스케쳐스 고양은 가을을 맞이하여 10월 14일부터 22일까지 회원 전시회를 한다. 전시회에 낼 그림도 그릴 겸, 더 자주 스케치 모임을 가지려 한다.

이번에 모이는 고양 행주성당은 서울과 경기 북부 지역에서 명동성당과 약현성당 다음으로 지어진 성당으로, 고양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한옥 성당이다. 행주성당은 1910년에 처음 지어져 1928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고, 그 후 격동의 역사와 함께 변형되고 낡아진 성당을 옛 사진 등을 참고하여 2015년에 복원하였고 문화재청이 등록문화재로 지정한 곳이다.

설립 100년을 버텨낸 성당

전날 가을비가 장마처럼 와서인지 날이 아주 쌀쌀하고 바람이 많이 분다. 그래도 많은 스케쳐들이 와서 자리를 잡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 행주성당 구내에는 설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성모의 집'과 2016년에 만들어진 '성모당'도 있지만 아무래도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100년 가까이 된 한옥 성당이다.

예로부터 행주에는 나루터가 있어 물류의 중심지였고 그만큼 새로운 사상을 빨리 받아들이는 곳이었다. 행주에 교우촌이 형성되면서 1898년 공소가 설립된다. 그리고 1909년 행주 공소를 본당으로 승격하여 고양, 양천, 부평, 김포, 통진, 파주, 양주 일부 지역을 관할하게 하였다. 

그리고 1910년 소박한 형태의 한옥 성당을 완공한다. 그런데 그 성당은 지대가 낮아서 홍수 피해가 잦았고 화재도 발생하였다. 당시 한강 하류에는 홍수를 막는 제방이 없어 거의 해마다 수해가 되풀이되었다. 성당의 일부가 침수되거나 무너져 내려 그러지 않아도 빠듯한 교회 살림에 큰 부담이 되었고, 농사를 업으로 하는 신자들 역시 수해를 당해 교회 운영에 심대한 지장을 주었다.

1924년에도 가뭄과 홍수로 홍역을 치르더니 1925년에는 을축년 대홍수로 행주 일대가 물바다가 되었으며 행주성당도 지붕만 남기고 고스란히 물에 잠겨버렸다. 결국 1928년에 현재의 위치에 성당 이전 공사가 시작되었고 1931년에 공사가 마무리되었다. 건물을 지으면서 기존 건물의 보와 기둥 등 건축 부재를 대부분 재사용하였다고 한다. 1931년 8월에 예년과 같이 한강물이 범람하였으나 지대가 높은 곳으로 이전된 성당은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다.

당시 행주 지역은 생활에 여유가 있는 지역이었고 신도도 크게 늘어났으나, 1942년 일제가 외국인 신부를 추방해 국내 신부의 수가 줄어들면서 공소로 격하되었다. 광복 후에는 다시 본당이 되었지만, 그 후로 전쟁과 인구구조 변화로 부침을 거듭하였다.

그러나 이 성당은 설립 100년이 지나면서 문화적인 가치를 재조명받게 되었고, 문화재 등록과 복원이 이루어졌다. (강종민 저, 책 <행주성당 100년 이야기> 참조)
 
행주성당 한옥 성당 왼쪽으로 '성모의 집'과 '성모당'이 보인다. ⓒ 오창환
 
누천년 간의 성당 건축의 역사를 지닌 천주교회이지만 한옥으로 성당을 짓는 것은 또 다른 도전이었던 듯하다. 행주성당을 그리기 전에 건물 안팎을 살펴보면서 그 고민의 흔적을 볼 수 있었다.

성당은 예로부터 동서축으로 길게 짓는데, 빛이 오는 동쪽으로 제대(祭臺)가 위치하고 서쪽에는 출입구가 있다. 그래서 신도들은 서쪽 문을 통해 성당에 출입하도록 되어 있다.

보통 한옥이 남향으로 지어져서 남쪽에 출입구가 있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흥미로운 점은 논리는 다르지만 결과적으로 건물을 앉히는 방향과 모양은 같다는 점이다. 행주 성당도  동쪽 제대 서쪽 출입구 원칙을 따르고 있다.

그리고 행주 성당에서만 보이는 특징인데, 출입구 쪽 지붕은 팔작지붕이고 제대 쪽 지붕은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보통의 한옥은 지붕구조가 좌우 대칭이다. 그래야 보기도 좋고 건축하기도 좋기 때문이다. 양쪽의 지붕 형태가 다른 경우는 매우 이례적인 경우인데, 반드시 특별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지었을 것이다. 고양 성당은 왜 그렇게 지었을까?

이 정도 규모의 건물은 가장 발달된 형태의 지붕이자, 궁궐과 사찰 등 권위 있는 건물에 쓰이는 팔작지붕으로 하면 되는데, 팔작지붕은 제대를 설치 하기에 적합하지 않았던 듯하다. 제대를 놓으려면 평평하고 넓은 면이 필요한데 팔작지붕 건물 옆면은 넓은 면이 만들어지지 않아 성당 건물로 적합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이례적으로 출입구 쪽은 팔작지붕 제대 쪽은 맞배지붕이 되었다. 한옥은 넓은 면이 정면이라서 비대칭 지붕은 미적으로 좋지 않은데 반해, 이 건물은 옆면이 아니라 출입구 쪽에서 바라보게 되어 있어서 미관상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행주 성당의 지붕이 별 문제가 아니라고 볼 수도 있지만, 나는 이것이 새로운 문화가 기존 문화를 창조적으로 해석이고 적용한 사례라고 보고 싶다. 이 건물 신축을 할 때 당시 신부님과 도편수가 얼마나 많은 회의를 하셨을까?

세상에는 없는 건물의 그림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나도 그림을 좀 창의적으로 그리고 싶어졌다. 어떻게든 이 두 지붕 양식을 한 장의 그림에 넣어야겠다. 그래서 먼저 팔작지붕 쪽 출입구를 45도 각도에서 그렸다. 그러고 나서 맞배지붕 쪽으로 가서 제대 쪽을 그린 다음에 두 장면을 가운데서 붙이기로 했다. 문제는 자연스럽게 붙이는 것이 핵심이다. 한옥 성당 뒤로 보이는 '성모의 집'은 보이는 대로 각각 그려서 그림 속에서는 2개가 되었지만, 사실은 한 개의 건물을 다른 각도에서 그린 것이다.

스케치가 끝난 무렵 일기 예보대로 비가 온다. 이런 날은 일기 예보가 좀 틀렸으면 하는데, 그런 기대를 여지없이 저버린다. 근처에 전망 좋은 카페가 있어서 급히 그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거기서 그림을 마무리하고 멀리 보이는 행주성당을 한 번 더 그렸다.
 
전망 좋은 카페에서 행주성당을 그렸다. ⓒ 오창환

덧붙이는 글 | 고양신문에도 실립니다.

태그:#행주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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